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鈞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權鈞 (權鈞, 1464年 ~ 1526年 )은 朝鮮의 文身이다. 字는 정경(正卿), 號는 유연당(悠然堂), 本貫은 安東 이다. 1523年(中宗 19) 右議政 을 歷任하고, 영창府院君(永昌府院君)에 封해졌다. 諡號는 忠誠(忠成)이다.

生涯 [ 編輯 ]

1486年(燕山君) 別試文科에 丙科로 及第하여 副修撰이 되고 檢討管을 겸하며 實錄編纂에 着手했다. 以後 司諫院正言으로 昇進, 以後 政言과 地平을 거쳐 侍講官과 侍讀官을 겸하다 바로 副應敎로 昇進했다. 以後 司憲府掌令과 弘文館應敎를 두루 거쳐서 燕山君의 信任을 받게 되고 侍講院輔德을 겸한 뒤 同副承旨 로 堂上官에 任命되었다가 바로 右副承旨 를 거쳐 都承旨 가 되고 以後 中宗反正 때 功을 세워 2等功臣이 되었으며 以後 工曹判書 , 議政府 左參贊 을 하다가 京畿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가 民情을 다스리고 刑曹判書 가 되어 內醫院提調를 겸한 뒤 바로 議政府 左贊成 , 刑曹判書 , 判義禁府事 를 하고 掌樂院製造를 다시 겸했으며 平安道觀察使를 거쳐 禮曹判書 로 任命되고 特進官을 겸하다가 漢城府判尹 , 吏曹判書 , 兵曹判書 를 거쳐 左贊成 이 되지만 신진사類의 攻擊으로 물러났다가 吏曹判書 가 되어 復職하지만 다시 己卯士禍 以前에 조광조 等에 依해 罷職되지만 己卯士禍 以後 左贊成 을 거쳐 右議政 까지 昇進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