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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안房에 勞動新聞과 평양방송을 許하라”|신동아

“우리 집 안房에 勞動新聞과 평양방송을 許하라”

[奉達號 便宜店 칼럼] ‘金日成 回顧錄’에서 ‘해리포터’ 떠오른 理由

  • 奉達號 便宜店主

    入力 2021-05-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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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年代에는 ‘참된 봄을 부르며’

    • 참 絶妙한 타이밍에 죽은 金日成

    • 巨與, 왜 國家保安法 廢止 안 하나

    • 公安 當局이 팔아준 數萬 卷의 冊

    • 生計型 或은 純粹한(?) 從北 人士들

    • 知能的인 反北(反北) 活動家?

    • 開放이 가장 效果的인 安保 敎育

    2020년 4월 1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전날 노동당 간부들이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2020年 4月 16日 北韓 勞動黨 機關紙 勞動新聞이 前날 勞動黨 幹部들이 김일성의 生日을 맞아 錦繡山太陽宮殿을 찾았다고 報道했다. [勞動新聞=뉴스1]

    金日成 回顧錄 ‘世紀와 더불어’가 國內에 出版됐다가 교보문고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大型 書店에서 販賣를 中斷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出刊 卽時 國家保安法 違反 論難이 일었고, 書店 側에서 ‘顧客 保護’를 理由로 販賣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冊을 펴낸 出版社는 民族舍廊房이다. 이 出版社 代表 김승균 氏는 한 言論과 인터뷰에서 “‘世紀와 더불어’는 金 主席 生前에도 널리 알려진 冊이고, 이걸 南北이 共有한다고 하면 北側도 무엇보다 큰 膳物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出刊 趣旨를 밝혔다.

    그런데 김승균 氏가 이런 事實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世紀와 더불어’는 이미 國內에 出版·流通된 적이 있다. 金日成 回顧錄은 1990年代에 ‘참된 봄을 부르며’라는 題目으로 大學街에서 ‘널리’ 읽혔다. ‘널리’라는 修飾語가 適切한지는 모르겠으나 1990年代 NL(民族解放) 陣營에서 學生運動을 했던 사람 가운데 萬若 그 冊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核心 그룹에 屬하지 않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個人的으로는 1萬~2萬 名은 족히 읽었으리라 推定한다. 하루에도 數百 種의 冊이 쏟아지고 그 가운데 重刷를 찍지 못하는 冊이 太半인 國內 出版 環境에서 30年 前 그 程度 販賣 部數는 거의 베스트셀러級이다.(게다가 마케팅을 全혀 하지 않은 ‘利敵表現物’李!) 最近에도 中古書店을 통해 流通되는 것 같으니 關心 있는 분들은 檢索해 찾아보시라.

    김승균 氏가 果然 어떤 讀者層을 바라고 ‘世紀와 더불어’를 出刊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北韓에 關心 있는 運動圈 出身 4050 讀者層’을 念頭에 뒀다면 크게 誤判한 것이다. 或是 追憶을 기리는 次元에서 所藏用으로 購入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웬만한 運動圈 出身이라면 이미 다 읽은 冊이기 때문이다. 참, 이番 ‘世紀와 더불어’는 影印本으로 出版했다고 하는데 正말 그런 所藏 價値(?)를 念頭에 뒀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單純 所藏用으로 購入하기에도 價格이 꽤 비싸다. 여덟 卷 價格이 無慮 28萬 원이나 한다.(참고로 過去 出版 當時에는 1卷當 5000원 水準이었다.) 圖書의 價値를 놓고 可타否타 評價하는 일은 敢히 無嚴하지만, 타깃(target) 讀者層을 設定하는 側面에서나 適正한 價格 策定에서나 失敗한 出版이 아닐까 싶다. 北韓과 著作權 問題도 全혀 協議한 것 같지 않고.



    生前 황장엽과의 對話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북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오른쪽)와 2005년 개봉한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 [올댓시네마, 온라인서점 알라딘 캡쳐]

    最近 國內에서 出刊된 北韓 김일성의 回顧錄 ‘世紀와 더불어’(오른쪽)와 2005年 開封한 판타지 映畫 ‘해리포터와 불의 盞’. [올댓시네마, 온라인書店 알라딘 캡쳐]

    ‘世紀와 더불어’는 모두 8卷으로 된 시리즈物이다. 1卷부터 6卷까지가 김일성 生前에 쓴 回顧錄이고 7~8卷은 이른바 ‘繼承本’이라 해 김일성 死後 遺稿를 모아 作家들이 만든 冊이라고 北韓 當局은 主張한다.

