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대곡리 盤龜臺 岩刻畵

( 盤龜臺 岩刻畵 에서 넘어옴)

울주 대곡리 盤龜臺 岩刻畵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Petroglyphs of Bangudae Terrace in Daegok-ri, Ulju)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盤龜臺 絶壁의 巖刻畫들.
種目 國寶 第285號
( 1995年 6月 23日 指定)
數量 1期
時代 新石器 時代 에서 靑銅器 時代 까지
所有 國有
位置
울주 대곡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울주 대곡리
울주 대곡리
울주 대곡리(大韓民國)
住所 蔚山廣域市 蔚州郡 언양읍 盤龜臺안길 285 (대곡리 991番地)
座標 北緯 35° 36′ 14″ 東京 129° 10′ 38″  /  北緯 35.60389° 東京 129.17722°  / 35.60389; 129.17722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蔚山대곡리巖刻畫
(蔚山大谷里岩刻畵)
대한민국 蔚山廣域市 記念物 (解止)
種目 記念物 第57號
( 1982年 8月 2日 指定)
( 1995年 6月 23日 解止)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울주 대곡리 盤龜臺 岩刻畵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1] , 英語 : Petroglyphs of Bangudae Terrace in Daegok-ri, Ulju )는 蔚山廣域市 蔚州郡 언양읍 에 位置한 巖刻畫 이다. 世界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巖刻畫로, 太和江 上流의 支流 河川인 大谷川 의 中流部 輕傷 累層軍 大邱層 絶壁에 位置하고 있다. 大韓民國의 文化財로 國寶 第285號 로 指定되어있으며, 大韓民國 文化財廳 이 選定하는 유네스코 世界遺産 候補目錄인 '優先登載目錄'에 '大谷川 巖刻畫群'으로 묶여 올라있다. 그러나 持續的인 浸水와 露出의 反復으로 風化가 가속되어 사라져가고 있다. 關聯 團體들은 保存 方案을 두고 實驗 失敗와 葛藤을 持續하고 있어, 保存을 위해 行해지는 것은 없는 狀況이다.

槪要 [ 編輯 ]

巖刻畫가 새겨진 絶壁의 近接 모습.

이름에서 反求대는 거북이가 엎드린 形象을 하고 있는 隣近의 奇巖絶壁 이름이다. 巖角이 새겨진 바위는 主로 너비 約 8~10m, 높이 約 4~5m의 部分이며, 周邊 10餘個의 바위에서도 巖刻畫가 確認 된다. 新石器時代 부터 靑銅器 時代 에 걸쳐 當時의 生活相을 持續的으로 새겨진 것으로 推定된다. 動物들과 이를 사냥하는 사람들 等이 새겨져 있으며, 이 中 고래의 比重이 크다. 이 巖刻畫는 只今까지 地球上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包莖 遺跡이다. [2] [3]

하지만 巖刻畫가 泗淵댐의 完工된 1965年 以後인 1971年 12月에 發見되면서 問題가 되었다. 泗淵댐 完工 以後 每해 中 大谷川의 水位가 上昇하는 6~8個月의 期間에 물속에 잠기어 毁損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保存과 用水 確保를 두고 文化財廳과 蔚山市가 對立했고, 이와 關聯한 保存 方法을 놓고도 葛藤을 이어왔다.

하지만 2018年 7月 宋哲鎬 蔚山市長이 就任한 以後 蔚山市는 旣存에 反對하던 泗淵댐 水位를 낮추는 方向을 통해 保存 方法을 찾으려 하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 世界遺産 登載 移轉 거치는 4段階 中 2段階인 '優先登載目錄' 等을 試圖해 2021年 2月 16日 選定되었다.

