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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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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饌 ( 古代 그리스어 : ε?χαριστ?α 에右카리스티아 [ * ] ) 또는 聖晩餐 ( The Holy Communion 홀리 커뮤니言 [ * ] ), "主님의 晩餐"은 基督敎 聖禮典 (또는 成事 )中 하나이며, 最後의 晩餐 그리스도 가 自身의 죽음을 記念하여 빵과 葡萄酒를 나누라고 하셨다는 福音書 말씀을 따르는 聖禮典 또는 聖事이다.

改新敎會 盛饌執禮

基督敎人 들은 盛饌 때 예수 그리스도 가 靈的으로 또는 實際的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고 믿는데, 具體的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함께 하는지에 對해서는 敎派나 神學 思潮 別로 差異가 있으나 이런 差異를 敎會一致運動(Ecumanical)으로써 克服하기 위해 1982年 페루 리마에서 열린 世界敎會協議會 (WCC) '信仰과 職制 委員會'의 總會에서 리마禮式 (lima liturgy,리마前例) [1] 을 마련하여 盛饌의 意味와 遂行을 위한 敎會의 基準을 마련하였다.

盛饌에 陪席할 수 있는 信徒는 배찬회員이라고 한다. 改新敎會에서는 一般的으로 洗禮를 받아 信者가 된 聖人 또는 幼兒洗禮를 받은 뒤 成人이 되어 信仰告白을 한 사람을 의미한다. 聖公會 에서는 改新敎이든, 天主敎이든, 正敎會이든 普遍敎會 (=公敎會)에서 洗禮 를 받은 基督敎人 이라면 聖晩餐 또는 領聖體에 參與할 수 있다. 이들은 다 같이 敎會驛員을 敎友들의 普通選擧로써 選出하고 獻金을 받아 敎會를 維持해 나가며, 敎會員으로서의 權利와 義務를 지는 것으로 한 敎會의 規模는 배찬회院에 依하여 알 수 있다.

用語 [ 編輯 ]

盛饌 을 가리키는 다양한 表現이 있다. 盛饌 , 聖餐禮 , 聖晩餐 , 聖餐式 , 聖體聖事 , 聖體聖血成事 , 聖餐의 典禮 , 領聖體 , 主님의 晩餐 (Lord Supper), 파스카 (πασχα, 逾越節 ), 盛饌의 祭祀 , 感謝祭 等이다. 盛饌을 의미하는 英語 "유커리스트"(Eucharist)는 '感謝하는 마음을 갖다'를 意味하는 古代 그리스어 "에右카리스테오"(ε?χαριστ?ω)의 派生 名士인 "에右카리스티아"(ε?χαριστ?α)에서 나온 前例 用語로 直譯하면 "感謝 禮式"이라는 뜻이 된다.

新約聖書에서의 言及 [ 編輯 ]

마태복음 / 마태오 福音書 26:26-29, 마가복음 / 마르코 福音書 14:22-24, 누가복음 / 루카 福音書 22:19-20, 고린도전서 / 코린土 信者들에게 보낸 첫째 書簡 11:23-26에서 찾을 수 있다. 이中에 盛饌에 對한 最初의 記錄은 고린도전서/고린토人들에게 보낸 첫째 便紙이며, 禮拜때마다 가난한 敎友들이 聖晩餐에서 疏外되는 不平等을 主님의 聖體를 욕되게 한다고 批判하고 있다.

盛饌禮式 變化 [ 編輯 ]

初期 盛饌禮式은 初代敎會 時期의 聖經 말씀과 統合된 盛饌으로 함께 떡과 葡萄酒를 나누는 禮式 [2] 에서 漸次 普遍敎會 時期인 3世紀와 4世紀에 말씀과 分離된 예전으로 發展하였다. 漸次 聖職者가 예전 처음부터 오로지 떡과 葡萄酒를 들고 十字架만을 바라보고 예전을 進行하고, 聖徒들은 뒤에서 十字架와 盞을 든 聖職者의 뒷모습만 보는 形態로 進行되었고, 盛饌 順序에 따라 聖職者는 聖徒들에게 떡과 葡萄酒 分配時에만 돌아서고 聖餐式은 다시 十字架를 向한 祈禱로 마무리되었다.

