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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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文學

韓國 文學 (韓國文學) 또는 國文學 韓國人 또는  韓國語 를 구사하는  사람 이 韓國의 思想과 感情, 情緖 等의 價値 있는 體驗을 바탕으로 하여 그 時代의 表現 方式을 빌려 形象化한 文學의 總稱이다. 東아시아의 普遍的인 文字인 漢文으로 글을 썼더라도 韓民族의 情緖를 表現한 것이라면 國文學이라고 規定한다. 韓國 文學이 오늘날 文學이라는 낱말 밑에 사람들이 理解하고 있는 水準에 이른 것은 西洋 文化 와의 接觸을 통해서이다. 1917年 春園 李光洙가 쓴 무정 이 첫 始作인, 近代 文學 或은 現代 文學이라는 時代에 따른 文學史 區分은 바로 西洋 文學을 받아들여, 韓國語로 쓰인 文學 樣式의 밑바탕을 닦고 발전시켜온 19世紀 末에서 現代에 이르는 約 100餘 年間 생겨나 存續되어온 槪念이다

範疇 [ 編輯 ]

韓國 文學은 先史 以後 文字가 생겨난 以來 오늘날까지 創作된 韓國의 文學 全體를 말하며, 이를 바탕하여 表現 方式 等을 基準으로 細分한다. 韓國 文學은 歷史的으로 크게 記錄 文學 口碑 文學 으로 나뉘며, 前者의 境遇 또다시 國文 文學 漢文 文學 으로 나뉜다. 여기서 國文 文學은 또다시 古典 文學 現代 文學 으로 나뉘어 韓國 文學의 全體的인 틀을 形成한다.

口碑 文學 [ 編輯 ]

口碑 文學(口碑文學) 또는 口傳文學은 말그대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傳承되어 온 文學의 形態를 말한다. 이런 形態의 文學은 共通的으로 구연, 共同 創作, 普遍性, 單純性, 民衆性 等의 特徵을 지닌다. 文字의 發生 以前부터 傳承되어 온 것으로 韓國 文學의 母胎이며, 只今도 끊임없이 創作되어 傳承되고 있다. 代表的인 口碑文學의 例로 들 수 있는 것은 神話 , 傳說, 民譚, 수수께끼, 俗談 等이다. 口碑文學에는 民族의 삶과 情緖가 잘 나타나 있다.

國文 文學 [ 編輯 ]

國文 文學(國文文學)은 나랏말 卽, 韓國語로 쓰인 文學이다. 한글로 쓰인 純粹 國文 文學이 있으며, 吏讀, 鄕札(鄕札)로 表記한 차자(借字)문학이 있다. 이는 訓民正音 創製 以後에 本格的으로 發達했다.

漢文 文學 [ 編輯 ]

漢文 文學(漢文文學) 또는 漢文學(漢文學)은 西曆 2世紀 卿 漢字가 韓國에 傳來된 以來 朝鮮 後期까지 漢字로 쓰인 文學의 한 形態이다. 그러나 이러한 形態의 漢文 文學은 漢文을 배울 수 있었던 貴族 階層에서 主로 享有되었다.

國文 文學과 漢文 文學 [ 編輯 ]

訓民正音 創製 以前의 韓國 文學은 主로 漢字를 借用하여 表記하였다고는 하나, 글을 쓴 主體가 韓國人이라는 點, 그리고 韓國의 思想, 感情, 情緖 等이 녹아 들어 있다는 點에서 韓國 文學으로 分類하고 있다. 또한 訓民正音 創製 以後에 나타나는 國漢文 混用體나, 訓民正音 創製 以前에 나타나는 口訣 이나 吏讀 等에 비추어 볼 때, '訓民正音 創製 以前 = 漢文學', '訓民正音 創製 以後 = 國文學'이라는 公式은 妥當치 않다고 評價되기도 한다.

遠視 古代 文學 [ 編輯 ]

아득한 옛날인 上古 時代 의 歷史에 對해 仔細한 答辯을 해줄 수 있는 記錄은 없다. 外族의 侵掠이 頻繁하여 韓國의 古文獻이나 記錄이 모두 없어져 그 具體的인 樣相을 把握할 수 없고, 高麗 時代 에 이루어진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그리고 中國의 진수 (陳壽)의 찬(撰)인 《 三國志 》 等에서 上告 時代의 生活 風習을 이야기해 줄 뿐이다. 이러한 文獻에 定着된 文學은 元來 있던 대로의 모습은 아닐 것이고, 또 作者를 傳하고 있다 할지라도 모두 오랫동안 傳承해 오는 동안 漸次 形成된 것으로 이른바 民族 全體가 共同으로 製作한 民族 文學이라 할 수 있다. 이 民族 文學은 後世에 噴火·展開된 本格的 文學의 形態와 비겨 混沌 그대로이며 神話·傳說의 說話的 要素와 歌謠的 要素가 確然히 分化되지 않고 서로 渾融(渾融)된 채로 남아 있다.

이런 狀況에서도 볼 수 있듯이 上古 時代의 文學에 對해 알 수 있는 記錄이나 作品도 極히 드물다. 但只 몇 個의 詩가(詩歌)와 神話 만이 後代에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時期의 主要 作品으로는 公無渡河歌 , 黃鳥歌 , 龜旨歌 , 井邑詞 等이 있다.

