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지
(李徽之,
1715年
~
1785年
)는 朝鮮 後期의 文臣이며, 正祖 때 右議政을 지냈다. 字는 미경(美卿), 號는 老圃(老圃), 本貫은 全州이다. 曾祖父는 領議政 이경여(李敬輿), 祖父는 吏曹判書 이민서(李敏?), 아버지는 左議政
이관명
(李觀命)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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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祖 때 承旨가 되고,
同副承旨
,
大司諫
,
大司成
을 거쳐 承文院副提調로 있다가
大司成
,
吏曹參議
를 거쳐
大司諫
,
大司成
을 지낸 뒤 다시 承旨와 吏曹參議를 두루 지내고
大司諫
에 이어 宰相으로 昇進해서
禮曹參判
과
大司憲
을 하며 同知經筵事를 겸하고,
禮曹參判
,
吏曹參判
,
都承旨
,
大司諫
을 거쳐
大司憲
,
弘文館
提學
을 하다 江華留守를 거쳐
大提學
이 되고 校書館 製造를 하다
兵曹判書
가 되었으며, 以後
大提學
,
兵曹判書
를 하며 世孫을 잘 輔弼해 正祖의 信任을 얻어 正祖 때 國葬都監製造를 거쳐
兵曹判書
,
吏曹判書
,
大提學
,
禮曹判書
,
刑曹判書
를 거쳐
漢城府判尹
과
吏曹判書
를 지내고
大提學
과
兵曹判書
를 거쳐
藝文館
提學
이 되는데 곧
兵曹判書
,
吏曹判書
,
司憲府
大司憲
을 지낸다. 以後
大司憲
,
工曹判書
,
兵曹判書
를 두루 하다
大提學
,
兵曹判書
를 하며 製造를 겸했고, 以後
兵曹判書
로 知經筵事를 한다. 以後
弘文館
提學
,
兵曹判書
,
判義禁府事
,
刑曹判書
,
吏曹判書
를 거쳐 平安道觀察使를 하다가 바로 正祖의 信任으로 다시
大提學
이 되고 곧
右議政
에 이르렀다. 나중에 判中樞府事로 恥事한다. 諡號는 文獻(文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