發見 [ 編輯 ]

1971年 12月 25日, 東國大學校 문명대 敎授, 高麗大學校 김정배 敎授, 충북대학교 이융조 敎授는 1年前 發見한 蔚州 천전리 各석 을 再調査하던 中이었다. 그런데 洞네 사람으로부터 천전리 各석에서 大谷川을 따라 下流로 내려간 곳의 絶壁에 虎狼이 그림이 새겨진 것을 보았다는 提報를 받은 것이다. 그들은 確認을 위해 개川에 배를 띄워 타고 내려갔다. 그러던 中 隣近 巖綿들과는 確然히 다른 人爲的으로 갈은 듯한 巖綿을 發見하였고, 거기서 巖刻畫를 發見하게 된다. [4] [5] [6]

바위와 巖刻畫 表面 [ 編輯 ]

巖刻畫는 大谷川 溪谷에 屛風처럼 늘어선 바위에 새겨져있다. 特히 위가 지붕처럼 튀어나온 바위의 그늘 아래 널따란 바위表面에 存在한다. 主로 새겨진 바위는 너비 約 8m, 높이 約 5m의 넓이이며, 周邊 10餘個의 바위에도 巖刻畫가 一部 確認 된다. [7]

地質 [ 編輯 ]

巖刻畫가 位置한 大谷川 中流部의 基盤巖은 中生代 白堊紀 堆積巖 地層 輕傷 累層軍 大邱層 에 屬한다. 바위의 性質은 진흙이 堆積되어 形成된 堆積巖 이다. 堆積巖 中에는 暗褐色 셰일 李嵒 으로 이루어져있고, 周邊 巖盤에서는 變成巖 人 淡綠色의 혼펠스 才質도 存在한다. [7] [8] 特히 巖刻畫가 그려진 表面은 方解石 인데, 이 鑛物은 弱한 酸性 을 띄어 물과 쉽게 反應해 溶解 되는 性質을 지니고있다. [9]

그림 [ 編輯 ]

바위에 새겨진 그림의 數는 調査方法이나 表現物의 認識 差異에 따라 다르다. 專門家들은 形象을 알아 볼 수 없는 것까지 包含해 約 300餘點의 表現物이 그려져 있다고 본다. 이 中 形象을 알아 볼 수 있는 그림은 237點이다. 種類로는 陸地動物 97點, 海洋動物 92點, 사람 17點, 倍 6點, 그물·작살 等의 延長類 6點이 있다. 그 中 고래 그림만 62點으로 全體의 26%, 海洋動物의 75%에 該當해 第一 많다. 다음으로 比重이 높은 個體는 36點인 사슴類와 22點인 虎狼이이다. [10] [3]

그림은 단단한 石器 로 새겼으며, 새긴 方法은 2가지로 區分된다. 그림의 輪廓을 새긴 後 內部를 고르게 쪼거나 긁어낸 面새김 方法이 있고, 輪廓이나 動物의 特徵的 要素를 線이나 點으로 새긴 線새김 方法이 있다. 面새김 方法은 新石器 時代 의 方法이며, 線새김 方法은 靑銅器 時代 의 方法으로 推定한다. 面새김 위에 線새김이 덧새겨졌기에 新石器 時代에서 靑銅器 時代에 걸쳐서 그려졌다고 推定한다. 고래 中心의 海洋動物 部分과 사슴, 虎狼이 中心의 陸地動物 部分은 海洋動物과 陸地動物의 種類와 生態, 사냥方法 等을 表現하였다. 그림은 古來의 細部 種을 區分할 수 있을 만큼 具體的이다. 그림의 目的은 集團의 사람들이 오랜 歲月 世代를 거듭하며 이들의 種類와 사냥方法에 關한 知識을 새겨넣고 가르쳤던 것으로 推定한다. [10] [3] [11] 또한 豐饒를 祈願하는 文化的 脈絡의 産物로도 推定하고있다. [12] [13]

反復된 浸水와 露出로 인한 毁損 [ 編輯 ]

巖刻畫가 새겨진 絶壁.

