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城 남계원지 七層石塔

開城 남계원지 七層石塔
(開城 南溪院址 七層石塔)
(Seven-story Stone Pagoda from Namgyewon Temple Site, Gaeseong)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100號
( 1962年 12月 20日 指定)
數量 1期
時代 高麗時代
所有 國有
位置
국립중앙박물관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國立中央博物館(大韓民國)
住所 서울特別市 龍山區 西氷庫로 137,
國立中央博物館 (용산동6街)
座標 北緯 37° 31′ 26.7″ 東經 126° 58′ 49.3″  /  北緯 37.524083° 東京 126.980361°  / 37.524083; 126.980361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開城 남계원지 七層石塔 (開城 南溪院址 七層石塔)은 高麗 時代에 만들어진 七層石塔 이다. 1962年 12月 20日 大韓民國의 國寶 第100號로 指定되었다. 元來 開城市 에 있었으나, 1915年 景福宮 으로 옮겨졌고, 2005年 다시 龍山 國立中央博物館 으로 옮겨졌다.

特徵 [ 編輯 ]

높이 7.54m. 高麗 때의 7層 花崗巖 (花崗巖) 石塔으로, 高麗 石塔의 樣式(樣式)을 가장 잘 나타내었으며, 雄壯한 氣品을 지니고 있다.

槪要 [ 編輯 ]

〈계성 남계원 七層石塔〉은 2層의 基壇 위에 7層의 塔身을 가진 高麗時代의 一般型 石塔이다. 全體的으로 볼 때에는 新羅 石塔의 典型을 지키고 있는 듯이 보이나, 細部的으로 樣式의 變化를 보이고 있다.

元來 所在地는 京畿道 開城市 덕암동 (德岩洞) 남계원 (南溪院) 절터에 있었던 것으로 1915年 基壇部를 除外한 塔神父만 景福宮 內로 옮겨졌다. 그 뒤 原位置를 再調査한 結果, 地下에서 二重으로 構成된 基壇部의 잔석이 發見되어 追加로 移轉하여 塔神父 옆에 따로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90年 原形대로 復元되면서 景福宮에서 國立中央博物館 庭園으로 다시 移轉되었다.

基壇部는 여러 個의 部材로 構成되어 있는데, 現在 몇 個가 結實되었으나 下層 基壇 免席은 新羅時代보다 훨씬 높아진 反面, 上層 基壇은 相對的으로 낮아진 듯 보인다. 基壇部는 塔神父에 비해 毁損됨이 甚하다. 上ㆍ下層 갑石은 全體가 穩全하게 남아있지 않은 까닭에 現在는 下層 基壇 免席과 上層 氣團 사이의 下層 基壇 갑石 자리에 上ㆍ下層 基壇 갑石을 함께 놓았는데 上層 基壇의 갑石은 세련된 모습이다.

塔神父는 옥신과 屋蓋石을 各各 하나의 돌로 構成하였다. 各 層 옥신에는 모두 兩쪽에 宇宙가 模刻되어 있는데, 各出 程度가 甚하지 않아 新羅時代보다 많이 退化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7層의 옥신 中 1層 옥신의 北쪽 한 面에만 問議 門비가 模刻되어 있는 것이 特色이며, 兩 宇宙 사이에 두 겹의 四角 테두리가 새겨져 있다. 屋蓋石은 各 層이 모두 同一한 手法을 보이고 있는데, 屋蓋받침은 모두 3壇씩 낮게 造成되어 있고, 윗面에는 아무런 굄대度 없이 바로 그 위層의 옥신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은 緩慢한 기울기를 維持하고 있으나, 아래면의 받침部가 낮아서 重厚한 느낌을 주고 있다. 추녀가 두꺼워지고 前各部에 이르러서는 윗面에서 緩慢한 曲線을 그리다가 反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래面도 이에 따라 反轉되어 統一新羅時代에서는 볼 수 없는 高麗時代 石塔의 特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石塔은 統一新羅時代의 輕快한 느낌을 주는 一般型 石塔과는 달리 추녀가 두꺼워져서 무거운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前各部에 이르러 上下 모두 反轉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 무거운 느낌을 半減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相輪部는 塔身 頂上에 한 個의 돌로 造成된 路盤과 復發만이 남아 있을 뿐, 그 以上의 것은 現存하지 않는 狀態이다.

한便 1915年 景福宮 內로 移轉할 때 塔神父에서 7축의 《紺紙銀泥妙法蓮華經(紺紙銀泥妙法蓮華經)李 發見되어 이 塔의 建立連帶를 推定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紺紙銀泥妙法蓮華經》은 高麗 第25代 忠烈王(忠烈王) 때 死境(寫經)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아울러 충렬왕 9年(1283)에 塔을 重修하면서 後납(後納)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現在 이 《紺紙銀泥妙法蓮華經》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保管 中이다.

따라서 이 남계원七層石塔은 統一新羅時代의 一般型 石塔을 잘 繼承한 것처럼 보이지만, 退化된 宇宙의 模刻이나 두꺼운 추녀, 낙수면 前各部의 上下의 反戰 等 細部的인 面에서 高麗時代의 特徵을 잘 表現하고 있는 高麗中期 때 세워진 石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元來 塔이 있던 京畿道 개성시 덕암동이라는 곳이 過去에는 개국사(開國寺) 터로 알려져 塔의 이름도 開國斜塔으로 불려 왔으나, 오늘날에는 개국사터는 다른 곳에 있고 이곳은 남계원터로 밝혀져 塔의 이름도 現在의 이름과 같이 다시 고쳐지게 되었다.

이 石塔은 雄壯한 氣風과 精製된 結句手法을 보이는 高麗時代 石塔의 代表作이다.

寫眞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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