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종구|記者 購讀|東亞日報
양종구

양종구 記者

東亞日報 스포츠부

購讀 117

推薦

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紹介합니다. 健康해야 100歲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取材分野

2024-03-28~2024-04-27
健康 43%
칼럼 40%
社會一般 7%
文化 一般 7%
陸上 3%
  •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頭痛 不眠症 날리려 찬 공, 平生 健康 지킴이 됐죠”

    初等學校 때 잠깐 蹴球 選手로 뛰었다. 中高校, 大學, 軍隊 時節까지 蹴球는 親舊 同僚들과 어울려 즐기는 스포츠였다. 以後 事業 等으로 30年 넘게 잊고 지냈던 蹴球가 50代 中盤부터는 그의 健康 지킴이 役割을 하고 있다. 이태용 지티엘 代表(66)는 40代 中盤부터 惡化된 健康을 되찾기 위해 50代 中盤부터 蹴球를 始作해 10年 넘게 週末마다 綠色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不動産 開發 事業을 하며 週末엔 信仰 生活을 하느라 運動할 時間이 없었죠. 40代 中盤을 넘기자 頭痛, 高血壓 等 症勢가 나타나며 몸 여기저기가 故障 나더군요. 肺炎이 걸리는 等 잔病도 많았죠. 무엇보다 不眠症에 시달렸어요. 病院을 자주 찾았죠. 그래도 運動할 생각은 못 했는데 딱 55歲 때 京畿 楊平의 土木工事 現場에서 마을 사람들이 蹴球 하는 것을 보는데 저한테 함께 하자고 하는 겁니다.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죠. 그래서 함께 했죠. 오랜만에 하니 힘들었는데 그날 밤 正말 푹 잔 겁니다. 거짓말 같았죠.” 그때부터 土曜日은 蹴球 하는 날이 됐다. 體力이 바닥난 狀態라 처음엔 공 차는 게 힘들었다. 뛰다 발이 엉켜 넘어지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집에 固定式 自轉車를 사다 놓고 탔다. 스트레칭 體操와 自轉車 타기를 竝行하며 7個月쯤 몸을 만들자 ‘過去 實力’이 나왔다. 드리블과 트래핑이 자유롭게 됐고, 스피드도 나왔다. 學窓 時節 미드필더와 섀도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實力을 뽐내기 始作했다. 골도 많이 넣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蹴球 하러 못 갈 수 있잖아요. 그럼 몸이 바로 反應해요. 찌뿌드드하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죠. 그래서 重要한 일이 아니면 土曜日엔 蹴球場으로 갑니다. 몸 풀고 공 차며 땀을 쫙 빼면 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집니다.” 이 代表는 유나이티드院과 서울 龍山60對象非軍축구팀, 두 팀에서 뛰고 있다. 2022年 創團한 유나이티드院은 蹴球 國家代表 出身도 包含된 同好會다. 李 代表가 團長을 맡고 있다. 박경훈 K리그2(2部 리그) 水原 三星 團長과 이상윤 蹴球 解說委員, 김삼수 等 國家代表 出身들도 있다. 龍山60臺常備軍은 區別로 蹴球大會에 出戰할 때 용산구를 代表할 수 있는 팀이다. 유나이티드院은 水曜日과 木曜日 저녁에, 龍山60臺常備軍은 土曜日에 競技를 한다. 李 代表는 朴 團長과 두 팀에서 함께 뛰고 있다. 李 代表는 龍山60臺常備軍은 每週 나가지만 유나이티드원은 한 달에 2回 以上 參加를 目標로 하고 있다. 事業上 平日엔 時間을 내기가 쉽지 않다. “率直히 제가 언제 國家代表 出身들하고 함께 뛰어 보겠어요. 實力은 안 되지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원이 60代 팀이지만 練習 競技를 할 땐 40, 50代 팀하고 붙죠. 한 競技 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蹴球 實力은 예순 後半임에도 늘고 있습니다.” 朴 團長은 “李 代表님은 實力도 좋지만 熱情이 대단하다. 土曜日엔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고 했다. 李 代表는 60代 後半에도 25分 景氣를 3回 以上 消化할 程度로 탄탄한 體力을 자랑하고 있다. 팀에선 攻擊型미드필더를 맡고 있다. 國家代表 出身 이영무(前 高陽 Hi FC 監督), 조광래(大邱 FC 社長) 等 技術과 體力이 좋은 選手들을 最高의 選手로 꼽듯 활기차게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現 韓國 蹴球代表팀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體力을 자랑하는 황인범(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을 좋아한다. 그는 “제가 60代 後半 나이帶에선 體力이 좋다는 評價를 받는다”며 웃었다. 李 代表는 蹴球를 할 때 가장 重要하게 생각하는 게 負傷 防止다. 그는 “蹴球는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태클과 몸싸움 等 거친 動作이 많다. 그래서 웬만하면 거친 動作이 나올 狀況이면 미리 避한다. 승부욕도 좋지만 안 多쳐야 蹴球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李 代表는 蹴球를 10年 以上 해오면서 健康을 完全히 되찾았다. “蹴球를 하기 前에는 여름엔 더위, 겨울엔 추위에 弱했는데 이젠 잘 버틴다. 온갖 스트레스도 공 차면 날아간다”고 했다. 여러 藥을 먹다 이젠 家族歷이 있는 高血壓 藥만 服用한다. 양종구 스포츠부 次長 yjongk@donga.com}

    • 1日 全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제 筋肉 어때요? 낼 모레 還甲입니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美國에서 아이들 키울 때 食堂을 運營하면서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었죠. 韓國으로 돌아와 골프 치다 디스크가 터진 겁니다. 手術도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程度로 痛症이 甚했죠. 醫師 先生님이 ‘慢性 痛症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죠. 삶의 質이 完全히 엉망이 됐죠. 그때 親舊가 파고다헬스클럽을 소개시켜 주면서 ‘제대로 運動해 봐라’고 했어요.”서울 종로구 파고다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는 이인혜 氏(59)는 專攻이 音樂이다. 클라리넷 專攻으로 선화藝高를 다니다 美國으로 移民을 떠났다. 美國 大學에서도 音樂을 專攻했고, 結婚하며 平凡한 主婦로 살았다. 아이들 다 키우고 韓國으로 돌아온 뒤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이를 治療하기 위해 筋肉 運動을 始作해 이제는 보디빌딩 트레이너로 活動하고 있다.한국으로 돌아온 게 2011年, 手術은 2012年 1月에 했다. 그리고 約 3年 苦生하다 筋肉 運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手術하면 오래된 蟲齒 뺀 것처럼 쉽게 解決될 줄 알았다. 그런데 寢臺에서도 굴러야 일어날 程度로 아파 여러 病院을 轉轉했다. 사는 게 憂鬱했다. 筋肉 運動이 제 人生을 바꿨다”고 했다. 그게 2014年이었다. 파고다헬스클럽 진광식 館長이 運動 再活에 關心이 많았다. 美國 살 때 趣味 삼아서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긴 했지만 本格的으로 筋肉을 만든 것은 事實上 처음이었다.“처음엔 엎드리는 것도 못했어요. 運動하며 내 몸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이를 악물고 熱心히 했어요. 달리고 코어 運動, 그리고 各 部位 筋肉 運動을 했죠. 한 1年쯤 했을까요. 허리 筋肉이 强化되자 허리가 부드러워졌고 痛症도 가라앉았어요. 몸도 健康해지니 自信感도 생겼죠. 그런데 괜찮아지니까 조금 疏忽해질 수도 있잖아요. 한 一週日 運動 안 하면 바로 허리가 뻣뻣해졌어요.”운동을 疏忽히 해 허리가 아프면 다시 처음 運動을 始作하는 것처럼 달리기 먼저 하고 코어 運動, 各 部位 筋肉 運動을 反復했다. 그렇게 또 며칠을 하면 허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는 “한 3年 지났을 땐 眞짜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면 또 아팠다. 그럼 다시 憂鬱해진다. 그래서 그때 ‘아 이젠 平生 運動할 수밖에 없는 運命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했다.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運動에 邁進했다. 2016年이었다. 每日 하루 最小 2時間 以上 筋肉 運動에 매달렸다. 大韓보디빌딩協會 코치아카데미를 찾아 運動 力學, 解剖學, 運動生理學 等 理論 工夫도 했다. 그때 함께 工夫하던 親舊들이 生活體育 보디빌딩 指導者 資格證 試驗을 본다며 함께 하자고 했다. 허리 痛症 없애는 데 汲汲했던 그로선 別 欲心이 없었다. 그런데 다들 資格證을 딴다고 하기에 함께 試驗工夫를 始作했고 合格했다.2017년부터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指導하는 것에 自信이 없었는데 館長님이 ‘자꾸 가르쳐 봐야 指導力도 는다’며 授業을 맡겼다”고 했다. 그는 “直接 指導해보니 저처럼 허리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또 저처럼 挫折感을 겪고 온 분도 많았다. 그래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熱心히 指導하고 있다”고 했다.“그냥 제 經驗談 얘기하고 함께 運動했는데 아팠던 분들이 좋아지면서 저도 많이 배웠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運動을 통해 痛症도 잡고 健康해지니 再活에 關心 가지게 됐죠. 그래서 다시 코치아카데미를 찾아 再活 工夫를 했습니다.”2019년 스포츠再活트레이너 資格證도 獲得했다. 자연스럽게 몸이 아픈 會員들은 이 氏가 도맡아 指導했다. 그는 “아픈 部位를 잘 풀어주고 周邊 筋肉을 强化하면 痛症을 잡을 수 있다. 디스크는 勿論 五十肩 等 다양한 部位 痛症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지난해엔 보디빌딩 審判 資格證도 獲得했다. 運動을 熱心히 했지만 大會 出戰은 하지 않았다. 그는 “大會 出戰을 目標로 하는 選手들하고 똑같이 訓鍊하고 姿勢 訓鍊, 워킹까지 배웠지만 出戰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이자 아내이다 보니 쉽게 비키니 입고 舞臺에 설 수 없었다. 運動의 成果를 記錄으로 남기기 위해 보디프로필 寫眞은 몇 次例 찍었다.“제가 審判을 나가보면 勇氣 있게 나오는 분들이 있어요. 뭐 있잖아요. 運動을 熱心히 해도 축 늘어진 살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좀 안쓰러워 보여요. 그러면서도 尊敬心이 생깁니다. 전 아직 그런 勇氣를 내진 못하겠습니다.”이 氏는 다음 目標도 定했다. 바로 실버들의 健康을 도와주는 役割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저도 나이를 먹었다. 이젠 함께 늙어간다. 100歲 時代에 더 老人들의 健康이 重要해질 것 같다. 그래서 老人 피트니스에 對해 工夫를 할 計劃”이라고 말했다.음악으론 最高의 엘리트 코스인 선화예중과 선화藝高, 그리고 美國 大學에서도 專攻했던 音樂을 왜 그만뒀을까? 그는 “學窓 時節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活躍하기도 했는데 決定的으로 呼吸 問題로 그만뒀다. 코에서 바람을 막고 입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먼 後날 알고 보니 너무 그 周邊 筋肉을 酷使해서 筋肉이 제대로 힘을 못 썼다. 運動을 해보니 알겠다”고 했다.음악과 運動은 어떤 差異가 있을까?“차이가 없어요. 熱心히 投資한 만큼 얻는 것 같습니다. 勿論 個人的인 素質에 따른 差異는 있겠죠. 그런데 가장 重要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音樂家, 運動選手가 아니라 즐긴다면 꾸준히 餘裕를 가지고 하면 됩니다. 저는 指導하는 會員들에게 月水金 배우면 火木土는 혼자 나와서 復習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는 會員이 있고 안 하는 會員이 있죠. 나중에 그 差異는 確然하게 나타납니다.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몸이 탄탄해집니다.”웨이트트레이닝 初步者들에게 해주고 싶은 助言은 뭐가 있을까?“무리하지 말고 每日 하는 겁니다. 가늘고 길게 가야 합니다. 初步者는 絶對 처음부터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습니다. 運動 最高의 目標가 ‘每日 한다’가 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처음에 30分도 못하던 運動을 體力이 쌓여 1時間 以上 할 수 있게 되죠. 그럼 조금씩 欲心을 내면 됩니다. 筋肉 運動은 部位에 따라 다양한 運動 方法이 있기 때문에 할 게 無窮無盡하게 많아요. 每日 새로운 運動을 찾아 나갈 수 있어요. 다 배운 것 같은데 銅雀을 살짝만 바꿔도 또 다시 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繼續 파고 또 波高…. 지루할 틈이 없어요.”이 氏는 새벽 일찍 出勤해 午後 3時까지 트레이너로 일한 뒤 個人 訓鍊을 1時間30分에서 2時間 하고 집으로 가는 게 루틴이 됐다. 그는 只今 너무 感謝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李 氏는 한때 사이클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넘어져 다친 뒤엔 危險하다고 判斷해 요즘은 잘 타지 않는다.“가끔 ‘10年만 더 일찍 運動을 始作했더라면 훨씬 더 健康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허리가 아픈 것을 契機로라도 이렇게 運動하며 健康하게 살고 있으니 幸福한 거죠. 이제 100歲 時代가 됐어요. 健康해야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 마시고 只今 바로 運動을 始作하세요.”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4-13
    • 좋아요
    • 코멘트
  • 허리 痛症 잡으려 筋肉運動… 主婦에서 헬스 트레이너 變身[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서울 종로구 파고다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는 이인혜 氏(59)는 클라리넷 專攻으로 선화예술고를 다니다 美國으로 移民을 떠났다. 美國 大學에서도 音樂을 專攻했고, 結婚한 後 平凡한 主婦로 살았다. 아이들 다 키우고 韓國으로 돌아와 골프를 치다 허리 디스크가 터졌고, 이를 治療하기 위해 筋肉 運動을 始作해 이제는 보디빌딩 트레이너로 活動하고 있다. “美國에서 아이들 키울 때 食堂을 運營했는데 그때 허리가 삐끗한 적이 있었죠. 그게 골프 치다 터진 겁니다. 手術도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程度로 痛症이 甚했죠. 醫師 先生님이 ‘慢性 痛症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죠. 삶의 質이 完全히 엉망이 됐죠. 그때 親舊가 파고다헬스클럽을 紹介해 주면서 ‘제대로 運動을 해보라’고 했어요.” 2011年 韓國으로 돌아온 뒤 2012年 1月에 手術했고 3年假量 苦生하다 筋肉 運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手術하면 오래된 蟲齒를 뺀 것처럼 쉽게 解決될 줄 알았다. 그런데 寢臺에서도 굴러야 일어날 程度로 아파 여러 病院을 轉轉했다. 사는 게 憂鬱했다. 筋肉 運動이 제 人生을 바꿨다”고 했다. 그게 2014年이었다. 파고다헬스클럽 진광식 館長이 運動 再活에 關心이 많았다. 美國 살 때 趣味 삼아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긴 했지만 本格的으로 筋肉을 만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엎드리는 것도 못 했어요. 運動하며 내 몸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이를 악물고 熱心히 했어요. 달리고 코어 運動하고 各 部位 筋肉 運動을 次例대로 했죠. 한 1年쯤 했을까요. 筋肉이 强化되자 허리가 부드러워졌고 痛症도 가라앉았어요. 괜찮아지니까 조금 疏忽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럼 바로 허리가 뻣뻣해졌어요. 한 3年 지났을 땐 眞짜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면 또 아파요. 그럼 다시 憂鬱해지죠. 그래서 그때 ‘아 이젠 平生 運動할 수밖에 없는 運命인가 보다’ 생각했죠.”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運動에 邁進했다. 하루에 最小 2時間 以上 筋肉 運動에 매달렸다. 2016年 大韓보디빌딩協會 코치아카데미를 찾아 運動力學, 解剖學, 運動生理學 等 理論 工夫도 했다. 그때 함께 工夫하던 親舊들이 生活體育 보디빌딩 指導者 資格證 試驗을 본다며 함께 하자고 했다. 허리 痛症 없애는 데 汲汲했던 그로선 別 欲心이 없었다. 그런데 다들 資格證을 딴다고 하기에 함께 試驗 工夫를 始作했고 合格했다. 2017年부터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는 “指導하는 것에 自信이 없었는데 館長님이 ‘자주 가르쳐 봐야 指導力도 는다’며 授業을 맡겼다”고 했다. 그는 “直接 指導해 보니 저처럼 허리 아픈 사람이 많았다. 또 저처럼 挫折感을 겪고 온 분도 많았다. 그래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熱心히 指導하고 있다”고 했다. “제 經驗談을 얘기하고 함께 運動했는데 아팠던 분들이 좋아지면서 저도 많이 배웠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運動을 통해 痛症도 잡고 健康해지니 再活에 關心을 갖게 됐죠. 그래서 다시 코치아카데미를 찾아 再活 工夫를 했습니다.” 2019年 스포츠 再活트레이너 資格證도 따면서 몸이 아픈 會員들은 이 氏가 도맡아 指導했다. 그는 “아픈 部位를 잘 풀어주고 周邊 筋肉을 强化하면 痛症을 잡을 수 있다. 디스크는 勿論이고 五十肩 等 다양한 部位에서 痛症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엔 보디빌딩 審判 資格證도 獲得했다. 運動을 熱心히 했지만 보디빌딩 大會엔 出戰하지 않았다. 그는 “選手들하고 똑같이 訓鍊하고 포즈, 워킹까지 배웠지만 大會 出戰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李 氏는 새벽 일찍 出勤해 午後 3時까지 트레이너로 일한 뒤 個人 訓鍊을 1時間 30分에서 2時間 程度 하고 집으로 가는 게 루틴이 됐다. 그는 “只今 너무 感謝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양종구 스포츠부 次長 yjongk@donga.com}

