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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衆은 큰 거짓말일수록 쉽게 믿는다” 映畫 ‘JFK’ & ‘재키’|新東亞

“大衆은 큰 거짓말일수록 쉽게 믿는다” 映畫 ‘JFK’ & ‘재키’

[황승경의 Into the Arte]

  • 황승경 公演 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1-05-0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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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이지 않는 케네디 暗殺 陰謀論

    • 뉴스 映像과 짜깁기…깜빡 속는 觀客들

    • 記錄이 歷史가 되는 걸 알았던 재클린

    • 이미지로 살았다가 이미지로 죽은 政治人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부부, 영화 ‘JFK’ 스틸컷, 영화 ‘재키’ 스틸컷(왼쪽부터). [GettyImage, Warner Bros 제공, Fox Searchlight Pictures 제공]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夫婦, 映畫 ‘JFK’ 스틸컷, 映畫 ‘재키’ 스틸컷(왼쪽부터). [GettyImage, Warner Bros 提供, Fox Searchlight Pictures 提供]

    政治人의 言行 하나하나는 쉴 새 없이 言論에 오르내리며 國民의 關心을 집중시킨다. 政治人들은 相對를 壓倒하는 魅力的인 ‘이미지메이킹’에 神經 쓴다. 政治人들은 種種 造作된 ‘쇼政治’로 國民을 속이곤 하지만, 眞情性 없는 쇼는 언젠가 發覺되기 마련이다.

    1997年 第15代 大統領選擧부터 候補者 間 合同 TV討論이 導入된 以來, 우리나라 政治人들도 ‘이미지 戰爭’에서 優位를 차지하기 위해 演藝人 못지않은 물밑 作業에 功을 들인다. 全 世界를 통틀어 이미지 政治의 最高峯은 美國의 35代 大統領 존 F 케네디(1917~1963) 夫婦가 꼽힌다. 當時 그 어느 할리우드 스타 커플도 케네디 夫婦만큼 照明받지 못했다. 大統領 케네디를 죽인 背後를 쫓는 映畫 ‘JFK’와 童話 속 大統領 夫婦의 裏面을 마주하는 映畫 ‘재키’ 두 篇을 紹介한다.

    科學的 分析이 불 지핀 陰謀論

    영화 ‘JFK’ 스틸컷. [Warner Bros 제공]

    映畫 ‘JFK’ 스틸컷. [Warner Bros 提供]

    實存 人物을 다룬 映畫를 觀覽하는 觀客은 監督이 던지는 메시지를 眞實로 錯覺하기 쉽다. 하지만 映畫는 映畫일 뿐이다. 모든 藝術처럼 映畫도 監督 입맛대로 加工됐기 때문에 實話라고 할 수 없다. 올리버 스톤(74) 監督은 脚色賞(1979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과 두 次例 監督賞(1987年 ‘플래툰’, 1990年 ‘7月4日生’)으로 아카데미賞 트로피를 거머쥔 世界的 監督이다. 베트남戰의 虛像과 妄想을 날카롭게 批判하며 아카데미賞을 再敗한 그는 以後 美國 國內로 視線을 돌린다. 두 番째 아카데미賞 受賞 直後 그가 物色한 新作은 바로 35代 大統領 존 F 케네디 暗殺 事件이었다.

    就任 3年째 되던 1963年 11月 22日 케네디 大統領과 令夫人 재클린은 熱烈한 歡迎을 받으며 텍사스州 댈러스로 移動했다. 지난 大選에서 케네디는 僅少한 差異로 닉슨을 누르고 勝利했다. 就任 以後 最年少 大統領 케네디의 國內外 人氣는 하늘 높이 치솟았다. 패션 아이콘인 아내 재클린도 全 世界의 耳目을 한 몸에 받으며 케네디 神話에 한몫했다. 그들은 TV時代에 가장 큰 惠澤을 입은 最初의 ‘셀럽’이었다. 케네디는 視線, 손짓, 말套, 表情까지 完璧하게 自身의 이미지를 構築했다. 케네디의 人氣는 높았지만 모든 이가 케네디에게 熱狂하지는 않았다. 그를 좋아하는 熱誠팬만큼 안티 팬도 많았다. 코앞에 다가온 再選 高地에 安着하기 위해 케네디는 南部 有權者 支持가 絶對的으로 必要했다. 政治的인 選擇의 岐路에서 그는 有權者와의 正面勝負를 擇했다. 大統領 夫婦는 서슴지 않고 市民들과 握手했고, 그때마다 周邊을 警戒하며 警護員들은 肝膽을 쓸어내렸다. 케네디는 任期 내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大統領’이라는 콘셉트를 固守했고, 댈러스에서 링컨 컨버터블 리무진의 지붕을 열고 카퍼레이드를 하다가 암살당했다.