古典文學 [ 編輯 ]

古典詩歌 [ 編輯 ]

鄕歌 [ 編輯 ]

鄕歌(鄕歌, 文化語: 詞腦歌)는 鄕札로 쓴 노래로서 普通 新羅 때부터 高麗 初期까지의 것을 말한다. 鄕歌는 4句體, 8句體, 10句體로 나뉘며, 漢字로 지은 노래도 있고, 吏讀로 지어진 노래도 있다. 三國時代 때는 4句體 鄕歌가 많았으나, 南北國時代 電氣와 高麗 初期로 가면서 8句體와 10句體 鄕歌들이 다양하게 지어졌다. 鄕歌는 장르가 다양하며, 勞動謠나 民謠로 推測되는 豐饒, 鬼神이나 厄運을 막기 위해 부르기도 하며, 또는 自身의 感情을 털어놓고 싶어하거나, 사랑을 告白하는 노래들도 있다.

代表的인 鄕歌 [ 編輯 ]
  • 4句體 鄕歌

<薯童謠: 6世紀 百濟 武王(薯童이 眞平王의 딸인 宣化 公主를 얻고자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童謠)> <豐饒: 7世紀 誠意 男女들(陽地가 靈廟寺 丈六佛像을 만들 때 附逆을 왔던 長安의 男女들이 진흙을 나르며 부른 노래, 勞動謠 或은 佛敎的 意識要)> <獻花歌: 8世紀 어느 老翁(소를 몰고 가던 老人이 수로 夫人에게 絶壁 위의 철쭉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 <兜率歌: 8世紀 月明師(두 個의 해가 나타나는 怪變을 없애고자 왕이 月明師로 하여금 지어 부르게 한 酸化 公的의 노래. 呪術性을 지님)>

  • 8句體 鄕歌

<處容歌: 9世紀 處容(處容이 逆臣을 屈服하게 만든 呪術性을 지닌 노래)> <慕竹旨郞歌: 7世紀 得烏(죽지랑의 高邁한 人品을 追悼하며 지은 輓歌. 追悼의 노래)>

  • 10句體 鄕歌

<彗星歌: 6~7世紀 融天師(彗星이 나타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부른 呪術的인 祝辭의 노래)> <讚耆婆郞歌: 8世紀 忠談師(기파랑의 人品을 讚揚하여 부른 作品. <祭亡妹歌>와 함께 鄕歌의 白眉로 評價됨)> <安民歌: 8世紀 忠談師(景德王의 要請으로 지은 治國安民의 노래. 唯一한 儒敎的 鄕歌)> <原價: 8世紀 臣忠(효성王이 잣나무를 두고 한 盟誓를 지키지 않아 이 노래를 잣나무에 걸었더니 그 나무가 말라 버렸다고 하는 呪術的인 노래)> <遇賊歌: 8世紀 英才(英才가 智異山으로 가던 中에 만난 盜賊의 무리를 悔改시킨 泄道의 노래)> <祭亡妹歌: 8世紀 月明師(죽은 누이의 冥福을 빌기 위하여 齋를 올릴 때 부른 追悼의 노래. 鄕歌의 白眉 中 하나)> <願往生歌: 7世紀 廣德(달을 西方 淨土의 獅子에 比喩하여 極樂往生을 祈願한 佛敎的인 노래)> <普賢十願歌: 高麗 光宗 均如(佛敎의 大衆化를 위해 高麗 光宗 때 僧侶인 均如가 지은 鄕歌. <均如傳>에 總 11首가 실려 있음.)>

高麗歌謠 [ 編輯 ]

高麗時代에서 朝鮮 初에 流行하던 歌謠다. 高麗歌謠는 高麗時代 사람들의 情緖와 思想을 알 수 있는 重要한 열쇠이다. 그러나 朝鮮時代에 儒敎的 理念에 맞지 않는다는 理由로 相當한 記錄이 削除되었다.

代表的인 高麗歌謠 [ 編輯 ]

樂章 [ 編輯 ]

樂章이란 나라의 公式的인 行事에서 使用된 노래 歌詞를 總稱하는 말이다. 卽 建國의 正當性을 알리고 繁榮을 祈願하기 위하여 宮中 行事에서 불린 頌祝歌를 가기킨다. 主로 15世紀 朝鮮 王朝의 기틀을 다진 新進 士大夫가 主된 作家層이다. 朝鮮 建國의 正當性, 六曹의 偉業 讚揚, 王朝의 無窮한 繁榮과 發展 等이 주된 內容이었다. 基本 形式은 4具 2절이며, 한시체, 景幾體歌體, 속要諦, 身體 等의 다양한 形式을 取했다. 樂章은 朝鮮 初期에 民心을 收拾하고 建國의 正當性을 弘報하는 한便 王朝의 繁榮을 祈願하기 위해 만들어진, 政治的 目的性을 剛하게 지닌 장르이다. 一般 百姓들의 情緖와 동떨어져 있었던 特權層의 文學이었으며, 곧 消滅되어 生滅力이 짧았다.

