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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仲燮이 그린 ‘황소’도 움직여야 名作![名作의 祕密]|新東亞

李仲燮이 그린 ‘황소’도 움직여야 名作![名作의 祕密]

高額에 팔리던 李仲燮 ‘황소’…國立現代美術館에 安着

  • 이광표 西原大 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1-06-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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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仲燮의 生涯 그대로 담은 소 聯作

    • 1950年代 소 그림들이 가장 有名

    • 한 點當 最高 47億 원에 팔리기도

    • 소 聯作은 20世紀 우리 民族의 自畫像

    • 作品 引受戰이 魅力的인 逸話 만든다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 중 하나인 이중섭의 ‘황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年 4月 故 李健熙 三星그룹 會長 遺族이 國立현대미술관에 寄贈한 美術品 中 하나인 李仲燮의 ‘황소’. [국립현대미술관 提供]

    2010年 6月 29日 서울옥션 競賣에서 李仲燮의 ‘황소’가 35億6000萬 원에 落札됐다. 李仲燮 作品 가운데 競賣 最高價 新記錄이었다. 2018年 3月 7日 서울옥션 競賣에서 李仲燮의 또 다른 ‘황소’가 47億 원에 落札됐다. 8年 만에 또다시 新記錄을 更新했다. 最近 李健熙 前 三星 會長의 遺族들이 李健熙 컬렉션 2萬3000餘 點을 국립중앙박물관과 國立현대미술관에 寄贈했다. 여기 李仲燮의 또 다른 소 그림 두 點(‘황소’ ‘흰 소’)이 包含됐다.

    이들의 共通點은 우리가 좋아하는 李仲燮의 소 그림이라는 點과 最近 10餘 年 사이 이런저런 理由로 所長處가 바뀌었다는 點이다. 所長處가 바뀌었다는 것은 主人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이는 該當 美術品의 一生에서 큰 事件이 아닐 수 없다.

    35億6000萬 원짜리 황소, 47億 원짜리 황소

    2010年 35億6000萬 원에 落札된 李仲燮의 ‘황소’(1953~1954年頃)는 現在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美術館에 걸려 있다.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 꿈틀거림이 느껴지고 그림 自體의 魅力에 빠져들게 된다. 名作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同時에 자꾸만 어떤 이야기가 떠오른다. 所藏者에 關한 이야기다. 이 作品의 主人은 안병광 유니온制約 會長이자 서울美術館의 設立者. 그는 美術品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時節 製藥會社 末端 營業社員이었다. 너무 힘들어 “營業을 그만둬야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고 다니던 1983年 여름 어느 날 午後. 營業 途中 갑작스레 쏟아진 비를 避하려 어느 額子가게의 처마 밑으로 몸을 避했다. 그때 偶然히 陳列臺에 展示된 그림 한 點과 눈이 마주쳤다. 황소의 强烈한 눈빛과 肉重한 몸짓. 그는 瞬息間에 그림에 빨려들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는 그 그림을 갖고 싶어졌다. 額子가게 主人에게 물어보니 그건 複製品이라고 했다. 그러곤 “原作을 사려면 좋은 집 한 채는 팔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는 複製品을 購入하고 돌아서며 “언젠가 機會가 된다면…”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23年이 흘렀다. 製藥會社 營業社員은 유니온制約의 會長이 됐다. 安 會長은 2010年 그 황소 그림 原作이 競賣에 나왔다는 消息을 들었다. 그의 內面이 또다시 꿈틀거렸고 기꺼이 巨額을 準備했다. 安 會長은 그렇게 李仲燮 ‘황소’의 새로운 主人이 됐다. 서울美術館의 ‘황소’ 앞에서 이 祕話를 떠올리면 이 그림이 더 좋아진다. 내게도 무언가 꿈틀거림이 찾아올 것 같다.