    세 番째 銃聲 以後 그가 쓰러지는 그 몇 秒間은 아직까지 論爭이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陰謀論도 꼬리를 문다. 現場 證據 保存이나 搜査 進行 方式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大統領이 應急室에서 死鬪를 벌이는 동안 살點이 狼藉한 피투성이 리무진을 말끔하게 淸掃하는 等 犯罪 現場 保存 法則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銃알의 軌道를 斟酌할 수 있는 케네디의 腦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2時間 만에 오스왈드를 逮捕한 것 以外에는 모든 것이 大統領 弑害事件이라 믿기지 않을 엉성한 節次였다. 올리버 스톤 監督의 映畫 ‘JFK’는 그 論難의 中心에서 說得力 있는 科學的인 分析을 통해 陰謀論에 불을 지폈다. 映畫는 JFK 暗殺에서 1968年 클레이 쇼의 裁判까지 한 檢事의 끈질긴 搜査 過程을 다룬다. 暗殺 當日로 돌아가 보자.



    廣場에 울린 세 發의 銃聲

    영화 ‘JFK’ 포스터와 영화 ‘JFK’ 중 1963년 11월 22일 당시 퍼레이드를 재현한 스틸컷 , 케네디 암살 장면이 담긴 필름을 확대한 영화 장면(왼쪽부터).

    映畫 ‘JFK’ 포스터와 映畫 ‘JFK’ 中 1963年 11月 22日 當時 퍼레이드를 再現한 스틸컷 , 케네디 暗殺 場面이 담긴 필름을 擴大한 映畫 場面(왼쪽부터).

    댈러스는 前날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잔뜩 흐린 날씨였다. 16km 카퍼레이드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午前 10時 半부터 거짓말처럼 날이 개기 始作했고, 댈러스 市民들은 大統領을 보기 위해 발 디딜 틈 없이 集結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令夫人의 表情이 어두워질 것을 對備해 핑크色 필박스 帽子를 衣裳과 세트로 準備했다. 케네디 夫婦는 10萬 名 以上 되는 市民의 歡呼를 받으며 손 뻗으면 닿을 距離에서 人事했다. 낮 12時 30分, 人波로 빼곡한 市內 中心을 막 벗어난 車輛은 比較的 閑散한 딜리 플라자 廣場에 當到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세 發의 銃聲이 廣場에 울려 퍼쳤다.

    그날의 證據 資料는 3000餘 點이나 된다. 하지만 決定的인 한 房이 없다. 더구나 풀리지 않는 疑問을 뒤로한 채, 一部 未公開 資料는 아직 봉인돼 메릴랜드 國立文書保管所에 있다.

    事件 10個月 後, 大法院의 얼 워런 判事가 議長을 맡은 眞相糾明委員會는 24歲의 白人 靑年이자 家長인 하비 오스왈드(게리 올드만 分) 單獨犯行으로 結論 내리고 搜査를 終結했다. 그는 蘇聯으로 亡命한 前歷이 있었고, 半(反)케네디 情緖를 가진 人物이었다. 피델 카스트로 當時 쿠바 社會主義革命統一黨 서기를 積極 支持하기도 했다.