    • 2024-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올림픽 金메달 따면 賞金 받는 種目 생긴다

    올림픽에서 金메달을 따면 賞金을 받는 種目이 처음으로 생긴다. 世界陸上聯盟(WA)李 7月 開幕하는 파리 올림픽부터 陸上 種目 金메달리스트에게 賞金을 주기로 決定했다. WA는 10日 “파리 올림픽 陸上 金메달리스트들에게 賞金으로 5萬 달러(約 6800萬 원)씩 주기로 하는 劃期的인 決定을 했다. 우리 聯盟은 올림픽에서 賞金을 支給하는 最初의 國際競技團體가 된다”고 밝혔다. 파리 올림픽 陸上 種目에 걸려 있는 金메달은 모두 48個여서 WA가 支給할 賞金 總額은 240萬 달러(約 32億5000萬 원)다. WA는 國際올림픽委員會(IOC)로부터 받는 收益金으로 金메달리스트들에게 줄 賞金을 充當한다. IOC는 올림픽이 열리는 해마다 各 國際競技團體에 大會 收益金을 나눠주고 있다. WA는 2028年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부터는 銀, 銅메달리스트들에게도 賞金을 支給할 計劃이다. 鉏배스千 코 WA 會長(寫眞)은 “選手들이 올림픽에서 딴 메달에 金錢的 價値를 매기는 건 不可能하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뛰어난 活躍을 보여준 選手들 德에 우리가 얻는 利益을 되돌려 주려는 努力은 있어야 한다”며 賞金 導入 理由를 說明했다. 또 “賞金 支給은 選手들의 意欲을 키우는 것과 올림픽 興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WA의 이番 決定은 陸上 外 다른 種目들의 올림픽 賞金 支給으로 이어질 可能性도 있다. WA는 世界陸上選手權大會 1∼8位 選手들에게 賞金을 주고 있다. 지난해 열린 부다페스트 世界選手權 個人 種目 1位 賞金은 7萬 달러, 2位는 3萬5000달러, 3位는 2萬2000달러였다. 8位에게는 5000달러를 줬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50年 테니스 친 德에 일흔 中盤에 卓球와 골프도 즐겨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初·中學校 時節엔 運動을 避했다. 5살 때 들판에서 뛰어놀다 오른쪽 팔꿈치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왼팔로만 살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當時 두 次例나 手術을 받았지만 未備한 醫療 施術로 인해 더 以上 오른팔이 成長하지 않았다. 왼팔에 비해 3分의2 밖에 안 됐다. 이 때문에 學窓時節 初期엔 스포츠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목이균 도요코퍼레이션 會長(74)은 이런 핸디캡을 克服하고 올해로 51年째 테니스를 치며 健康한 老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스포츠마니아로 變身한 때는 高校 1學年 때다.“대전고에 들어갔는데 誘導를 週 2時間 無條件 배워야 했어요. 當時 師範님께 ‘前 팔이 이래서 못하겠습니다’ 했더니 ‘日本에서는 다리 하나 없는 사람도 木발 짚고 誘導해서 검정 띠를 땄다’며 시켰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되더라고요. 高校 進學 體力章 20點 滿點에 12點밖에 못 받았던 제가 結局 검정 띠를 땄습니다.”목 會長이 스포츠에 눈을 뜨는 瞬間이었다. 그는 “誘導를 하면서 下體 筋力이 發達하자 다른 스포츠도 할 수 있다는 自信感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스포츠에 關心을 가졌고 파고들었다. 誘導 以後 가장 먼저 始作한 게 卓球다. 그는 “우리 땐 1973年 사라예보 世界卓球選手權大會 團體戰에서 優勝한 이에리사, 정현숙 때문에 卓球에 빠져 지냈다”고 說明했다.“저는 柔道를 배운 뒤 事實上 스포츠맨이라고 생각하고 平生을 살아왔어요. 運動 그 自體의 즐거움도 있지만 健康한 身體가 주는 自負心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社會生活에서도 恒常 自信感을 가지고 살았죠.”고교 時節 또 다른 特別한 經驗이 목 會長의 人生에 큰 影響을 주었다고 했다.“당시 우리 집에서 下宿하던 분이 있었죠. 경기고에 서울大 工大를 나온 분이었는데 劍道度 검정 띠였죠. 머리도 좋은데 運動도 잘했어요. 바둑도 잘 뒀고. 그분을 보고 저도 모든 것에 最善을 다하자는 意味로 ‘運動量(運動量)을 最大(最大)로’라는 文句를 써 冊床 앞에 붙였습니다.”운동량을 最大로는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에도 새겨져 있다. 그만큼 모든 運動을 熱心히 했고 다른 모든 것에도 最善을 다했다. 목 會長은 고려대 入學해 2學年까지 柔道部로 活動했다. 大學 時節은 勿論 社會生活을 하면서 卓球와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까지 즐겼다. 運動 感覺이 뛰어나 入門한 스포츠에서 모두 頭角을 나타냈다. 테니스의 境遇 大會에 자주 出戰하지는 않았지만 1980年代 中盤부터 各種 아마추어 테니스大會에서 優勝했다.목 會長은 1974年부터 테니스를 쳤다. 高校 때부터 親舊들과 어울려 卓球를 즐기고 있었는데 大學 親舊가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하기에 함께 하기 始作한 것이다. 그는 “當時 테니스도 人氣를 끌고 있었는데 고려대 相對 同期가 KIST(韓國科學技術硏究院)에 있었는데 硏究員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KIST로 달려가 배우면서 치게 됐다”고 回想했다.탁구와 테니스는 完全 달랐다. 가벼운 탁구채 생각하듯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니 잘 맞지 않았다. 뛰는 距離도 훨씬 많았다. 그는 “卓球는 盞 筋肉을 잘 써야 한다면 테니스는 큰 筋肉을 잘 써야 했다. 卓球臺보다 훨씬 큰 테니스 코트에서 多樣한 技術로 相對를 制壓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했다. 그는 새벽에 테니스 치고 出勤했고, 退勤한 뒤 또 쳤다. 하루 2~3時間 쳤다. 테니스 敎本 하나 들고 獨學으로 배우면서 배웠다. “한마디로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저는 오른팔을 다쳤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왼팔로 해야 했습니다. 當時는 只今처럼 하는 個人 레슨도 없었죠. 한 팔만 써야 하니까 저 만의 노하우가 必要해 硏究하면서 쳤습니다.”그는 肉體的 障礙보단 精神的 障礙가 더 問題라는 얘기를 자주 하면서 살아왔다.“육체적 障礙보다 精神的 障礙를 克服하는 것이 무엇보다 必要합니다. 特히 自身의 處地를 恨歎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開拓하려고 하는 精神力과 意志가 障礙를 克服할 수 있는 最大 지름길입니다.” 1989年 골프를 始作하면서는 테니스를 가끔 쳤다. 證券 및 投資 會社를 다녔고, 熊進루카스投資諮問 代表理事 社長까지 했던 그로선 事業上 필드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골프를 잘 치려면 테니스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知人들과 테니스도 치면서 골프를 즐겼다. 그의 골프 베스트스코어는 이븐파. 요즘엔 다시 테니스에 集中하느라 골프를 가끔 쳐 스코어가 들쭉날쭉 하지만 맘먹으면 80代 初盤 스코어도 칠 수 있다고 한다.한땐 배드민턴에도 빠졌었다. 하지만 네트 앞으로 떨어지는 셔틀콕을 잡기 위해 無理하다 무릎이 傷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드민턴은 잘 치지 않는다.목 會長은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傷處를 줬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제가 핸디캡이 있어서인지 너무 승부욕이 强했어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기려는 마음이 强했는데 저한테 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난 핸디캡이 있어도 너희들에게 지지 않아’라는 생각에 無條件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親舊들이 ‘너는 승부욕이 너무 强해’라고 늘 말했는데….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죠. 거의 예순이 다 돼서. 그때부터는 모든 스포츠를 즐기는 데 焦點을 두고 있습니다.”목 會長은 自身의 號 ‘아천(雅泉·맑은샘)’을 건 테니스大會度 만들었다. 올해로 16回째를 맞는 亞千倍시니어테니스大會다. 테니스 치며 喜怒哀樂을 經驗한 그가 自身의 分身과 같은 테니스의 즐거움을 다른 同好人들과 나누고자 大會를 만들었다. 그는 “바둑에 ‘부득探勝(不得貪勝)’이라는 말처럼 이기는 것에 欲心을 내지 말고 사람들과 좋은 因緣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즐겼다 갈 수 있는 大會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김문일 韓國시니어테니스聯盟 名譽會長이 어느 統計를 보고 테니스가 모든 運動 中에 가장 長壽하는 스포츠라고 하더군요. 그럴 것 같아요. 運動도 되고 함께 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 平生스포츠로는 最高입니다.”덴마크와 美國 硏究팀이 8577名을 對象으로 1991年부터 2017年까지 25年間 追跡 調査한 結果에 따르면 테니스가 長壽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調査 期間 中에 4448名이 死亡했다. 年齡과 性別, 吸煙의 影響 等 補正을 해도 運動을 하는 사람은 모두 平均 餘名이 길었다. 테니스가 9.9年으로 가장 길었고, 2位가 배드민턴으로 6.2年이었다. 蹴球는 4.7年으로 3位.왜 테니스를 하는 사람이 長壽 하는지 正確한 理由는 알 수 없지만 運動과 함께 社會的 相互作用이 重要하다고 判斷했다. 테니스는 혼자서 못하는 運動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壽命에 影響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른 調査 結果에서도 테니스 等 라켓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死亡 리스크가 낮았다.?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顧問인 목 會長은 聯盟 定期 모임, 그리고 火曜日 木曜日 테니스 치는 ‘和睦回’ ‘아파트 早起會’ 等에 나가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家族들하고도 친다. 그는 테니스를 치며 健康의 重要性을 體感한 뒤 1990年代 家族들도 테니스에 入門시켰다. 特히 프로바둑棋士人 아들 목진석 氏(44)와도 자주 테니스를 즐긴다. 그는 특별한 日程이 없으면 테니스로 하루를 始作한다. 4年 前부터 살고 있는 競技 南楊州市 아파트 團地內 테니스 코트에서 住民들과 테니스를 친다. 비가 오면 卓球場으로 간다. 그는 “요즘 아내하고 치는 卓球도 즐겁다”고 했다. 테니스로 鍛鍊된 탄탄한 體力 德澤에 只今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4-06
    • 좋아요
    • 코멘트
  •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50年 친 테니스 德에 70代에도 여러 스포츠 즐겨요”

    목이균 도요코퍼레이션 會長(74)은 1974年부터 테니스를 쳤다. 高校 때부터 親舊들과 어울려 卓球를 즐기고 있었는데 大學 親舊가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하기에 함께 하기 始作했다. 只今도 一週日에 네 番 以上 테니스를 치며 健康한 老年을 즐기고 있다. “우리 땐 1973年 사라예보 世界卓球選手權大會 團體戰에서 優勝한 이에리사, 정현숙 때문에 卓球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테니스가 流行할 때쯤 고려대 相對 同期가 韓國科學技術硏究院(KIST)에 있었는데 硏究員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KIST로 달려가 저도 배우면서 치게 됐죠.” 목 會長은 高校 時節부터 스포츠 마니아였다. 그런데 테니스는 卓球와 많이 달랐다. 가벼운 卓球 라켓을 휘두르듯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니 잘 맞지 않았다. 뛰는 距離도 테니스가 훨씬 많았다. 그는 “卓球가 盞 筋肉을 잘 써야 한다면 테니스는 큰 筋肉을 잘 써야 했다. 卓球臺보다 훨씬 넓은 테니스 코트에서 多樣한 技術로 相對를 制壓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했다. 그는 새벽에 테니스를 치고 出勤했고, 退勤한 뒤 또 쳤다. 하루 2∼3時間 쳤다. 테니스 敎本을 하나 들고 獨學으로 배웠다. 그는 “한마디로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저는 오른팔을 다쳐 모든 걸 왼팔로 해야 합니다. 當時엔 只今처럼 個人 레슨도 없었죠. 한 팔만 써야 하니까 저만의 노하우가 必要해 硏究하면서 쳤습니다.” 목 會長은 다섯 살 때 오른쪽 팔꿈치를 크게 다친 뒤로 왼팔에 依支해 왔다. 當時 두 次例나 手術을 받았지만 더 以上 오른팔이 成長하지 않았다. 왼팔의 3分의2밖에 안 됐다. 이 때문에 學窓 時節 初期엔 스포츠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런 그가 高校 때 스포츠 마니아로 變身했다. “대전고에 들어갔는데 誘導를 週 2時間 無條件 배워야 했어요. 當時 師範님께 ‘前 팔이 이래서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日本에서는 다리 하나 없는 사람도 木발 짚고 誘導해서 검정 띠를 땄다’며 시켰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되더라고요. 高校 進學 體力章에서 20點 滿點에 12點밖에 못 받았던 제가 結局 검정 띠를 땄습니다.” 목 會長이 스포츠에 눈을 뜬 瞬間이었다. 그는 “誘導를 하면서 下體 筋力이 좋아지자 다른 스포츠도 할 수 있겠다는 自信感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스포츠에 關心을 가졌고 파고들었다. 고려대에 入學해 2學年까지 柔道部에서 活動했다. 卓球와 테니스는 勿論 배드민턴, 골프까지 즐겼다. 運動 感覺이 뛰어나 入門한 스포츠에서 모두 頭角을 나타냈다. 테니스의 境遇 大會에 자주 出戰하지는 않았지만 1980年代 中盤부터 各種 아마추어 大會에서 優勝했다. 1989年 골프를 始作하면서는 테니스를 가끔 쳤다. 證券, 投資 會社를 다녔고 熊進루카스投資諮問 社長까지 지냈던 그로서는 事業上 필드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그는 “골프를 잘 치려면 테니스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知人들과 테니스를 치면서 골프도 즐겼다. 그의 골프 베스트 스코어는 이븐파. 요즘엔 다시 테니스에 集中하느라 골프를 가끔 쳐 스코어가 들쭉날쭉하지만 마음먹으면 80代 初盤 스코어를 칠 수 있다고 한다. “저는 柔道를 배운 뒤로 事實上 스포츠맨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運動 自體의 즐거움도 있지만 健康한 身體가 주는 自負心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社會生活에서도 恒常 自信感을 갖고 살았죠.” 韓國시니어테니스聯盟 顧問인 목 會長은 聯盟 定期 모임, 그리고 火曜日 木曜日에 테니스 치는 ‘和睦回’ ‘아파트 早起會’ 等에 나가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家族들과도 테니스를 친다. 그는 테니스를 치면서 健康의 重要性을 體感한 뒤 1990年代에 家族들도 테니스에 入門시켰다. 特히 프로 바둑棋士인 아들 진석 氏(44)와도 자주 테니스를 즐긴다. 목 會長은 특별한 日程이 없으면 테니스로 하루를 始作한다. 4年 前부터 살고 있는 競技 南楊州市 아파트 團地 내 테니스 코트에서 住民들과 테니스를 친다. 비가 오면 卓球場으로 간다. 그는 “요즘 아내와 치는 卓球도 즐겁다”고 했다. 테니스로 鍛鍊된 탄탄한 體力 德에 只今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양종구 스포츠부 次長 yjongk@donga.com}

