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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 ‘더 스파이’ & 넷플릭스 ‘더 스파이’[황승경의 Into the Arte]|新東亞

映畫 ‘더 스파이’ & 넷플릭스 ‘더 스파이’[황승경의 Into the Arte]

第3次 世界大戰을 막은 諜報員들의 世界

  • 황승경 公演 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1-06-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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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 튀는 美·蘇 手싸움 ‘諜報 戰爭’

    • 윈의 活躍으로 ‘쿠바 미사일’ 알아차린 美

    • 어느 날 保險販賣員 코헨에게 찾아온 손님

    • 3次 中東戰爭 完勝한 이스라엘 뒤에는…

    • TV로 생방송된 어느 諜報員의 죽음

    영화 ‘더 스파이’ 스틸컷(위).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스틸컷. [the Sundance Film Festival 제공, 넷플릭스 제공]

    映畫 ‘더 스파이’ 스틸컷(危).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스틸컷. [the Sundance Film Festival 提供, 넷플릭스 提供]

    스파이는 自國에서 稱頌받을수록 相對國에는 徹天之怨讐가 된다. 普通은 ‘惡質 廉探꾼’ 程度로 貶毁된다. 스파이들의 宿命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물밑 作戰으로 이루어지는 諜報戰은 때론 戰爭을 막기도 하지만 때론 戰爭을 일으키기도 한다.

    스파이들이 登場하는 諜報映畫는 스펙터클한 場面이나 오싹한 스릴러 場面은 없어도 緊迫한 構成을 展開한다. 언제 發覺될지 모르는 危殆로운 狀況을 오가며 觀客들은 조마조마해한다. 映畫 속 스파이들은 假想의 人物이 많다. 陰地에서 活動하고 徹底하게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의 身分이 露出될 때는 普通 祖國을 背信하고 敵과 內通했거나, 敵에게 發覺돼 悲劇的 末路를 맞았을 境遇다. 狀況이 이러하니 信念을 가진 스파이는 狐假虎威하며 無頉하게 살기는 쉽지 않다.

    불꽃 튀는 美·蘇 手싸움 ‘諜報 戰爭’

    영화 ‘더 스파이’ 포스터(아래)와 스틸컷. [the Sundance Film Festival 제공, TCO㈜더콘텐츠온 제공]

    映畫 ‘더 스파이’ 포스터(아래)와 스틸컷. [the Sundance Film Festival 提供, TCO㈜더콘텐츠온 提供]

    歷史上 손꼽히는 스파이들 가운데 冷戰(冷戰, cold war) 時期에 活動하며 世上을 바꾼 各其 다른 두 스파이의 活躍이 담긴 同名 映畫 ‘더 스파이’(2020)와 미니시리즈 드라마 ‘더 스파이’(2019)를 比較해보자.

    2020年 製作돼 4月 28日 開封한 映畫 ‘더 스파이’의 元來 題目은 ‘더 커리어(The Courier)’이지만 우리나라에서만 ‘더 스파이’라고 달았다 映畫는 傳說的인 스파이 올레크 펜콥스키(메랍 니니트쩨 分)의 活躍이 中心이 아니라, 蘇聯 스파이가 傳해 주는 諜報를 西方에 傳達하는 運搬子인 英國人 事業家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 分) 이야기다.

    映畫를 理解하기 위해 1960年 冷戰時代 國際關係를 먼저 알아둘 必要가 있다. 第2次 世界大戰 後半부터 美國과 蘇聯은 前後 東유럽 體制와 原子力 管理 問題를 두고 對立하기 始作했다. 世界 地形은 微笑 두 强大國 中心으로 再編됐다. 1950年代는 兩側 同盟國 사이에서 葛藤, 緊張, 競爭 狀態가 이어진 對立 時期로 一觸卽發의 時限爆彈이었다.