巖刻畫는 太和江의 支流인 大谷川 中 泗淵댐의 位置에서 上流로 4.6km 떨어진 곳에 位置하고 있다. 1962年 10月 着工하여 1965年 12月 竣工한 泗淵댐은 蔚山廣域市 의 工業用水와 食水 供給을 위해 지어졌다. 이로 인해 1年 中 降水量이 늘어나는 6~8月에는 泗淵댐 上流의 水位가 上昇한다. 巖刻畫는 댐 建設로부터 6年 後인 1971年 12月에 發見하였고, 巖刻畫가 잠기고 있다는 事實 亦是 發見한다. 泗淵댐의 水位 基準으로 巖刻畫는 52m일 때 浸水가 始作되며, 57m가 되면 完全히 잠긴다. 이는 물을 放流하여 水位를 調節할 수 있게 해주는 泗淵댐의 餘水로 높이가 60m로, 巖刻畫의 崔下段 보다 8m 더 높아 懶惰는 現象이다. 巖刻畫에는 물이끼 가 들러붙어 있을 때가 많았다. 調査에서 물에 잠기지 않은 반구대의 巖石에 비해 물에 잠긴 部分은 10倍假量 빨리 風化가 事實도 確認되었다. [14] [15] [5] 그나마 이 水沒 期間과 頻度는 2005年 盤龜臺 岩刻畵 上流에 대곡댐이 建設되면서 多少 줄은 것이다. 2013年부터는 巖刻畫 保護를 위해 滿水位가 60m인 泗淵댐 水位를 52m 以下로 낮춰오고 있다.

다만 颱風, 장마, 集中豪雨와 같이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릴 때는 守衛 調節이 不可能해 沈水되어왔다. 2016年 颱風 '차바', 2018年 10月 颱風 '콩레이', 2019年 7月, 颱風 '다나스'의 境遇가 그러했다. [16] [17]

巖刻畫의 毁損에는 巖刻畫에 對한 價値 評價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文化財 保存에 對한 認識이 낮았던 時間이 길었다는 點도 影響을 미쳤다. 巖刻畫는 1971年 12月 25日 發見되지만 以後 最小 9年 以上 放置되었다. 蔚山市에 依해 價値가 評價되어 記念物로 指定된 것은 1982年 8月 2日의 일이며, 文化財廳에 依해 價値가 評價되어 國寶로 指定된 것은 1995年 6月 23日의 일이었다. [14] [15] [18]

1995年 國寶 指定 當時 調査에서는 肉眼으로 確認 可能한 그림은 300餘 個였다. 2009年 文化財廳의 調査에서는 巖刻畫의 風化 段階가 6段階 中 5段階인 '흙 狀態 進入 直前'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年 調査에서는 肉眼으로 確認 可能한 그림이 20~30點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4] [15]

保存 方法 葛藤 過程과 合意 [ 編輯 ]

國立慶州博物館 에 展示된 複製本.

文化財廳과 蔚山市는 巖刻畫와 泗淵댐 取水源이라는 두 問題를 놓고 葛藤을 持續해왔다. 蔚山市에 물을 供給하는 泗淵댐을 解體해 水位를 낮추는 方法과 解體 없이 水位를 낮추는 方法이 提示되었다. 解體 없이 水位를 낮추는 方法 中에는 細部的으로 '水門이 없는 泗淵댐에 水門을 設置해 水位를 調節하는 안', '根本 對策이 나올때까지 巖刻畫 周圍에 臨時的으로 遮水壁(키넥틱댐)을 設置하고 追後 解體하는 안', '根本 對策이 나올때까지 巖刻畫 周邊에 흙으로 堤防을 쌓고 追後 解體하는 안', '터널을 通해 流路를 變更하는 案' 이 提示되었다.

泗淵댐 解體 方式 [ 編輯 ]

解體를 主張하는 側은 水位 調節 水門을 設置하지 못함을 假定했을 때 이와같은 主張을 하였다. 이들은 사연댐이 1965年부터 2013年까지 4m의 土沙가 댐아래 堆積되었고 앞으로도 繼續 淡水 機能이 弱化될거란 點을 들었다. 蔚山市의 用水를 위해 巖刻畫를 抛棄하면서까지 泗淵댐을 이대로 維持하는 것은 앞으로의 淡水 機能 弱化를 생각했을 때 損害라는 것이다. [19]

泗淵댐 維持 方式 [ 編輯 ]

泗淵댐 水位 調節 水門 設置案 [ 編輯 ]

泗淵댐에 直接 水門을 設置해 水位를 낮춰 잠기지 않게하자는 方案을 文化財廳이 勸告했다. 그러나 蔚山市廳 側은 反對했다. 水位 調節은 蔚山市 自體 用水 供給量을 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不足한 용수는 他 地自體에서 사와야한다. 太和江 洪水 危險과 泗淵댐 崩壞 危險이 增加한다는 것도 있었다. [20] [21]

