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6回 아시안 게임 은 아시아 올림픽 評議會 (AGF) 主管으로 1970年 12月 9日 부터 12月 20日 까지 泰國 방콕 에서 열렸다. 아시아 18個國이 參加하였으며, 參加 選手는 約 2,400名이다.
아시아 競技 聯盟(AGF) 總會는 1966年 아시안 게임 이 進行 中이던 1966年 12月 15日 에 泰國 방콕 에서 열린 大韓民國 서울 을 1970年 아시안 게임 開催 都市로 選定했다. 실론(現在의 스리랑카 )도 誘致 申請에 나섰지만 撤回했다. [1] [2] 그러나 大韓體育會, 大韓올림픽委員會, 大韓民國 政府, 서울特別市가 1970年 아시안 게임을 서울에서 開催할 것인가를 놓고 葛藤을 빚게 되면서 서울 開催가 霧散될 危機에 處했다. 게다가 朴正熙 政權은 當時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北韓)의 對南 武力 挑發 威脅 擊退를 위한 國家 安保의 强化 및 經濟 發展을 最優先 課題로 삼고 있었다. 또한 大會에 使用될 競技 施設 擴充과 大會 準備에 必要한 豫算 確保에 莫大한 費用이 든다는 問題點이 提起되었고 몇몇 社會主義 國家들이 政治的인 理由로 서울에서 開催될 아시안 게임에 不參할 수 있다는 憂慮가 提起되었다. [3] 結局 대한올림픽위원회는 1968年 3月 22日 에 열린 常任委員會를 통해 서울이 갖고 있던 1970年 아시안 게임 開催權을 返納하기로 決意했다. [4] 서울은 나중에 1986年 아시안 게임 을 開催하게 된다.
아시아 競技 聯盟은 日本 側에 1970年 아시안 게임을 代身 開催할 것을 提案했지만 日本은 大會 開催 時期가 오사카 에서 開催된 1970年 世界 博覽會 와 重複된다는 理由로 拒絶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競技 聯盟은 1968年 5月 1日 에 열린 執行委員會 會議를 통해 大韓民國 서울의 1970年 아시안 게임 開催權 返納을 承認하는 한便 1966年 아시안 게임을 開催했던 泰國에서 1970年 아시안 게임을 開催할 것을 勸告했다. [5] [6] [7] 泰國 政府는 大會 準備에 必要한 豫算을 아시아 競技 聯盟 會員國들의 寄附金으로 充當하는 條件으로 1970年 아시안 게임을 泰國에서 開催하는 案件을 承認했다. 아시아 競技 聯盟은 1968年 10月 14日 에 멕시코 멕시코시티 에서 열린 總會에서 泰國 방콕을 1970年 아시안 게임 開催 都市로 選定했다. [8]
總 20個國이 參加하였다. 라오스 , 아프가니스탄 은 選手를 派遣하지 않고 任員만 派遣했다.
다음 國家는 選手團이 參加하지 않았고, 任員만 派遣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