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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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夕
祖上 에게 드리는 次例 - 韓國
公式이름 秋夕(秋夕)
다른이름 한가위
場所 南韓
北韓
形態 公休日, 傳統 文化 行事
重要度 가을 秋收後 故鄕 訪問
날짜 陰曆 8月 15日
2023年 9月 29日 (금)
2024年 9月 17日 (火)
2025年 10月 6日 (月)
2026年 9月 25日 (금)
祝祭 강강술래 , 씨름大會 , 달맞이 ,
줄다리기 , 農樂 , 소싸움
行事 次例 , 松편 , 길쌈
關聯 설날

秋夕 (秋夕, Chuseok) 또는 한가위 (Hangawi)는 陰曆 8月 15日 에 치르는 行事로 설날 과 더불어 韓國의 主要 連休이자 民族 最大의 名節이다. 秋夕은 農耕社會였던 예로부터 只今까지 韓國人 에게 가장 重要한 年中 最大 名節이다. 嘉俳日 (嘉俳日), 한가위 , 八月 大보름 等으로도 부른다. 가을 秋收를 끝내기 前에(조선시대 秋收는 陰曆 9月) 덜 익은 쌀로 만든 別味 松편과 햇과일을 陳設하고 祖上들께 感謝의 마음으로 次例 를 지냈다. 秋夕에는 一家親戚이 故鄕에 모여 함께 茶禮를 지내고 省墓를 하는 傳統이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秋夕이 오면 全 國民의 75%가 故鄕을 訪問하여 全國의 高速道路가 停滯되고 列車票가 賣盡되는 現象이 벌어지는데, 이를 흔히 '民族大移動'이라고 부른다. 秋夕은 陰曆설보다 賣出, 人口 移動 等에서 數値的으로 더 높은데, 이는 설날이 陽曆설과 陰曆설로 나뉘며, 陽曆설인 새해 첫날 을 쇠는 家庭도 있어 數値가 分散되기 때문이다.

大韓民國 에서는 秋夕의 前날( 陰曆 8月 14日 )부터 다음날( 陰曆 8月 16日 )까지 3日이 公休日 [1] 이지만, 開天節 이나 日曜日 과 겹치면 秋夕 連休가 하루 더 늘어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에서는 太陽節 , 光明星節 이 公式的으로 名節이다.

秋夕에는 널뛰기 , 제기차기 , 강강술래 , 윷놀이 , 씨름 等의 놀이를 한다. 보름달에 所願빌氣는 옛날부터 傳해져 내려오는 傳統이다.

由來 [ 編輯 ]

가을을 祝賀한다는 元來 意味에 더해 收穫, 渤海 勝利를 祝賀하는 意味를 더한다.추석이 언제부터 行해졌는지는 正確하게 알 수 없으나 新羅 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아 三國時代 以前에 始作되었을 것으로 推測된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가위'란 新羅 時代 때 女人들이 실을 짜던 길쌈을 '加倍(嘉排)'라 부르다가 이 말이 變해서 된 것이다.

秋夕의 由來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新羅 의 第3代 王 琉璃 尼斯今 때 벌인 적마競技(績麻競技)에서 비롯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三國史記 》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記述되어 있다.

왕이 6部 를 定하고 나서 이를 半씩 둘로 나누어 王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各各 部(部) 안의 女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便을 짜서 가을 陰曆 7月 16日 부터 每日 아침 일찍 큰 富(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午後 10時頃에 그치는데, 陰曆 8月 15日 에 이르러 그 功績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便은 술과 飮食을 차려서 이긴 便에게 謝禮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行하는데 그것을 加倍(嘉俳)라 하였다. 이 때 陳編에서 한 女子가 일어나 춤을 추며 歎息해 말하기를 "回蘇 懷素"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後代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會蘇曲 이라 이름 하였다.