    2018년 3월 서울옥션에서 47억 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그림 ‘황소’. [동아DB]

    2018年 3月 서울옥션에서 47億 원에 去來된 李仲燮의 그림 ‘황소’. [東亞DB]

    2018年 3月 7日 서울옥션 競賣. 李仲燮의 또 다른 ‘황소’(1955年頃)가 落札 豫想價 30億 원을 훌쩍 뛰어넘어 47億 원에 落札됐다. 그날 競賣는 18億 원에 始作해 1億 원씩 呼價가 올라갔다. 熾烈한 競合을 거치며 瞬息間에 30億 원을 넘어 36億 원에 이르렀다. 8年 前 樹立된 李仲燮 그림 最高 競賣價가 깨지는 瞬間이었다. 呼價는 繼續 치고 올라갔고 경매사는 금세 “45億”을 불렀다. 競賣場은 緊張感이 팽팽했고 경매사는 이 歷史的인 瞬間을 좀 더 차분하게 記憶하기 위해 숨을 고르기 始作했다. 多少 餘裕를 갖고 “46億” “47億”을 呼價하자 곧바로 이에 和答하는 番號版 牌들이 올라갔다. 暫時 後 競賣社의 “48億” 呼價가 이어졌지만 應札은 여기서 멈췄고 ‘황소’의 競賣는 47億 원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이 作品을 競賣에 내놓은 사람은 35億6000萬 원짜리 ‘황소’를 購入했던 安 會長이었다. 이 作品은 이보다 2年 앞서 2016年에 國立現代美術館의 李仲燮 誕生 100年 特別展에 出品돼 關心을 끌기도 했다. 安 會長이 이 作品을 언제 어떻게 所藏하게 됐는지, 이 作品을 47億 원에 購入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正確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年 程度 지나면 어느 程度 알려질 것이다. 하나하나 알려질 때마다 우리는 47億 원짜리 ‘황소’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나게 될 것이다. 名作은 이런 것이다. 한 點 한 點에 이런 이야기들이 덧붙여질 때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더 오래 記憶하고 더 멋지게 鑑賞하며 感動을 받는다.

    1950年代 作品이 가장 脚光받아

    이중섭의 소 연작 중 대표 격으로 꼽히는 ‘흰 소’. [홍익대박물관 제공]

    李仲燮의 소 聯作 中 代表 格으로 꼽히는 ‘흰 소’. [홍익대博物館 提供]

    李仲燮은 어린아이와 家族, 風景, 물고기와 닭과 소 等을 그렸다. 그中에서도 가장 印象的인 것이 소 그림이다. 우리는 李仲燮의 소 그림을 참 좋아한다. 李仲燮은 1940年代 初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代 中盤부터 소를 그렸다. 이 時期의 소 그림은 多少 神話的이거나 超現實的인 雰圍氣가 담겨 있다. 當時 作品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鉛筆로 그린 素描 程度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寫眞 資料로만 確認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李仲燮의 소 그림은 大部分 1950年代에 그린 것이다. 現在 남아 있는 이 時期의 소 그림은 20餘 點. 特히 1953~1954年 무렵 慶南 統營에 머물 때 황소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35億6000萬 원짜리 ‘황소’, 47億 원짜리 ‘황소’, 李健熙 컬렉션 ‘황소’와 ‘흰 소’ 모두 이 時期에 그린 것이다.

    李仲燮의 소 그림 聯作을 보면, 비슷한 構圖의 그림이 여러 點씩 있다. 홀로 서 있거나 어딘가로 向하는 소를 그린 作品, 서로 싸우는 두 마리의 소를 그린 作品, 어딘가를 凝視하는 황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作品, 家族이나 아이들과 함께 登場하는 소를 그린 作品 等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그림은 홀로 서 있는 소를 그린 作品일 것이다. 홍익대 博物館 所藏品인 ‘흰 소’(1953~1954年頃)가 代表的이다. 35億6000萬 원, 47億 원에 落札된 ‘황소’도 最近 들어 다시 注目받고 있다. 以外에 李健熙 컬렉션과 其他 個人의 所藏品도 있다.

    홍익대 博物館의 ‘흰 소’는 소 聯作의 看板級이라고 할 수 있다. 全體的인 構圖와 붓 터치, 동세(動勢) 等에서 황소의 力動性을 完璧하게 具現해 냈다. 황소의 얼굴 表情 또한 愚直하면서도 慇懃히 정겹다. 그中에서도 壓卷은 亦是 붓 터치가 아닐 수 없다. “흰 소를 表象하는 밝고 붉은 기운의 牛乳빛을 使用해 소의 形態와 동세 그리고 骨格을 强한 터치로 살려놓았다. 소머리 部分의 뿔과 눈 周邊의 흰 先導 可히 一品으로, 一筆揮之를 통해 소의 特徵과 狀態를 잘 드러내 준다. 게다가 흰 소의 앞 뒷발을 身體와 連結하는 肩胛骨(肩胛骨)을 表現한 붓 터치는 이 作品의 白眉이다.”(정준모, ‘韓國 近代 美術을 빛낸 그림들’, 컬처북스, 2014)