    報告書에 따르면, 오스왈드는 텍사스 敎科書 倉庫 6層에서 만리허-카르카노 小銃으로 3發의 實彈을 發射했다. 첫 番째 銃알은 印度에 맞아 市民을 다치게 했고, 두 番째 銃알은 케네디와 앞座席에 同乘한 존 코너리 텍사스 州知事를 貫通했고, 마지막 銃알은 大統領의 머리를 命中해 致命傷을 입혔다고 發表했다. 대낮에 그것도 美國 大統領이 이렇게 虛無하게 生을 마감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스톤 監督은 映畫 ‘JFK’를 통해 空港에 내린 大統領이 暗殺돼 棺에 실려 다시 워싱턴으로 向하는 데 150分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點을 注目한다. 監督은 케네디 暗殺 背後 糾明 搜査를 陣頭指揮했던 實存 人物 짐 게리슨 檢事(케빈 코스트너 分)를 主人公으로 내세워 映畫를 展開한다. 게리슨 檢事는 積極的으로 映畫 製作에 參與했다. 自身의 著書 ‘케네디 大統領 暗殺의 眞相’을 積極 映畫에 認容토록 했으며, 判事 役을 맡아 法廷에서 俳優로 出演하기도 한다. 그는 1969年 唯一하게 JFK 暗殺 背後로 經濟人 클레이 쇼(토미 리 존슨 分)를 起訴하며 中央情報局(CIA)과 某種의 連結線을 疑心케 만들었다. 映畫를 그대로 따라가면, 觀客은 케네디의 平和的인 外交·國防 政策으로 壞滅할 危機에 處한 巨大 組織(軍需企業, 情報機關, 마피아 等)李 緻密하게 計劃해 저지른 暗殺이라는 걸 깨닫는다. 다만 證據는 없고 證言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實際 裁判에서 陪審員들은 1時間도 안 돼 第2次 世界大戰 參戰勇士인 클레이 쇼에게 無罪를 宣告했다.

    스톤 監督은 慘酷한 케네디 暗殺 場面이 赤裸裸하게 담긴 8mm 필름을 35mm로 擴大해 映畫에 揷入하며 차근차근 當時 狀況을 說明한다. 映畫는 케네디가 한 方向이 아닌 여러 方向에서 交叉 射擊당했다는 假說을 紹介한다. 스톤 監督은 게리슨 檢事를 통해 오스왈드의 單獨犯行이라고 結論 내린 워런委員會를 正面으로 反駁한다. 또한 ‘魔術彈丸’이라고 이름 붙은 銃알을 注目한다. 檢事는 하나의 銃알이 케네디를 貫通해 앞座席의 코너리 州知事의 등과 가슴, 손바닥, 손등, 허벅지까지 銃傷을 남길 수 있는 角度가 되려면 銃알이 魔法처럼 휘어야 한다고 主張했다. 魔法銃알은 科學的으로 可能하다고 立證됐지만, 反駁 疑惑을 單番에 잠재우기에는 力不足이다.

    映畫에서 게리슨 檢事는 히틀러의 “큰 거짓말일수록 大衆은 쉽게 믿는다”를 引用하며 暗殺 裏面에 도사리는 巨大 組織을 聯想케 한다. 그런데 이는 무언가를 숨기는 政府와 巨大 組織뿐 아니라 監督 自身도 가리킨다.

    映畫 JFK는 觀客에 信賴를 주는 다큐멘터리 形式으로 찍어 映畫를 보는 觀客은 깜빡 속는다. 映畫 속 暗殺 映像은 事實 巧妙하게 뉴스 映像과 짜깁기돼 觀客을 혼란스럽게 한다. 스톤 監督 스스로도 映畫 開封 前 “暗殺에 可能한 모든 시나리오를 硏究했을 뿐”이라며 映畫에 나오는 場面은 旣存 映像을 잘라 맞춰 編輯한 事實을 認定했다. 映畫는 實際로 自然死한 다른 容疑者 데이비드 페리가 의문사당하는 것으로 設定해 陰謀論을 增幅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眞實을 糾明한다고 抗辯하는 映畫조차 事實을 거짓으로 꾸며 眞實을 歪曲하고 있다. 明快하게 밝혀줄 證據들이 保存되거나 公開되지 않았기에 只今은 그 누구도 明確하게 眞實을 糾明할 수 없다. 50年이 지나도 케네디라는 傳說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의 暗殺에 對한 疑惑의 눈초리 또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 政治의 達人은 재클린

    영화 ‘재키’ 스틸컷. [Fox Searchlight Pictures 제공]