    • 2024-04-04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人間限界에 挑戰, 自尊感 없으면 不可能” 왜 사람들은 極限 스포츠에 挑戰할까?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1.最近 世界에서 가장 어려운 마라톤 大會로 꼽히는 ‘바클리 마라톤’에서 最初의 女性 完走者가 誕生했다는 消息이 傳해졌다. 바클리 마라톤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보다 긴 距離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大會로 羅針盤 等 어떤 裝備도 없이 山길이 大部分인 160km를 60時間 안에 完走해야 한다.BBC 等 外信에 따르면 두 아이의 어머니 兼 獸醫師인 英國人 재스민 패리스 氏(41)가 3月 22日(現地 時間) 美國 테네시州 프로즌헤드 州立公園에서 열린 바클리 마라톤에서 制限 時間을 不過 99秒 남긴 59時間 58分 21秒에 決勝點을 通過했다. 이날 35名의 參加者 中 패리스 氏를 包含해 5名이 完走했다. 歷代 最高 記錄이다. 酷毒한 條件으로 2017∼2023年에는 單 1名의 完州者도 나오지 못했다. 패리스 氏를 包含해 歷代 完走者가 20名인데 女性은 패리스 氏가 唯一하다. 패리스는 2016年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을 完走하는 等 世界 各地 極限 마라톤에 挑戰해 完走했다.#2.김규만 굿모닝韓醫院 院長(66)은 1986年 처음 山岳自轉車(MTB)를 接한 뒤 40年 가까이 自轉車를 타며 全 世界를 누비고 있다. 特히 그는 1994年부터 티베트 古代 王國인 라다크를 MTB 타고 3回나 橫斷과 宗團을 試圖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海拔 3000~5000m 고개에 數없이 挫折했지만 約 800km를 달렸다. 以後 ‘世界의 지붕’ 티베트 高原 1800km도 縱斷했다. 中央아시아의 타클라마칸 沙漠 宗團, 4個의 巨大 山脈을 지나가는 카라코룸 하이웨이 等도 MTB 두 바퀴로 달렸다.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鐵人3種 哲人코스(水泳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도 數 次例 完走했다. 그는 “苦痛이 極에 達하면 喜悅이 된다. 그것을 한番 느끼면 못 잊는다. 韓醫師가 참 답답한 職業이다. 每日 診療 봐야 하는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뻔한 日常에서 재밌게 逸脫하는 方法이 있어야 한다. 저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 正말 精神이 번쩍 나는 일이다”고 말했다.#3.마케팅 專門家 김지원 氏(39)는 지난해 山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入門한 뒤 다양한 大會에 出戰해 入賞했다. 지난해 4月 城南누비길 40km에서 5位(6時間12分), 6月 巨濟 100K 50km에서 4位(8時間5分), 9月 錦繡山 21km에서 3位(3時間52分)를 차지했다. 10年 넘게 사이클을 탔던 그는 “유럽의 알프스 山脈 170km를 달리는 世界 最高의 트레일러닝 大會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에 參加하겠다”고 했다. 그는 “‘山 100km를 完走할 수 있을까?’라는 疑問이 들 때 直接 해보면 된다. 苦痛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 完走하면 自信感도 치솟는다. 苦痛은 몇 時間이지만 完走의 기쁨은 몇 年, 或은 平生에 걸쳐 維持할 수 있다”고 말했다.최근 國內에서도 極限에 挑戰하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비롯해 沙漠 250km를 6泊7日間 달리는 世界 4代 마라톤(사하라沙漠, 고비沙漠, 아타카마沙漠, 南極마라톤), UTMB, 그리고 50km 100km 트레일러닝 等에 參加者들이 몰리고 있다. 오래前부터 極限의 代名詞인 鐵人3種 哲人코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參加하고 있다.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에서도 이런 極限에 挑戰하는 사람들을 많이 썼다. 그들은 “그냥 좋아서” “極限을 넘어서면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고 했다.도대체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왜 하는 것일까? 스포츠 心理學者인 金秉準 인하대 敎授에게 물었다. 金 敎授는 “最高 難易度의 人間 修行力을 보여주는 挑戰이다. 이런 挑戰은 하루아침에 挑戰하거나 達成하는 것은 不可能하다. 꾸준한 努力이 必要하고 意志가 必要하다. 心理學的으로 네 가지 程度 理由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그 첫째가 自己效能感이다. 金 敎授는 “이런 挑戰을 하는 사람은 自己效能感이 無條件 높다. 自己效能感은 挑戰을 成功시킬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인데 實際 成功을 가장 잘 豫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꾸준한 反復 訓鍊으로 最高 難易度 課題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둔다. 自己效能感이 높고 생각이나 行動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自己效能感은 每日 每日의 작고 꾸준한 訓鍊으로 키운다”고 說明했다.두 番째가 自己結晶性, 卽 內的 動機가 높다. 金 敎授는 “外的인 理由로 挑戰을 하면 一時的으로 可能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最高難易度에 挑戰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는 “內面에서 나오는 强한 動機, 卽 自身이 스스로 하겠다고 決定했을 것이고, 힘든 身體的 퍼포먼스 그 自體를 어느 程度 즐기고 있을 것이다. 自己 스스로가 하겠다고 決定을 내렸고, 그 活動에 挑戰하는 것 自體를 좋아하는 性向이다”고 말했다.세 番째가 統制感의 前이다. 이런 사람들은 最高難易度에 挑戰하고 成就해낸 自信感으로 삶과 職業에서 突破口를 찾는다. 金 敎授는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統制감(sense of control)李 挑戰과 成就에서 얻어지고, 이 統制感으로 삶을 살아가므로 幸福도, 삶의 滿足度가 높을 것이다”고 分析했다.네 番째는 그릿(Grit) 性格. 그릿은 成功과 成就를 이루기 위해 重要한 要素로 “長期的인 目標를 위해 努力하는 끈氣 있는 態度”를 말한다. 金 敎授는 “最高難易度에 挑戰하는 사람이라면 性格的으로 그릿 所有者일 것이다. 回復 彈力性, 內的 動機, 끈氣가 있어야 成功할 수 있는 遂行의 領域이다. 한 番 마음 먹으면 몇 番 挫折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結局 卓越한 成就를 해내는 性格의 所有者로 볼 수 있다”고 했다.김규만 院長은 “苦痛이 極에 達하면 喜悅이 된다”고 했고, 김지원 氏는 “苦痛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들이 極限에 挑戰하는 理由가 있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30
    • 좋아요
    • 코멘트
  • “山 100km 달려보셨나요? 苦痛 참으면 더 큰 기쁨 와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지난해 初 偶然히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를 紹介하는 動映像을 봤는데 제 心臟이 뛰는 겁니다. ‘그래 저거야. 나도 달려야지’하며 山을 달리기 始作했습니다. 지난해 포인트를 주는 大會에 出戰해 UTMB에 出戰할 資格을 갖췄는데 抽籤에서 떨어져 못 갔어요. 올해 다시 挑戰할 겁니다.”UTMB는 유럽 알프스山脈 170km를 달리는 世界 最高의 트레일러닝大會다. 全 世界에서 參加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參加 基準이 多少 까다롭다. 러닝 스톤을 쌓는 等 資格을 갖춘 뒤 抽籤에서 當籤돼야 出戰할 수 있다. 마케팅 專門家 김지원 氏(39)는 지난해 트레일러닝에 入門한 뒤 트랜스 濟州 트레일러닝大會 50km를 完走해 러닝 스톤 2個, 홍콩 트랜스 란타우 트레일러닝 100km 完走해 러닝 스톤 3個를 받았다. 러닝 스톤 5個面 그동안 出戰한 사람들의 平均이라 期待했는데 抽籤에서 떨어진 것이다.김 氏는 最近 泰國으로 한 달間 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旅行을 다녀왔다. 이곳저곳 旅行 다니며 泰國의 山을 달렸다. 사이클에 빠졌던 2016年에는 유럽에서 석 달 지내면서 피레네山脈과 알프스산맥을 自轉車 타고 오르내렸다. 그는 뭐에 끌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只今은 UTMB 完走에 集中하고 있다.사이클을 10年 넘게 탄 金 氏는 트레일러닝에 入門하자마자 頭角을 나타냈다. 지난해 4月 城南누비길 트레일러닝 大會 40km에서 5位(6時間12分), 6月 巨濟 100K 50km에서 4位(8時間5分), 9月 錦繡山 트레일러닝 21km에서 3位(3時間52分)를 차지하는 等 大部分 出戰 大會에서 入賞했다. 그는 “사이클을 10年 넘게 타다보니 完全 바닥부터 運動한 건 아니다. 訓鍊法이나 使用하는 筋肉이 微妙하게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下體를 쓴다는 點은 똑같다”고 했다.학창 時節 달리기를 잘했다. 初中高를 다닐 때 繼走가 열리면 選手로 나갔다. 班에서 1~3等 안에는 꼭 들었다. 달리는 本能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산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무엇보다 저 自身에 集中할 수 있어요. 自然에서 달리면 그 속에서 限없이 자유로워진 저 自身을 느낄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는 모든 걱정도 사라져요. 無念無想, 現生으로부터 自由를 찾죠. 또 사이클은 速度가 빠르다 보니까 風景을 즐기기 쉽지 않은데 트레일러닝은 山, 나무, 풀, 바위 等 風景을 鑑賞할 수 있어 좋아요.”김 氏는 元來 사이클마니아였다. 그는 “10餘 年 前이었다. 미니벨로를 타고 漢江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핸들이 밑으로 굽어진 自轉車를 타고 저를 획 지나쳐 갔다. ‘어 뭔데 이렇게 빠르지’라는 생각에 알아봤더니 사이클이더라. 그래서 바로 사서 타고 다녔다”고 했다. 金 氏는 週 3回 以上 사이클을 탔고 週末엔 100km 以上 疾走했다.대회도 數十 次例 出戰했다. 100km 內外의 長距離 大會인 그란폰도부터 10km 오르막을 타는 힐크라임 大會 等 가리지 않았다. 그는 “體重이 가벼워서 다운힐이나 平地 走行은 조금 不利하지만, 오르막은 剛한 篇”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사이클大會에서 優勝해 받은 商品으로 世界的으로 有名한 長距離 사이클大會 그란폰도에 出戰할 機會를 잡았다. 2017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라토나 돌로미티 138km를 完走했다. 韓國 女性 最初 完州였다. 그는 2022年까지 이 大會에 두 番 더 出戰했다.“한국에선 類似한 環境이 없어서 訓鍊하기가 어려워요. 유럽은 平地가 없이 無條件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고, 업다운이 거듭되지 않고 매우 긴 오르막과 또 마찬가지로 긴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거든요. 海拔 2000~3000m 高地帶에서 오르막이 10km 以上이에요. 想像이 되세요? 마라토나 돌로미티 大會는 上昇孤島만 4300m입니다. 車로 가도 힘들어요. 유럽에서 3個月 있으면서 알프스山脈 等을 사이클을 타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유럽에서 힘들어 하는지를 알게 됐죠. 그런 곳에서 사이클 타는 사람들은 正말 달랐어요.”2019년 5月엔 鐵人3種(트라이애슬론) 高聲 아이언맨 70.3에 出戰하기도 했다. 哲人코스(水泳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의 하프(水泳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를 마일 單位로 表現한 하프 아이언맨 大會다. 金 氏는 5時間57分에 아이언맨 70.3을 完走했다. 그는 “水泳은 이미 배웠고 사이클을 타다 보니 鐵人3種이 눈에 들어와 달렸다”고 했다.김 氏는 아이언맨 70.3을 달리고 두 달쯤 지나 큰 事故를 當했다. 大會 出戰 準備하며 사이클 타다 事故를 當한 것이다. 그는 “앞니度 깨지고 얼굴이 거의 망가졌었다. 家族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大會 出戰을 自制하며 즐기면서 타고 있다”고 했다. 山을 달리면서도 사이클을 타긴 하지만 이제 트레일러닝이 最愛 運動이 됐다.“이런 것 있죠. ‘山 100km를 完走할 수 있을까?’라는 疑問이 들 때 直接 해보면 되잖아요. 苦痛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와요. 完走하면 自信感도 치솟고요. 苦痛은 몇 時間이지만 完走의 기쁨은 몇 年, 或은 平生에 걸쳐 維持할 수 있죠.”김 씨는 週中엔 서울 道林川 等을 5~10km 달리고, 週末엔 主로 冠岳山 둘레길을 疾走한다. 그는 “冠岳山 둘레길은 32km 程度 되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게 큰 長點”이라고 했다. 大會를 앞두고는 어떻게 訓鍊할까?“페이스는 크게 神經 쓰지 않고 몸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低强度로 運動합니다. 50km 大會라면 30km 程度를 完走하는 걸 目標로 뛰어요. 無理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主眼點을 둬요. 그러다 大會가 3~4日 남으면 아예 푹 쉽니다. 스트레칭 程度만 하고 카보로딩이라고 해서 炭水化物을 많이 먹어 繼續 筋肉에 貯藏하는 作業을 하죠. 一種의 에너지源 補充이죠. 그리고 大會 當日에는 페이스를 확 올려서 뜁니다. 그리고 버티는 거죠.”내리막을 달릴 때 危險하진 않을까?“위험하니 操心히 달려야죠. 발을 빨리빨리 떼고 步幅을 짧게 해서 體重을 兩 무릎에 왔다갔다 빨리 옮겨주는 게 가장 좋아요. 한 발에 오래 體重을 실으면 部下를 주는 時間이 길어져서 무릎 等 關節에 無理를 줄 수 있어요. 盞 발로 빨리 뛰어 내려가면 體重이 무릎에 주는 負荷를 分散시킬 수 있어요.”트레일러닝 大會에 出戰하면서 가장 幸福한 瞬間은 ‘到着 直前’이라고 했다. 그는 “假令 100km 코스라면 10km 程度 남았을 때가 가장 기쁘고 설렌다”고 했다. 實際 골인보다 골인이 눈앞에 確實히 보이기 始作하는 瞬間이 더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또 가장 操心하는 瞬間이기도 하다. 그래서 感情을 억지로 억누른다. 마음은 마구 들떠 있지만 그걸 그대로 놔둬서 興奮하면 다칠 수 있다”고 했다.그는 4月부터는 山岳安全 奉仕組織人 ‘몬츄라 마운틴 패트롤’로 活動한다. 探訪客 安全事故 豫防과 生態 環境 保全을 위한 奉仕活動이다. “山에 가보면 正말 쓰레기가 많아요. 山行 等 아웃도어 活動 詩, 自然을 毁損하지 않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LNT(Leave No Trace)를 實踐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山을 오래 다닐 수 있죠.”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23