西方敎會의 禮式 變化 [ 編輯 ]

初期 盛饌禮式은 5個 地域의 聯合體인 公敎會 卽 로마帝國의 薦度로 形成된 비잔틴 帝國의 首都, 콘스탄티노플을 중심하여 具體的인 禮式으로 發展하였고, 西方敎會는 헬라語로 作成된 東方敎會의 盛饌 禮式을 라틴語 飜譯과 그에 따른 盛饌曲의 變化 水準에서 西方敎會 盛饌禮式, 卽 西方敎會 盛饌禮式의 盛饌 傳統이 形成되었다. 西方敎會 亦是 聖職者의 執禮는 聖徒들보다 十字架를 바라보는 東方敎會의 禮式을 따랐고, 西方敎會에서는 漸次 떡을 주되 葡萄酒는 주지 않는 形態가 되었다.

改新敎會의 盛饌變化와 宗敎 音樂 [ 編輯 ]

西方敎會 內에서 16世紀 宗敎改革 으로 改新敎 聖職者가 共同의 盛饌 卽, 聖職者가 聖徒들을 바라보고 떡과 葡萄酒를 함께 나누는 盛饌을 執禮하기 始作하였고, 改新敎 敎會는 漸次 禮拜와 敎會 文化的으로 바흐 , 헨델 과 같은 作曲家들과 聖餐式을 中心으로 새로운 形態의 改新敎會音樂을 발전시켰고, 初代敎會의 傳承을 따라 十字架만을 向하기보다 聖徒들을 向한 盛饌禮式을 발전시켰다. 每週 또는 每달 施行하는 盛饌禮式은 성도를 向하고, 떡과 葡萄酒를 聖職者와 성도가 함께 나누는 盛饌禮式은 새로운 敎會 音樂과 西方敎會 全般의 盛饌禮式에 變化를 가져왔다.

이런 變化 속에서 改新敎會의 盛饌 運動과 18世紀 監理敎會의 每週 盛饌 勸告를 筆頭 [3] 로 다른 改新敎會에서도 盛饌認識 變化가 일어났고, 19世紀 天主敎會는 1次 바티칸公議會를 통해 每週 盛饌을 나눌 것을 勸告하였고, 20世紀 1964年 2차바틴칸 公議會에서 天主敎會에서도 盛饌을 旣存 十字架를 向한 로마前例에서 聖徒들을 向한 盛饌前例로 바꾸었고, 現在의 天主敎會의 盛饌 예전의 基準이 되었다. 1960年代末에 2車바티칸 公議會가 勸告한 새로운 盛饌예전과 미사 方式, 聖職칼라셔츠를 包含해 改新敎會의 影響이라고 拒否感을 갖는 司祭들의 反對 運動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現在에는 1986年 WCC 에서 作成한 리마禮式 이 東西를 莫論하고 全世界 敎會의 盛饌禮式의 基準으로 提示되어 活用되고 있다.

神學的 解釋들 [ 編輯 ]

基督敎 歷史上 敎派와 神學 思潮에 따라 盛饌에 對한 다양한 神學的인 解釋을 갖고 있으며, 特히 盛饌 때 예수께서 함께 한다는 意味에 對한 解釋(盛饌神學/領聖體神學)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記念론 [ 編輯 ]

'記念론' 또는 '記念설'은 新約聖書의 福音書와 바울로 (바울, 바오로)의 便紙로 1世紀부터 傳承되었고, 現在 改新敎會 全般의 聖晩餐 理解이다. 交付時期人 3~4世紀의 人物인 유세비우스 는 象徵說 卽 記念說을 主張하며, 4世紀 아우구스티누스 의 펠라기우스 思想에 對한 批判에서 記念설에 對한 主張이 나타난다. [4] 아우구스티누스 監督/ 主敎 의 스승이었던 암브로시우스 監督/主敎 는 盛饌을 "우리 州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對한 象徵"으로 說明한다. [5] 11世紀 敎會 大分裂 以後 西方敎會 는 聖變化가 强化되어 化體說이 되었다.

記念說은 西方敎會에서 16世紀 宗敎改革 을 통해 再照明되었다. 現在 改新敎 大部分이 따르고 있는 聖晩餐 解釋으로, 公裁說과 象徵說 等을 합쳐 가리키는 槪念이다. 아우구스티누스 象徵說 卽 記念說을 中心으로 宗敎改革을 통해 더욱 發展하였고. 宗敎改革 以前 베렌가리우스 가 11世紀 頃 "그리스도는 聖體 안에 表徵과 象徵으로만 現存한다"고 主張하였다.