主要作品

  • 한시체 形式: 納氏歌, 정도전, 太祖 때(太祖가 元나라의 納哈出를 무찌른 功을 讚揚한 노래)

文德曲, 정도전, 太祖 때(太祖의 文德을 讚揚한 노래) 靖東方曲, 정도전, 太祖 때(太祖의 威化島 回軍을 讚揚한 노래) 근천정, 河崙, 太宗 때(太祖의 功德을 讚揚하여 지은 노래) 鳳凰吟, 輪廻, 世宗 때(朝鮮의 文物과 王家의 祝壽를 祈願한 노래)

  • 景幾體歌體: 霜臺別曲, 倦勤, 太宗 때(相對<司憲府>에서의 生活을 통하여 朝鮮의 制度와 創業의 偉大함을 노래한 作品)

華山別曲, 변계량, 世宗 때(朝鮮의 創業을 讚揚한 作品)

  • 속要諦: 信徒가, 정도전, 太祖 때(態度의 德과 創業을 讚揚하며 太祖의 萬壽無疆과 漢陽의 形勝을 노래함)

感君恩, 未詳, 未詳(임금의 성덕과 聖恩을 讚揚한 노래) 身體: 龍飛御天歌, 정인지,勸第,안지, 世宗 때(六曹의 偉業을 讚揚하고 朝鮮의 無窮한 繁榮을 頌祝하며 後代 王에 對한 勸誡를 담은 作品. 한글로 記錄된 最初의 作品이자 長篇 敍事詩) 月印千江之曲, 世宗, 世宗 때(首陽大君이 쓴 釋譜詳節을 보고 世宗이 樂章 形式으로 쓴 讚佛歌. 專門 580旅程에 이르는 長篇 敍事詩.) [1]

時調 [ 編輯 ]

高麗 中葉에 發生한 韓國 傳統 時 樣式의 하나이다. 朝鮮 時代에 流行한 詩歌 樣式이다. 時調는 形態的 特性에 따라 몇 갈래로 나뉘는데 이中 平時調는 初章, 中章, 終場으로 構成되는 3張과, 하나의 張에 2個의 句로 構成되는 6具와 韓國語의 特徵인 끊어 읽기 單位인 12番의 音步로 構成되는 틀을 지닌 定型詩 이다. 그 밖에는 形式的 特徵으로 區別되는 旕時調 , 辭說時調 等이 있다.

旕時調 [ 編輯 ]

時調唱中의 하나로 一名 中始祖, 半辭說時調, 弄時調, 엇엮음時調라고도 한다. '엇'은 얼과 통하므로 엇가는 時調, 얼버무린 始祖란 뜻으로서, 平時調와 辭說時調의 中間 形態의 時調, 卽 平時調 窓에서 벗어나 길지도 않게 中間으로 부르는 創意 時調를 말한다. 旕時調의 形態는 現代時調에서 더욱 다양하게 試圖되고 있다. '엇'의 音樂的인 特徵은 첫部分을 높게 질러내고 初章은 무겁고, 점잖게, 中將 以後부터는 흥청거리는 唱法으로 부르는 것이다. [2]

辭說時調 [ 編輯 ]

家事 [ 編輯 ]

代表的인 歌詞 [ 編輯 ]

판소리 [ 編輯 ]


民謠 [ 編輯 ]

  • 槪念

民謠는 過去로부터 口碑 傳承되는 傳統的 韻律을 基礎로 하여 民衆들의 生活 感情을 담은 非專門的인 民衆의 노래이다. 따라서 口碑 傳承되는 民謠에는 共同體의 普遍 的인 生活 感情과 情緖가 眞率하게 담겨 있다. 民謠는 民衆들의 노래지만, 支配 體制에서 外面當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口碑 文學의 여러 領域 中에서 오랫동안 民謠만 홀로 優待를 받았다. 中世的인 支配 體制를 다지는 禮樂을 이룩하면서 民謠를 받아들여 鄕樂 또는 俗樂을 編成하는 것이 오랜 慣例였으며, 高麗 後期에는 民謠에서 새롭게 上昇한 俗惡이 새삼스럽게 커다란 구실을 하였다.

  • 特性

形式은 두 鳶이 對稱 構造를 이루며, 音의 反復이 많다. 民謠의 歌唱 方式은 先後唱, 交換唱, 獨唱, 合唱으로 區分된다. 性格은 說話와 마찬가지로 입으로 傳承되는 口傳性을 지니며, 民衆이면 누구나 부르는 非專門的인 노래이다. 庶民들의 情緖와 哀歡을 담았기에 抒情性과 庶民性, 鄕土性이 두드러지고, 生活 感情이 잘 表現되어 있다. 內容은 主로 女性들의 哀歡을 다룬 婦謠가 많으며, 現實 生活의 經驗과 情緖, 生活苦를 諧謔的으로 녹여 낸다는 特性을 지닌다. 勞動謠에는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이 꾸밈없이 素朴하게 잘 나타나 있다. 媤집살이 노래에는 媤집살이하는 女性들의 苦惱에 찬 삶이 描寫되어 있다. 非機能謠에는 男女 離別의 情恨이 主潮를 이룬다.