嘉俳의 當時 發音이 ‘加倍’와 얼마나 一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부터 中世 韓國語 의 ‘ ㄱㆍㅂㆎ ’와 只今의 ‘(韓)가위’라는 이름이 온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意見은 大略 10月頃에 벌어지는 同名制 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이다.

勝戰일에서 由來說 [ 編輯 ]

日本 의 歷史冊 《 日本書紀 》에 따르면, 新羅가 三國을 統一한 날을 勝戰日 로 記念하여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2]

秋夕(陽曆) 날짜
2014年~2034年
鳶島 날짜
2014年 9月 8日 (月)
2015年 9月 27日 (일)
2016年 9月 15日 (木)
2017年 10月 4日 (水)
2018年 9月 24日 (月)
2019年 9月 13日 (금)
2020年 10月 1日 (木)
2021年 9月 21日 (火)
2022年 9月 10日 (土)
2023年 9月 29日 (금)
2024年 9月 17日 (火)
2025年 10月 6日 (月)
2026年 9月 25日 (금)
2027年 9月 15日 (水)
2028年 10月 3日 (火)
2029年 9月 22日 (土)
2030年 9月 12日 (木)
2031年 10月 1日 (水)
2032年 9月 19日 (일)
2033年 9月 8日 (木)
2034年 9月 27日 (水)

秋夕이 新羅가 高句麗 를 멸망시킨 勝戰일에서 由來했다는 《 입당구법순례행기 》가 傳하는 說明도 있다. [3]

이와 關聯하여 韓國의 秋夕과 中國의 仲秋節 의 關聯性에 對한 論難 等에 論議들이 있다. [3]

風習 [ 編輯 ]

秋夕에는 韓服을 입고 햅쌀로 빚은 松편 과 여러 가지 햇과일·土卵국 等 飮食들을 장만하여 秋收를 感謝하는 次例 를 지낸다. 또한 맛있는 飮食을 이웃과 多情하게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도 함께 飮食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보냈으므로 "1年 열두 달 365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겨났다. 온갖 穀食이 무르익는 結實의 季節로서, 가장 밝은 달밤이 들어 있으며, 祖上의 恩惠에 感謝하는 뜻으로 省墓 를 드린다.

秋夕 때는 여러 가지 行事가 펼쳐지며 놀이가 벌어진다. 소싸움 · 길쌈 · 강강술래 · 달맞이 等을 한다. 農樂을 즐기는가 하면 마을 住民들끼리 便을 가르거나 다른 마을과 줄다리기 를 한다. 잔디밭이나 모래밭에서는 씨름 판이 벌어지는데, 이긴 사람은 장사(壯士)라 하여 송아지·쌀·廣木 等을 준다. 全羅南道 西海岸 地方에서는 秋夕날 달이 뜰 무렵 婦女子들이 空터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였으며, 닭싸움·소싸움도 즐겼다고 한다. 秋夕은 秋收期를 맞이하여 豐年을 祝賀하고, 祖上의 恩德을 기리며 祭祀를 지내고, 이웃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韓國 最大의 名節이다. [4]

秋夕 祭祀의 宗敎別 意味와 風俗圖 [ 編輯 ]

儒敎 [ 編輯 ]

儒敎 의 核心은 人間行爲의 基本이자 모든 德의 으뜸으로 삼고 있는 것은 '孝' 思想이다. 儒敎에서 말하는 孝의 根本精神은 가장 貴한 生命을 條件 없이 주고 極盡한 사랑과 恩惠를 베풀어준 父母와 宣祖에 感謝하는 것이다. 이러한 孝는 父母 生時뿐 아니라 死後에도 喪禮(喪禮)와 祭禮(祭禮)를 통해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계실 때 섬기듯이 函(中庸 19張)”이라는 精神으로 이어진다.

儒敎 에서는 이렇듯 祖上에게 至極精誠으로 드리는 祭祀를 통해 '神靈(神靈)李 歆饗(歆饗: 기쁘게 받음)하게 되며 降福(降福: 하늘에서 福을 내리는 日)도 따르게 된다'고 믿는다.

