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朝表牋總類 卷7

宋朝表牋總類 卷7
(宋朝表?總類 卷七)
(Songjo pyojeon chongnyu (Collection of Appeals and Letters to the Emperors of the Song Dynasty), Volume 7)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第150號
( 1973年 7月 10日 指定)
數量 1冊
時代 朝鮮時代
管理 서울대학교 奎章閣 韓國學硏究원 
位置
규장각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규장각
奎章閣
奎章閣(大韓民國)
住所 서울特別市 冠岳區 관악로 1,103號 桐
서울대학교 奎章閣韓國學硏究院
(신림동,서울大學校)
座標 北緯 37° 27′ 43″ 東經 126° 57′ 1″  /  北緯 37.46194° 東京 126.95028°  / 37.46194; 126.95028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宋朝表牋總類 卷7 (宋朝表?總類 卷七)는 太宗 3年(1403年)에 競演高柱(經筵古註)의 時·西·春秋左氏傳을 底本으로 주성한 癸未資本으로 太宗 年間(1403∼1418)에 引出된 冊이다. 主로 癸未素子를 使用하여 引出한 것이 特徵이다.

1973年 7月 10日 大韓民國의 國寶 第150號 宋朝表牋總類 (宋朝表?總類)로 指定되었다가, 2010年 8月 25日 現在의 名稱으로 變更되었다. [1]

槪要 [ 編輯 ]

第1∼12張의 影本(零本) 1冊으로서, 版式은 상하단便, 左右쌍변, 半葉(半葉)의 크기는 23.1×14.3cm이며, 8行 自首否定(字數不定), 駐雙行(註雙行), 上下下向黑어미(上下下向黑魚尾), 全體크기 29.0×19.0cm이다. 版心署名은 ‘송票(宋表)’라 되어 있다. 全體 12張 中 第10·11·12張의 匡郭(匡郭) 上邊(上邊) 좌단部 一帶의 暑迷(書眉)와 本文의 一部가 破損되고 卷末 冊欌의 뒷面 白紙(本文이 없는 뒷面 班長)가 缺落되어 있다. 원表紙는 없고 冊의 앞뒤에 餘地 1枚를 各各 삽因한 다음 黃色 表紙를 使用하여 紅絲(紅絲)로 午寢安定法에 依해 開場한 船長本이다. 嘉藍(伽藍) 李丙琪(李秉岐)가 가지고 있던 것이 서울大學校 附屬圖書館으로 왔다.

이 冊은 朝鮮朝 最初로 주성한 銅活字人 癸未字로 찍어낸 點에서 그 價値가 높다. 癸未字의 自體는 南宋 觸本意 自體 中 房匹의 歐陽詢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원필이 곁들여지고 날카로운 數今體(瘦金體)의 幾微가 나타나고 있는 自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活字本은 高麗末부터 朝鮮 初期에 이르기까지 조판술의 發達史에 있어서도 매우 重要하다. 癸未資本은 그 印本을 보면 크고 작은 活字의 模樣이 均整하지도 않고 그 크기가 일정하지도 않다. 이 活字를 組版할 때는 使嗾를 고착시킨 뒤 上·下邊에 界線과 어미까지 고착시킨 印版을 마련하고 各 行間의 活字가 꽉 들어맞도록 配列하였다. 따라서 옆줄이 맞지 않고 위·아래로 드나듬이 甚하여 윗者와 아랫者의 劃이 서로 물린 것이 많다. 또한 太宗 3年(1403)에 鑄造되어 世宗 2年(1420)의 庚子字를 鑄造하기까지 18年 동안만 使用되었던 活字로서 그 印本이 매우 稀貴하다. 이에 國寶 第150號로 指定되어 다른 癸未資本과 함께 그 價値를 인정받고 있다.

各州 [ 編輯 ]

  1. 文化財廳考試制2010-89號(國家指定文化財 寶物指定) , 第17328號 / 官報(程顥) / 發行日 : 2010. 8. 25. / 63 페이지 / 1.2MB

參考 文獻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