    • 좋아요
    • 코멘트
  • “山 달리는 것 보고 心臟 뛰었죠… 트레일러닝에 푹 빠졌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마케팅 專門家 김지원 氏(39)는 最近 泰國으로 한 달間 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旅行을 다녀왔다. 사이클에 빠졌던 2016年에는 유럽에서 석 달 지내면서 피레네와 알프스산맥을 自轉車 타고 오르내렸다. 그는 한 가지에 끌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只今은 世界 最高의 트레일러닝大會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 參加하기 위해 集中하고 있다. “지난해 初 UTMB를 紹介하는 動映像을 偶然히 봤는데 제 心臟이 뛰는 겁니다. ‘그래 저거야. 나도 달려야지’ 하며 山을 달리기 始作했습니다. 지난해 포인트를 주는 大會에 出戰해 UTMB에 出戰할 資格을 갖췄는데 抽籤에서 떨어져 못 갔어요. 올해 다시 挑戰할 겁니다.” UTMB는 유럽 알프스山脈 17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大會로 參加 基準이 까다롭다. 다른 大會에 出戰해 러닝 스톤을 쌓는 等 資格을 갖춘 뒤 抽籤에서 當籤돼야 出戰할 수 있다. 金 氏는 지난해 트랜스 濟州 트레일러닝大會 50km를 完走해 러닝 스톤 2個, 홍콩 트랜스 란타우 트레일러닝 100km를 完走해 러닝 스톤 3個를 받았다. 러닝 스톤 5個面 그동안 出戰한 사람들의 平均이라 期待했는데 抽籤에서 떨어진 것이다. 사이클을 10年 넘게 탄 金 氏는 트레일러닝에 入門하자마자 頭角을 나타냈다. 지난해 4月 城南누비길 40km에서 5位(6時間12分), 6月 巨濟 100K 50km에서 4位(8時間5分), 9月 錦繡山 21km에서 3位(3時間52分)를 차지하는 等 出戰 大會에서 大部分 入賞했다. “山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무엇보다 저 自身에게 集中할 수 있어요. 自然에서 달리면 그 속에서 限없이 자유로워진 저 自身을 느낄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는 모든 걱정도 사라져요. 無念無想, 現生으로부터 自由를 찾죠. 또 사이클은 速度가 빠르다 보니까 風景을 즐기기 쉽지 않은데 트레일러닝은 山, 나무, 풀, 바위 等 風景을 鑑賞할 수 있어 좋아요.” 金 氏는 元來 사이클 마니아였다. 그는 “10餘 年 前이었다. 미니벨로를 타고 漢江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핸들이 밑으로 굽어진 自轉車를 타고 저를 획 지나쳐 갔다. ‘어 뭔데 이렇게 빠르지’ 하고 알아봤더니 사이클이더라. 그래서 바로 사서 타고 다녔다”고 했다. 金 氏는 週 3回 以上 탔고 週末엔 100km 以上 疾走했다. 그리고 한 사이클大會에서 優勝해 받은 商品으로 世界的으로 有名한 長距離 사이클大會 그란폰도에 出戰할 機會를 잡았다. 2017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라토나 돌로미티 138km를 完走했다. 韓國 女性 最初 完州였다. 그는 2022年까지 이 大會에 두 番 더 出戰했다. 그는 “유럽 알프스 等에서 3個月 있으면서 사이클을 타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유럽에서 힘들어하는지 알게 됐다. 유럽은 海拔 2000∼3000m 高地帶에서 오르막이 基本 10km가 넘었다. 그런 곳에서 타는 사람들은 正말 달랐다. 마라토나 돌로미티 大會는 上昇孤島만 4300m다”라고 했다. 金 氏는 2019年 大會 出戰을 準備하며 사이클을 타다 事故를 當한 뒤부턴 大會 出戰을 自制하고 있다. 그는 “앞니度 깨지고 얼굴이 거의 망가졌었다. 家族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大會 出戰보다는 그냥 즐기면서 타고 있다”고 했다. 山을 달리면서도 사이클을 타긴 하지만 이제 트레일러닝이 ‘最愛 運動’이 됐다. “이런 것 있죠. ‘山 100km를 完走할 수 있을까?’라는 疑問이 들 때 直接 해보면 되잖아요. 苦痛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와요. 完走하면 自信感도 치솟고요. 苦痛은 몇 時間이지만 完走의 기쁨은 몇 年, 或은 平生에 걸쳐 維持할 수 있죠.” 金 氏는 週中엔 서울 道林川 等을 5∼10km 달리고, 週末엔 主로 冠岳山 둘레길을 疾走한다. 그는 “冠岳山 둘레길은 32km 程度 되는데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큰 長點”이라고 했다. 그는 4月부터는 山岳 安全 奉仕組織人 ‘몬츄라 마운틴 패트롤’로 活動한다. 探訪客 安全事故 豫防과 生態 環境 保全을 위한 奉仕活動이다. “山에 가보면 쓰레기가 正말 많아요. 山行 때 自然을 毁損하지 않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LNT(Leave No Trace)를 實踐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山을 오래 다닐 수 있죠.”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마라톤 祝祭, 서울의 봄을 열다

    韓國 唯一의 ‘플래티넘 라벨’ 大會인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이 17日 10個國 141名의 엘리트 選手와 3萬8000名의 마스터스 러너가 參加한 가운데 열렸다. 世界陸上聯盟(WA)은 마라톤 大會를 4個 等級(플래티넘, 골드, 엘리트, WA)으로 나눠 認證하는데, 서울마라톤은 韓國에서 唯一한 플래티넘 라벨(最高 等級) 大會다. 이날 國際 部門에선 男女部 모두 에티오피아 選手들이 優勝했다. 男子部의 제말 이메르 메코넨이 2時間6分8秒로, 女子部의 피크르테 웨레打 아드마수가 2時間21分32秒의 記錄으로 1位를 했다. 男子部는 1, 2, 3位가 1秒 間隔을 두고 次例로 決勝線을 지났을 만큼 接戰이었다. 서울 光化門廣場을 出發해 잠실종합운동장 同門까지 이르는 풀코스에 1萬8000名, 잠실종합운동장 同門을 出發해 되돌아 오는 10km 코스에 2萬 名의 마스터스 러너가 參加해 都心 레이스를 즐겼다.교통통제 協助해주신 市民께 感謝드립니다 17日 열린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이 成功的으로 끝났습니다. 大會 區間 交通 統制에 따른 不便을 甘受하고 서울마라톤을 聲援해 주신 市民 여러분께 깊이 感謝드립니다. 大會 開催와 進行에 도움을 준 서울市, 서울警察廳, 大韓陸上聯盟 關係者와 自願奉仕者 여러분께도 感謝드립니다. 필리핀 夫婦도 94年生 同好會도 “잊지못할 코스” 서울 疾走 서울마라톤 兼 94回 東亞마라톤칠레 父子 “幻想 코스서 最高 追憶”視角障礙러너 “온 世上이 느껴져”… 15番째 參加 60代 “30番 더 뛸 것”이영표-션-박재범度 完州 歡呼聲 山茱萸가 노랗게 봉오리를 터뜨린 17日 午前 서울 中區 청계천邊을 따라 色色의 옷을 입은 마라토너가 달리는 長官이 펼쳐졌다. 平素 會社員으로 붐비던 무교동 거리도 이날만큼은 마라토너의 차지였다. 이날 열린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은 칠레와 필리핀, 캐나다 等 各國에서 온 外國人과 國內 러닝크루들로 북적였다. 풀코스(42.195km) 約 1萬8000名, 10km 코스 約 2萬 名 等 總 3萬8000名은 서울 都心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全國 最大 規模 마라톤 大會에서 함께 봄을 맞이했다.● 러닝크루의 ‘聖地’로 자리 잡은 都心 祝祭 2000年生 막내부터 1980年生 ‘큰 兄님’까지 2040世代 젊은이들로 構成된 ‘보라매 트랙 러닝크루(BTRC)’는 이番 大會에 50名이 同伴 參加했다. 午前 7時 40分頃 出發 地點인 종로구 光化門廣場에서 準備運動을 하던 크루 構成員 이정윤 氏(28)는 “넉 달 동안 추운 겨울에도 땀이 뻘뻘 나게 練習했다”며 “3時間 30分 以內로 풀코스를 完走하겠다”고 힘차게 目標를 외쳤다. 1994年生 개띠 同甲내기 120名이 모인 러닝크루 ‘멍뭉런’은 이날 풀코스에 17名, 10km에 10名이 參加했다. 지난해 12月부터 土曜日 午前 10時마다 漢江公園에 모여 10km부터 차근차근 强度를 높이며 訓鍊해 왔다고 한다. 올 7月 結婚하는 강재훈 氏(30)와 신문희 氏(30)에겐 이番 大會가 ‘웨딩 同伴週’가 됐다. 머리에 흰色 리본을 단 申 氏는 “사랑하는 豫備 男便과 아프지 않게 재밌게 뛰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 外에도 釜山마라톤클럽과 九里마라톤, 保寧마라톤, 濟州마라톤클럽, 天安러너스, 光州哲人클럽 等이 全國 各地에서 모였다. 이날 生涯 첫 풀코스를 完走한 李榮杓 前 蹴球 國家代表(47)는 “完走는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에 맞는 땀과 努力을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魅力이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歌手 션(52)도 풀코스를 完走하고 푸르메財團과 함께 5000萬 원을 寄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어 數가 311萬 名에 達하는 歌手 박재범(37)도 이날 自身의 SNS에 10km 完州 認證샷을 올렸다.● 外國人도 視覺障礙人도 “最高의 코스” 大會에 參加한 外國人도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番 大會 參加를 위해 필리핀에서 온 19年次 夫婦 톰 氏(47)와 메일린 氏(46)는 “인터넷에서 ‘韓國에서 有名한 마라톤’을 찾아보다 東亞마라톤을 알게 됐다”며 “오늘이 韓國 旅行의 피날레”라고 말했다. 칠레人 無理엘 氏(34)는 故國에서 온 아버지와 함께 10km 코스에 參加하며 “都心 속 코스가 너무 재밌다”면서 “아버지와 좋은 追憶을 남겨 幸福하다”고 했다. 올해로 15番째 東亞마라톤에 參加한 정재각 氏(69)는 “언덕 없이 서울 市內를 가로지르는 平坦한 코스로 짜여 20年 前부터 러너에게 最適의 舞臺였다”며 “앞으로도 30番 넘게 繼續 參加하겠다”고 抱負를 다졌다. 參加者들은 自身의 限界를 뛰어넘는 經驗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VMK視覺障礙人마라톤同好會腸 이민규 氏(40)와 會員 弘恩女 氏(45)는 非障礙人 ‘가이드 러너’와 왼팔을 끈으로 묶은 채 案內를 받아 풀코스를 完走했다. 이들은 株 2, 3番 10km씩, 土曜日에는 16km씩, 한 달 平均 150km를 뛰며 訓鍊했다고 한다. 洪 氏는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아도 온 世上이 느껴진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과 觀衆의 應援 소리가 주는 快感이 말로 表現할 수 없을 程度”라고 말했다. 김영인 氏(40)는 2時間 57分 만에 풀코스를 走破해 ‘서브스리’(3時間 안에 풀코스 完走)를 達成했다. 目標를 세운 지 2年 만이다. 大學院 博士 過程을 거치며 心理的으로 힘들었던 渦中에 重心을 잡아준 게 마라톤이었다고 한다. 김원용 氏(70)는 旣存 個人 記錄보다 2分 빠른 1時間 2分 만에 10km를 完走했다. 그는 “나이가 있다 보니 完走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個人 最高記錄을 세워 너무 幸福하다”고 말했다. 初等學校 6學年 이재하 軍(12)은 아버지 이진형 氏(40)와 10km를 約 56分 만에 完走했다. 아이스하키 選手가 되기 위해 訓鍊 中인 이 軍은 “앞으로도 꾸준히 아빠와 달리기 練習을 해 最高의 持久力을 가진 아이스하키 選手가 되겠다”고 抱負를 밝혔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김소민 記者 somin@donga.com서지원 記者 wish@donga.com이수연 記者 lotus@donga.com임재혁 記者 heok@donga.com}

    • 2024-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달리기만 했는데 腹筋이 생겼죠… 早晩間 3時間 9分隊도 挑戰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體力도 키우고 나른한 日常을 脫出하기 위해 無酌定 혼자 달렸어요. 時間과 場所에 拘礙받지 않고 할 수 있는 運動이잖아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아무 運動靴를 신고 달렸더니 周圍에서 ‘조깅化나 마라톤貨를 장만해 달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 스포츠用品店을 찾았는데 마라톤貨를 사는 사람들에게 10km 短縮마라톤 參加權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參加했죠.”아동복 디자이너 위하라 氏(37)는 2018年 繼續 反復되는 夜勤에 體力이 떨어지자 달리기 始作했다. “달리기 붐이 일고 있었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運動”이라 始作했다고 했다. 6年이 지난 只今은 마스터스마라토너界에서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3月 17日 열리는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 出戰하는 그는 “이番엔 3時間 15分 以內가 目標다. 그리고 싱글(3時間 10分 未滿)을 向해 달리겠다”고 했다.2018년 여름 달리기 始作해 그해 9月 열린 아디다스 마이런 서울 10km를 59分에 完走했다. 그는 “달리는 게 너무 재밌었다. 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正말 神奇했다. 그래서 하프코스度 나갔고, 풀코스度 完走했다”고 했다. 學窓時節 體育 時間을 좋아하긴 했지만 특별한 스포츠를 즐기진 않았다. 그런데 몸을 쓴다는 게 이렇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몰랐다. 그는 달리기를 始作한 뒤 요가와 헬스, 登山, 패들보드, 클라이밍 等 다양한 運動을 즐기고 있다.“전 달리기가 메인이고 다른 運動은 달리기를 잘하기 위한 補助 運動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달리는 親舊들이 다양한 運動을 즐기더라고요. 달리기가 下體 爲主다 보니 上體度 단련시킬 必要가 있어서 요가와 클라이밍 等을 했죠. 一旦 어떤 運動이든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집니다. 氣分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2019년 3月 서울마라톤 兼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完走했다. 記錄은 5時間4分22秒. 그해 9月 아디다스 마이런 서울 10km에서는 1時間 20分 페이스메이커를 했다. 韋 氏가 10km에서 急成長하고 있어 大會 組織위가 페이스메이커를 맡겼다. 그의 10km 最高記錄은 41分臺.2020年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 땐 山으로 갔다. 室內 스포츠 施設은 勿論 大部分 室外 施設이 閉鎖됐고, 마라톤 大會도 取消됐기 때문이다. 집(서울 관악구 신림동) 近處 冠岳山은 勿論 道峯山, 北漢山, 北岳山 等 首都圈 山에 올랐다. 서울 漢江에서 패들보드를 타기도 했다. 그는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도 했다”고 했다. 2022年 下半期부터 코로나19 擴散勢가 잦아들면서 마라톤 大會가 열리자 다시 出戰했다. 그가 只今까지 完走한 풀코스는 모두 13番. 그中 最高記錄은 지난해 11月 손기정平和마라톤에서 세운 3時間17分36秒. 그는 “손기정平和마라톤에서 6位로 入賞을 해 더 記憶이 남는다. 다른 데는 1~3位, 或은 5位까지 賞을 주는데 이 大會는 6位까지 賞을 줬다”고 말했다.“제 풀코스 記錄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지난해 아디다스에서 提供하는 프로그램에 參與하면서 記錄이 좋아졌어요. 마라톤 國家代表 유승엽 코치님이 指導해주셨어요. 亦是 專門家에게 배우니 效果가 좋네요. 올 서울마라톤 兼 東亞마라톤을 앞두고는 포카리스웨트가 提供하는 訓鍊 프로그램에서 女子마라톤 國家代表 出身 권은주 監督에게 指導 받고 있어요.”