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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새로운 未來, 信美래 “國民請願 消息 듣고 마음 무거웠다”|신동아

트로트의 새로운 未來, 信美래 “國民請願 消息 듣고 마음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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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記者

    kjy@donga.com

    入力 2021-05-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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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괴롭히던 自愧感, 家族의 힘으로 克服했다

    • ‘오빠는 風角쟁이’에 꽂힌 中學生 少女

    • ‘全國 트롯體典’서 ‘人間蓄音機’라는 別稱 얻어

    • 데뷔 後 生計 위해 飮食店 서빙, 物理治療師 ‘알바’ 竝行

    • 일 없어 虛空 바라볼 때 가장 속상했다

    • 審査 判定 問題 삼은 國民請願에 마음 무거워

    • 直接 만든 유튜브 채널 購讀者 6萬 名 늘어 人氣 實感

    지난해 12월 ‘전국 트롯체전’을 통해 트로트 샛별로 떠오른 신미래. [지호영 기자]

    지난해 12月 ‘全國 트롯體典’을 통해 트로트 샛별로 떠오른 信美래. [지호영 記者]

    不過 6個月 前만 해도 트로트 歌手 信美래(31·本名 신은진)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2014年 ‘사랑이 必要합니다’라는 싱글 앨범으로 歌謠界에 데뷔했지만 以後 7年 가까이 그는 無名歌手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只今은 트로트의 새로운 未來를 이끌 有望株로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各種 藝能 프로그램과 廣告 出演 提議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삶에 빛이 든 건 지난해 12月, 트로트 競演 프로그램 ‘트롯 全國體典’(以下 ‘트展’)에 出演하면서다. ‘트展’은 그가 마지막으로 한자락 希望을 품고 지푸라기를 잡는 心情으로 出演한 프로그램이었다. 放送 初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데뷔 7年次 무명歌手예요. 行事가 없어서 ‘알바(아르바이트)’로 物理治療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트로트 歌手를 꿈꿨지만 只今은 노래를 繼續해야 하나 苦悶하고 있어요. 저를 알릴 마지막 機會로 여기고 最善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切迫한 心情이 담긴 첫 告白이 보는 이들의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면, 이어진 舞臺는 每回 聽衆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特히 심수봉의 ‘男子는 배 女子는 港口’를 선보인 지난해 12月 12日 放送에서 그는 “新未來의 노래로 物理治療를 받은 것 같다”는 評과 함께 8個 地域코치로부터 모두 별을 받아 ‘8度 올스타’로 登極했다. 진방남의 ‘꽃馬車’라는 만요(漫謠·1930~40年代를 風靡한 유머러스한 歌詞의 諷刺曲)를 부른 1月 9日 放送에서는 ‘人間 蓄音機’라는 別名을 얻었다. 노래하는 音色이 1940年代 蓄音機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와 비슷해서다.

    決勝 門턱에서 탈락했어도 感謝해

    지난 2월 종영한 KBS 경연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서 열창하는 신미래. [포켓돌스튜디오 제공]

    지난 2月 終映한 KBS 競演 프로그램 ‘트롯 全國體典’에서 熱唱하는 信美래. [포켓돌스튜디오 提供]

    以後 그는 ‘트로트 샛별’ ‘音色 妖精’ ‘만요 少女’로도 불리며 話題를 몰고 다녔다. 有力한 優勝 候補로 擧論되던 그가 最下位에 가까운 點數로 決勝 門턱에서 탈락했을 땐 偏頗 判定 論難이 일기도 했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와 KBS 視聽者權益센터를 넘어 靑瓦臺 國民請願 揭示板에까지 審査 不公正 疑惑이 提起됐을 程度다. 뜨거운 人氣를 ‘實力’으로 證明한 그를 和暢한 봄날 午後 만났다.



    - ‘트展’에 出演한 後 많은 것이 달라졌을 듯하다.

    “事實 無名 時節이 길어지면서 이 일을 繼續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次에 出演 機會가 왔다. ‘마지막으로 한番 해보자’는 생각으로 出戰했는데 예전과 다르게 많은 팬이 생기고 應援해주는 분도 많아졌다. 내가 進行하는 유튜브 채널 ‘未來테레비’ 購讀者 數도 2萬 名에서 8萬 名(4月 9日 基準)으로 6萬 名 늘어났다. 出演하길 正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德分에 感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決勝 門턱에서 탈락했을 땐 어떤 心情이었나.