  • 主要作品

勞動謠, 儀式謠, 遊戱謠, 非機能謠로 區分된다. 勞動謠는 農業,漁業,伐採,길쌈,製粉,雜役 勞動謠의 內容이 많고, 主要 作品은 논매기 노래, 打作 노래, 海女 노래 等이 있다. 儀式謠는 세時,葬禮,信仰 儀式謠에 關한 內容이고, 主要 作品은 地神밟기 노래, 賞與 노래, 달구질 노래 等이 있다. 遊戱謠는 놀이에 拍子를 맞추며 부르는 民謠이고, 主要 作品은 강강술래, 줄다리기 노래, 널뛰기 노래, 놋다리 노래 等이 있다. 마지막으로 非機能謠는 主로 遊興을 目的으로 하는 民謠, 內容과 形態上의 制約이 別로 없으며 主要 作品으로는 아리랑, 江原道 아리랑, 旌善 아리랑 等 이 있다. [3]

雜歌 [ 編輯 ]

* 雜歌의 槪念 및 發生 背景

朝鮮 後期 下層 階級의 專門 소리꾼이 부르던 노래이다. 兩班 階層의 歌詞와 對比되어 잡스럽다는 뜻으로 雜歌라는 名稱을 붙였다. 雜歌는 朝鮮 後期에 定格歌詞가 定型性을 잃어버리면서 大衆들이 부르는 歌謠의 混合 形態論 나타났다. 卽 歌詞, 民謠, 時調, 판소리 等 旣存의 여러 樣式들이 混合되어 形成된 變形 장르라고 할 수 있다. 雜歌는 以後 開化期까지 불리면서 다양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 內容

男女間의 愛情, 自然의 아름다움과 風流, 삶의 哀歡, 諧謔과 익살 等의 다양한 內容이 담겨 있다. 大體로 遊興的, 快樂的, 世俗的인 性格이 剛하다.

*形式과 種類

4'4兆, 4音步의 歌詞의 律格을 基本으로 하지만 破格이 甚하다. 京畿雜歌는 서울, 京畿地方에서 流行한 雜歌로,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그 中 휘모리 雜歌는 빠른 律動에 따라 말을 繼續 列擧하며, 辭說時調와 類似하다. <맹꽁이 타령>, <바위 타령> 等이 代表的이다. 12雜歌는 서울을 中心으로 한 庶民層의 노래이다. 긴 雜歌라고도 하며, 大槪 판 소리에서 由來했다. <有産家>, <赤壁歌>, <船遊歌>, <小春香歌>, <平壤歌>, <十杖歌>, <刑杖歌>, <執杖歌>, <제비가>, <달거리>, <방물歌>, <出引歌> 等이 이에 屬한다. 西道 雜歌는 平安道, 黃海道 地方에서 流行한 雜歌이며, 애절하고 歎息하는 느낌을 준다. <孔明歌>, <배따라기> 等이 있다. 南道 雜歌는 主로 全羅道 地方에서 流行한 雜歌로, 抑揚이 분명하다는 特性을 지닌다. <六字배기>, <새타령> 等이 代表的이다. [4]

古典 小說 [ 編輯 ]

漢文學 [ 編輯 ]

漢文 傳來期의 漢文學 [ 編輯 ]

高麗 時代의 漢文學 [ 編輯 ]

高麗 時代는 過去 制度의 實施, 佛敎의 隆盛 및 朱子學의 導入 等으로 漢文學이 꽃을 피운 時期이다. 이 時期에는 최승로, 박인량, 金富軾, 정지상, 李仁老, 林椿, 李奎報, 李齊賢 等의 뛰어난 作家들이 活潑한 作品 活動을 펼쳤다.

  • 主要作品
宋寅- 정지상- 別離의 情緖를 담은 7언 절구
東明王篇- 이규보- 高句麗의 始祖인 東明王의 英雄性을 讚揚한 5언 282具의 長篇 英雄 敍事詩
浮碧樓- 異色- 高麗 末의 文臣인 作家가 歷史에 對한 回顧와 國運 回復의 所望을 노래한 5언 律詩
沙里花- 이제현- 高麗 時代의 民謠를 漢詩로 飜譯한 노래, 農民을 收奪하는 貪官汚吏를 참새에 빗대어 表現함.
  • 高麗時代의 主要 作品集
<三國史記> 김부식, 人種 23年(1145), 前 50卷 10冊
<三國遺事> 一然, 忠烈王 7年(1281), 5卷 3冊
<東國李相國集> 이규보, 高宗 28年(1241), 前 53卷
<益齋亂藁> 이제현, 恭愍王 12年(1363), <小樂府>에 高麗 歌謠 11首가 漢譯되어 傳해짐. 全 10卷 4冊
[5]

朝鮮 電氣의 漢文學 [ 編輯 ]

  • 特性

留學 中心의 學問的 風土 等으로 인해 漢文學은 高麗 時代에 이어 繼續하여 發展하였다. 感性과 抒情을 重視한 黨, 宋의 詩風을 따른 社長派와, 理性的이고 實踐的인 度의 追求와 經學을 내세운 道學派가 對立하였다.