    이 冊을 둘러싼 論點 가운데 하나는 ‘김일성이 直接 썼느냐’ 하는 것이다. 金日成綜合大學 總長과 北韓 勞動黨 國際擔當 祕書를 지내다 南韓으로 亡命한 故(故) 황장엽 氏는 勞動黨 宣傳部 所屬 作家들이 執筆했다고 밝힌 바 있다. 有名人의 回顧錄을 代筆하는 일은 世界的으로도 흔하니 그것을 理由로 價値를 깎을 수는 없다. 問題는 內容이 事實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筆者는 황장엽 祕書 生前에 그를 여러 番 만났다. 한番은 金日成 回顧錄이 話題에 올랐는데, 김일성은 참 絶妙한 時期에 죽었다는 內容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함께 웃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金日成 回顧錄은 1992年 1卷이 나왔고, 김일성 死亡 直後인 1995年 6卷이 나왔다. 金日成 回顧錄은 6卷까지를 ‘金日成 育成’으로 친다. 7~8卷은 事後에 他人이 쓴 글이니 事實 與否에 論難이 있더라도 ‘作家들의 失手’로 置簿하면 되는 일이다.

    金日成 回顧錄은 참 絶妙하게도 1945年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萬若 김일성이 오래 살아 1945年 以後 歷史를 敍述했다면 解放 前後事의 內幕을 直接 肉聲으로 告白해야 했을 것이고, 相當한 政治·外交的 問題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45年 以前 歷史야 金日成이 솔방울로 手榴彈을 만들든, 白馬 타고 日帝를 打倒했다고 敍述하든, 光復은 오롯이 김일성의 功勞라고 主張하든 特別히 누가 거들 必要 없는 ‘판타지 英雄 敍事’에 不過하다. 歷史學者들이 注目할 理由도 別로 없고, 周邊國에서 相關할 理由 또한 없다.

    하지만 光復 以後 歷史는 사뭇 다르다. 例를 들어 6·25戰爭 準備 過程을 김일성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中國이 支援軍을 보낸 背景과 過程에 對해서는? 北韓 政權 樹立과 戰後 復舊 過程은? ‘모든 歷史는 將軍님을 中心으로 돌아간다’는 歷史觀은 1945年 以前까지는 可能할지 몰라도 1945年 以後로는 全혀 不可能하다. 政治的 相對方과 國際 相互關係, 게다가 飼料(史料)가 存在하는 歷史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아주 絶妙할 때 죽은 것이다. 繼續 살아 있었으면 北韓 政權으로서도 危險할 뻔했다. 推測건대 살았더라도 1945年 以後 歷史는 敢히 回顧錄을 내지 못했을 테고, 대충 1945年 線에서 마무리했을 可能性이 높다. 正常的인 政治 外交 感覺을 갖춘 사람이라면 當然한 일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回顧錄 進行 過程을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하지 않았을까 싶다. ‘늘그막에 氣分 좋으라고 作家들 붙여 回顧錄 만들어줬더니 令監님이 線을 넘으려고 하네?’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945年을 境界로 ‘線을 넘는’ 일이 된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金日成 回顧錄은 1937年까지가 育成本이고, 거기서 1945年까지가 繼承本이다. 繼承本은 김일성 部隊가 이른바 大部隊 旋回作戰을 하면서 中國에서 蘇聯으로 移動하는 過程을 담고 있다. 事實은 여기서부터 外交 或은 歷史 問題가 發生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일성이 蘇聯共産黨과 어떤 關係에 있었는지 하는 論點들이 本人의 育成을 통해 드러나고, 김일성의 歸國 過程도 具體的으로 밝혀야 한다. 金日成 回顧錄이 出刊된 當時에는 蘇聯이 이미 滅亡했다. 이 問題를 外交的으로 指摘할 相對가 없음에도 繼承本에는 이런 모든 問題가 두루뭉수리 處理돼 있다. 비록 繼承本이라고 하지만 亦是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김일성은 氣막힌 타이밍에 숨을 잘 거둔 셈이다.