위 氏는 “親舊들이 ‘이런 姿勢로 어떻게 좋은 記錄을 내는지 理解가 안 간다’고 했는데 權 監督님도 姿勢 校庭에 焦點을 두고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마라톤은 에너지 消費를 最少化하며 달려야 하는데 魏 氏는 多少 통통 튀는 州法에 허리를 뒤로 제치며 語塞하게 달린다고 했다. 權 監督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고 했다. 1997年 2時間 26分 12秒의 女子마라톤 韓國 最高記錄을 세웠던 權 監督은 요즘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을 指導하고 있다.위 氏는 포카리스웨트 프로그램에서 每週 水曜日마다 함께 訓鍊하고 있다. 그리고 平日 스케줄을 받아 消化하고 있다. 그는 “權 監督님께서 時間週를 많이 줬다”고 했다. 主로 트랙에서 60分, 80分, 100分 달리기다. 距離에 神經 쓰기보다는 姿勢에 集中하며 달리는 것이다.위 氏는 혼자 달리기도 하지만 知人들과 함께 疾走하는 것을 좋아한다. 每週 木曜日 저녁엔 女性마라톤 同好會 筆레이디에서 달린다. 每月 첫 週 金曜日은 ‘1987 RRR’, 每月 마지막 金曜日 저녁에는 ‘톢톢’이란 同好會에서 달린다. 나머진 親舊들끼리 便하게 달린다. 大會를 앞두고 訓鍊 過程에서 꼭 해야 하는 LSD(Long Slow Distance)가 아니면 普通 5~15km를 달린다. LSD는 30km以上 달리는 長距離 訓鍊이다.위 氏는 요즘 젊은이들 달리기에 對해서도 얘기했다.“이런 것 아세요. 젊은 親舊들은 달리면서 GPS(衛星位置確認시스템)로 地圖를 만들어요. 一種의 GPS아트라고 하죠. 요즘은 스마트와치 等으로 달린 地域이 指導로 標示되거든요. 저도 코로나 19 때 혼자 달리면서 지도 正말 많이 그렸어요. 그리고 特定 날짜에 맞춰 달리기도 있어요. 3·1節엔 3.1km 或은 31km, 光復節인 8·15엔 8.15km…. 親舊 生日날 달리기. 例를 들어 5月 6日이라면 5.6km를 달리는 겁니다. 그냥 달리기보다는 다양한 意味를 附與하며 달리죠. 正말 재밌어요.”달리면서 奉仕도 많이 하고 있다.“달리는 親舊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게 됐어요. 톢톢 러닝크루에서 煉炭奉仕를 4年째 하고 있어요. 視覺障礙人을 도와 함께 뛰는 빛나눔가이드러너로 活動하기도 했죠. 지난해에는 障礙人과 非障礙人이 함께 달리는 슈퍼블루마라톤에서 가이드러너를 했습니다.”달리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원래 體重이 많이 나가는 體質이 아니라 體重엔 變化가 없는데 體力이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그냥 달리기만 했는데 없던 腹筋度 생겼죠. 한마디로 健康해졌어요. 제가 元來 아침밥도 잘 안 먹고 아침잠度 많았는데 달리면서 아침型 人間이 됐어요. 마라톤 大會가 아침 일찍 열리니 안 먹고 뛰면 힘들잖아요. 그렇다 보니 억지로 아침밥을 먹는 習慣도 생겼죠. 親舊들과 새벽 달리기도 즐깁니다.”위 氏는 “向後 보스턴, 뉴욕, 시카고, 베를린, 런던, 도쿄 等 世界 6代 마라톤에도 出戰하고 싶다”고 했다. “달리기가 眞짜 正直한 運動이라서 좋아요. 努力한 만큼 記錄으로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더 달리게 됩니다. 함께 ‘의샤’ ‘의샤’하며 뛰는 雰圍氣도 좋아요. 제가 元來는 펀런(즐겁게 달리기) 主義者였는데 最近 記錄이 좋아지면서 記錄에도 欲心을 부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달리는 게 즐거워요. 平生 달릴 겁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16
    • 좋아요
    • 코멘트
  • “나른한 日常 脫出 위해 달렸죠…이젠 모든 運動이 재밌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兒童服 디자이너 위하라 氏(37)는 反復되는 夜勤으로 體力이 떨어지자 2018年 달리기 始作했다. “달리기 붐이 일고 있었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運動”이라 始作했다고 했다. 6年이 지난 只今은 마스터스 마라톤系에서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17日 열리는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 參加하는 그는 “이番엔 3時間 15分 以內가 目標다. 그리고 앞으로 3時間 9分代를 向해 달리겠다”고 했다. “體力도 키우고 나른한 日常을 脫出하기 위해 혼자 달렸어요. 時間과 場所에 拘礙받지 않고 할 수 있는 運動이잖아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아무 運動靴를 신고 달렸더니 周圍에서 ‘조깅化나 마라톤貨를 장만해 달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 스포츠用品店을 찾았는데 마라톤貨를 사는 사람들에게 10km 短縮마라톤 參加權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參加했죠.” 2018年 여름 달리기 始作해 그해 9月 열린 아디다스 마이런 서울 10km를 59分에 完走했다. 그는 “달리는 게 너무 재밌었다. 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正말 神奇했다. 그래서 하프코스度 나갔고, 풀코스度 完走했다”고 했다. 學窓 時節 體育 時間을 좋아하긴 했지만 特別히 스포츠를 즐기진 않았다. 그런데 몸을 쓴다는 게 이렇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몰랐다. 그는 달리기를 始作한 뒤 요가와 헬스, 登山, 패들보드, 클라이밍 等 다양한 運動을 즐기고 있다. “저한테는 달리기가 메인이고 다른 運動은 달리기를 잘하기 위한 補助 運動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달리는 親舊들이 다양한 運動을 즐기더라고요. 달리기가 下體 爲主다 보니 上體度 단련시킬 必要가 있어서 요가와 클라이밍 等을 했죠. 一旦 어떤 運動이든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집니다. 氣分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2019년 3月 서울마라톤 兼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처음 完走했다. 記錄은 5時間4分22秒. 그해 9月 아디다스 마이런 서울 10km에서는 1時間 20分 페이스메이커를 했다. 韋 氏가 10km에서 急成長하고 있어 大會 組織위가 페이스메이커를 맡겼다. 그의 10km 最高 記錄은 41分臺. 2020年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 땐 山으로 갔다. 室內 스포츠 施設은 勿論이고 室外 施設도 大部分 閉鎖됐고, 마라톤 大會도 取消됐기 때문이다. 집(서울 관악구 신림동) 近處 冠岳山은 勿論 道峯山, 北漢山, 北岳山 等 首都圈 山에 올랐다. 서울 漢江에서 패들보드를 타기도 했다. 2022年 下半期부터 코로나19 擴散勢가 잦아들면서 마라톤 大會가 열리자 다시 出戰했다. 只今까지 그가 풀코스를 完走한 건 모두 13番. 그中 最高 記錄은 지난해 11月 손기정平和마라톤에서 세운 3時間17分36秒다. “풀코스 記錄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지난해 아디다스에서 提供하는 프로그램에 參與하면서 記錄이 좋아졌어요. 亦是 專門家에게 배우니 效果가 좋네요. 올 서울마라톤 兼 東亞마라톤을 앞두고는 포카리스웨트가 提供하는 訓鍊 프로그램에서 女子 마라톤 國家代表 出身 권은주 監督에게 指導받고 있어요.” 魏 氏는 “親舊들이 ‘이런 姿勢로 어떻게 좋은 記錄을 내는지 理解가 안 간다’고 했는데 權 監督님도 姿勢 校庭에 焦點을 두고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마라톤은 에너지 消費를 最少化하며 달려야 하는데 魏 氏는 多少 통통 튀는 州法에 허리를 뒤로 제치며 語塞하게 달린다고 했다. 權 監督이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있다고 했다. 1997年 2時間 26分 12秒로 女子마라톤 韓國 最高 記錄을 세웠던 權 監督은 요즘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을 指導하고 있다. 魏 氏는 혼자 달리기도 하지만 知人들과 함께 疾走하는 것을 좋아한다. 每週 木曜日 저녁엔 女性 마라톤 同好會 筆레이디에서 달린다. 每月 첫 週 金曜日은 ‘1987 RRR’, 每月 마지막 金曜日 저녁에는 ‘톢톢’이란 同好會에서 달린다. 나머진 親舊들끼리 便하게 달린다. 大會를 앞두고 訓鍊 過程에서 꼭 해야 하는 LSD(Long Slow Distance)가 아니면 普通 5∼15km를 달린다. “제가 元來는 펀런(즐겁게 달리기)主義者였는데 最近 記錄이 좋아지면서 記錄에도 欲心을 부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달리는 게 즐거워요. 平生 달릴 겁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14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처음엔 살기 위해서 달렸죠…이젠 ‘서브스리’에 挑戰합니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김현호 每日홀딩스 弘報팀 次長(42)은 2018年 11月 潰瘍性大腸炎人 크론病 診斷을 받았다. 그해 여름 腹痛이 繼續되며 血便까지 보게 돼 健康檢診을 받았고 結局 서울대병원에 갔더니 크론病이었다. 크론病은 慢性 炎症性 腸疾患이다. 입에서 肛門까지 消化 機關에 걸쳐 發生한다. 過敏性 臟症候群, 潰瘍性 大腸炎과 症狀은 비슷하지만 炎症이 場 全體에 侵犯하며 泄瀉, 腹痛, 體重 減少, 血便 等이 한 달 以上 持續된다.“당시 많을 땐 하루 열 番도 넘게 化粧室을 갔어요. 피가 하도 많이 나와 ‘이러다 죽는 것 아냐’ 하며 便器를 붙잡고 울기도 했습니다. 새빨갛게 피로 물든 便器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 아들이 눈에 밟혔고 아내에게도 未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비 오는 서울 중랑천을 혼자 달리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달리면서 제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때 ‘싸워 이기겠다’, ‘더 剛해지겠다’라는 마음을 먹었죠. 只今까지의 生活은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20代부터 가까이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本格的으로 달리기 始作했다. 事實 金 次長은 2018年 4月부터 온라인 마라톤同好會 ‘휴먼레이스’(休레)에 加入해 달리고 있었다. “週末에 籠球同好會에서 籠球를 하고 있었는데 體力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週 1回 5~10km를 달렸다”고 했다. 그런 渦中에 크론病에 診斷을 받았고, 살기 위해 달리기에 集中하게 된 것이다. 只今은 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서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의 꿈의 記錄인 ‘서브스리(3時間 未滿 記錄)’에 挑戰하는 健脚으로 變身했다.“달리다 보니 自然스럽게 마라톤에 挑戰하게 됐습니다. 2019年 3月 열린 서울마라톤 兼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에 挑戰했고 4時間 2分에 完走했습니다. 個人的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풀코스 完走한 것도 기뻤는데 조금만 더 努力하면 3時間帶도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김 次長은 2019年 10月 마라톤 풀코스를 3時間 46分에 完走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擴散된 2020年부터는 山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빠졌다. 室內 및 一部 室外 스포츠 施設이 閉鎖됐기 때문이다. 마라톤 大會도 取消됐다. 山은 아무런 制約이 없었다. 코로나19街 氣勝을 부릴 때도 非對面 버추얼레이스로 풀코스를 6番 完走했다.2020년 佛修士圖北(불암산 水落山 賜牌山 道峯山 北漢山) 5山宗主 트레일러닝 約 45km를 11時間에 完走했다. 2011年 5月엔 智異山 花代縱走(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달리기) 約 48km를 11時間 45分에 달렸다. 以後 北韓産둘레길 65km(10時間), 嶺南알프스 나인피크 105km(32時間 54分), 巨濟地脈 100km 트레일러닝(26時間 5分), 트렌스濟州 100km 트레일러닝(20時間 20分) 等을 달렸다.“도로와 山이 주는 느낌이 아주 달라요. 勿論 山이 주는 風光이 좋기도 하지만 山을 달릴 때 몸이 느끼는 게 달라요. 一旦 달릴 때 쓰는 筋肉이 完全히 다르죠. 그리고 山은 오르막에선 천천히 걸으면서 쉴 수도 있어요. 一種의 回復 區間이죠. 運動의 强弱이 確實하게 나눠집니다. 道路는 일정한 스피드를 維持하며 쉼 없이 繼續 달려야 합니다. 그래도 道路를 달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서울대병원 癌센터를 다니며 꾸준히 管理해 크론病은 好轉됐습니다. 當時 醫師 先生님도 놀랄 程度로 回復이 빨랐습니다. 醫師 先生님이 藥이 잘 받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全 藥效도 있지만 運動의 效果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運動을 熱心히 했기 때문에 더 健康해진 것 같습니다. 이 病은 꾸준히 藥을 먹으면서 管理해야 하는 病이라 아직도 週期的으로 檢診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 管理하다 보니 只今이 제 人生에서 가장 健康한 몸 狀態인 것 같습니다.”코로나19가 潛潛해지면서 道路마라톤 大會도 다시 始作됐다. 金 次長은 2022年 11月 마라톤 풀코스를 3時間 19分에 完走했다. 지난해 11月엔 3時間 32秒, 딱 33秒 車로 서브스리를 達成하지 못했다. 金 次長은 3月 17日 열리는 2024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동아마라톤에서 첫 ‘서브스리’에 挑戰한다. 그는 “準備 많이 했다”며 記錄 達成을 自信했다.김 次長의 하루는 새벽 5時 30分에 始作한다. 起牀해 6時부터 1時間을 달리거나 水泳을 한다. 週 3回(月 水 金) 水泳을 하는데 水營 안하는 날엔 달린다. 그리고 出勤해 點心때 約束이 없으면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달리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退勤해 아이들을 돌본 뒤 午後 10時부터 亦是 1時間 달리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그는 “오래 달리려면 筋肉이 조화롭게 發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21年 生活스포츠指導士 보디빌딩 資格證도 땄다. “筋肉 키우는 工夫를 제대로 해야 正말 負傷 없이 平生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資格證을 取得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基準으로 달리기 約 300km, 水營 10時間, 웨이트트레이닝 10時間의 運動을 하고 있다.“전 달리는 게 좋습니다. 기쁠 때, 슬플 때, 화날 때, 두려울 때, 심심할 때… 아무 때나 달립니다. 달리면 모든 苦悶이 사라집니다. 複雜했던 것들이 풀립니다. 달리는 게 삶 그 自體입니다. 그 느낌 아세요? 宇宙와 하나 되는… 깊은 밤 아무도 없는 江邊을 달리면 별과 달, 그리고 나밖에 없습니다.”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主로 아파트 및 會社 近處 피트니스센터에서 달리지만 漢江과 중랑천 等 江邊을 비롯해 各 地域 運動場도 찾아 달린다. 南山 北漢山 等 首都圈 酸度 달린다. 그는 堂堂히 “난 運動 中毒者 맞다”고 말한다. 그는 “달리며 運動할 때가 가장 幸福하고 즐겁다”고 했다.지난해 1月엔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함께 運動하던 퍼스널트레이너가 ‘달리기를 좋아기 때문에 몸만들기 有利하다’고 해서 해봤습니다. 正말 그랬어요. 달리기로 體脂肪을 쫙 뺀 狀態에서 筋肉을 만드니 몸이 괜찮았습니다. 뭐 제가 보디빌딩 大會에 나가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해봤는데 意味 있는 이벤트였습니다.”운동은 그에게 좋은 變化를 줬다. 健康을 얻은 것은 勿論이고 社會生活에서도 ‘달리기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그는 “高校 親舊들이 저를 따라 달리기 始作해 풀코스까지 完走했다”고 했다. 週期的으로 만나는 한 高校모임 10名 中 5名이 풀코스를 完走했다. 그는 “親舊들이 ‘네가 그렇게 健康해진 걸 보니 달리고 싶다’고 하며 달렸다”고 했다. 會社 去來處 等 일로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달리기 모임을 만들어 月 1回 함께 만나서 달린다. 그는 “제가 술은 줄였지만 이제 달리기로 사람들과 交流하고 있다”고 했다.‘옥수수러닝클럽’이 일로 만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달리는 同好會다. 金 次長은 休레 議政府地域 크루腸을 맡고 있고, 會社 마라톤同好會에서도 活動하고 있다. 그는 會社의 다양한 健康 支援 프로그램에서도 頭角을 나타내고 있다. 社內 禁煙프로그램에 參與해 담배를 끊으면서 健康 支援金을 받았고, 社內 걷기王 다이어트 챌린지에서도 1燈海 賞金과 商品을 받았다. 그는 “每日乳業에는 10個 種目의 運動 同好會가 있고 會社가 積極 支援하고 있다”고 했다.김 次長은 “平生 달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마라톤 選手 出身들이 指導하는 ‘오픈케어스쿨’에서 姿勢 校庭도 받고 있다. 姿勢가 좋아야 負傷 없이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健康하게 달리는 法을 傳授해주고 싶다”고 했다.“아프고 나서 世上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張 差異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제가 살아있는 것에, 남은 時間에 感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節 應援해주는 모든 분들께 感謝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健康한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機會가 되면 함께 달리자고도 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健康하게 살도록 돕고 싶습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09