    “準決勝에 오른 것만도 期待 以上의 成果였기 때문에 큰 欲心이 없었다. 그것만으로 너무나 感謝했기에 決勝에 가지 못하고 탈락했을 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팬들이 많이 슬퍼하셔서 더 잘하지 못한 것이 罪悚했다.”

    ‘오빠는 風角쟁이’에 꽂힌 中學生 少女

    - 偏頗 判定 論難이 있었다. 國民請願에까지 疑惑을 提起하는 글이 올랐다.

    “내 얘기가 國民請願에 올랐다는 消息을 듣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內 脫落 消息을 듣고 팬들과 視聽者들이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表現하신 거라 생각한다. 날 위해 마음을 써주신 點에 너무도 큰 感動을 받았다. 팬들이 어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고 未來의 來日을 應援해 주시기 바란다.”

    그의 故鄕은 江原道 春川이다. 1990年 2女 中 長女로 태어나 줄곧 이곳에서 자랐다. 中學校 때부터 將來 希望이 트로트 歌手였다. 春川 YMCA 靑少年 歌謠祭 大賞, 春川 昭陽江 處女 歌謠祭 金賞 等 學窓 時節 받은 賞도 여러 個다. 2009年 한림성심대學校 物理治療科에 在學 中일 때는 TBS ‘第2回 大學生 트로트 歌謠祭’에 나갔다.

    한番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그의 獨特한 音色은 一般 大衆歌謠보다 트로트와 잘 맞는다는 評價를 받아왔다. 特히 ‘꽃馬車’나 ‘오빠는 風角쟁이’ 같은 萬요를 부를 땐 다시 듣고 싶을 만큼 妙한 魅力을 發散한다. 만요는 그와 因緣이 깊다. 그가 트로트 歌手를 꿈꾸게 된 것도, 歌謠界에 데뷔한 것도 만요 德分이다. 2013年 그는 ‘미라클 코리아’라는 藝能 프로그램에 ‘21世紀 만요 少女’로 出演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보고 앨범을 내준 이가 바로 只今의 所屬社 심플엔터 二仙酒 代表다.

    - 音色이 獨特하다는 表現으로는 不足할 程度로 稀少性이 있고 中毒性이 强하다는 評을 듣고 있다. 타고난 唱法인가.

    “어릴 때는 이런 唱法이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오빠는 風角쟁이’고, 만요를 즐겨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唱法을 갖게 됐다.”

    - 1990年生이 1940年代 流行하던 만요를 좋아하는 것이 神奇하다.

    “아빠의 音樂的 趣向 德에 트로트風의 노래가 친숙하다. 아빠가 羅勳兒 先生님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트로트 音樂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偶然히 ‘오빠는 風角쟁이’를 듣고 그 노래에 꽂혔다. 中學校 때였던 것으로 記憶한다. 그때부터 만요를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萬요를 부르는 歌手의 獨特한 音色도 自然스럽게 닮게 됐다.”

    - 또래 親舊들은 아이돌 歌手의 노래에 빠져 있을 때 아닌가.

    “나도 아이돌 歌手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땐 만요를 즐겼다.”

    - 學窓 時節 좋아한 아이돌 歌手를 떠올린다면.

    “中學校나 高等學校에 다닐 땐 特定 歌手를 팬이라고 自負할 만큼 좋아한 적은 없다. 요새는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 언제부터 歌手를 꿈꿨나.

    “中學校 때부터다. 트로트를 좋아해서 처음부터 트로트 歌手가 되고 싶었다.”

    - 少女 信美래는 어떤 아이였나.

    “性格이 豁達하거나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눈에 띄게 存在感이 있진 않았다. 얌전한 便이면서도 장난도 치고 親舊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學生이었다.”

    - 노래 實力이 좋은 걸 親舊들은 몰랐나.

    “앞에 나서서 노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노래房에 갔을 때 親舊들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노래房 愛唱曲이 심수봉 先生님의 노래와 ‘오빠는 風角쟁이’였다.”

    生計 위해 飮食店 서빙, 物理治療師 ‘알바’ 竝行

    - 歌手를 꿈꾸면서 왜 放送演藝 쪽이 아닌 物理治療를 專攻했는지 궁금하다.

    “大學 進學을 앞두고 엄마한테 歌手가 되고 싶다고 털어놨다. 엄마는 安定的인 職業을 가졌으면 하셨다. 그래서 내가 平素 關心을 뒀던 保健 系列을 選擇하게 됐다. 物理治療師와 看護師 사이에서 苦悶하다 나와 더 잘 맞는 分野로 判斷돼 物理治療科에 들어갔다.”