宗敎改革 으로 마르틴 루터 의 公裁설, 章 칼뱅 의 靈的 임재설, 울리히 츠빙글리 等의 象徵說(記念설)을 통해 再照明되었다. 記念說에 따르면 盛饌은 예수 그리스도의 最後의 晩餐 을 象徵으로서 記念하는 것일 뿐이며, 實際的이고 實體的으로 本質上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變하지는 않는다. 다만 公裁說을 받아들이는 루터敎會에서는 그리스도가 빵과 함께, 위에, 그리고 빵속에 實在한다고 한다. 盛饌을 몸에 먹으면서 그리스도의 靈的 要素가 信者에게 깃든다고(공재) 가르친다. 靈的 임재설 을 받아들이는 長老敎會는 비록 聖晩餐이 그리스도가 영으로 함께하심을 받아들인다. 聖公會敎會의 聖事的 임재설 [6] 이 있다.

聖靈에 依한 聖變化론 [ 編輯 ]

'聖靈에 依한 聖變化론'은 記念論의 强化形態로 記念論의 神學的 背景을 지니며, 이를 强化한 正敎會 의 聖體聖血成事 理解이다. 改新敎會의 公裁說과 類似한 部分도 있다.

敎理化는 8世紀 京義 交付 다마스쿠스의 性 요한 前例 理論에 따른다. 聖體聖血成事 때에 聖靈 이 오시어 하느님의 神祕를 이루시고 빵과 葡萄酒가 그리스도 의 性肉化하신다고 믿는다. 이는 記念說의 强化 形態로 發展하였다. 흔히 그리스도의 完全한 成體가 되는 것이 아닌 "메타볼레" 卽 單純한 빵의 狀態를 넘어선 聖靈 안에서 거룩한 狀態가 된 것으로 理解한다. [7]

化體說 [ 編輯 ]

'化體說'(또는 實體變化, 聖變化론)은 天主敎會 에서 따르고 있는 神學的 槪念으로, 13世紀에 敎理化하였으며, 天主敎會에서는 化體說보다는 ' 聖變化 '라고 한다. 化體說은 2世紀 以後에 神學的 槪念으로 登場했지만 記念說과 달리 論難이 되었고 記念說과 聖靈에 依한 變化를 支持한 普遍敎會 에서는 受容하지 않은 槪念이었다.

4世紀 東方敎會에서 예루살렘의 키릴루스가 盛饌의 聖物이 如前히 知覺할 수 있는 빵과 葡萄酒로 남아 있다고 指摘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對한 模型이라고 稱하는 象徵論에 바탕을 둔 反象徵, 反實體論 이 主張되었다. 尼寺의 그레고리우스度 象徵論에 "成分을 변화시킨다"는 主張을 담아 初期 實體變化의 基礎를 두었다. 5世紀 以後 普遍敎會 에서는 記念說을 强化하는 反記念, 反實體論 等을 形成하며 盛饌을 통해 빵이 聖靈 안에서 거룩해지는 聖靈을 통한 聖變化가 널리 收容된다. 5世紀에 現在의 西方敎會 地域에서는 象徵論, 記念설이 中心이었다가 漸次 現在의 化體說의 初期 形態인 '實在說'李 登場하였고, 漸次 現在의 實體變化 槪念이 形成되었다. [8] 그러나 이는 西方敎會 가 되는 로마敎會 地域에서 神學的 主張과 論爭이었을 뿐이었고, 로마敎會는 普遍敎會의 記念說을 따랐다.

化體說이 敎理化한 것은 敎會 大分裂 以後 西方敎會 에서 이뤄졌다. 西方敎會 神學者인 12世紀 토마스 아퀴나스의 聖變化 槪念을 13世紀 라테란 公議會 를 통해 敎理化하였다. 聖餐禮에 使用되는 빵과 葡萄酒가 司祭의 築城(거룩함을 祈願함)을 통해 質料로써의 빵과 葡萄酒로 남아있으나, 빵과 葡萄酒의 形象, 곧 本質은 예수의 살과 피로 變한다는 敎理이다. 福音書에서 예수 가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 한 것 [9] 과 最後의 晩餐에서 빵을 스스로의 몸이라 하고 葡萄酒를 스스로의 피라고 한 것. [10] 을 文字的으로 解釋한 것에서 由來한다.