    이른바 冷戰 時期는 1950年代에 이어 1960年代에도 繼續됐다. 속고 속이는 스파이들이 蒐集한 諜報로 各 陣營은 戰爭을 彷彿케 하는 수(手)싸움에 死活을 걸었다. 極祕 情報의 流出을 막기 위한 內部 團束과 外部 監察이 만만치 않다 보니 스파이들은 금세 索出됐다. 兩 陣營 모두에게 相對의 警戒를 풀 수 있는 確實한 人物이 切實했다. 이 時期 스파이들은 祕密 維持를 위해 映畫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팀으로 活動하기보다는 各自圖生했고, 身分은 徹底히 祕密에 부쳐졌다. 1960年 7月 美國 中央情報局(CIA)에 믿기 힘든 最大魚가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蘇聯軍 總參謀部 情報總局(GRU) 大領인 올레크 펜콥스키(1919~1963)가 自進해서 接觸을 打診해 온 것. CIA는 共産主義에 幻滅을 느낀 엘리트 將校의 逸脫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部分이 많아 蘇聯의 祕密警察(KGB)의 陰謀라는 疑心을 풀지 않았다. 한데 그가 傳해 주는 알짜 1級 情報 德分에 難攻不落으로 여겨온 GRU의 暗號體系까지 解讀하게 되자 CIA는 하루빨리 그를 만나 더 많은 1級 情報를 傳達받으려 안달이 났다. 마땅한 人物을 찾아 英國의 祕密情報局(MI-6)과 共助하던 CIA는 딱 들어맞는 ‘接線冊’을 찾아낸다. 忠實한 런던市民으로 한 집안의 家長인 그레빌 윈(1919~1990)이었다.

    윈의 活躍으로 ‘쿠바 미사일’ 알아차린 美

    영국인 사업가 그레빌 윈의 실제 모습. [GettyImage]

    英國人 事業家 그레빌 윈의 實際 모습. [GettyImage]

    그는 노팅險 工科大學에서 電氣를 專攻한 平凡한 事業家로 蘇聯을 비롯한 東유럽을 隨時로 오가고 있었다. 身分을 僞裝하기 위한 苦難도의 스파이 敎育 없이 現場에 곧바로 投入할 수 있었다. 諜報員 提案을 받은 그는 꿈인지 生時인지 荒唐해하며 拒絶하지만 이내 事案의 重함을 깨닫고 蘇聯行 飛行機에 오른다. 윈은 펜콥스키가 주는 따끈한 情報를 받아 CIA와 MI-6에 安全하게 傳達하지만 ‘모든 國民의 눈은 國家의 눈’이라고 할 만큼 蘇聯 곳곳에는 閉鎖回路(CC)TV와 盜聽裝置가 깔려 있었다.

    1919年生 同甲내기 찰떡宮合 蘇聯人과 英國人이 西方世界에 보내온 情報는 5000페이지가 넘는 ‘歷代級’ 極祕 文書였다. 一當百의 成果였다. 그 中 쿠바 미사일과 關聯한 文書는 核戰爭 危機一髮 狀況을 直視시키는 貴重한 情報였다.

    1959年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革命을 일으켜 새로운 社會主義 國家를 만들고 美國과 맺은 同盟을 破棄했다. 美國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스트로는 재빨리 蘇聯에 손을 내밀었고 蘇聯은 援助를 아끼지 않았다. 蘇聯은 美國을 옥죄기 위해 美國 플로리다에서 뱃길로 겨우 150km 떨어져 있는 쿠바에 미사일基地를 세우고 있었다. 美國의 코앞에 核미사일을 構築할 心算이었다.

    美國은 英國人 윈에 依해 傳해진 펜콥스키의 文書를 통해 이 事實을 感知했다. 虛를 찔린 美國은 偵察機를 보내고 나서야 蘇聯의 野慾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法. KGB의 낌새를 捕捉한 MI-6는 윈의 蘇聯行을 挽留했지만 윈은 펜콥스키를 外面할 수 없었다. 펜콥스키를 脫出시킬 方道를 찾아 虎狼이窟로 들어간 윈은 펜콥스키와 함께 1962年 10月 22日 逮捕됐다. 이는 쿠바 미사일 基地 問題로 蘇聯에 對한 全面的인 警告와 海上封鎖를 宣言한 존 F 케네디 美國 大統領의 對國民 演說이 있기 바로 몇 時間 前이었다. 윈은 1963年 5月 11日 스파이 嫌疑로 懲役 8年의 有罪判決을 받았다. 펜콥스키는 間諜罪와 反逆罪로 총살당했다. 劣惡하기 짝이 없는 루브얀카 收容所에서 服役하던 윈은 1964年 英國과 蘇聯의 맞交換 協商으로 釋放됐다. 收容所 生活이 얼마나 苛酷한 環境이었는지는 윈 役割을 맡은 俳優 컴버배치의 빠짝 마른 모습과 憂愁에 찬 表情이 잘 代辯해 준다.