    - 歌手 練習生을 뽑는 오디션에 挑戰했을 법한데.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春川에서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다닐 形便이 아니었다. 서울까지 자주 오갈 수 있는 與件도 아닌 데다 엄마는 내가 工夫해서 安定的인 職業을 가진 뒤 歌手의 꿈을 實現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 2012年 大學 卒業 後 個人病院에서 物理治療師로 勤務했다고 들었다. 現 所屬社 代表와는 어떻게 만났나.

    “데뷔하기 前 SBS 藝能 프로그램 ‘스타킹’에 出演한 적이 있다. 大學에 다닐 때 參加했던 大學生 트로트 歌謠祭 映像을 作家가 보고 連絡을 했더라. 本選에 進出해 賞을 받진 못했지만 목소리가 獨特해서 印象이 깊었다고 했다. 또 ‘스타킹’ 出演이 契機가 돼 2013年 ‘미러클 코리아’에도 ‘만요少女’라는 이름으로 나갔다. 거기서 ‘오빠는 風角쟁이’를 불렀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只今 所屬社 代表님이 連絡을 해왔다. 그 德分에 앨범을 내고 正式으로 歌手가 될 수 있었다.”

    - 歌手의 꿈을 이뤘을 때 感懷가 남달랐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기쁜 幻想에 부풀었다. 나도 곧 張允瀞 先輩님처럼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 無名 時節을 견디며 마음苦生을 많이 했나.

    “일이 없어서 春川 집 房 안에서 虛空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속상했다. ‘내가 많이 不足한가?’ 하며 自愧感에 빠져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 自身과의 싸움에서 敗北한 느낌이랄까.”

    - 데뷔 後에도 繼續 알바를 했다고 들었다.

    “用돈벌이라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고 꿈이었기에 트로트 歌手로 데뷔했지만 트로트 歌手만 해서는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데뷔 後 春川에서 지낼 땐 三겹살구이집 같은 飮食店에서 알바를 하고, 2017年 서울로 移徙해서는 파트타임으로 物理治療師로 일했다.”

    -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아닌가. 用돈이 不足했을 법한데.

    “不足하면 덜 쓰면 된다. 그리고 物理治療가 時給이 세기 때문에 食堂에서 일하는 것보다 用돈 벌기에 좋았다. 서울로 移徙한 것도 春川에서 求하기 힘든 物理治療師 알바 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원룸텔에서 살았는데 宿泊費를 내고도 用돈이 豐足할 만큼 벌었다. 돈을 모아 원룸으로 移徙했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自愧感이라 했다. 그런 感情을 견디고 克服하게 해준 힘이 뭔가.

    “家族愛가 아닌가 싶다. 내가 우울해하면 엄마는 치킨을 시켜주신다. 그것으로 慰勞와 激勵를 代身하신다. 憂鬱해하지 말고 맛있는 飮食을 먹으면서 氣分 轉換하라는 나름의 處方箋이다. 아빠는 그럴 때 ‘잘될 거야’라고 말씀해 주신다. 女同生은 되게 웃기다. 特有의 유머感覺을 發揮해 나를 많이 웃게 해준다.”

    春川 공지천, 서울 중랑천 걷기 좋아

    신미래는 팬들과 소통 공간인 유튜브 채널 ‘미래테레비’ 방송을 다시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信美래는 팬들과 疏通 空間인 유튜브 채널 ‘未來테레비’ 放送을 다시 始作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호영 記者]

    - 동생이 다음 팬카페 ‘미래정’의 運營者라고 들었다.

    “맞다. 2019年 ‘未來테레비’라는 유튜브 채널 ‘未來테레비’를 만들어 運營할 때 많은 분이 팬카페는 왜 없느냐고 궁금해하셨다. 동생이 그 얘기를 듣고 언니랑 팬들이 같이할 수 있는 疏通의 場으로 活用했으면 한다며 지난해 3月 ‘미래정’을 만들어줬다. 이름은 내가 直接 지었다. 未來와 情을 나누는 맛집 같은 空間이라는 意味다.”

    - 팬카페를 자주 찾나.

    “每日 들어간다. 팬들이 어떤지 궁금해서(웃음). 미래정 會員 數가 처음에는 30名밖에 안 됐다. ‘찐팬(眞짜 팬)’들과 재미있게 노는 空間 같았다. 只今은 1600餘 名으로 늘었다. ‘트展’ 效果다. 카페知己인 동생은 자주 찾지 않는다. 동생이 저보다 아홉 살 적다. 이제 막 就業해서 쉬는 날엔 놀러 다니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充分히 理解한다.”