儒敎 祖上祭祀에는 祠堂祭(祠堂祭), 이제(爾祭), 忌祭(忌祭) 等이 있는데 形式上 多少 差異는 있으나 大體로 4部分으로 構成돼 있다. 첫째 部分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神靈의 臨齋(臨齋)를 準備하는 段階로, 祭祀 전 마음을 모으는 制戒(祭戒), 飮食을 차려놓는 陳設(陳設), 神靈이 臨齋하게 하는 강신(降神) 等이 있다. 둘째 部分에선 효성의 象徵的 表現인 祭物을 드리면서 歆饗을 懇請한다. 여기에는 生時와 같이 정성스럽게 飮食을 올리는 進饌(進饌)과 술을 바치는 獻爵(獻爵) 等이 있다. 셋째 部分은 神靈이 祭祀를 歆饗하고 降服하는 意識이다. 神靈이 歆饗하도록 門을 닫는 闔門(闔門)과 다시 들어가서 茶나 숭늉을 드리는 헌다(獻茶)와 祭物의 一部를 濟州(祭主)에게 먹도록 하는 酬酌(受昨), 神靈의 歆饗이 끝났음을 알리는 異性(利成) 等이 있다. 마지막 넷째 部分은 神靈에 드리는 意識을 끝내는 마무리 意識으로 作別人事를 올리는 使臣(辭神)과 서로 祝福하면서 祭物을 나누어먹는 飮福(飮福) 等이 있다.

儒敎의 모든 祭祀儀式은 子孫들이 죽은 이를 生時와 같이 精誠껏 섬기려는 孝誠의 象徵的 表現이며, 神靈이 感謝의 祭祀를 歆饗하게 되면 하늘에서 子孫들에게 福을 내려준다. 아울러 神靈한 福을 받은 後孫의 姿勢는 “그 福을 獨占하지 않고 親戚?이웃과 나누며 더 나아가 삶 自體를 향기로운 祭物이 되게 함으로써 神靈에 和答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佛敎 [ 編輯 ]

秋夕 茶禮는 儒敎 뿐 아니라 佛敎 意識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라는 冊에는 次例의 뜻을 ‘한 솥에 끓인 茶(茶)를 부처님께 바치고 또 공양드리는 사람이 더불어 마심으로써 부처와 衆生이 하나가 되고 또 절 안의 스님과 信者가 같은 솥에 끓인 茶를 나누어 마시면서 異質 要素를 同質化시키는 一心同體 圓融會通의 儀禮가 次例’라고 說明해 두고 있다.

佛敎式 名節 祭祀法의 專門家인 태고종 열린선원의 僧侶 法顯은 “次例(茶禮)는 하늘과 祖上에 茶(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豫)”라고 强調한다. 法顯은 “新羅 景德王 時節 忠膽스님이 부처님께 茶를 올렸다는 記錄을 비롯해 祖上님 祠堂에 며느리가 茶를 올리도록 한 告廟(告廟) 等 歷史的 根據가 分明히 存在한다.”라면서 “特히 朝鮮時代 儒學者이자 事後에 吏曹判書에 推重된 旱災 耳目 先生 집안에서도 茶를 올렸다는 記錄과 그 後孫들은 現在 숭늉 代身 茶를 올려 祭祀를 지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佛敎式 家庭祭祀 基本 指針에 따르면 次例 床차림은 簡素함을 原則으로 하고 고기·生鮮類는 除外한다. 六法供養물에 該當하는 香·初·꽃·茶·果實·밥을 올리고 국·3色나물·3色 過失을 갖춘다. 佛敎 祭祀는 꽃을 갖춤으로써 六法供養물을 完成하는 意味가 있다. 佛敎에서 紹介하는 家庭祭祀 節次를 살펴보면 靈駕 모시기-부처님과 靈駕(靈駕, 祖上 靈魂) 모심, 祭需 勸하기, 佛殿 傳하기(경전 또는 偈頌 讀誦), 祝願(門) 올리기, 靈駕에게 便紙 올리기(생략 無妨), 靈駕 보내기, 祭需 나누기로 祭祀를 마치고 나면 家族이 둘러앉아 飮福(飮福)하며 祖上을 기리고 서로 德談을 나눈다.