    映畫 ‘재키’ 스틸컷. [Fox Searchlight Pictures 提供]

    映畫 ‘재키’(재클린의 愛稱)도 존 F 케네디의 暗殺을 다루지만 映畫는 純全히 令夫人 재클린(1929~1994)의 心理에 焦點을 맞춘다. 映畫는 暗殺 며칠 後 白堊館에서 進行된 月刊誌 ‘라이프’의 테오도르 화이트(빌리 크루덥 分)와 나눈 재클린(내털리 포트먼 分)의 인터뷰를 起點으로 現在와 過去를 오간다. 댈러스에서의 日程은 8月 早産兒로 태어나 2日 만에 死亡한 次男 牌드릭 出産 以後 3個月 만에 大衆 앞에 서는 자리였다. 재클린은 男便의 頭蓋骨이 散散조각 나는 現場을 目擊했지만 氣品을 維持했다. 以後 그女는 케네디가 美國人에게 永遠히 ‘神話 속의 英雄’으로 記憶될 수 있는 마지막 行路를 企劃했다. 그女는 追慕 行進을 비롯한 葬禮 節次의 小小한 部分 하나하나를 살피며 男便이 偉大한 大統領으로 永遠히 刻印되는 記錄을 남겼다. 眞實보다 記錄이 歷史가 돼 후세에게는 事實로 알려질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文學을 專攻한 23歲의 재클린 浮費에(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結婚 前 이름)는 워싱턴타임스-헤럴드 新聞記者로 일하던 中 케네디 當時 上院議員을 모임에서 만난다. 띠동갑 나이 差異를 넘어 다음해 케네디와 盛大한 結婚式을 올린 재클린은 케네디의 政治 行步를 積極 內助한다. 퍼스트레이디 時節의 재클린은 심플하고 優雅한 ‘재키룩’으로 世界人의 耳目을 사로잡았다. 女性들은 재클린을 스타일 ‘롤모델’로 삼았고, 그女의 패션은 出市 卽時 ‘完販’됐다. 재클린은 大衆을 사로잡는 法을 알고 있었다. 歷史와 藝術이 가진 파워를 잘 아는 그女는 白堊館에 入城하자마자 前任者들이 等閑視했던 白堊館 初期 遺物 復元 作業에 拍車를 加한다. 白堊館 內部를 公開하고 直接 TV에 出演해 白堊館의 歷史에 對해 국민에게 說明했다. 재클린의 豫想은 的中했다. 링컨, 루스벨트 等 前任 大統領들이 實際 살았을 時代의 家口와 遺物을 復元瑕疵, 偉人傳으로만 읽혀지던 爲人들은 살아 있는 歷史가 돼 國民에게 記憶됐다. 그女 德分에 白堊館은 美國人이 歷史를 탐방하고 自負心을 鼓吹시키는 名所로 탈바꿈했다.

    영화 ‘재키’ 포스터.

    映畫 ‘재키’ 포스터.

    映畫 ‘재키’는 케네디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재클린이 얼마나 進取的으로 이미지메이킹에 熱과 誠을 쏟았는지를 如實히 보여준다. 케네디의 女性遍歷으로 圓滿하지 못한 夫婦關係를 營爲했다고 世間에 알려져 있지만, 幸福이 넘치는 케네디 夫婦의 公開 寫眞들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天生緣分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미지메이킹’은 自身이 가진 肯定的인 長點을 最大限 浮刻하는 作業이다. 興味津津한 娛樂的인 구경거리로 煽動과 宣傳을 일삼는 ‘쇼’와는 다르다. 우리나라 政治史에서 케네디처럼 眞正한 이미지를 記錄할 政治人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JFK #재키 #映畫 #新東亞

    황승경
    ● 1976年 서울 出生
    ● 이탈리아 레被逮國立音樂院 디플럼, 韓國藝術綜合學校 專門士, 成均館大 公演藝術學 博士
    ● 國際오페라團 團長
    ● 前 이탈리아 盧베 放送局 리포터, 月刊 ‘英카페’ 編輯長
    ● 著書 : ‘3S 보컬트레이닝’ ‘無限한 想像과 놀이의 變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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