敎派別 解釋 [ 編輯 ]

1世紀에 나타난 記念說을 따르는 改新敎會에는 公裁설, 記念설, 靈的임재설 等이 있으며, 8世紀에 記念說을 强化하고, 體系化한 聖靈에 依한 性變化를 따르는 正敎會가 있으며, 敎會 大分裂 以後 13世紀에 敎理化한 化體說을 따르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 編輯 ]

로마 가톨릭교회 에서는 13世紀에 敎理化한 化體說을 따른다. 聖體聖事를 그리스도의 죽음을 再現하는 犧牲의 祭祀로 보며, 예수가 스스로 自身의 살을 빵이라고 한 것에서 由來하여 [11] 私製 가 築成한 제병 (빵)과 葡萄酒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變한다는 實體變化를 믿는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司祭의 祝聖으로 變한 그리스도 의 聖體에 敬拜를 表하는 聖體朝拜 를 한다. 以前에는 一般的으로 平信徒는 聖血을 받아 모시지 않았는데 (이를 單形 領聖體 라고 함) 이 當時에도 司祭는 언제나 빵과 葡萄酒를 둘 다 모시는(영하는) 量刑 領聖體 를 했다. 現代 가톨릭교회에서는 특별한 境遇에 한하여 平信徒들에게도 兩形領聖體를 하도록 할 수 있지만, 如前히 미사에서 會衆들의 一般的인 領聖體 方式은 敎會의 傳統을 따른 段型 領聖體이다. 19世紀 1次 바티칸公議會의 敎令에 따라 每日 全 世界에서 同一한 樣式으로 미사를 하며, 미사 中間에 領聖體를 하고 있다. 每해 三位一體 大祝日 다음 週日을 그리스도의 聖體聖血 大祝日 로 지낸다.

東方 正敎會 [ 編輯 ]

東方 正敎會 에서는 예수께서 感謝의 聖晩餐 成事를 定하셨다는 福音書 와 바울로의 主張에 따라 盛饌을 禮拜 의 中心으로 理解한다. 이는 記念說에서 거룩함을 强調한 形態로 登場하였다. 初期 基督敎와 敎父들의 傳統에 따라 그리스도와 참된 交際의 神祕로서 聖晩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觀賞할 수 있다는 象徵的 槪念으로 說明하였다. 8世紀에 이르러 이콘反對主義가 展開되면서 實在論的 立場서 盛饌에 對한 見解에 變化가 나타났다. 니케포로스가 盛饌이 人間的 몸으로 變形한다는 主張限 以後 聖體와 性穴이 된다는 立場이 널리 收容되었다. 그러나 이 變化는 西方敎會 의 "火體"가 아니라 力動的 意味의 變化인 性肉化, "메타볼레"를 用語로 使用한다 [12] . 11世紀 西方敎會와 盛饌 제병 論爭에서 日常的인 누룩이 든 빵이 生動하는 그리스도의 人性을 象徵하며, 日常的 빵이 참된 成育化라고 보았다. 또한 빵이라는 헬라語 單語 '아르토스'가 '누룩 있는 것'을 의미하며 最後의 晩餐이 逾越節 이 오기 前인 聖 木曜日 (主님의 聖體聖事 制定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當時 狀況에 無酵餠 (누룩 없는 빵)을 먹기 前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盛饌禮拜를 執典하는 司祭가 聖徒들에게 葡萄酒를 直接 떠서 먹임으로써 제병과 葡萄酒를 正敎會 司祭와 信徒가 모두 받는다.

改新敎會 [ 編輯 ]

改新敎 의 聖晩餐에서는 반드시 모든 聖職者와 성도가 그리스도의 피를 象徵하는 葡萄酒와 살을 意味하는 떡을 함께 나눈다. 改新敎會 에서 聖晩餐의 記念 은 單純히 記憶하고 前例 를 遂行하는 것이 아니다. 이 "記念"은 그리스도 의 苦難과 죽음을 記念하고 感謝하며, 主님의 到來를 記憶하고, 聖靈의 活動을 통해 交際 하는 것을 意味한다. 이러한 改新敎 의 聖晩餐 理解는 聖書에 따라 사도 바울로 의 書信과 누가 福音書 에 나온 記念 (아남네시스, ?ν?μνησι?)의 槪念이다. "記憶, 回想, 再現, 새롭게 經驗함"을 의미하는 이 單語는 單純히 記憶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생각나게 하는 것, 狀況에 함께 하는 것을 意味한다. 따라서 改新敎會의 "記念"의 聖餐式은 그리스도가 弟子들과 聖晩餐을 制定하시던 瞬間에 性別된 빵과 葡萄酒에 只今도 參與하여 늘 새롭게 經驗하게 하는 穩全한 記念의 過程이라고 본다. 이러한 聖晩餐에 對한 神學的 理解는 現代에 와서도 發展하여 에큐메니컬 聖晩餐 곧 敎會一致 運動으로써 可視的 一致를 이루려는 그리스도人들의 聖晩餐을 形成하는데 큰 寄與를 하였다.