生態 堤防안 [ 編輯 ]

蔚山市는 2009年과 2011年 '臨時 堤防 設置案'을 文化財廳 所屬 文化財委員會에 提出했다. 그러나 두 提案은 否決되었다. 工事로 인한 巖刻畫 周邊이 毁損되는게 첫째 理由다. 掘鑿·爆發·振動 等으로 巖刻畫에 直接 毁損 可能性으로 世界文化遺産 登載度 어렵게 된다는 理由가 둘째다. 毁損 主犯인 泗淵댐 水位를 낮출 것도 注文하였다. [22] 하지만 蔚山市는 食水 確保 때문에 水位를 놔둔채 生態 堤防을 쌓자는 主張을 固守했다. [14] [5]

2017年 蔚山市는 過去 臨時堤防 築造案과 닮은 '生態 堤防 築造案'을 文化財委員會에 提出하였다. 巖刻畫에서 30m 떨어진 地點에 357m, 높이 65m 堤防을 쌓아 물길이 巖刻畫에 닿지 못하게 하는 方法이다. [22] 이 안도 2017年 7月 20日 否決되었다.

키네틱 댐안 [ 編輯 ]

키네틱댐은 組立式 鐵骨組 사이에 透明한 合成 플라스틱人 폴리카보네이트 판 160個를 붙여 물을 막는 可變型 臨時 물막이 댐이다. 巖刻畫 前面에 設置될 이 構造物은 水位 變化에 따라 높낮이를 調節할 수 있는 壁이다. 巖刻畫가 沈水되기 前에 댐 構造物을 올려 물을 막는다. 平素에는 댐 構造物을 내려놓는 것이 可能하다. 全部 올리더라도 壁이 透明하기에 햇빛이 透過되어 壁畫에 이끼가 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方案은 建築家 '함인선'李 政府에 提案한 方案이다. 朴槿惠 政府 는 이 方案으로 葛藤을 解決하고자 했다. 하지만 文化財 專門家들은 이 方案이 文化財 原形保存에 反하는 選擇이라며 反對했다. 댐 工事 過程에서 巖刻畫에 否定的 影響이 미친다는 것이다. 또 巖刻畫 앞 댐 가림幕이 景觀을 毁損한다는 것이다.

2013年 6月 國務調整室 이 主導한 이 折衷案에 10年 동안 平行線을 달리던 文化財廳과 蔚山市가 合意하였다. 地盤 調査, 構造安全性 評價, 事前 實驗이 進行됐다. 그러나 文化財廳이 2015年 12月과 2016年 4月, 5月에 實施한 3次例 模擬 實驗이 모두 失敗로 끝났다. 水壓을 견디지 못해 透明板 이음새 附近에서 물이 새는 것이 模擬實驗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3年이 넘는 時間과 實驗에 投入된 豫算 28億 원만 浪費되었다. 2016年 7月 文化財委員會는 이 댐 計劃을 中斷했다. [14] [23] [24]

유네스코 世界遺産 登載 努力 [ 編輯 ]

世界遺産 登載 申請은 文化財廳이 進行하는 네段階를 거친 뒤 이루어진다. '暫定目錄 → 優先登載目錄 → 登載申請 候補 → 登載申請 對象'이 그 것이다. [25]

2010年 1月 文化財廳은 盤龜臺 巖刻畫를 蔚州 천전리 各석 과 함께 '大谷川 巖刻畫群'으로 묶어 ' 世界遺産 暫定目錄 '에 올렸다. 以後 2011年과 2015年 蔚山市廳은 文化財廳에 두番째 段階인 '優先登載目錄'을 申請하지만 保存 方法 異見과 文化財的 價値 定立 未備를 理由로 拒絶되었다. 結局 2019年 視聽이 用水 一部를 抛棄하는 泗淵댐 水位 調節 水門 設置안으로 決定했다. 다시 '優先登載目錄'을 申請해 두次例 保留와 修正 끝에 [26] [25] 2021年 2月 16日 選定되었다.