    - ‘未來테레비’로도 팬들과 疏通하나.

    “커버송 映像을 最初 公開 形式으로 올린 다음 팬들과 實時間으로 채팅한다. 時間이 남을 때는 ‘미레테레비’에 功을 들인다. 放送할 映像을 直接 찍고 編輯까지 다 한다. 커버송을 定하기 위해 흘러간 노래, 요즘 노래 가리지 않고 많이 찾아 듣는다. 餘暇 時間을 活用해 親舊들을 만나 助言을 求하기도 한다. 親舊들을 만나면 노래房에 가기도 한다. 쉴 땐 즐겁게 보내려고 努力한다.”

    - 酒量은 센 便인가.

    “燒酒보다 麥酒를 좋아한다. 麥酒 두 盞이 氣分 좋게 마실 수 있는 酒量이다. 원샷에 들이켜기보다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즐긴다.”

    - 요즘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을 것 같다.

    “食堂에 가면 姨母님들이 알아보시고 반겨주신다. 그런 反應이 監査하고 神奇하다. 舞臺 위에 설 때처럼 풀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면 알아보는 분이 많지 않다(웃음).”

    - 健康管理를 어떻게 하나.

    “健康을 위해 딱히 하는 건 없다. 아침 7時에 일어나 밤 11時에 자는 生活 패턴을 일이 없을 때도 維持하려고 努力한다. 하루 세 끼도 다 챙겨 먹는다. 아침엔 요거트에 과일, 點心에는 밥을 맛있게 먹고, 저녁엔 샐러드를 簡單히 먹는다. 아침저녁을 가볍게 먹고 點心은 잘 챙겨 먹으려고 한다.

    - 날씬한 몸매를 갖고 있다. 나름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밝힌다면.

    “元來 三겹살 같은 기름진 飮食을 좋아해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살이 今方 찐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運動을 竝行하고 있다. 헬스클럽에 다니는 건 아니고 걷기를 좋아해 하루 1時間 程度 걸으려고 努力한다.”

    - 좋아하는 걷기 코스가 어딘가.

    “春川에서는 공지천, 서울에서는 중랑구 중랑천을 자주 찾는다. 둘 다 景致가 아름답고 걷기 길이 잘 造成돼 있다. 憂鬱할 때 한 番씩 걷고 오면 氣分이 좋아진다.”

    ‘엄마校’ 信奉者

    - 歌手가 안 됐다면 只今 뭘 하고 있을까.

    “物理治療師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卒業 後 物理治療師로 就業해 한길을 가고 있을 것 같다. 大學을 卒業한 지 10年 程度 됐으니 작은 病院의 物理治療室腸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

    - 人生의 羅針盤 같은 座右銘이나 그런 存在가 있나.

    “내게 羅針盤 같은 存在는 엄마아빠다. 많은 사람이 힘들 때 宗敎를 찾는다. 힘들 때 엄마아빠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는다. 길을 잃고 헤맬 때 엄마에게 여쭤보면 方向을 가르쳐주신다. 엄마, 아빠가 恒常 바른 길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父母의 말을 잘 따른다. 그래서 내 宗敎는 ‘엄마校’다. 하하하.”

    - 앞으로의 計劃과 抱負는 뭔가.

    “긴 無名 生活 끝에 한줄기 빛 같은 ‘트展’ 出演 機會를 얻었다. 그 德分에 많이 알려진 만큼 가늘고 길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歌手가 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視聽者분들과 應援해 주시는 분들의 期待를 저버리지 않도록 熱心히 練習해 每 瞬間 그 機會마다 最善을 다하는 歌手가 되겠다.”

    -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나.

    “올해는 一週日에 하나씩 繼續 일이 있으면 좋겠다. 繼續 일이 있다는 건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證據가 아닌가. 유튜버로도 사랑받고 싶다. ‘트展’ 出演하느라 中斷했던 ‘未來테레비’ 放送을 다시 始作하려고 새롭게 準備하고 있다. 期待해도 좋다.”

    #信美래 #人間蓄音機 #新東亞



    김지영 기자

    김지영 記者

    放送, 映畫, 演劇, 뮤지컬 等 大衆文化를 좋아하며 人物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文化와 不動産, 流通 分野에도 특별한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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