佛敎式 祝願文에는 祖上의 살아生前의 삶을 簡略히 되새기고 子孫들의 和合과 모든 衆生의 成佛, 하루速히 부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等이 담긴다.

天主敎 [ 編輯 ]

1930年代 까지 天主敎 는 돌아가신 祖上 앞에서 절을 하고 섬기는 祖上 祭祀를 迷信 行爲로 여겨서 祭祀 禁止令을 내린 적이 있다. 이러한 祖上 祭祀問題를 朝鮮 政府가 天主敎를 무군무부 卽, 임금과 아버지가 없는 宗敎로 여겨 迫害하는 決定的인 原因 中에 하나가 되기도 했고, 宣敎 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그래서 天主敎 殉敎者이자 平信徒 神學者 정하상 (바오로)은 1839年 己亥迫害 殉敎 하기 前에, 天主敎 敎理를 論證하기 위해 쓴 글에서 天主敎 信者들이 祭祀를 拒否하는 理由를 說明하였다.

先祖들을 恭敬하는 民族的 風習인 祭祀가 果然 敎理에 어긋나는지 疑問이 일어나자 敎皇 비오 12歲 1939年 에 “祭祀 意識은 그 나라 民俗일 뿐, 敎理와는 何等의 關係가 없다.”라는 訓令을 내려 祭祀에 關한 敎理를 整理했다. 이 때부터 天主敎는 祭祀를 祖上에 對한 孝誠과 尊敬을 表現하는 民俗的 禮式으로 認識하고 祭祀를 許容하고 있다.

天主敎의 名節 미사는 가톨릭 前例와 韓國人의 傳統 祭禮가 합쳐진 모습을 보여준다. 說이나 한가위 等의 名節에는 本堂 共同體가 미사 前이나 後에 하느님에 對한 感謝와 祖上에게 對한 孝誠, 追慕의 共同 意識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준다. 天主敎는 名節이나 脫喪, 期日 等 특별한 날에는 家庭의 祭禮보다는 慰靈미사를 優先해 奉獻하도록 하고 있다. 2003年 韓國 天主敎 主敎會議 가 펴낸 《上場 禮式》에 따르면 茶禮床에는 촛불 두 個와 꽃을 꽂아 놓으며 香을 피워도 된다. 壁에는 十字苦像 을 걸고 그 밑에 祖上의 寫眞을 모신다. 寫眞이 없으면 이름을 정성스럽게 써 붙인다. 다만 位牌에 神位(神位)라는 글字를 적어서는 안된다. 이어 聖號를 긋고 聖歌를 부르고 聖經 句節을 選擇해 奉讀하기, 家長의 말씀, 父母·子女·家庭·夫婦를 위한 祈禱 等을 거쳐 次例 飮食을 飮福하고 聖號를 긋는 것으로 次例를 마친다. 또한, 韓國 天主敎는 說과 한가위 를 移動 祝日로 制定, 固有 讀書와 固有 感謝頌을 곁들인 名節미사로 擧行할 수 있도록 定하고 있다.

天地神明에게 告하는 祝文(祝文), 靈魂 祭物 을 받도록 屛風 을 가리고 門밖에 나가는 闔門(闔門), 上집에서 죽은 이의 魂을 부를 때 저승에서 온 獅子를 먹인다는 獅子(使者)밥을 차리는 것 等은 天主敎에서 迷信으로 規定하고 禁止하는 事項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秋夕 [ 編輯 ]

北韓 大韓民國 과 마찬가지로 秋夕을 名節 로 하고 있지만, 3日 連休인 설날 과 달리 秋夕은 當日 하루만 公休日로 한다.