關聯 機關과 團體 [ 編輯 ]

盤龜臺 巖刻畫와 關聯한 機關과 團體로는 蔚山巖刻畫博物館 , 韓國巖刻畫學會, 蔚山大學校 반구대巖刻畫遺跡保存硏究所가 代表的이다.

蔚山巖刻畫博物館 [ 編輯 ]

蔚山巖刻畫博物館의 모습.

' 蔚山巖刻畫博物館 '은 蔚山廣域市가 運營하는 公立博物館이다. 蔚山廣域市 蔚州郡 두동면 에 位置하고 있다. 2008年 5月 30日 巖刻畫 展示館으로 始作하였으며, 2010年 博物館으로 昇格하였다. 博物館은 盤龜臺 巖刻畫를 大韓民國 內外와 學界에 알리는 活動을 해왔다. 巖刻畫 關聯 콘텐츠 展示와 敎育 프로그램을 運營하고 있다. 巖刻畫 關聯 學術 大會를 열어 大韓民國 內外로 巖刻畫를 中心으로韓 學者들間 交流를 만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8年 2番의 國際學術誌를 發刊한바 있다. [27] [28] [29]

蔚山大學校 반구대巖刻畫遺跡保存硏究所 [ 編輯 ]

' 蔚山大學校 반구대巖刻畫遺跡保存硏究所'는 盤龜臺 巖刻畫의 硏究와 保存을 위해 2011年 10月 設立되었다. 盤龜臺 巖刻畫와 關聯한 硏究와 함께, 大韓民國 內外의 關聯 分野 硏究機關과 協力하고 있다. '韓國巖刻畫學會'와 共同으로 巖刻畫 學術大會를 꾸준히 열어오고 있다. [30] [31] 硏究 成果는 硏究서, 調査報告書의 形態로 每年 發刊해 大韓民國 內外의 硏究機關 및 硏究者들에게 提供하고 있다. 또한 5番의 學術硏究總署와 2番의 英文 學術叢書를 發刊한 바 있다. [32] [33] [34]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官報 第17413號 Archived 2017年 10月 19日 - 웨이백 머신 2010年 12月 27日. 291-318쪽. 304쪽. 文化財廳考試制2010-133號(國家指定文化財<國寶·寶物/石造文化財> 指定名稱 變更). 文化財廳長. 2016年 5月 10日 確認함.
  2. “資料室, 반구대巖刻畫” . 《蔚山巖刻畫博物館》. 2015年 3月 25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6年 5月 11日에 確認함 .  
  3. 《盤龜臺 巖刻畫가 품은 祕密, 1部 이 땅 最初의 畫家들》 . 文化遺産채널.  
  4. 최영희 (1986年 6月 5日). “그터 최영희 敎授의 韓國史奇行, 45 先史時代 神祕 풀 巨大한 巖刻畫” . 《京鄕新聞》.  
  5. 최우리 (2013年 8月 16日). “盤龜臺 巖刻畫의 슬픔” . 《한겨례》.  
  6. 강구열 (2019年 7月 13日). “世界最高의 고래 그림… 保護받지 못한 國寶 ‘盤龜臺 岩刻畵’ (강구열의 文化財 썰戰, 반구대巖刻畫 1)” . 《世界日報》.  
  7. 윤순옥 (2015年 6月 4日). “7千年의 메시지 다시 읽는 반구대巖刻畫) 風化作用으로부터 巖刻畫 保護할 最適의 場所 찾았다.” . 《經常日報》.  
  8. 이춘봉 (2017年 4月 4日). “반구대巖刻畫 實物 크기로 製作, 10月 蔚州郡 新廳舍에 展示된다” . 《經常日報》.  
  9. 강구열 (2019年 7月 28日). “數千 年을 산 巖刻畫가 50餘 年 만에 存立 危機 맞은 事緣은? (강구열의 文化財 썰戰, 반구대巖刻畫 3)” . 《世界日報》.  
  10. 정동찬 (2015年 2月 12日). “다시 읽는 반구대巖刻畫, 3. 大谷川 바위에 그림으로 쓴 歷史冊” . 《經常日報》.  
  11. 《盤龜臺 巖刻畫가 품은 祕密, 3部 古代人들은 왜 고래를 사랑했나?》 . 文化遺産채널.  