    PD에서 NL로 轉向(?)韓 契機

    4월 3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제10차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대회에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1면에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4月 30日 北韓 勞動黨 機關紙 노동신문은 金正恩 北韓 勞動黨 總祕書가 제10차 金日成-金正日主義靑年同盟 大會에 參加者들과 記念寫眞을 찍었다고 1面에 報道했다. [勞動新聞=뉴스1]

    大明天地 21世紀 大韓民國에 金日成 回顧錄이 再出刊된 날, 어느 言論社 記者로부터 電話를 받았다. 金日成 回顧錄을 읽었느냐는 것이다. 當然히 읽었다고 앞의 이야기를 해줬다. 어떤 內容이냐고 묻기에 “民族 英雄 SF 판타지”라고 했고, 이番 出刊에 對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許容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記者가 若干 어리둥절한 氣色이기에 “萬若 그것을 販禁 措置한다면 ‘半指의 帝王’이나 ‘나니아 年代記’를 荒唐하다는 理由로 販賣 禁止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하고 물었다.

    利敵性 問題를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販賣 禁止하는 行爲가 오히려 移籍(利敵)이 아닐까 싶다. 그 冊을 읽고 “김일성 將軍 만세!”를 외칠 사람은 果然 얼마나 될까? ‘해리 포터’를 읽고 얄미운 사람 앞에서 “아바다 케다브라!”를 외치면 正말 죽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의 比率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꾸 그것을 禁止함으로써 好奇心만 잔뜩 높이는 逆效果를 發揮한다. 禁止에 抵抗하는 사람에게 自由의 守護者, 人權運動家 或은 民主鬪士라는 透明 망토를 씌워주는 逆效果는 勿論이고. 마침 서울西部地法은 5月 14日 金日成 回顧錄의 販賣·配布를 禁止해달라는 一部 市民團體의 假處分 申請을 棄却했다.

    個人的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元來 學生運動을 始作할 때 PD(民衆民主) 系列에 더 關心이 많았다. 그런데 NL로 轉向(?)하게 된 契機는 한 卷의 冊 때문이었다. 1989年 運動圈이 大學 校內에서 ‘꽃 파는 處女’를 公演하려다 警察이 進入하고 關聯者가 拘束되는 等 한창 言論에 話題가 됐다. 알다시피 ‘꽃 파는 處女’는 北韓 3大 革命歌劇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어느 날 書店에 갔더니 小說 ‘꽃 파는 處女’가 있지 않은가. 大體 얼마나 ‘移籍’ 表現物이기에 그 亂離를 피우는지 싶어 購入했다. 그날 밤을 꼴딱 세워 읽었다. 이런 冊을 보지 못하게 期於이 가로막는 政權에 오히려 疑懼心이 생겼다.

    相當히 作爲的인 要素가 많음에도 不拘하고 ‘小說’ 自體로 보자면 ‘꽃 파는 處女’는 제법 感動的인 文學作品이다. 北韓 體制를 讚揚하는 內容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이다. 그걸 읽고 “北韓 만세!”를 외칠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勿論 1989年 當時 狀況은 달랐다 하더라도, 굳이 그렇게 過敏 對應할 일도 아니었다고 본다. 어쨌든 그리하여 노태우 政府는 PD系列로 갈 수 있었던 初步 運動圈 한 名을 NL로 引導해 준 셈이다.

    ‘鋼鐵書信’ 또한 그렇다. NL의 敎科書라 불리는 ‘鋼鐵書信’도 公安 當局이 作成者를 指名手配하고 巨物級 間諜이라도 捕捉한 것처럼 유난을 떨더니 더 有名해졌다. 複寫本을 救하지 못해 運動圈 內部에서 亂離였고, 結局 冊으로 묶여 나왔다. 足히 數萬 卷 程度를 公安 當局이 팔아주지 않았을까 싶다. ‘未濟侵略史’니 ‘資本論’이니 ‘피바다’니 하는 冊들이 다 그렇게 팔려나갔다.

    평양방송을 綜編 채널로 視聽할 날

    2004년 12월 24일 당시 유시민 의원(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동아DB]

    2004年 12月 24日 當時 유시민 議員(왼쪽에서 세 番째)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議員들이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國家保安法 年內 廢止를 促求하며 籠城을 하고 있다. [東亞DB]

    話題를 돌려, 只今 더불어民主黨이 改憲까지 試圖할 수 있는 充分한 議席을 갖고 있음에도 왜 國家保安法을 廢止하지 않는지 疑問이다. 自身이 國保法의 가장 큰 被害者라고 主張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줄줄이 國會議員 배지를 달았는데도 말이다. 國保法 廢止를 民主主義者의 徵標처럼 앞세우던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政黨에서 말이다.