    소 그림에 녹아 있는 李仲燮의 모든 瞬間

    황소 얼굴을 클로즈업한 그림도 印象的이다. ‘울부짖는 小’(1953~1954年, 個人 所藏)가 代表的이다. 그림 속의 소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무언가를 하소연하듯 고개를 살짝 들어 저 먼 데를 凝視하고 있다. 소는 多少 어려 보이고 눈망울은 若干 슬퍼 보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저 황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番에 국립현대미술관이 寄贈받은 李健熙 컬렉션 ‘황소’도 이와 비슷하다. 이 황소 또한 눈망울이 슬퍼 보인다. 李仲燮은 황소 그림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싸우는 소를 그린 作品은 때론 悽絶해 보이기도 한다.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激烈하게 싸우는 모습도 있고, 敗北한 소가 땅에 쓰러진 모습도 있다. 47億 원에 落札된 ‘황소’는 홀로 있는 소를 表現했지만 激烈한 싸움의 痕跡이 歷歷하다. 불쑥 솟아오른 어깨, 쫙 벌어진 다리, 솟구친 꼬리에서 싸움의 氣勢가 騰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싸움을 마친 소의 지친 모습으로 보는 見解도 있다. 이렇게 볼 境遇, 이마와 몸통, 바닥에 보이는 붉은 물감은 소의 핏자국이 된다. 다시 보니 이 황소는 多少 지친 모습 같기도 하다. 그래서 李仲燮이 挫折에 빠져 精神病院을 드나들던 末年에 그린 것으로 推定하기도 한다.

    李仲燮이 소 聯作을 熱心히 그리던 1953~1954年 무렵. 1953年이면 戰爭이 끝나고 濟州와 釜山 避亂 生活도 끝났을 때다. 하지만 戰爭으로 가난이 찾아왔고 結局 李仲燮은 日本人 夫人과 어린 子息들을 日本으로 보내야 했다. 豫想치 못한 家族과의 離別, 繼續되는 가난. 어려운 時期였지만 李仲燮은 1953~1954年 風光 좋은 統營에서 그림에 專念할 機會를 얻었고 그곳에서 다시 소를 만났다.

    1940年代에 多少 超現實的, 神話的이던 소 그림은 1950年代 中盤에 完熟한 段階로 접어들었다. 그림 自體도 能熟해졌지만 戰爭을 거치며 많은 것을 經驗했기 때문이다. 戰爭과 죽음, 孤獨과 가난, 家族과의 離別, 至毒한 그리움, 再會에 對한 渴望…. 이것이 그림에 對한 熱望과 한데 어우러져 황소 그림으로 誕生한 것이다. 그래서 소 그림은 李仲燮에게 自畫像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황소는 結局 李仲燮에게 사랑과 그리움 같은 것이다.

    어딘가로 向하는 소, 몸부림치는 소, 싸우는 소, 울부짖는 小…. 李仲燮은 自身의 處地를 이렇게 表現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그런데 많은 評論家는 李仲燮의 소에서 우리 民族을 發見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황소의 象徵性이다. 李仲燮의 소 聯作은 그래서 20世紀 우리 民族의 自畫像이기도 하다. 그러한 特徵과 意味는 李仲燮 特有의 强烈한 붓 터치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붓 터치는 힘이 넘치고 거침이 없으며 그 德分에 獨特한 造形美가 꿈틀거린다. 우리나라 소 그림 가운데 斷然 獨步的이며 반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끝나버린 李健熙 ‘황소’ 이야기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 당시의 이중섭. [동아DB]

    1955年 미도파畫廊 個人展 當時의 李仲燮. [東亞DB]

