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川
거調査
영산전
(永川 居祖寺 靈山殿)은
慶尙北道
永川市
거調査
에 있는,
高麗 時代
에 지어진 佛敎 建築物이다.
1962年
12月 20日
大韓民國의 國寶
第14號로 指定되었다.
거調査 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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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이 있는
거調査
는
新羅
효성왕
2年 원참조사에 依해 創建되었다. 或은
경덕왕
때 建立되었다고도 한다. 以後,
銀海寺
의 末寺로 編入되면서 거조암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21年 3月 23日 文化財廳이 다시 거조암을
거調査
로 名稱을 바꾸기로 했다.
[1]
거調査
는
八公山
東쪽 기슭에 位置하며,
阿彌陀佛
이 恒常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전의 特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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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은
거調査
의 本錢이다. 옛날에는 現存하는 唯一한 新羅時代 建物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解體 補修할 때 發見된 묵署名에서
1375年
(高麗
禑王
元年) 8月 20日에 建立되었다고 밝혀졌다.
[2]
以後 영산전은 여러 次例 고쳐 지어졌다고 한다. 안에 526分의 各其 다른 表情의
石造
羅漢像
을 모시고 있다.
영산전의 建築 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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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靈山殿)은 全體 模樣은 不規則하게 採石된 長臺石과 雜石으로 築造된 높은 基壇위에 선 길죽한 形態이다.
素朴하고 簡潔한
柱心包系
形式으로 正面 7칸, 側面 3칸, 5輛 構造의
맞배집
으로
恐怖
,
報
의 斷面,
솟을합장
,
包臺工
等에서 一部 姑息을 볼 수 있다. 形態 및 構成 技法에 있어서는 彫刻手法으로 보아
朝鮮
初期에 고쳐 지으면서 많은 部分이 變形된 것으로 보인다.
家口(架構)는 簡潔한 手法으로 되어 側面 中央 칸을 形成하는 두 高柱(高柱)와 그 앞뒤의 平柱(平柱)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있다. 高柱와 平柱는 退步로 連結되어 平柱 위의 恐怖에 依하여 退步 안 끝이 받쳐져 이것이 柱心도리(柱心道里)를 받게 되고 出目(出目)으로 된 檐遮는 退步 끝을 받으면서 外目도리(外目道里)를 받쳤다.
高柱머리에는 뜬 창방(昌枋)을 돌리며 기둥 뒤에는 柱頭(柱頭)를 두고 包作으로 大들보 끝을 받고 끝은 中도리를 받쳤다. 大들보 中央에는 키가 큰 劑形(梯形)의 不在(不在) 위에 2中으로 된 包作을 올려 마루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마루도리는 내반(內反)된 蕭瑟合掌으로 받쳐 지고 天障家口(天障架構)는 없이 椽燈天障으로 되었다.
이 建物의 細部를 보면 柱頭나 소누(小累)가 多包집과 같은 形態로 된 것 以外는 柱心包 樣式의 初期的인 形態를 나타내는 重要한 家口이다. 坪 周圍에 놓인 恐怖 形態와 마루도리 위에 놓인 一種의 包臺工(包臺工) 形態는 이 建物의 特徵的인 樣式이다. 檐遮 밑에 겹쳐 헛초공으로 이 檐遮를 받쳐 키가 큰 檐遮처럼 되어 있는 것은 出目 檐遮의 길이가 普通 보다 길게 나와 이를 補强하는 것으로 特異한 處理 方法이라 할 수 있다.
또 大들보 中央에 놓여 一種의 包臺工으로 된 마루對空은 높직한 第형주(梯形柱) 위에 2中으로 된 包作이 있다. 아래 包作의 檐遮는 退步 끝 보머리를 거꾸로 한 것 같은 形態이고 위쪽 包作의 檐遮는 逆劑形(逆梯形)의 板牆(板狀)이다.
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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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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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情, 主演 (2021年 3月 23日).
“‘銀海寺 거조암’ 代身 ‘거調査’라 불러주세요”
. 《법보신문》. ㈜법보신문社
. 2023年 3月 26日에 確認함
.
文化財廳(廳長 김현모)은 3月23日 “國寶 第14號 ‘永川 銀海寺 거조암 영산전’을 ‘永川 거調査 영산전’으로 變更했다”고 밝혔다. 出處 :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
)
- ↑
金, 찬영.
“永川 거調査 영산전”
. 《디지털永川文化大展》. 韓國學中央硏究院
. 2023年 5月 5日에 確認함
.
영산전은 高麗 末인 1375年(禑王 元年) 8月 20日 거調査 週 本錢(本殿)으로 建立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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