1967年 5月 , 封建 殘滓를 一掃하라는 김일성 主席의 指示에 따라 陰曆설을 비롯한 民俗名節을 公式 禁止했다. 그러나, 1972年부터 秋夕에 한해서 省墓 等이 部分的으로 許容되었다. 以後 김정일 國防委員長의 朝鮮民族第一主義 主唱에 依해 1988年 秋夕을 始作으로 陰曆설 , 端午 等을 民俗名節로 復活, 休日로 指定했으며, 2003年부터 陽曆설 代身 陰曆설을 基本 설 名節로 쇠게 하고 公休日 로 指定했다. 北韓은 陽曆설 , 太陽節·光明星節, 國際勞動者節, 政權 創建日, 黨 創建記念日 等을 國家名節을 더 重要하게 생각하고, 설날 秋夕 , 端午 等은 民族 名節은 더 重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一般 住民들은 집에서 따로 茶禮를 지내지 않고, 次例 飮食을 準備해 省墓를 간다. 秋夕 飮食上의 풍요로움은 南北 間 差異가 크지만, 女性들이 부엌에서 일을 하고 男性들은 親戚 等 손님과 飮食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世態는 如前하다. 秋夕날 民俗놀이로는 씨름 大會나 農樂 等이 곳곳에서 進行되지만, 主로 機關과 團體에 依해 組織된 行事로 自發的 參與率은 높지 않다. [5]

기타 [ 編輯 ]

天文學 敵으로는, 秋夕에 "大보름"李 아닐 수도 있다. 보름달 은 한 달에 한 番 뜨게 되는데, 秋夕에 뜨는 보름달이 가장 크려면, 그 때, 보름달이 地球에서 가장 가까워야 한다. 그러나 秋夕에 뜨는 보름달이 地球에서 가장 가까울 때도 있지만, 가장 멀 때도 있다. 그래서 秋夕은 "大보름"李 아닐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正月 大보름 에 가장 큰 보름달이 아닐 수도 있다. 參考로, 보름달이 가장 클 때를 슈퍼문 이라고 한다. [6] 1520年 에는 율리우스력 을 使用했기 때문에 秋夕을 陽曆으로 換算했을 때의 날짜가 8月 27日 [7] 이었으나 現在의 曆法으로는 秋夕이 陽曆 8月 에 오는 것은 먼 未來에 秋分 9月 15日 以前에 오지 않는 以上 絶對로 不可能하다. [8]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1985年까지는 秋夕 當日만 休務, 1986~1988年에는 秋夕 當日부터 다음날까지 2日 連休였으며, 1989年부터 現在와 같은 方式의 連休가 適用되었고, 2014年부터 開天節 이나 日曜日 等의 公休日과 겹칠 境遇 이 다음으로 오는 첫 平日까지 公休日이다.
  2. “[유석재 記者의 突發史前] 秋夕은 三國統一 戰勝記念日이었다?” . 朝鮮日報. 2018年 9月 20日.  
  3. “秋夕 名節에 對한 綜合的 考察” . 2021年 考慮史學會 國立民俗博物館 共同 學術大會: 國立民俗博物館. 2019年 5月.  
  4.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5. 이현정 (2011年 9月 11日). ' 次例 안지내고 省墓' 北韓住民 秋夕風俗圖는?” . 뉴시스 . 2011年 9月 11日에 確認함 .  
  6. 韓國天文硏究院 天文宇宙知識情報사이트 - 曆書 Archived 2015年 2月 6日 - 웨이백 머신 "달" 部分을 보기 바란다. (原文 이미지를 클릭해서 보기 바란다.)
  7. 이를 그레고리력으로 逆換算하면 9月 6日 이 된다.
  8. 그레고리력과 地球의 公轉週期의 車는 3300年에 1日의 差異가 생긴다. 따라서 現在의 그레고리력이 繼續 維持된다고 假定하면 陽曆 8月 31日 秋夕은 8040年에 처음으로 나온다.

參考 文獻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