    • 좋아요
    • 코멘트
  • “自轉車 타고 티베트高原 가봤나요?… 苦痛도 極에 達하면 喜悅입니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1984年 美國 時事週刊誌 ‘타임’에서 山岳自轉車(MTB)를 처음 봤어요. ‘내게 적합한 運動이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 2年 지났을 때 親舊가 自國으로 돌아가는 外國人으로부터 自轉車를 사 왔는데 그게 MTB였죠. 제가 자주 빌려 탔고 結局 제 것이 됐죠. 제 自轉車 人生의 始作입니다.”김규만 굿모닝韓醫院 院長(66)은 1986年 처음 MTB를 接한 뒤 40年 가까이 自轉車를 타며 全 世界도 누비고 있다. 올 설 連休 때 自轉車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와 메디나를 巡禮했다. 이슬람의 聖地를 다녀온 것이다. 지난해엔 가톨릭 聖地 포르투갈 파티마와 스페인 산티아고를 疾走했다.“길 없는 길을 가는 게 MTB의 魅力입니다. 우리는 定해진 道路로만 다니죠. 그런데 MTB는 길 없는 곳을 달릴 수 있죠. 過去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을 MTB를 타고는 갈 수 있습니다. 自轉車를 타고 山을 달린다고 想像이나 해봤습니까?”스포츠와는 事實上 담을 쌓고 지내던 金 院長은 26歲 때 大學 山岳部와 요트部에 들어가 요트 세일링, 윈드서핑, 巖壁 氷壁 宗主 登攀 等을 즐기고 있었다. MTB는 오르막을 오를 때 心臟이 터질 것 같은 ‘오르가즘’을, 내리막을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疾走할 땐 즐거운 ‘內里街즘’을 줬다. MTB는 그를 새로운 世上으로 案內했다. 以後 새로운 刺戟을 주는 冒險을 찾아다녔다. 행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날았고, 山岳 스키와 急流 카약도 탔다. 1988年엔 몇 달 동안 海外 背囊旅行을 다녀왔다. 그는 MTB 1世代이자 海外 背囊旅行도 1世代다.산악회 先後輩들이 에베레스트 登頂 遠征팀을 꾸린다는 消息에 合流해 1991年 네팔로 날아갔다. 그는 “當時 8000m까지만 올랐지만 내가 告訴 適應 能力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高山 登攀 經驗이 있는 사람들보다 짐도 잘 들고, 移動 速度도 빨랐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自信感을 얻었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登攀을 하면서 네팔의 劣惡한 醫療 環境을 切感했다. 1993年 韓醫師 4名이 모여 ‘大寒한放海外醫療봉사단(KOMSTA)’을 結成해 네팔을 찾았다. 初代 丹粧을 했고 只今까지 네팔, 中央아시아 等 海外 奧地를 다니며 機會가 있을 때마다 醫療 奉仕를 하고 있다.1994년 印度 最北端 히말라야山脈이 지나가는 古代 王國 라다크를 MTB 타고 세 次例 橫斷과 宗團을 試圖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海拔 3000~5000m 고개에 數없이 挫折했지만 非夢似夢, ‘苦難에 살고, 安樂에 죽는다(生於苦難, 死於安樂)’는 精神으로 約 800km를 달렸다. 以後 ‘世界의 지붕’ 티베트 高山地帶 1800km를 縱斷했다. 中央아시아 타클라마칸 沙漠, 4個의 巨大 山脈을 지나야 하는 카라코룸 하이웨이 等도 MTB 두 바퀴로 달렸다. 100km 울트라마라톤과 鐵人3種 哲人코스(水泳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도 數次例 完走했다. 記錄을 얘기하자 그는 “내게는 몇 時間에 完走했는지 記錄은 크게 重要하지 않다. 記錄은 어느 程度까지는 訓鍊時間에 比例하기 때문이다. 내가 本業과 다양한 일을 하면서 最善을 다해 完走했다는 것이 意味 있을 뿐”이라고 했다.“고통(陰)이 極에 達하면 喜悅(陽)이 됩니다. 陰極仕樣(陰極似陽), 마라톤에서는 러너스하이라고 합니다. 이런 經驗을 하면 못 잊죠. 韓醫師가 참 답답한 職業입니다. 每日 診療 봐야 하는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죠. 뻔한 日常에서 재밌게 逸脫하는 方法이 있어야 합니다. 저를 끝까지 몰아붙여 精神을 번쩍 나게 하는 것도 方法 中 하나입니다.”남들이 가지 않는 奧地에서 페달을 밟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후회하는 거죠. ‘내가 미쳤지’라며. 맛있는 三겹살에 燒酒를 마시고 싶은데…. 가만히나 있을 걸 왜 사서 苦生을 할까?라며. 하지만 어느 程度 時間이 지나면 快樂을 느낍니다. 이렇게 말하면 異常해 보일 수도 있지만, 苦痛도 中毒이 됩니다. 마라톤 러너스 下이처럼 運動을 했을 때 나타나는 身體的인 스트레스로 인해 幸福感이 發現됩니다. 모든 運動은 苦痛을 隨伴하지만 어느 瞬間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입에 단 藥은 오래 먹을 수 없지만 쓴 藥은 오래 먹을 수 있습니다. 飮食을 먹을 때 소금이나 소스만 따로 먹으면 짜고 毒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飮食을 먹을 수 없죠. 우리 人生에서 苦痛은 소금이나 소스와 같은 겁니다. 삶이 再整備되고 活氣次期 위해서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김 院長은 冊도 많이 썼다. 2010年 ‘怪짜 韓醫師의 眞짜 MTB이야기’라는 副題를 달아 펴낸 ‘올댓 MTB’라는 冊은 MTB의 敎科書로 通했다. ‘산띠아고에 太陽은 떠오르고’,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마지막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라!-티베트 自轉車 奇行’ 等 다양한 冊을 出刊했다. 金 院長은 KOMSTA 醫療奉仕를 하며 自身이 直接 開發한 施術法을 施行하고 알려주고 있다. ‘所聞鍼法’과 ‘骨盤矯正 治療法’, 그리고 ‘올리브(All+Live) 健康法’이다. 金 院長은 朝鮮 末期의 大學者로 ‘素問大要(素問大要)’를 펴낸 夕哭 이규준의 弟子 무위당 이원세를 스승으로 모시고 ‘所聞學會’에서 活動했다. 그리고 沙巖鍼法을 素問大要의 理論에 맞게 進化시킨 ‘所聞鍼法’을 創案했다. 그는 “所聞鍼法이 單純하면서 效果가 直放인 鍼術”이라고 말한다. 海外는 勿論 國內에서도 機會만 되면 醫療 奉仕를 하고 있다.골반교정 治療法은 뼈와 關節과 筋肉에 對한 解剖學을 基本으로 카이로프라틱, 推拿 分野의 在野 高手들을 찾아다니며 배운 技術과 理論을 더하고 빼면서 完成했다. 그 核心은 우리 몸의 中心인 骨盤이 틀어져서 萬甁이 생긴다는 거다. 그가 骨盤을 바로잡는 方法은 좀 過激하고 暴力的이다. 腰痛, 關節痛 같은 痛症 患者를 눕혀놓고 엉덩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두들겨 팬다. 그렇게 해서 骨盤이 똑바로 자리 잡으면 脊椎가 바로 서고, 上體 下體의 均衡이 잡혀 痛症이 사라진다고 했다.“이 治療法이 겉모습은 宏壯히 暴力的이에요. 틀어진 뼈를 발로 막 車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그런데 그렇게 한 5分만 바로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效果가 나타납니다. 骨盤이 똑바로 자리 잡으면 脊椎가 바로서고, 上體 下體 몸 全體의 均衡이 잡힙니다.”김 院長은 所聞鍼法, 骨盤學을 包含한 自身의 모든 韓醫學的 經驗과 健康法을 通稱해 ‘올리브 健康法’이라고 부른다. 올리브 ‘모두가 살고, 모두를 살린다’는 뜻으로 그가 作名했다. 걷기, 달리기, 눕기, 呼吸法 等 언제 어디서든 生活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具體的이고 實踐 可能한 方法들을 담았다. 여기서 가장 重要한 워킹. 어깨와 骨盤을 反對 方向으로 交叉시키면서 걸어야 骨盤이 바로 잡힌다고 한다. 이런 걷기法을 그는 올리브 워킹이라고 한다.김 院長은 한때 車 없이 自轉車와 두 발로만 다녔다. ‘化石 燃料 태우면서 快速으로 달리는 것보다 좀 늦더라도 내 肺와 心臟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只今은 車가 있지만 ‘마이카時代’에 家族들은 한동안 車 없는 不便함을 甘受해야 했다.“제가 家族들로부터 얼마나 迫害를 많이 받았겠어요. 亦是 大衆의 時計에 맞추는 게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車를 샀고 家族들도 便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낮 밤 가리지 않고 時間 날 때마다 自轉車를 탄다. 狀況에 따라 MTB와 로드 사이클, 미니벨로를 탄다. 韓議員이 있는 서울 恩平區 불광역에서 불광천을 타고 내려가서 漢江을 따라 上流 下流로 달리다 보면 다양한 河川과 連結된다. 洞네 隣近 野山과 백련산, 安山, 北漢山 等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가까운 거리는 두 발로, 더 먼 距離는 自轉車를 타고 다닌다.김 院長에게 自轉車 타기는 熟考의 時間이다. 그는 “自轉車는 여럿이 함께 달려도 事實 혼자 간다. 和而不同(和而不同)이다.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人間은 反省하고 悔改하는 時間이 必要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에 對한 고마움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最近 宗敎에 相關없이 巡禮길을 많이 다니고 있는 理由다. 巡禮者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을까를 생각하며 달린다. 그는 “앞으로 10年은 더 自轉車 海外 투어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1年에 한 番은 約 보름 韓醫院 門을 닫고 海外로 나간다. 그는 “自轉車 타며 숱하게 넘어져 다쳤지만 多幸히 管理를 잘해 아직은 몸이 탄탄하다”며 웃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3-02
    • 좋아요
    • 코멘트
  • “自轉車 타고 世界 곳곳 疾走 30年… 10年은 더 가야죠!”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김규만 굿모닝韓醫院 院長(66)은 올 설 連休 때 自轉車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와 메디나를 巡禮했다. 이슬람 聖地를 다녀온 것이다. 지난해엔 가톨릭 聖地인 포르투갈 파티마와 스페인 산티아고를 自轉車 타고 疾走했다. 1986年 처음 山岳自轉車(MTB)를 接한 그는 40年 가까이 自轉車를 타며 全 世界도 누비고 있다. “1984年 美國 週刊誌 ‘타임’에서 MTB를 처음 봤어요. ‘내 適性에 딱 맞는 運動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리고 2年쯤 지났을 때 親舊가 自國으로 돌아가는 外國人에게서 自轉車를 사 왔는데 그게 MTB였죠. 제가 자주 빌려 탔고 結局 제 것이 됐죠. 제 自轉車 人生의 始作입니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게 MTB의 魅力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定해진 道路로만 다닌다. 그런데 MTB는 길 없는 곳을 달릴 수 있다. 過去엔 걸어서만 갈 수 있었던 곳을 갈 수 있는 게 MTB의 長點”이라고 했다. 스포츠와는 事實上 담을 쌓고 지내던 그는 26歲 때 大學 山岳部와 요트部에 들어가 登山과 윈드서핑 等을 즐기고 있었다. 오르막에선 心臟이 터질 것 같고 바람을 가르며 疾走하는 내리막에선 즐거움을 주는 MTB는 그에게 新世界였다. 以後 새로운 刺戟을 주는 冒險을 찾아다녔다. 행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날았고, 山岳 스키도 탔다. 1988年부터는 海外 背囊旅行도 다녔다. 山岳會 先後輩들이 에베레스트 登頂 遠征팀을 꾸린다는 消息을 듣고 合流해 1991年 네팔로 날아갔다. 그는 “當時 8000m까지만 올랐지만 내가 告訴 適應 能力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高山 登攀 經驗이 있는 사람들보다 짐도 잘 들고, 移動 速度도 빨랐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自信感이 생겼다”고 했다. 네팔을 訪問한 뒤 現地의 劣惡한 醫療 環境을 보고 1993年 ‘大寒한放海外醫療봉사단’(KOMSTA)을 만들었다. 初代 團長을 지냈고 只今까지 네팔, 中央아시아 等을 다니며 醫療 奉仕를 하고 있다. 1994年부터 티베트 古代 王國인 라다크를 MTB 타고 3回나 橫斷과 宗團을 試圖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海拔 3000∼5000m 고개에 數없이 挫折했지만 約 800km를 달렸다. 以後 ‘世界의 지붕’ 티베트 高原 1800km를 縱斷했다. 中央아시아의 타클라마칸 沙漠 宗團, 4個의 巨大 山脈을 지나가는 카라코룸하이웨이 等도 MTB 두 바퀴로 달렸다.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鐵人3種 哲人코스(水泳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도 여러 番 完走했다. 記錄을 얘기하자 그는 “몇 時間에 完走했느냐는 重要하지 않다. 내가 本業이 따로 있는데도 訓鍊해 最善을 다해 完走했다는 게 意味 있을 뿐”이라고 했다. “苦痛이 極에 達하면 喜悅이 됩니다. 그것을 한番 느끼면 못 잊죠. 韓醫師가 참 답답한 職業입니다. 每日 진료해야 하는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뻔한 日常에서 재밌게 逸脫하는 方法이 있어야 합니다. 저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 正말 精神이 번쩍 나는 일이죠.” 金 院長은 한때 車 없이 自轉車와 두 발로만 다녔다. ‘化石燃料 태우면서 快速으로 달리는 것보다 좀 늦더라도 내 肺와 心臟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只今은 車가 있지만 한동안 家族들은 車 없는 不便함을 甘受해야 했다. 그는 낮밤 가리지 않고 時間 날 때마다 自轉車를 탄다. 狀況에 따라 MTB와 로드 사이클, 미니벨로를 탄다. 韓議員이 있는 서울 은평구에서 불광천으로 나가 漢江 창릉천 等을 돌아오거나 北韓産 백련산 安山 等을 隨時로 오르내린다. 가까운 거리는 두 발로, 더 먼 距離는 自轉車를 타고 간다. 金 院長에게 自轉車 타기는 熟考의 時間이다. 그는 “自轉車는 여럿이 함께 달려도 事實 혼자서 간다. 많은 생각을 한다. 人間은 反省하며 悔改하는 時間이 必要하다.