  12. 中央SUNDAY (2013年 10月 27日). “6000年 비바람도 견뎠다 … 그림으로 쓴 이 땅의 첫 歷史서” . 《中央SUNDAY 346號 14面》.  
  13. 최은경 (2018年 10月 29日). “또 潛水 … 漸漸 稀微해지는 國寶 ‘盤龜臺 岩刻畵’” . 《中央日報》.  
  14. 감일상 (2016年 7月 30日). “盤龜臺 巖刻畫의 暗鬱한 未來” . 《KBS》.  
  15. 윤민용 (2010年 7月 7日). “‘반구대 岩刻畵’ 發見부터 論爭까지” . 《京鄕新聞》.  
  16. 최수상 (2019年 7月 22日). “盤龜臺 岩刻畵 또 沈水.. 205mm 물爆彈에 束手無策” . 《파이낸셜뉴스》.  
  17. 이상록 (2019年 7月 22日). “小型 颱風에도 '자맥질'…"반구대巖刻畫 건져내라 " . 《노컷뉴스》.  
  18. 임형두 (2015年 8月 17日). “盤龜臺 岩刻畵 國寶 指定 20周年 맞아 祝祭” . 《聯合뉴스》.  
  19. 김보은 (2019年 4月 17日). “蔚山 반구대巖刻畫 保存안 '泗淵댐 撤去' 浮上” . 《蔚山第一一步》.  
  20. 李相賢 (2017年 10月 18日). “蔚山市 "文化財委의 반구대巖刻畫 水門 設置勸告 受容 不可 " . 《聯合뉴스》.  
  21. UBC 조윤호 (2019.09.10). “蔚山市, '巖刻畫 保存策' 水門 設置, 事實上 推進” . 《SBS》.  
  22. 도재기 (2017年 5月 18日). “盤龜臺 岩刻畵 ‘生態堤防’ 一旦 保留” . 《京鄕新聞》.  
  23. 도재기 (2013年 6月 16日). “政府 “盤龜臺 巖刻畫에 透明 댐”… 專門家 “장마철 앞둔 免避用 쇼”” . 《京鄕新聞》.  
  24. 김상운, 김도형 (2016年 7月 25日). “‘政治’가 毁損한 國寶 巖刻畫” . 《東亞日報》.  
  25. “「漢陽都城」?「大谷川 巖刻畫群」世界遺産 優先登載目錄 審議‘保留’” . 《文化財廳》. 2020年 2月 19日 . 2020年 7月 15日에 確認함 .  
  26. 권승혁 (2020年 7月 16日). “‘반구대 岩刻畵 世界遺産 登載’ 文化財廳 審査 再挑戰” . 《釜山日報》.  
  27. 蔚山MBC (2019年 4月 29日). “MBC가 만난 사람. 金京鎭 館長 巖刻畫博物館” . 《蔚山MBC》.  
  28. 홍영진 (2018年 1月 11日). “蔚山巖刻畫博物館 ‘고래와 바위그림’ 發刊” . 《經常日報》.  
  29. 백주희 (2018年 12月 25日). “巖刻畫博物館, 學術誌 ‘고래와 바위그림Ⅱ’ 發刊” . 《蔚山每日》.  
  30. 이현진 (2019年 6月 12日). “蔚山大 盤龜臺硏究所, 14日 봄 學術大會 開催” . 《韓國大學新聞》.  
  31. 김봉출 (2016年 11月 23日). “蔚山大 盤龜臺硏究所, 韓國 巖刻畫 가을學術大會” . 《經常日報》.  
  32. 오혜민 (2019年 2月 1日). “蔚山大 반구대巖刻畫遺跡保存硏究所, ‘韓國의 윷판 巖刻畫’ 發刊” . 《大學저널》.  
  33. 오혜민 (2019年 5月 2日). “蔚山大 盤龜臺硏究所, 國寶 285號 ‘蔚山 반구대巖刻畫’ 英文 學術叢書 發刊” . 《大學저널》.  
  34. 世界日報 (2019年 5月 15日). “‘蔚山 盤龜臺 岩刻畵’ 英文學術書 發刊 外” . 《世界日報》.  

外部 링크 [ 編輯 ]

關聯 홈페이지 [ 編輯 ]

主要 映像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