    1978年 英國으로 亡命한 前 GRU 國葬 빅토르 수보로프는 後日 그의 著書에서 “올레크 펜콥스키의 이름은 歷史의 한 페이지를 裝飾할 것입니다. 그의 貴重한 情報 德分에 쿠바 미사일 危機는 第3次 世界大戰으로 觸發되지 않았습니다”라고 回顧했다. 蘇聯의 核戰力을 얕잡아보고 安逸하게 對處했던 美國은 펜콥스키-윈의 諜報 德分에 實相을 알아차리고 蘇聯의 野慾에 對處할 수 있었던 것이다.

    演劇 演出家 出身의 도미닉 쿡(55) 監督은 극박한 狀況에서의 人物 心理에 重點을 두고 感情 演技를 담백하고 簡潔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華麗한 追擊 액션이 나오는 諜報映畫를 생각하고 觀覽한다면 失望할 수도 있다. 그러나 時時刻刻 變하는 두 人物의 表情과 애잔한 名臺詞를 곱씹으면서 時代의 아픔을 들여다보면 觀客은 깊은 思索에 빠진다. “우린 겨우 두 사람이지만 世上은 이렇게 바뀌는 거야.”

    冷戰時代, 또 다른 火藥庫였던 中東으로 넘어가 보자. 19世紀 後半부터 유대人들은 自身들만의 國家를 建設하기 위해 유대民族主義運動(시오니즘)을 펼치며 自身들의 故鄕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었다. 第2次 世界大戰이 끝나자 유럽 各地의 오갈 데가 없는 유대人의 移住가 始作됐고, 土着民인 아랍人들과의 크고 작은 流血紛爭도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保險販賣員 코헨에게 찾아온 손님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포스터(위)와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포스터(危)와 스틸컷. [넷플릭스 提供]

    1948年 5月 建國된 이스라일은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論과 1次 中東戰爭을 치러야 했으다. 1956年 10月에는 直接 이집트를 先制攻擊하며 第2次 中東戰爭을 일으켰다. 이때 이집트는 자국에 남아 있던 의심쩍은 유대人들을 追放했는데, 이때 이집트 胎生의 篤實한 유대人으로 地下紐帶民族運動에 몸담던 엘리 코헨(1924~1965)도 있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英雄으로 2019年 放映된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6部作 ‘더 스파이’의 主人公이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熱烈한 民族主義者 코헨(샤샤 베런 코언 分)은 軍에 入隊해 防諜隊 分析官으로 일한다. 이집트에서의 經驗을 살려 國家에 한 몸 바치겠다는 愛國心에 불탄 코헨은 모사드(이스라엘 祕密情報機關)로 轉出을 申請한다. 그러나 結果는 不合格. 失意에 빠진 코헨은 除隊하고 當時 이스라엘의 臨時首都였던 텔아비브에 있는 保險會社에서 勤務한다. 곧이어 結婚하고 幸福한 家庭도 꾸리고 오손도손 家族들과 平凡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1959年 느닷없이 그에게 未知의 손님이 찾아온다.

    當時 이스라엘은 四方에 敵들로 둘러싸여 한時도 맘 便히 있을 수 없을 程度였다. 이에 모사드는 아예 周邊國別로 目標를 定해 集中攻掠하는 組織的인 祕密諜報活動을 講究한다. 能力이 出衆한 八方美人 要員을 養成해 狀況에 맞게 諜報活動을 指示하는 게 아니라 工作 캐릭터를 미리 定해 놓고 그 캐릭터를 消化할 수 있는 特殊工作要員을 養成해야 했다. 1950年代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人物을 求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書類다발을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適任者는 코헨뿐이었다. 예전에는 苦杯를 마셨지만 다시 찾아온 機會는 놓치지 않았다. 코헨은 시리아 高位層에 自然스럽게 潛入할 수 있도록 돈 많은 카사노바에 親和力을 兼備한 甲富로 탈바꿈했다.