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에 對한 고마움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最近 宗敎에 相關없이 巡禮길을 많이 다니는 理由다. 巡禮者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을까 생각하며 달린다. 그는 “앞으로 10年은 더 自轉車 巡禮를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숱하게 넘어지고 다쳤지만, “아직은 몸이 탄탄하다”면서 웃었다.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29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漢江邊 맛집을 꿸 程度로 달렸다, 18kg이 사라졌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트레일러닝 하는 親舊들이랑 北漢山 白雲臺에 올랐는데 제가 살이 쪄 헉헉거리며 힘들게 오르내리자 놀리는 겁니다.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一種의 侮蔑感이 느껴졌어요. 當時 體重이 98kg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죠.”박상현 카카오모빌리티 마케팅 室長(49)은 4年餘 前 일을 回想하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動機야 어떻게 됐든 現在는 18kg을 減量하고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完走하는 健脚으로 탈바꿈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 大會에 함께 出戰하며 절 놀린 親舊들에게 ‘너희가 준 侮辱感 때문에 달렸다’고 하자 記憶을 못 했다. 개구리는 맞아 죽어도 돌 던진 사람은 記憶 못 한다고…. 어쨌든 只今은 그 親舊들과 즐겁게 달리고 있다”고 했다. 朴 室長은 2018年 서울 南山 道路에서 사이클을 타다 뒤에서 오는 車에 치여 크게 다쳤다. 왼쪽 어깨뼈가 부러져 手術까지 받았다. 그 後 트라우마가 생겨 여섯 臺나 되던 自轉車를 다 팔았다. 거의 每日 타던 自轉車를 안 타니 體重이 불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擴散되던 2020年 親舊들 놀림을 받은 뒤 걷고 달린 것이다.“서울 漢江으로 나가 걷기부터 始作했어요. 코로나19街 氣勝을 부려 피트니스센터 等 室內 스포츠 施設은 閉鎖되던 때였죠. 道路, 公園, 産銀 例外였어요. 하지만 달리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달린다고 했는데 1km當 10分 걸렸죠. 事實上 걷다시피 한 것입니다. 그래도 每日 달렸어요. 그러자 살이 빠지기 始作했습니다. 달리는 速度도 빨라졌죠. 한 3年 달리니 15kg이 빠졌어요. 2年間 혼자 달리다 親舊들과 함께 달렸습니다. 同好會에 加入한 것은 아니고 절 놀렸던 親舊들, 그리고 學校 親舊들, 社會 親舊들이랑 달리고 있습니다.”지난해부터 大會에 出戰했다. 지난해 3月 한 마라톤 大會에서 42.195km 풀코스에 처음 挑戰했다. 그는 “날 테스트해보고 싶었는데 힘들어 32km地點에서 抛棄했다”고 했다. 4月 하프마라톤을 1時間47分28秒에 完走했다. 그리고 11月 풀코스를 4時間46分28秒에 完走했다. 풀코스 첫 完走다.“완주한 뒤 ‘내가 왜 사서 이런 苦生을 했지?’란 생각이 들면서도 ‘아 내가 해냈구나’는 成就感도 느꼈어요. 한 一週日 동안은 온몸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이거 내가 다시 하면 미친놈이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마라톤 大會 參加 接受를 하고 있는 저를 發見합니다. 成就와 後悔의 兩價的 感情이라고 할까요? 풀코스 完走한 뒤 成就感과 後悔感을 同時에 느끼고 다시 挑戰하죠. 繼續 反復하고 있어요.”박 室長은 日常의 스트레스를 解消하려 일찍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다. 大學을 卒業하고 就業했다가 2005年 美國 뉴욕大에서 MBA를 할 때부터 복싱을 始作했다. 歸國해 시티銀行, 애플에 마케팅 매니저를 하면서도 글러브를 놓지 않았다. 너무 激한 運動이 負擔이 돼 40歲를 넘긴 어느 瞬間 복싱을 그만뒀다. 어릴 적 좋아했던 映畫俳優 브루스 里의 절권도를 始作했지만 興味를 끌지 못했다. 約 7年 前부터 사이클을 탔고 재미를 붙였다. 거의 每日 탔고 親舊들이랑 1泊2日 江原道 三陟에서 慶南 固城에서 東海岸을 一周하기도 했다. 그런데 큰 事故를 當하면서 自轉車 트라우마가 생겼고, 結局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이다. 朴 室長의 하루는 달리기로 始作한다. 그는 “每日 새벽 5~7km를 달린 뒤 出勤한다. 어쩌다 안 달리고 出勤하면 하루 終日 몸이 찌뿌드드해 일이 안 된다. 中毒됐다고 할까? 이제 달리는 게 日常이 됐다”고 했다.“사실 每日 달리기가 쉽지는 않아요. 겨울엔 아침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깜깜하고 추워 달리기가 싫어지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 모든 一連의 障礙를 걷어내고 달리면 몸에 熱이 오르고, 氣分이 좋아지죠. 달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이겨내면 成就感을 느끼고 健康도 따라오죠. 마라톤에서 人生을 느낍니다.”한강공원과 南山 北側 散策路를 主로 달린다. 그는 “漢江은 平地라 오르막을 달리고 싶을 땐 南山을 찾는다”고 했다. 南山 北側 散策路는 往復 約 7km 코스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의 訓鍊 코스로 有名하다. 朴 室長은 週末엔 10~15km 長距離를 달린다. 3月 17日 열리는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 풀코스를 準備하는 그는 “大會를 앞두고는 週末에 30~35km를 달린다”고 했다. 풀코스를 完走하려면 30km 以上을 달리는 LSD(Long Slow Distance) 訓鍊이 必須다.박 室長은 이제 달리기 傳道師가 됐다.“처음엔 自轉車를 타고 八堂댐까지 가면서 놀랐죠. ‘車를 탄 게 아닌 내 두 다리로 페달을 밟고 이렇게 먼 곳까지 가다니…’ 자랑스러웠습니다. 只今은 달려서 30km를 넘게 갑니다. 제가 더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달리기는 自轉車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어요. 金錢的 負擔도 적죠. 무엇보다 運動 效果가 좋아요. 自轉車 탈 땐 살이 잘 안 빠졌는데 달리니 확 빠졌어요. 다이어트에 最高입니다.”“주말엔 제가 說得해 뛰고 있는 大學 親舊들이랑 主로 달립니다. 過去 함께 自轉車 탔던 멤버들인데 달리기로 끌어들였죠. 함께 달리는 것도 目的이지만 漢江 周邊 맛집을 定해놓고 그곳까지 달려가 맛있는 飮食을 먹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이제 漢江 近處 맛집, 카페 等은 거의 다 꿰고 있습니다.”박 室長은 日曜日인 2月 18日 새벽 親舊들과 漢江을 달리고 二村漢江公園에 모인 뒤 內臟곰湯이 有名한 龍山 평양집으로 向했다. 그는 “아침이지만 燒酒를 곁들이기도 하는데 달린 뒤 負擔 없이 즐길 수 있는 瞬間이다. 每日 달리니 살찌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제 달리면서 즐길 수 있는 漢江 近處 맛집에 對해 冊을 써도 될 程度”라며 웃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24
    • 좋아요
    • 코멘트
  • “사이클 事故 뒤 運動 못 해 찐 살, 달리기로 18kg 뺐죠”[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박상현 카카오모빌리티 마케팅室長(49)은 2018年 서울 南山 道路에서 사이클을 타다 뒤에서 오는 車에 치여 크게 다쳤다. 왼쪽 어깨뼈가 부러져 手術까지 받았다. 그 後 트라우마가 생겨 여섯 臺나 되던 自轉車를 다 팔았다. 거의 每日 타던 自轉車를 안 타니 體重이 불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擴散한 2020年부터 걷고 달렸다. 只今은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트레일러닝 하는 親舊들이랑 北漢山 白雲臺에 올랐는데 제가 살이 쪄 헉헉距離者 놀리는 겁니다.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一種의 侮蔑感이 느껴졌어요. 當時 體重이 98kg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서울 漢江으로 나가 걷기부터 始作했다. 코로나19 擴散 餘波로 피트니스센터 等 室內 스포츠 施設이 閉鎖되던 때였다. 道路, 公園, 産銀 例外였다. 달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달린다고 했는데 1km에 10分이 걸렸다. 事實上 걷다시피 한 것이다. 每日 달렸다. 그러자 살이 빠지기 始作했다. 달리는 速度도 빨라졌다. 한 3年 달리니 15kg이 빠졌다. 혼자 달리다 親舊들과 함께 달렸다. 그는 “同好會에 加入한 건 아니고 저를 놀렸던 親舊들, 그리고 學校 親舊들, 社會 親舊들이랑 달린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마라톤 大會 풀코스에 挑戰했다. 그는 “나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힘이 들어 32km 地點에서 抛棄했다”고 했다. 4月엔 하프마라톤을 1時間47分28秒에 完走했다. 그리고 11月 42.195km 풀코스를 4時間46分28秒에 完走했다. 풀코스 첫 完州였다. “完走한 뒤 ‘내가 왜 사서 이런 苦生을 했지?’란 생각이 들면서도 ‘아, 내가 해냈구나’ 하는 成就感을 느꼈어요. 한 一週日 동안은 온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파서 ‘내가 이걸 다시 하면 미친놈이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마라톤 大會 參加 申請을 하고 있는 저를 發見합니다.” 朴 室長은 日常의 스트레스를 解消하려 일찍부터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 大學 卒業 後 就業했다가 2005年 美國 뉴욕大에서 MBA 課程을 밟을 때부터 복싱을 始作했다. 歸國해 씨티銀行, 애플 마케팅 매니저를 하면서도 글러브를 놓지 않았다. 너무 激한 運動이 어느 瞬間 負擔이 돼 복싱을 그만뒀다. 어릴 적 좋아했던 映畫俳優 브루스 里의 절권도를 始作했지만 興味를 붙이지는 못했다. 約 7年 前부터 사이클을 탔고 재미를 붙였는데 큰 事故 탓에 結局 마라톤을 하게 된 것이다. “마라톤 大會에 함께 出戰하며 절 놀린 親舊들에게 ‘너희가 준 侮辱感 때문에 달렸다’고 하자 記憶 못하더라고요. 개구리는 맞아 죽어도 돌 던진 사람은 記憶 못 한다고…. 어쨌든 只今은 그 親舊들과 즐겁게 달리고 있습니다.” 朴 室長의 하루는 달리기로 始作한다. 그는 “每日 새벽 5∼7km를 달린 뒤 出勤한다. 어쩌다 안 달리고 出勤하면 하루 終日 몸이 찌뿌드드해 일이 안 된다”고 했다. 週末엔 10∼15km를 달린다. 3月 17日 열리는 서울마라톤 兼 第94回 東亞마라톤 풀코스를 準備하는 그는 “大會를 앞두고는 週末에 30∼35km를 달린다”고 했다. 풀코스를 完走하려면 30km 以上을 달리는 LSD(Long Slow Distance) 訓鍊이 必須다. 朴 室長은 이제 달리기 傳道師가 됐다. 그는 “自轉車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運動靴 신고 나가서 달리면 된다. 金錢的 負擔도 훨씬 적다. 무엇보다 運動 效果가 좋다. 自轉車 탈 땐 살이 잘 안 빠졌는데 달리니 확 빠졌다. 다이어트에 最高”라며 웃었다. 그는 現在 體重 80kg을 維持하고 있다. “週末엔 내가 說得해 뛰고 있는 大學 親舊들이랑 主로 달립니다. 過去 함께 自轉車 탔던 멤버들인데 달리기로 끌어들였죠. 함께 달리는 것도 目的이지만 漢江 周邊 맛집을 定해 놓고 그곳까지 달려가 맛있는 飮食을 먹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이제 漢江 近處 맛집, 카페 等은 거의 다 꿰고 있습니다.” 朴 室長은 18日 새벽 親舊들과 漢江을 달리고 二村漢江公園에 모인 뒤 內臟곰湯으로 有名한 龍山 평양집으로 向했다.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22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틀어진 姿勢, 過運動으로 인한 疲勞…굿볼 하나로 解決”[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유나경 굿볼스튜디오 怒怨店 院長(43)은 태어날 때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나오는 바람에 목에 癒着이 와 苦生을 했다. 목이 한쪽으로 기우는 死境이었다. 이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좋아했지만 專攻까지는 하지 못했다. 목이 오른쪽으로 10cm는 기울었기 때문이다. 19歲 때 오른쪽 목의 胸鎖乳突筋을 잘라내는 手術을 했다. 기울어진 목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바로 잡힌 목을 維持하기 위해 運動도 많이 했다. 特히 목을 꼿꼿이 세우고 하는 발레가 도움이 됐다. 20代부터 발레 재즈를 始作했고 4年 前부터는 굿볼을 始作해 只今은 큰 問題 없이 지내고 있다. 柳 院長은 2022年 한 발레 콩쿠르에서 大賞을 받기도 했다.“수술로 바로잡은 목을 繼續 維持하기 위해 運動이 必要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關心이 많았던 발레와 피트니스를 結合한 발레핏을 工夫하며 直接하고 있었죠. 資格證을 따 다른 사람들도 指導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甚하게 해서인지 몸 여기저기가 아픈 겁니다. 목이 다시 기울지 않게 하기 위해 어깨 가슴 등 쪽 筋肉을 많이 쓰다 보니 過運動이 된 것이죠.”통증을 解決할 方法을 찾다 굿볼을 만났다. 柳 院長은 “그냥 體驗이나 해 보자고 갔는데 神奇하게도 몸이 便安해졌다. 그래서 工夫를 始作했고, 指導者 資格證까지 땄다. 다른 분들에게도 꼭 도움이 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굿볼(Goodball)은 2015年 채널A ‘나는 몸身이다’에서 萬能볼 運動法으로 紹介돼 話題가 됐고, 以後 ‘이동신의 굿볼健康法’으로 一般人들에게 알려졌다. 2004年 아테네 올림픽 國家代表 選手 專擔 治療師였던 李 博士는 스포츠 選手를 비롯해 過使用症候群에 露出된 퍼포먼스 俳優, 樂器 演奏者, 畫家 等 特定 筋肉을 反復的으로 使用하는 사람들의 自家 管理法 開發에 힘쓰다 굿볼 健康法을 만들었다. 當初 이 博士가 醫療陣들에게만 補給하고 있었는데 放送을 통해 一般 國民들에게도 알려진 것이다.굿볼 健康法은 以後 굿볼 메소드로 부른다. 굿볼 메소드는 무릎, 허리, 어깨 等에 생긴 痛症 管理뿐만 아니라 온몸 곳곳에 發生하는 筋骨格系 痛症 管理를 部位別 症狀別로 할 수 있다. 體型 矯正, 慢性疲勞와 스트레스 解消, 美貌 管理까지 할 수 있다. 굿볼 메소드는 痛症 治療에서 注目받는 筋膜弛緩法에서 着眼해 開發한 공 療法으로 공을 利用해 몸의 痛症을 스스로 다스리고 健康을 管理하는 것이 核心이다. 굿볼 메소드는 나이가 들면서 老化의 一環으로 筋骨格系 痛症에 시달리는 中壯年層과 컴퓨터, 스마트폰을 日常的으로 使用하면서 增加하는 거북목 一字목 症候群 等 姿勢 變形으로 苦痛을 겪는 사람들에게 效果的인 自家 管理法이라고 李 博士는 主張하고 있다. 李 博士는 굿볼 아카데미를 만들어 國民들에게 普及하고 있다.유 院長은 굿볼 메소드를 直接 하면서 效果를 제대로 느꼈다. 그는 “목 筋肉을 잘라내면서 다시 筋肉이 생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굿볼 메소드를 持續的으로 實施했더니 다시 筋肉이 생겼다. 발레와 굿볼 메소드를 竝行하면서 시너지 效果를 봤다”고 했다. 그는 “男女老少, 特히 運動을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굿볼 하나로 運動 效果를 줄 수 있다. 5分 굿볼 메소드가 30分 스트레칭 運動 效果를 준다”고 했다. 特히 最近 運動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나타나는 ‘過運動으로 인한 疲勞累積’을 解消시킬 좋은 方法이라고 强調했다.유 院長의 말이다.“우리 몸에서 筋肉이 차지하는 比率은 30~40%고 60~70%에 이르는 要素는 事實 血液을 包含한 水分, 림프, 神經, 뼈 等 다양한 生體 組織입니다. 그런데 30~40%에 該當하는 筋肉의 問題點을 改善해 내 몸에 생긴 各種 痛症과 問題點을 全部 解決하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이런 問題點을 解決하기 위해 移動神 博士님이 카이스트 硏究陣에 依賴해 우리 몸 全體 平均 京都(단단한 程度)를 測定했고, 그 傾倒와 類似한 材質을 찾아내 굿볼을 開發했어요. 