    文在寅 大統領도 候補 時節 “(國保法을 當場 廢止할 수는 없어도) 與野 意見이 모이는 範圍에서 改正하자”는 意見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執權 5年次가 되도록, 이토록 壓倒的 多數 議席을 갖고도 國保法 改正을 위한 試圖조차 하지 않는다. ‘民生’李 優先이라 그러는 것일까? 그렇다면 民生과는 全혀 關聯 없는 檢察改革에는 왜 그리 熱誠인 걸까? 이른바 進步政黨이라는 正義黨이 只今은 國保法 改廢에 그리 熱誠을 보이지 않는 理由 또한 꽤 아리송하다.

    此際에 北韓에 對한 모든 것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金洙暎 詩人이 ‘김일성 萬歲’라는 詩에서 “김일성 萬歲 / 韓國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 認定하는데” 있다고 노래했는데, 正말 光化門廣場에서 “김일성 萬歲”를 외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그런 世上이었으면 좋겠다. 金日成 回顧錄은 勿論이고 勞動新聞도 자유롭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평양방송도 안房에서 綜合編成채널처럼 視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自由民主主義가 흔들릴 것 같은가? 우리 社會의 思想的 土臺가 그리 허술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니 이건 思想의 問題도 아니다. 北韓의 偶像化가 어디 ‘史上’과 關聯한 일인가. 판타지 小說을 現實로 錯覺하느냐 하는 問題이고, 우리 國民이 그 程度로 愚昧하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勿論 過去 筆者처럼 ‘빠져드는’ 一部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차라리 公論의 場으로 끌어냄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現實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地下에 숨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地下에서 自己들끼리 良心의 自由를 지키고 表現과 結社의 自由를 擁護하는 民主主義自認 양 錯覺하도록 만들지 말자. 相對에게 被害者, 犧牲者, 殉敎者 프리미엄을 안겨주는 것이야말로 討論에 있어 가장 어리석은 前提 아닐까.

    김승균과 丁世鉉

    金日成 回顧錄 해프닝을 겪으며 눈여겨본 人物은 이 冊을 펴낸 出版社 代表 김승균 氏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 그를 從北(從北)이라 非難하던데, 果然 그럴까? 그의 履歷을 보니 4·19革命 直後 突出的 統一 主張이 亂舞할 때 運動團體 幹部를 맡은 적 있고, 1970年代에는 金芝河 오적(五賊) 筆禍 事件에 휘말려 獄苦를 치렀으며, 1980~90年代에는 有名 社會科學 出版社 일월서각을 運營하다가, 2000年代에는 平壤에 돼지農場을 지어 寄贈한 痕跡 等이 보인다. 그냥 浪漫的 民族主義者 程度 아닐까 싶다. 이番에 言論 인터뷰에서도 “(金日成 回顧錄) 出版을 南北이 和解할 수 있는 契機로 잘 活用하기 바란다”고 하는 것을 보니 무척 純粹한 분인 것 같다. 政治와 歷史를 둘러보면 이렇게 ‘純粹해서 안타까운’ 사람을 여럿 만난다.

    北韓 關聯 NGO(非政府機構)에서 일한 때 筆者는 統一運動이나 南北交流 事業을 하는 분들을 만날 機會가 많았다. 그들은 크게 세 方向으로 分化했다. 첫째, 慣性에 依해 그 일을 繼續하는 사람들. 時代가 어떻게 變하는지 北韓의 現實이 어떠한지에 對해서는 別로 關心 없고 어쨌든 젊을 때부터 해온 일이니 그것을 維持하는 行爲 自體를 信念이나 志操로 錯覺하며 無批判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罪悚한 表現이지만, 自己만의 꿈나라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剛했다. 둘째, 北韓을 相對하다가 完全히 밑바닥을 經驗하고 齒를 떨면서 떠난 사람들. 그리고 셋째 類型이 있는데, 運動圈과 특별한 關聯이 없고 別로 理念 志向的인 것 같지도 않은데 異常하리만큼 北韓 政權을 追從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生計型 從北이라고나 할까. 或은 純粹한(?) 從北.