  • 主要 作品集

筆苑雜記, 서거정, 成宗 때(古代로부터 傳하는 逸話 또는 閑談을 가려 모은 隨筆 文學集, 風俗 硏究의 資料) 東文選, 서거정, 成宗 때(新羅부터 朝鮮 初期까지의 詩文을 모아 엮은 冊, 우리나라 漢文學의 總決算) 촌담애이, 강희맹, 成宗 때(淫談悖說과 說話를 엮은 기담집) 慵齋叢話, 成俔, 中宗 때(風俗, 地理, 歷史, 文物, 音樂, 舌禍, 人物評 等을 收錄한 隨筆集) 稗官雜記, 어숙권, 明宗 때(정사, 人物, 風俗, 일화, 始華, 民俗, 文物制度 따위를 모아 解說을 붙인 稗官文學書) [6]

朝鮮 後期의 漢文學 [ 編輯 ]

近代 文學 [ 編輯 ]

詩와 時調 [ 編輯 ]

新體詩란 新文學 草創期에 쓰인 새로운 形態의 市價로, 窓가의 定型性을 脫皮한 새로운 律調에 近代的인 內容을 담은 詩歌이다. 形式은 3'4條가 基本이 되는 以前의 形式을 깨뜨리고, 部分的으로 7'5兆 乃至 3'4'5條의 새로운 形態, 卽 定型詩와 自由詩의 過渡期的 形態를 띠고 있다. 內容的으로는 新敎育, 男女平等, 開化 意識, 自主獨立 等의 啓蒙思想을 담아 近代化에 對한 啓蒙主義的 意識을 鼓吹했다. 新體詩는 部分的으로 남아 있는 定型的 要素와 過度한 啓蒙性 때문에 完全한 自由詩라고 볼 수 없지만, 우리 詩 文學思想 처음으로 定型律 을 벗어난 데 意義가 있다. 또한 個人의 抒情을 자유롭게 表現하지는 못했지만 個人의 創作 意識이 作用했다는 點에서 現代 詩의 形成에 결 政敵인 影響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主要作品은 崔南善의 <해에게서 少年에게> (1908年 <少年>創刊號에 실린 新體詩의 嚆矢)'(신대한少年)' (句作 삼편)'(꽃두고), 李光洙의 <우리 英雄>等이 있다. [7]

小說 [ 編輯 ]

近代文學의 小說은 新小說이라 불린다. 新小說이란 甲午改革 以前의 小說에 對하여 새로운 內容, 形式, 文體로 이루어진 開化期 때의 過渡期的 性格을 지닌 小說을 가리킨다. 1906年 <萬歲報>에 連載된 李人稙의 <穴의 漏>가 單行本으로 刊行되면서 '新小說 穴의 누'라고 밝힘에 따라 以後 普遍的인 名稱으로 굳어졌다. 以後 1917年 <무정>이 나오기까지 約 10年동안 創作된 作品들을 指稱한다. 特性은 一般的으로 現實的인 問題를 題材로 하며, 背景 亦是 具體的이고 現實的이다. 이에 따라 自主獨立, 自由戀愛, 新敎育의 勸奬, 因習과 迷信의 打破 等 開化, 啓蒙思想의 救濟的인 實踐과 關聯된 主題들을 다루고 있다. 形式的인 面에서는 平面的 構成 方式을 脫皮하고 逆轉的 構成을 試圖했으며, 文章이 言文一致에 近接하고, 描寫 中心의 敍述이 試圖되었다. '新小說'의 限界는 古典 小說과는 다른 形式을 隨伴하는 過渡期的 形態의 小說로 우리나라 現代 小說의 發展에 重要한 役割을 했다. 그러나 後期로 갈수록 初期의 斬新性이나 問題意識이 사라지고 大衆的 讀書物로 變質되어 버렸다. [8] 1. 完全한 言文一致體를 이루지 못했다. 또한 人物의 定型性, 古典 小說의 常套的 手法인 偶然을 통한 事件 展開, 善惡의 平面的 對立(권성懲惡的 要素), 興味 爲主의 事件 設定 等의 要素가 많았다. 2. 現實에 對한 깊이 있는 認識과 民族 主體性이 缺如되었다. 또한 樂觀的인 文明開花를 꿈꾸는 程度에 그치고 말았다. 意義는 古典 小說과 現代 小說을 잇는 過渡期的 役割을 했다. 從來의 非現實的인 內容에서 現實的인 事件 中心으로 小說의 內容이 바뀌었으며, 當代의 時代精神을 充實하게 反映하여 開化思想 을 鼓吹시켰다. 主要作家와 作品은 李人稙의 <1906,穴의 漏>, <1906,귀의 城>, <1908,雉岳山>, <1908,은세계>, <1913,牡丹峯>, 李海朝의 <1908,鬢上雪>, <1910,自由鐘>, 崔瓚植의 <1914,안의 性>, <1912,추월색>, 安國善의 <1908,禽獸會議錄>, 以上協議 <1912,再逢春> 等이 있다. [9]

演劇 [ 編輯 ]

新劇이란 西歐 近代劇의 影響을 받아 形成된 우리나라의 近代 演劇을 말한다. 日帝 强占期가 始作되면서 急速히 衰退한 民俗劇을 代身하여 西歐의 演劇에 影響을 받아 생긴 새로운 演劇이 바로 新劇이다.

