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亦是나 더운 어느 여름날 午後, 집으로 가기 위해 트램을 기다리는데 내가 타야 할 트램이 豫定 時間을 훌쩍 넘겨서도 들어오지 않았다. 時計를 내려다보며 조바심을 내던 刹那, 停留場에서 같이 트램을 기다리던 한 이탈리아 男子가 내게 “或是 韓國에서 왔냐”고 물으며 親한 척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내게 中國 사람, 或은 日本 사람이냐고 물었던 터라 대번에 韓國 사람임을 알아보는 그 男子에게 반가움을 느꼈다. 어떻게 韓國을 아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對答이 쏟아졌다. “나는 韓國을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디자인 工夫를 하는 韓國 親舊가 많다”…. 韓國에 關心을 가진 사람을 他國에서, 그것도 鄕愁病이 고개를 들 무렵 만나서인지 興奮도 되고 가슴도 뭉클했다.
그렇게 말을 섞은 지 30分째. 오지 않는 트램을 抛棄하고 집까지 걸어가려 作別人事를 하는데 그의 눈빛이 突然 哀切하게 變했다.
“다음에 또 한 番 만날 수 있을까요?”
이탈리아 男子들의 ‘女子 밝힘증’에 對해서는 익히 들은 터라 鄭重히 拒絶하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일정한 間隔을 두고 내 뒤를 밟는 男子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映畫로 치면 로맨스 장르에서 호러로 變하는 瞬間. 왠지 모르는 不安感에 別別 想像을 다 하게 됐다. ‘或是 拉致?’
그 男子는 結局 내 걸음을 따라잡고 말았다. 호러 映畫 속 被害者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게 그는 끈적이는 눈빛으로 求愛(求愛)를 繼續했다. 매정하게 돌아서는데도 매달리는 그를 겨우 따돌리고 집에 돌아와 숨을 돌리자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韓國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 여기서 일어났군’ 하는 생각에.
親舊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들려줬더니 그들 中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事例가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탈리아를 찾는 外國人 女性들이 배워야 할 이탈리아語가 “저리 가(vada via)!”일까. “Ciao, Bella(안녕 예쁜이)”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男子들의 面前에 이 單語를 내뱉으라면서.
熱心히 외워두긴 했지만 그 뒤로는 한 番도 써먹을 일이 없었다.^^;
사랑에 죽고 못 사는 情熱的인 이탈리아 男子들, 亦是 世界 最高란 名聲을 들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