    6個月間의 集中 過程을 履修하고 身分 洗濯을 위해 스위스를 거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定着한다. 能手能爛하게 ‘카말 아민 他베트’라는 시리아人으로 깜짝 變身한 코헨은 周邊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며 시리아 僑民社會의 ‘셀럽’으로 자리 잡았다. 以後 아르헨티나 大使館 人脈으로 1962年 1月 시리아 本國에 進出한 뒤 스파이活動이 始作됐다. 每日 享樂의 파티를 열고는 시리아를 左之右之하는 政界·財界·軍部의 最上位層과 끈끈한 紐帶 關係를 맺었고, 極祕 事案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술에 醉해 人事不省인 척하면서도 고스란히 情報를 記憶해 내고 本國에 無電을 보내면 다음 날 이스라엘에서는 對策會議를 열었다.

    엘리 코헨(왼쪽)과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스틸컷. [위키피디아, 넷플릭스 제공]

    엘리 코헨(왼쪽)과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더 스파이’ 스틸컷. [위키피디아, 넷플릭스 提供]

    3次 中東戰爭 完勝한 이스라엘 뒤에는…

    特히 敦篤한 軍 將星들과의 人脈으로 그는 이스라엘과 맞닿은 시리아 國境地域 골란고원에 直接 招請받았다. 이곳은 民間人 出入統制地域이자 軍事 要塞로 이스라엘은 골란高原 情報가 全無했다. 그는 무심하게 周邊을 스치는 듯 觀光했지만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完璧히 스캔해 祖國에 報告했다. 特히 部隊 位置, 軍事施設 內部 設計, 操縱士 名單 等은 1967年 이스라엘이 第3次 中東戰爭에서 시리아를 單숨에 擊破하는 데 絶對的인 情報가 됐다. 코헨의 情報로 이스라엘에 編入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軍事的 要衝地가 됐다.

    漸漸 不安한 그림자를 느끼던 코헨은 任務를 끝내고 싶었지만 코헨의 알짜情報가 더 必要했던 모사드는 이를 許諾하지 않았다. 結局 그가 시리아에 潛入한지 滿 3年 만인 1965年 1月에 疑心스러운 電波 送出 震源地를 찾던 시리아 情報局에 依해 그의 아파트는 급습당한다. 꿈에도 想像하지 못한 그의 身分에 驚愕한 시리아 首腦部는 恐慌 狀態에 빠졌다.

    侮辱的이고 慘酷한 拷問 속에서도 그는 목숨을 求乞하지 않았고, 거짓 情報를 電送하라는 시리아의 要求도 毅然하게 拒絶했다. 이스라엘도 百方으로 救命運動을 펼쳤으나 시리아의 憤怒를 가라앉히기에는 턱도 없었다. 시리아 政府는 極에 達한 시리아 國民을 달래기 위해 그의 死刑 執行을 生放送으로 中繼했고, 遺骸라도 送還해 달라는 코헨 夫人의 눈물 어린 呼訴에도 시리아 當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遺骸는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半世紀가 지난 只今 이스라엘은 ‘아픈 英雄’ 코헨의 遺骸發掘을 抛棄하지 않았다. 祖國에 그는 單純히 國家의 祕密첩보원이 아니라 亂世에 나라를 救한 英雄이기 때문이다.

    #더스파이 #諜報映畫 #황승경 #新東亞

    황승경
    ● 1976年 서울 出生
    ● 이탈리아 레被逮國立音樂院 디플럼, 韓國藝術綜合學校 專門士, 成均館大 公演藝術學 博士
    ● 國際오페라團 團長
    ● 前 이탈리아 盧베 放送局 리포터, 月刊 ‘英카페’ 編輯長
    ● 著書 : ‘3S 보컬트레이닝’ ‘無限한 想像과 놀이의 變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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