  • 唱劇

開化期에 登場한 새로운 樣式으로 西洋의 演劇과 판소리가 結合한 形態이다. 卽 舞臺 위에서 配役을 나누어 對話式 分廠으로 連唱하는 演劇으로 1902年 皇室 劇場 格인 協律社에서 처음 始作되었고, 1908年 圓覺가가 設立되면서 本格的인 唱劇으로 發展되었다. 公演 作品으로는 <春香歌>, <沈淸歌>, <水宮歌>, <弘報가> 等 傳來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네 마당에 限定되어 있었다.

  • 新劇

唱劇과 달리 散文으로 된 臺詞를 使用한 本格的인 演劇으로, 近代劇에 가까워진 形態이다. 李人稙이 自身의 作品인 <은세계> 와 具然學의 飜案 小說 <설중매>를 演劇으로 脚色하여 원각사 等에서 上演하였다.

  • 新派劇

新劇보다 構成의 必然性 等이 떨어진 演劇으로, 主로 現代 世上의 風俗과 認定 祕話를 題材로 하여 通俗的인 內容을 다루었다. 最初의 新劇團인 革新團은 社會의 要請에 副應하여 '勸善懲惡'風俗 改良'민지開發' 盡忠竭力' 等의 標語를 내세웠고, 처음에는 開花 啓蒙이라는 큰 時代 意識 아래서 演劇 運動을 펴 나가려 했다. 革新團, 문수성에서 <六穴砲 强盜>,<不孝天罰>,<장한몽> 等을 公演하면서 大衆들에게 큰 人氣를 끌었다.

  • 主要 劇場 및 極端

協律社, 장봉환, 1902~1906, 小春對遊戱, 最初의 屋內 劇場, 演劇 上演보다 一般 娛樂 기관화됨. 원각사, 이인직, 1908~1914, 은세계'설중매, 最初의 西洋式 社說 劇場. 新劇 및 唱劇 상연. 革新團, 임성구, 1911~1916, 六穴砲 强盜, 新派劇團. 軍事劇, 新小說을 脚色하여 上演함. 地方 公演. 문수성, 윤백남, 1912~1916, 不如歸, 新派劇團. 원각사, 團成社에서 公演함. 地方 公演. 유일단, 이기세, 1912~1914, 장한몽, 劇場 個星座의 設立과 함께 組織된 新派劇團. 서울&地方 公演. [10]

文學批評 [ 編輯 ]

文學의 理論이나 作品에 對한 批評意識은 일찍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어느 程度 體系 있는 文學論이 樹立되고 이를 모은 詩畫集이 나타난 것은 武臣의 亂 以後다. 詩畫集으로 總稱되는 이 갈래에는 文學, 特히 詩에 關한 論議 外에 雜文, 考證, 斷片的인 日射幽門 等이 있고, 詩에 關한 것도 詩論, 詩評, 始華 等이 婚材되어 있다. 그러나 이 時期에 文學의 價値 詩와 詩人의 機能 等에 對한 具體的 接近이 試圖되었다는 點은 注目할 만하다. [11]

現代 文學 [ 編輯 ]

電氣 現代 文學 [ 編輯 ]

現代 文學의 特色 [ 編輯 ]

現代 文學의 特殊性 [ 編輯 ]

韓國의 現代文學은 흔히 畸形的(畸形的)인 近代意識, 斷絶된 歷史에서 새로운 傳統을 創造하는 文學이라 말하고, 오히려 西歐의 近代的 文學思潮와 同一한 位置에 있는 것처럼 다루어지는 實情에 놓여 있다. 韓國의 現代文學은 韓國의 政治·經濟 및 文化의 近代化 過程이 特異했듯이 西歐의 近代的 文學思潮와 緊密한 聯關性을 맺으면서 特殊한 發展 過程을 걸어온 것만은 事實이다. 19世紀 末 韓國을 侵略한 外國 資本主義와 前近代的 閉鎖社會(閉鎖社會)의 終末과 함께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 西歐의 文藝思潮는 韓國 現代文學으로 하여금 畸形的인 移植文化(移植文化)로서의 特殊性을 띠게 했다. 따라서 韓國의 現代文學은 固有의 文化遺産인 古典文學에 對해서 直接的인 聯關性이나 主體的인 自我(自我)의 發展 契機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짧은 期間에 걸쳐 無批判的으로 外來 文學의 躁急한 吸收와 移植에서 出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韓國의 現代 文學이 傳統文學인 古典文學의 太半(胎盤)에서 發生·成長하지 못하고, 유럽 文學의 輸入·移植에서 出發된 까닭에 確固한 主體意識이나 自己能力에 依한 正常的인 童話(同化)와 攝取(攝取)의 經路를 밟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韓國의 現代文學은 韓國文學史의 全體的인 흐름으로 볼 때에는 異質的인 外來 文學이요, 그 本院地人 유럽 文學과 比較할 때는 同質的이면서도 同一한 位置에서 取扱할 수 없는 특수한 樣相을 띠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의 18世紀-20世紀에 걸친 文藝思潮가 各其 傳貰機의 文學을 基盤으로 하여 發展·成長했고, 또 必然的인 摸索의 履行(移行)過程이었음에 비추어 韓國의 境遇는 極히 짧은 期間에 19世紀와 20世紀가 混流(混流)된 思潮를 模倣하고 移植하는 데 熱中했다. 여기에 半世紀를 겨우 넘는 韓國 現代文學의 特殊性이 論議되며, 또 오늘날까지 새로운 反省의 契機를 마련해 준다. [12]