    特히 對北 人道支援 事業을 하는 파트에서 그런 분들을 種種 만났다. 어쨌든 支援은 해야겠고 ― 그것이 自己 事業의 成果니까 ― 그러려면 北韓 政權에 밉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유난스러울 만큼 卑屈하게 處身하는 것이다. 勿論 그렇게 해서라도 北韓 人民이 굶주림을 解決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崇高한 意志를 밝히는 分도 만났다.

    하지만 그것도 程度와 分數가 있는 法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치 武俠誌에서 鑄貨立馬(走火入魔·自身의 힘에 醉해 스스로 統制할 수 없는 狀態)하는 것처럼 北韓 政權에 沒入하며 어설픈 讚揚을 하는 사람을 보면 可憐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北韓 政權이 알아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政治權에서는 文在寅 政府의 統一 멘토처럼 行世하는 丁世鉉 前 統一部 長官이 그런 典型的 人物 아닐까. 처음 丁世鉉 氏가 햇볕政策의 守護者처럼 나서는 것을 보았을 때 個人的으로는 좀 疑訝했다. 내 記憶으로는 1993~1994年 우리 政府가 北韓 原子爐 爆擊까지 옵션에 包含하며 이른바 第1次 北核 危機 當時 가장 强勁派에 屬했던 人物이 丁世鉉 氏다. (정세현 氏는 當時 實務協商 擔當者였다.) 勿論 鄭氏는 ‘그때의 經驗을 거치며 생각이 바뀌었다’는 式으로 辨明하겠지만 그의 人生行路를 살펴보면 어떤 巨創한 理念보다는 出世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靈魂 없는 公務員의 典型으로만 보인다. 얼치기 初步 運動圈처럼 精製되지 않은 말과 行動을 보면서 惻隱함마저 느낀다.

    事實 北韓 政權 立場에서는 南韓의 이른바 生計型, 純粹型 從北主義者들을 오히려 不便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從北度 適當히 해야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南北의 接觸面이 넓어지면 北韓 住民들에게 좋지 않은 影響을 줄 게 분명하고, 北韓 體制로서도 負擔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筆者 個人的으로는 어떤 從北主義者들은 知能的인 反北(反北) 活動家 아닐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 程度다.

    北韓이 越北者들을 받지 않고 過去와 같이 體制 弘報用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 對南放送을 送出하지 않는 것도 그런 理由에 잇닿아 있다. 北韓 政權 立場에서도 南北 間 競爭은 이미 깨끗이 끝났다고 보는데 낯간지럽게 越北者를 體制 弘報에 動員할 理由가 없다. 또 이제는 그런 費用을 堪當할 餘力조차 없을 만큼 北韓 經濟가 深刻한 것이다. 차라리 南北 合意 履行을 名分으로 南韓으로 돌려보내면서 “南韓도 脫北者를 받지 말라”거나 “南韓도 對北放送을 送出하지 말라”고 하는 便이 政治的으로나 經濟的으로 훨씬 利得이란 事實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자, 우리는 거리낄 것 없다”

    却說하고, 北韓에 對한 모든 것을 활짝 열어놓고 “자, 우리는 거리낄 것 없다”는 態度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北韓 政權에 深刻한 威脅이 될 것이다. 그깟 回顧錄 가로막고 인터넷 宣傳媒體 接續 遮斷한다고 무에 얻을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열었으니 너희도 다 열라’고 하는 便이 더 낫다. 아니, 北韓이 熱든 말든 그것도 相關 말자. 우리는 다 열어놓고 있다는 事實 하나만으로도 北韓 住民들에게는 그 어떤 對北 放送 못지않은 思想的 衝擊이 될 것이다.

    그러니 金日成 回顧錄을 許하라, 우리 집 안房에 평양방송을 許하라, 光化門廣場에 “北朝鮮 萬歲”가 울리게 하라, 國家保安法을 廢止하라. 그 어떤 安保 敎育보다 效果的인 敎育이 될 것이다. 或是 이런 點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政府도 ‘適當한 統制’를 維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國家保安法도 그래서 改正조차 않는 것 아닐까? 民主黨 關係者들이 그리 戰略的인 思考 能力을 갖춘 분들 같지는 않지만, 나름의 陰謀論을 꺼내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陰謀論이 交通放送의 專賣特許만은 아닐 테니까.

    #金日成 回顧錄 #해리포터 #勞動新聞 #NLPD #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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