    李健熙 컬렉션 2萬3000餘 點이 國公立博物館과 美術館에 寄贈됐다. 이番 寄贈은 國內의 文化財 美術品 寄贈 歷史上 그 量과 質에서 壓倒的이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表現할 方法이 없다. 寄贈作 가운데 李仲燮의 ‘황소’와 ‘흰 소’는 國立現代美術館으로 넘어갔다. 李仲燮 ‘황소’는 李健熙 컬렉션의 代表作으로 꼽혀왔다. 李健熙 前 會長 他界 後 寄贈 얘기가 나올 때마나 古美術品에서는 旌善의 ‘仁王霽色圖(仁王霽色圖)’, 近現代美術品에서는 李仲燮의 ‘황소’가 代表作으로 擧論됐다. 한때는 이 ‘황소’가 濟州 西歸浦의 李仲燮美術館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結局 國立現代美術館으로 들어가게 됐다. 國立現代美術館으로 들어갔으니 좋은 空間에서 다시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더 자주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國公立 博物館과 美術館으로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 더는 所長處가 바뀔 可能性은 없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니 保存 側面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스토리 側面에서 보면 아쉬움도 있다. 文化財나 美術品은 種種 主人이 바뀌면서 世間의 話題가 된다. 그런데 이番에 寄贈된 作品 2萬3000餘 點은 ‘所長處 移動’이라는 스토리를 蓄積할 機會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에 對해 누군가는 “國內 最高 水準의 國公立 博物館과 美術館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햐느냐”고 反駁할지 모른다. 그렇다. 그럼에도 如前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繼續 엉뚱한 想像을 하게 된다. 作品이 安全하게 保管되고 展示를 통해 大衆과 만날 수만 있다면, 主人이 한두 番 더 바뀌고 나서 國公立 博物館이나 美術館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後날 李健熙 컬렉션을 놓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 津한 感動을 共有할 수 있지 않을까.

    日本의 美術學者 사이토 다카시는 著書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뜨인돌, 2010)에서 名作(名畫)의 基準으로 表現力, 스타일, 自己 世界, 아이디어, 沒入을 꼽았다. 適切한 判斷 基準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作品 內的인 側面에 該當한다. 卽 作家의 力量과 努力에서 名作이 誕生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다른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作品의 移動 卽 所長處의 變化다. 이를 달리 말하면 主人이 바뀌는 過程에 關한 것이다. 主人이 바뀌다 보면 豫想치 못한 逸話가 담기게 된다. 그 事緣은 때론 드라마틱하고 때론 論爭的이며 때론 感動的이다.

    名作의 條件

    代表的 事例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暴發的인 人氣를 얻은 것이 決코 아니다. 이 作品이 大衆의 暴發的인 人氣를 끌게 된 데에는 1911年 盜難事件이 決定的인 役割을 했다. 豫想치 못했던 盜難 事件으로 ‘모나리자’는 루브르 博物館을 떠나 이탈리아로 넘어갔고 以後 2年 4個月 만인 1913年 12月 31日 루브르로 돌아왔다. 盜難, 不法的 無斷 占有였지만 어쨌든 主人이 바뀐 것이었고 그 過程이 大衆의 暴發的인 關心을 이끌어내 只今과 같은 最高의 人氣作으로 浮上한 것이다.

    우리가 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作品性만으로 우리가 ‘세한도’에 熱狂하는 것은 아니다. 作品이 誕生하고 난 뒤 170餘 年 동안 中國과 日本을 넘나들며 10名의 主人을 거쳐온 드라마틱한 過程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主人이 바뀌는 過程은 作品의 重要한 來歷이다. 主人이 바뀌는 過程에는 다양한 側面이 담기게 된다. 作品의 美學에 對한 感動, 美術品을 所藏하고픈 熱情은 勿論이고 過度한 貪慾까지 介入한다. 또한 文化財와 美術을 바라보는 時代相도 反映된다. 이것은 文化財와 美術品 所長處 移動의 社會·文化的 意味라고 할 수 있다.

    李健熙 컬렉션은 2萬3000餘 點이 한꺼번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렇다보니 個別 作品의 스토리 하나하나에는 注目하기 어려운 狀況이다. 多少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우리가 좋아하는 李仲燮의 ‘황소’와 ‘흰 소’가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났다. 그 行步 하나하나는 美術 愛好家들의 關心事가 아닐 수 없다. 李健熙 컬렉션 ‘황소’에도 分明 興味로운 스토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를 確認하고 蓄積해 많은 사람이 共有할 수 있으면 좋겠다. 名作은 그렇게 태어난다.

    #李仲燮 #李健熙컬렉션 #황소 #新東亞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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