新文學과 現代文學 [ 編輯 ]

韓國의 文學史에서 新文學(新文學)과 현대문학(現代文學)과의 關係는 아직도 文學史的인 時代 區分이나, 述語(術語)로서 뚜렷한 槪念으로 區別해 쓰고 있지 않는 實情이다. 新文學이란 말은 形式上으로 유럽의 새로운 文學思潮가 輸入되기 以前의 傳統文學인 舊文學(舊文學)에 對하여 새로운 文學, 卽 新文學의 뜻으로 漠然히 使用되어 甲午更張 以後의 文學에 全般的으로 通用해 쓰고 있다. 그러나 新文學이란 말은 內容上으로 볼 때 新小說(新小說)까지 包含시키는 이도 있으나, 嚴格히 말해 新小說이 지닌 形式的 未完成과 思想的 封建性을 打破하고 近代的 要素 위에 한層 西歐的인 性格에 적합하게 꾸며진 文學을 가리킨다. 卽 言文一致, 文學에 對한 遊戱的 態度의 排擊, 勸善懲惡과 非現實的 觀念思考의 排除, 近代思想의 反映 等이 그 具體的 槪念이 된다. 따라서 新聞學期(新文學期)라 하면 1894年 甲午更張부터 3·1運動이 일어나기 前해인 1918年까지를 일컫는 것이 普通이며, 甲午更張 以後 오늘날까지의 韓國 文學을 新聞學期로 보는 이도 있어 그 區分이 學者에 따라 區區하다. 한便 現代文學이란 말은 新文學이라는 말보다 더 曖昧模糊하게 使用된다. 卽 西歐式으로 20世紀 文學을 現代文學이란 뜻으로 쓰기에는 새로운 文學이 西歐의 르네상스以後의 文學을 全般的으로 混合·吸收하고 있는 實情에 비추어 볼 때 時代 區分의 槪念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普通 韓國의 文學은 3·1運動 以後의 本格 文學期부터 볼 수밖에 없는데, 卽< 創造 (創造)>에서 出發하여< 開闢 (開闢)>< 白鳥 (白潮)>를 거쳐 1924年< 朝鮮文壇 (朝鮮文壇)>의 發行으로 成立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文學은 小說에서는 寫實主義를, 詩는 象徵主義와 浪漫主義를 그 主流(主流)로 했다. [13]

近代思潮의 影響 [ 編輯 ]

19世紀 末 急激히 轉變(轉變)하는 世界史의 물결은 中國·日本이 世界 列强(列?) 앞에 門戶를 開放한 뒤, 1876年 韓國도 强制的인 最初의 近代的인 外交로 日本과 조日修好條約 을 締結하였다. 繼續하여 美國 · 英國 · 獨逸 · 프랑스 等 龜尾 諸國과도 個國(開國)의 條約이 맺어지니, 이로써 굳게 닫혔던 鎖國의 門은 열리고, 封建王朝人 韓國도 外勢 資本主義가 角逐(角逐)하는 渦中(渦中)에 빠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韓國 新文學을 促進시키게 된 西歐의 近代思潮는 앞뒤의 順序도 없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意識的·無意識的으로 그 粗雜한 吸收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被動的인 外來 思潮의 接觸은 結果的으로 傳統文學에 對한 等閑視 乃至는 極端的으로 낡은 것은 모조리 나쁘고 새로운 것은 無條件 좋다는 跛行的인 觀念을 助長,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外來 思潮를 崇尙하는 現代的인 事大思想의 風潮를 孕胎하게 했다. 이렇게 錯雜한 現實 속에서도 韓國의 現代文學과 聯關을 맺게 된 것은 基督敎·新敎育 思潮, 그리고 新聞·雜誌를 통한 저널리즘이었다. 이미 英·正祖 時代에 갖은 彈壓 속에서도 中國을 통해 傳播해 온 天主敎는 여러 次例의 殉敎(殉敎)의 逆境을 거쳐, 韓佛條約 (韓佛條約) 後에야 비로소 信仰의 自由를 獲得했다. 그 後 基督敎는 改新敎 의 傳來와 함께 이 땅의 敎育機關인 私學(私學)에 對하여 큰 貢獻을 했고, 現代文學의 生成過程에도 적잖은 影響을 미쳤다. 卽 聖經(聖經)의 飜譯을 통해 文章에서도 詩文體(詩文體)의 活用과 한글의 普及을 促進시켰고, 讚頌歌(讚頌歌)는 새로운 노래인 窓가發生의 契機를 만들어 주었다. 더욱이 基督敎 財團에 依해 1885年 韓國 最初의 現代的 私學인 배재學堂 이 設立되었고, 그 後 梨花學堂 을 비롯해 많은 敎育機關이 敎會의 힘으로 建立되니, 이러한 現代的 敎育機關은 그대로 新文學을 生成시키는 促進的 役割을 하게 되었다. [14]