聖職者가 十字架를 뒤로 하고 성도를 向해 서서 盛饌을 執禮하는 方式은 初代敎會의 盛饌을 되찾으려는 改新敎會의 努力으로 16世紀에 形成되었다. 그 以前까지 盛饌은 聖職者가 十字架만을 바라보고 執禮하는 方式이었다. 改新敎會만이 아니라 1960年代 天主敎會에서도 受容하였다. 現在는 西方敎會 傳統의 敎會들은 聖職者가 성도를 바라보며 盛饌을 執禮한다.

改新敎 全般은 記念說을 따르며, 記念설 內에서 盛饌에 對한 敎團別 若干의 强調와 差異를 區分하면 아래와 같다.

루터敎會 [ 編輯 ]

루터교 에서 實在說로 불리는 聖晩餐 神學은 洗禮 와 더불어 認定되는 두 가지 成禮이다. 루터교 필리프 멜란히톤 이 葡萄酒의 盞을 平信徒에게 내민 것을 始作으로 떡과 葡萄酒를 모두 平信徒에게 分配해왔다. 루터교 는 13世紀 以後 西方敎會 에서 主張하는 司祭의 築城을 통한 聖變化와 急進的 改革者였던 츠빙글리의 單純 記念설 모두를 批判했다. 마르틴 루터 는 牧師가 重要한 것이 아니라, 牧師가 祝聖時 使用하는 하나님의 말씀 고린도전서 11:23b-25을 통해 注意 몸과 피가 빵과 葡萄酒에 (in, with, and under) 臨齋 한다고 본다. 이를 對하는 修撰을 받는 사람의 믿음이 빵과 葡萄酒 그리고 살과 피에 담겨져있는 福音으로 因해 자라며 罪容恕의 確信을 얻게 된다. 루터교에서 平信徒들의 緊急 洗禮 (emergency baptism)를 許容하는 理由도 안수받은 牧師가 洗禮를 주어야 實效性이 있는 것이 아니고, 洗禮를 줄때 使用하는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28:19b "아버지와 아들과 聖靈의 이름,"에 能力이 있다고 믿는다. 누가 聖晩餐과 洗禮를 執禮하는가보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執典하는가가 더욱 重要하다. 聖晩餐이 그리스도를 記念하거나 그리스도가 靈的으로 臨齋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葡萄酒와 함께 實在하는 것이라고 主張했다. 루터 死後에는 公裁설 로 立場이 整理되기도 했다.

改革敎會 [ 編輯 ]

改革敎會 長老敎會 는 그리스도의 靈的 임재설이라는 聖晩餐 神學을 主張한다. 宗敎改革者 칼뱅은 루터의 公裁說과 츠빙글리의 記念說과는 다른 靈的인 臨齋를 내세웠다. 비록 그리스도의 몸은 天上에 있으니 肉身으로 빵과 葡萄酒가 變하는 것은 아니지만, 零으로 함께 한다고 認識한다. 오늘날 韓國 長老敎會는 如前히 靈的인 臨齋를 가르치나, 單純한 記念으로 理解하는 境遇가 많다.

聖公會 [ 編輯 ]

聖公會 에서 聖體聖事(聖晩餐)은 洗禮 와 더불어 新約聖書 에 明示된 成事 이며, 다른 말로는 聖體聖事 , 盛饌, 聖餐禮 , 主님의 晩餐 이라고 한다. 聖體만을 零下는 天主敎會 와는 달리, 聖公會 에서는 感謝聖餐禮 때마다 私製 가 築成한 葡萄酒 를 모두 領한다. 또한 聖公會 에서는 私製 가 築成한 빵과 葡萄酒에 예수 그리스도 聖靈 에 依해 臨齋하므로, 聖公會 信者는 聖晩餐 을 통해 그리스도 聖體 와 聖血을 모시게 된다는 '聖事的 임재설'을 따른다. [13] 現在 世界 聖公會 共同體에 屬한 모든 聖公會 敎會들은 初代敎會 禮拜 樣式에 따라 말씀의 前例와 聖餐의 典禮를 均衡을 이루는 感謝聖餐禮 를 드린다.