近代的 新聞과 雜誌 [ 編輯 ]

한便 現代式 新聞과 雜誌 및 官報(官報)의 綜合的 體制인< 漢城旬報 >가 1883年 創刊되니, 이는 韓國에 있어 近代的 言論의 嚆矢이며, 한때 中斷된 後 週間(週刊)으로 續刊된< 漢城週報 >는 國漢文(國漢文) 混用體를 最初로 使用한 新聞으로, 그 文體는 新文學 發展에 많은 影響을 주었다. 그 뒤 1896年에 發刊된< 獨立新聞 >은 그 文章을 純한글로 썼다는 點에서 意義가 깊고 그 後에 創刊된< 皇城新聞 >< 每日新聞 >< 大韓每日申報 >< 每日申報 >< 國民新報 >等 많은 日刊新聞과< 少年 (少年)>< 靑春 (靑春)> 等의 雜誌는 初期 文學作品의 大便 또는 새로운 文體를 普及시키는 媒介 機關이었다는 點에서 新聞學科 密接한 聯關을 맺게 되었다. [15]

[ 編輯 ]

이 時期에는 主要 文學 장르에서 形態的, 內容的 變化가 일어난다. 詩의 境遇 鄭形跡 韻律에서 벗어나 自由詩 形態의 近代 詩가 定着되었다. 1910年代 말에 現代的 自由詩가 登場했다. 여러 雜誌와 同人誌를 통해 新人 作家들이 大擧 登場하였으며, 金億과 朱耀翰 等은 끊임없이 새로운 詩를 摸索했다. 特히 金億은 <泰西文藝新報>를 中心으로 外國의 文藝 理論과 象徵主義 詩를 飜譯, 紹介했으며, 朱耀翰은 最初의 現代 自由詩人 <불놀이>(1919)를 發表했다. 啓蒙 文學의 敎述詩에서 벗어나 個人의 內面 感情을 內容으로 사는 抒情詩, 旣存의 定型性을 脫皮한 自由詩가 近代 詩의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過程에서 詩의 內的 秩序에 對한 關心이 높아지고, 西歐 象徵主義의 影響을 받아 詩의 象徵性을 重視하는 傾向이 생겼다. 主要 作家는 朱耀翰과 金億 等이 있다. [16] 朱耀翰의 作品은 불놀이, 빗소리가 있고, 金東仁과 함께 <創造>를 創刊하고 最初의 現代 自由視 ,<불놀이>를 發表하였다. <領帶>의 動因이다. 金億의 作品은 봄은 간다, 무덤 等이 있고, <創造>, <廢墟>의 同人이었다. 飜譯 詩集 <懊惱의 無挑>와 最初의 創作 詩集 <해바라기 노래>(1923)를 發刊하였다. 感傷的인 傾向에서 出發하여 民謠에 關心을 가지면서 漸次 定型詩로 옮아갔다.

演劇 [ 編輯 ]

오아시스 洗濯所 襲擊 事件

文學批評 [ 編輯 ]

近代批評의 眞正한 出發은 1920年代로 잡는 것이 定說처럼 되어 있으나, 1900年代와 1910年代가 批評史의 觀點에서 一考의 價値도 없는 時期는 아니다. 이 時期는 '創作이 있는 곳에 批評이 있다'는 命題를 充足視 키지는 못했지만, 時代의 變化에 따른 새로운 文學精神과 創作方法의 出現을 外面했던 것은 아니다. [17]

韓國 外에서의 韓國 文學 [ 編輯 ]

韓國 文學은 1980年代 까지 그 外 나라들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으나, 1980年代 以後 多角度의 飜譯 作業이 이루어지며 飜譯의 質 또한 向上되었다. Flowers of Fire 은 英語로 飜譯된 最初의 韓國 詩集이다. 非英語圈 國家에서는 아직까지도 韓國 文學의 飜譯 作業이 더디지만, 韓國 映畫 와 드라마의 큰 人氣에 힘입어 漸次 韓國 文學에 對한 關心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읽어 보기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241~245쪽.
  2. "旕時調" 두산百科,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4985&cid=40942&categoryId=32868(2017.12.2)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3.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71~82쪽.
  4.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72쪽.
  5.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139~144쪽.
  6.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144~148쪽.
  7.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355~359쪽.
  8.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499쪽.
  9. 위의 冊, 495쪽.
  10.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525~530쪽.
  11.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186쪽.
  12. 글로벌 世界 大百科事典 》〈 現代文學의 特殊性
  13. 글로벌 世界 大百科事典 》〈 新文學과 現代文學
  14. 글로벌 世界 大百科事典 》〈 近代 思潮의 影響
  15. 글로벌 世界 大百科事典 》〈 近代的 新聞과 雜誌
  16.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362쪽.
  17. 조동일, 《韓國文學講義》, 길벗, 2015, 5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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