浸禮敎會 [ 編輯 ]

浸禮敎會 에서는 聖晩餐을 單純한 象徵으로 理解하며 注意 晩餐(Lord supper)라고 부르며, 單純 記念과 象徵으로 理解한다.

監理敎會 [ 編輯 ]

監理敎會 는 聖靈의 臨齋와 成火에 이르는 恩惠의 手段으로서 盛饌을 理解한다. 記念說을 벗어나지 않으나, 牧師의 第情事를 通한 聖晩餐을 擧行하며, 盛饌은 世上의 和解와 感謝를 表現하며, 同時에 하나님의 未來的인 救援 活動에 對한 所望을 나타낸다고 본다. 盛饌은 예전에서 많은 聖經的 側面을 담았으며, 예수의 죽음을 記憶하고, 예수의 和解를 現在化하고, 交際의 祝祭와 맺은 "새로운 言約의 標示"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救援이 거듭 새롭게 約束"되고, 떡과 葡萄酒으로 聖靈은 聖徒들로 하여금 昇天하신 그리스도와 交際와 그분의 容恕를 確信하게 하는 恩惠의 源泉이며 [14] , 恩惠를 받는 手段이다. 禮拜에서 特히 聖晩餐은 매우 重要하게 여기며, 監理敎會 는 18世紀부터 天主敎會보다 앞서 (19世紀 1次 바티칸 公議會 以前) 禮拜時 每週 聖晩餐을 勸告하는 敎團이기도 하다 [15] .

같이 보기 [ 編輯 ]

關聯 文獻 [ 編輯 ]

  •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便역《리마禮式書》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1986.

各州 [ 編輯 ]

  1.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便역《리마禮式書》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 1986.
  2. 박해정. 《빛을 따라 生命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禮拜》. 서울: 同人, 2016.
  3. 로렌스 홀 스투키. 《盛饌, 어떻게 알고 實行할 것인가?》. 김순환 옮김. 서울: 大韓基督敎敍懷, 2002.
  4. 베른하드 로제,《基督敎 敎理의 歷史》 차종순 옮김. 서울: 목兩社, 1990
  5. J. N. D 캘리,《古代基督敎敎理社》 박희석 옮김. 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
  6. 聖事的 임재설 :聖事的 임재설은 聖公會 의 聖晩餐 理解이다. 17世紀頃에 確定되었다. 葡萄酒 聖晩餐 을 執典하는 聖職者, 私製 의 祝聖에 依해 예수의 聖體와 聖血로 變하는 것은 아니지만, 司祭가 빵과 葡萄酒를 築城할 때에 예수가 聖靈의 能力으로 臨齋한다는 理解이다.《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새로운 나 그리고 우리》/홍영선 지음/대한성공회 p.243-245
  7. 메이엔도르프. 《비잔틴 神學: 歷史的 變遷과 主要 敎理》. 박노양 옮김. (서울: 正敎會出版社, 2010) 395-396.
  8. J. N. D 캘리,《古代基督敎敎理社》 박희석 옮김. 서울: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
  9. 요한 福音書 6章 51節 p.243-245
  10. 마태오 福音書 26張 26節, 마르코 福音書 14章 22節, 壘가 福音書 22章 19節, 코린土 1서 11章 24節
  11. 마태오 福音書 26張 26節, 마르코 福音書 14章 22節, 루카 福音書 22章 19節, 요한 福音書 6章 51節, 코린土 1서 11章 24節
  12. 메이엔도르프. 《비잔틴 神學: 歷史的 變遷과 主要 敎理》. 박노양 옮김. (서울: 正敎會出版社, 2010) 395-396.
  13. 사랑의 하느님, 主께서는 그리스도의 聖體와 補血을 神靈한 樣式으로 먹여주시니 感謝하나이다.우리로 하여금 사랑가운데 相通하며 主께서 命하신 일을 行하게 하소서.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祈禱하나이다. 아멘.(영성체후 祈禱, 2004年版 聖公會 祈禱書 )
  14. 클라이버, W., 마르쿠바르트, M. 《監理敎會 神學》. 조경철 옮김. 서울: 監理敎出版局, 2007.
  15. 스투키. 《盛饌, 어떻게 알고 實行할 것인가?》. 김순환 옮김. 서울: 大韓基督敎敍懷, 2002

外部 링크 [ 編輯 ]

  • 위키미디어 公用에 盛饌 關聯 미디어 分類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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