굿볼의 傾倒는 41로 우리 몸의 平均 京都 40보다 살짝 높아요. 그리고 이 程度 傾倒는 一種의 基準 字 役割을 하여 人體 어느 곳에 適用하든 人體가 지닌 本然이자 最適의 彈力度에 到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役割을 합니다. 筋肉이 外傷, 刺戟 等으로 收縮하거나 늘어나면 우리 몸은 最適의 基準에서 벗어난 狀態가 됩니다. 이 問題를 解決하려면 우리 몸의 平均 傾倒와 가장 가까운 物質로 問題 部位에 刺戟을 加해 損傷 전 元來의 狀態로 되돌려야 하죠. 그 最善의 物質이 굿볼입니다.”유 院長은 “大部分 運動 마니아들의 境遇 過運動으로 몸에 不便한 곳이 있다. 너무 訓鍊을 많이 해서다. 제 男便도 마라톤狂인데 어느 날 運動場 100바퀴 돌고 와 허리가 아프다며 洞네 마트도 못 갔다. 그래서 제가 굿볼 메소드로 풀어줬더니 男便이 ‘거짓말같이 아주 便安하게 달릴 수 있네’라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柳 院長은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에게도 굿볼 메소드를 實施했다. 柳 院長의 男便은 映畫俳優이자 演劇인 고한민 氏(41)다. 高 氏는 진선규 氏(47) 等 함께 달리고 있던 演藝人들에게도 柳 院長의 굿볼 메소드 體驗 機會를 줬다. 진선규 氏는 訓鍊 및 마라톤 完走 後 굿볼 메소드를 積極 活用하고 있다.“마라톤은 우리 몸에 큰 刺戟을 줍니다. 발, 다리, 허리, 팔…. 42.195km를 달리고 나면 온몸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그것을 풀어줘야 다시 제대로 달릴 수 있죠. 그런데 大部分의 마라토너들이 달린 뒤 몸을 제대로 회복시키지 않고 다시 달립니다. 그래서 여러 곳에 慢性 痛症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스포츠마니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굿볼 메소드가 주는 效果는 다음과 같다.잘못된 習慣이나 姿勢로 오는 慢性 痛症, 過運動으로 인한 痛症은 關節 사이를 좁아지게 하고, 關節의 配置가 非正常的으로 틀어지게 한다. 우리 몸은 關節囊, 血管, 神經, 림프샘이 잘 循環되어야 하는데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血管이 壓迫되면 血液 循環 障礙로 靜脈瘤, 손발 冷症 等이 생긴다. 神經이 壓迫되면 神經 障礙로 坐骨神經痛이나 디스크가 發生한다. 림프샘이 壓迫되면 脂肪과 老廢物 蓄積으로 浮腫 및 肥滿을 誘發한다.단단한 材質로 몸을 비벼 푸는 行爲는 살아있는 筋膜과 림프샘 等에 큰 損傷을 입힐 수 있다. 우리 몸의 70%인 水分의 存在를 認定하고, 筋肉 亦是 이러한 液體 안에서 살아 있는 生體 組織임을 認識해야 한다. 그리고 筋肉을 둘러싼 여러 生體 組織과 血管 神經 림프의 機能이 正常的으로 作用해야 健康을 維持할 수 있다. 只今껏 우리는 몸의 本質을 誤解하고 있었기 때문에 筋膜을 分離한다, 떼어 낸다, 비벼서 푼다. 그러나 우리 몸은 實際로는 面과 面의 槪念이 아니라 空間이라는 3次元 槪念이다. 眞正한 내 몸 管理란 外部 刺戟으로 좁아지고 뒤틀린 우리 안의 3次元 空間을 元來 狀態로 復元하고, 空間을 다시 열어줌으로써 트인 우리 몸의 各種 通路 속에서 生體 組織들이 活潑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로 인해 그 組織들이 지닌 本然의 機能을 復元하는 것이다. 굿볼 메소드가 하는 役割이다.유 院長은 “前 寫經을 고치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었다. 病院 物理治療, 注射療法, 필라테스…. 結局 手術까지 했다. 그러다 굿볼을 만나 새 人生을 살고 있다. 그래서 死境 等 障礙가 있는 사람, 그리고 運動을 接할 수 없는 疏外階層에게 이 方法을 傳해주고 싶다”고 했다.“그냥 굿볼이란 공 하나 가지고 身體 部位에 대고 놀면 됩니다. 80, 90代 어르신부터 나이 어린 꼬마들까지. 勿論 바른 方法으로만 하면 됩니다. 그럼 몸이 便安해지고 健康해집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17
    • 좋아요
    • 코멘트
  • “맨발로 걸은 뒤 파킨슨病이 好轉됐어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2013年 3月 파킨슨病 判定을 받은 박은경 氏(54)는 지난해 8月 이강일 나사렛國際病院 理事長(81)李 맨발로 맨땅을 걸은 뒤 파킨슨病이 好轉됐다는 映像을 봤다. 그리고 맨발 걷기 關聯 映像과 박동창 맨발걷기國民運動本部 會長(72)李 올린 ‘맨발 걷기 效果’에 對한 講義 映像도 다 봤다. 冊도 읽었다. 그리고 바로 집(京畿 富川) 近處 山을 맨발로 걷기 始作했다.“한 團톡房에 누가 이강일 理事長님 動映像을 누가 올려준 거예요. 事實 그동안 맨발로 걸으면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若干 미친 사람들인 줄 알았죠. 그들이 熱心히 걷든 말든 關心이 全혀 없었어요. 그런데 難治病이고 藥도 없는데 좋아졌다는 겁니다. ‘저분이 나랑 같은 病인데 좋아졌다고? 이게 뭐지’ 하며 映像을 본 다음에 맨발 걷기가 뭔지에 對해 찾아봤어요. 그날 밤새 봤어요. 맨발 걷기 理論에 對한 박동창 會長님 講義를 다 보고 다음 날 圖書館에서 冊을 빌렸죠. 土曜日 午前이었는데 박동창 會長님이 쓴 ‘맨발로 걸어라’란 冊을 빌려 折半 程度 보다 바로 더 볼 것 없이 ‘이것은 안 할 理由가 없다’고 생각해 바로 나가서 걸었어요.”지난해 8月 12日이었다. 그때부터 하루도 안 쉬고 맨발로 걸었다. 富川의 원미산 志向産 等을 돌았다. 처음 한 달은 1時間, 그리고 2時間으로 늘렸다. 그는 “1時間으론 不足하다고 해서 늘렸어요. 그러자 眞짜 달라졌다”고 했다.파킨슨병은 腦의 神經傳達物質인 도파민을 分泌하는 細胞들이 破壞되면서 나타나는 中樞神經系 疾患이다. 도파민은 運動 能力이나 感情 等을 調節하는 役割을 해 分泌가 減少하면 無氣力, 憂鬱感 等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손발의 떨림, 몸의 硬直, 不安定한 걸음걸이나 姿勢, 느린 動作 等과 같은 運動 能力 低下 症狀이 따르게 된다.“파킨슨병 患者는 여러 症狀이 있어요. 목과 손, 팔다리에 오는 各種 强直은 勿論 걷다 갑자기 걸을 수 없는 步行 凍結…. 交叉路를 걷다 갑자기 步行 凍結이 와서 道路 中間에 서서 두려움에 떨어 본 적 있나요? 하루 終日 걷지 못한 境遇도 있고, 그런 現象이 週4~5日 나타나죠. 파킨슨病 患者들에게는 늘 있는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男便이 주물러 줘야 움직일 수 있죠. 그런데 70日 程度 걸으니 그런 症狀들이 發生하는 頻度가 줄어드는 겁니다. 症勢도 緩和되고…. 어느 瞬間부터 男便에게 손가락을 주물러 달라고 안 했어요.”사실 朴 氏는 파킨슨病 걸린 뒤 5年 만에 腦에 쇠막대기를 심는 DBS 手術도 받았다. DBS(Deep Brain Stimulation)는 惱心部刺戟術이라고 한다. 藥물療法으로 떨림이 調節되지 않거나, 파킨슨病 患者들이 藥물 副作用으로 以上運動症 等이 나타나면 實施하는 手術이다. 藥으로 調節이 잘 안 될 境遇 받는 手術인데 다른 患者들보다 일찍 받은 것이다. 그런데 只今은 아예 DBS 배터리를 끄고 살아도 生活하는 데 큰 問題 없다고 했다.박 氏는 목에 强直이 와 걸을 때 목이 뒤로 제쳐지는 現象이 있었는데 只今은 사라졌다. 그는 “목 筋肉이 굳어 머리를 뒤로 끓어 당긴다. 正말 보기 안 좋다. 只今은 全혀 問題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파킨슨病이 나은 것은 아니다.“파킨슨병은 惡化가 안 되고 現象 維持만 해도 感謝한 病입니다. 繼續 안 좋아지는 病이죠. 그런데 好轉됐으니 얼마나 기쁜지…. 周圍에서도 제가 좋아지니까 다 놀랍니다. 전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맨발로 걷기만 했어요. 이러니 맨발 걷기를 안 할 수 없죠.”박 氏는 하루 다섯 番 먹던 藥을 네 番으로 줄였다. 그는 “파킨슨病 患者는 運動 細胞가 죽어 降職되면서 발걸음도 못 떼고 行動이 느려진다. 그래서 도파민을 먹는다. 파킨슨病 患者가 藥을 줄였다는 것이 어떤 意味인지는 患者들은 다 안다. 그만큼 좋아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朴 氏는 “이강일 理事長님이 ‘完治는 안 되지만 좋아진다면 맨발로 걸어야 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이강일 理事長은 2023年 8月 12日 ‘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에 “맨발 걷기로 파킨슨病 好轉, 癡呆 豫防에도 도움이 됩니다”로 썼던 人物이다. 이 理事長은 8年 前 파킨슨病에 걸려 苦生했다. 그는 “누웠다 앉는 게 힘들었다. 걷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2022年 9月 知人으로부터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健康이 좋아진다”고 해 原理를 工夫한 뒤 바로 始作했고, 只今은 누웠다 일어나는 것, 걷는 데도 큰 問題 없는 狀態가 됐다. 이 理事長도 “知人의 말을 들은 뒤 박동창 會長이 쓴 ‘맨발로 걸어라’란 冊을 봤다. 그래서 一理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해 걷기 始作했다”고 했다이 理事長은 病院 近處인 仁川 延壽區 청량산을 올랐다. 처음엔 제대로 걷지도 못해 兩쪽에 木발을 짚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걸었다. 每日 하루 2時間30分 以上을 걸었다. 이 理事長의 말이다.“도파민을 먹다 보면 便祕가 생겨요. 그래서 症狀이 甚할 때 도파민 服用量을 늘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맨발로 한 달 程度 걸으니 便祕가 없어진 겁니다. 잠도 잘 왔어요. 前 스트레스 받으면 잠을 푹 못 잤는데 맨발로 걸은 뒤엔 잠도 쉽게 들고 깨지 않고 끝까지 잤어요. 다리 浮腫과 耳鳴症度 사라졌어요. 다리가 자주 부어 腎臟 機能에 異常이 있는 것으로 봤는데 그게 好轉된 것 같습니다. 그 外에도 제가 알 수 없는 몸에 있는 問題點이 해 解決이 된 것 같습니다. 勿論 걷는 것도 便安해졌고. 아직 若干 不便하긴 한데 누웠다 일어나는 것, 걷는 게 아주 좋아졌어요. 完全히 좋아지기까지는 時間이 더 걸려야겠지만 맨발걷기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이 理事長은 맨발 걷기가 老人性 疾患인 파킨슨病, 알츠하이머(癡呆), 腦卒中 等을 豫防할 수 있다고 했다.“이 疾病들은 腦 神經 및 血管에 異常이 있어 온다는 點에서 類似하죠. 그래서 맨발 걷기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癡呆도 好轉될 수는 있는데 癡呆 患者의 意志가 發現되기 쉽지 않아 豫防을 위해 맨발 걷기를 해야 합니다. 파킨슨病과 癡呆, 腦卒中 豫防엔 큰 도움이 됩니다. 重要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믿고 따라 해서 파킨슨病度 好轉됐습니다. 特히 癡呆는 治療보다 豫防이 重要합니다.”박동창 會長에 따르면 맨발 걷기는 다음과 같은 效果를 얻을 수 있다. 맨발로 맨땅을 걸으면 地表面에 놓여 있는 돌멩이나 나무뿌리, 나뭇가지 等 다양한 物質이 발바닥의 各 部位와 相互摩擦하고, 땅과 그 위에 놓인 各種 物質이 발바닥의 各 反四球를 눌러준다. 발바닥 刺戟은 五臟六腑 等 모든 身體器官에 肯定的인 影響을 미친다는 硏究 結果가 古代 中國과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졌다.그리고 접지다. 接地는 맨발로 땅을 밟는 行爲다. 시멘트 아스팔트 等은 效果가 없다. 黃土길이 가장 좋다. 우리 몸에 30~60 밀리볼트의 陽電荷가 흐르는데 맨발로 땅을 만나는 瞬間 0볼트가 된다. 땅의 陰電荷와 만나 中性化되는데 이때 우리 몸에 쌓인 活性酸素가 빠져나간다. 朴 會長은 “元來 活性酸素는 몸의 곪거나 傷處 난 곳을 治癒하라고 몸 自體에서 보내는 防衛軍이다. 治癒하고 나면 活性酸素는 몸 밖으로 排出돼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細胞를 攻擊해 惡性 細胞로 바뀌게 한다. 癌 等 各種 疾病이 活性酸素의 逆機能 탓에 發生하는 것”이라고 說明했다. 맨발 걷기를 하면 活性酸素가 輩出되고 免疫力이 좋아진다는 것이다.박 氏는 지난해 12月 中旬부터 富川 집에서 京畿道 고양시 행주내동 비닐하우스로 出勤한다. 知人의 親舊 비닐하우스를 추운 겨울 동안 빌려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每日 午前 10時에서 11時 到着해 午後 4時까지 걷고 집으로 돌아간다. 몇 사람이 모여 會費를 내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선 個人的으로 걷기도 하고, 體操 및 댄스 時間도 마련해 運營한다. 點心때 함께 여러 飮食을 準備해 나눠 먹는다. 朴 氏는 “이런 재미 너무 좋다”고 했다. 이 비닐하우스엔 朴 氏 外에 2名의 파킨슨病 患者가 걷고 있는데 모두 症勢가 好轉됐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11
    • 좋아요
    • 코멘트
  • 舞踊 敎師에서 보디빌더로… “筋肉 키우고 가꾸는 재미 너무 좋아요”[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更年期가 오니 삶이 좀 無聊해졌어요. 여기저기 몸도 異常하고 힘이 없었죠. 授業하기가 버거웠어요. 가끔 運動을 위해 달렸지만 도움이 안 됐어요. 그래서 PT를 받으며 筋肉을 키웠어요. 그랬더니 몸이 달라지는 겁니다. 姿勢도 좋아지고 活力이 넘치고…. 삶도 즐거워졌죠.”교육 舞踊을 專攻한 뒤 30年 가까이 中高校에서 舞踊 敎師로 일했다. 나이 쉰 살이 가까워지자 更年期 等으로 生活의 패턴이 바뀌어 無氣力해졌다. 그래서 여러 方法을 찾다가 웨이트트레이닝을 始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예퇴직하고 專門 보디빌더로 ‘第2의 人生’을 始作했다. 뒤늦게 筋肉을 키우고 가꾸는 재미에 빠진 김종년 氏(57) 얘기다.2016년 5月부터 本格 筋肉 만들기에 들어갔다. 하루 1時間 30分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金 氏는 “1年이 돼 갈 때쯤 2月 放學을 마치고 學校에 復歸했을 때 헬스클럽 館長이 大會에 出戰할 것을 勸誘했다”고 했다. 慶北 安東의 學校에서 勤務하는 그는 週末과 放學 땐 大邱 집에서 지냈다. 約 2個月 하루 3時間 以上씩 訓鍊해 出戰했다.2017년 4月 慶北 義城에서 열린 慶北道知事機 生活體育 보디빌딩&뷰티바디 大會에 出戰해 女子部 뷰티바디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그는 “나이 等 區分 없이 參加者 全體가 가리는 競爭에서 1位를 해 저도 놀랐다”고 했다. 舞踊으로 다져진 몸에 筋肉을 입혀서 바로 效果를 봤다는 게 專門家들의 評價다.“자신감이 생겼어요. 周圍에서 繼續 大會에 出戰해보라고 했죠. 그런데 집에서 反對했어요. 事實 저도 처음에는 비키니만 입고 舞臺에 서는 게 쉽지 않았어요. 집에서 反對하는 理由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趣味生活이라고 생각하고 繼續 몸 만들어 地域 大會에 出戰했어요.”바짝 마른 몸이라 體重 變化는 거의 없었지만 平素엔 52kg을 維持했고 大會에 出戰할 땐 50kg까지 빠졌다. 몸이 바뀌자 콜레스테롤 數値가 떨어지는 等 全般的으로 健康도 좋아졌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地域 大會에서 비키니 피트니스 部門에서 1位를 하는 等 入賞은 繼續했다.2020년 名譽退職을 했다. 金 氏는 “50歲가 넘어가니 家族들하고 함께 있는 時間이 所重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退職한 뒤 더 보디빌딩에 邁進했다. 2021年 大韓보디빌딩協會에 選手 登錄도 했다. 그래야 協會 및 YMCA 主催 大會에 出戰할 수 있다. 그해 11月 열린 YMCA大會에서 女子部 비키니 피트니스 +163cm 部門 2位를 했고 2週 뒤 열린 大韓보디빌딩協會 主催 미스터&미즈 코리아 大會에 出戰해 같은 部門에서 優勝했다.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金 氏는 2022年 보디빌딩 國家代表 承認選手로 選拔됐고, 그해 10月 慶北 榮州에서 열린 國際보디빌딩피트니스聯盟(IFBB) 世界피트니스女子選手權 마스터스 비키니 피트니스 45歲 以上富에서 2位를 했다. 1年 뒤 스페인 산타수사나에서 열린 IFBB 世界피트니스選手權大會 및 世界男子보디빌딩選手權大會에 出戰해 마스터스 비키니 피트니스 45歲 以上富에서 2位, 오픈部에서 8位를 했다.“아마 제가 女子部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오픈部에서 全體 8位를 했죠. 그곳에서 나이는 數字에 不過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그동안 運動했던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 自身에게 ‘대견하다’고 稱讚했어요.”무용을 한 게 도움이 됐을까. 韓國 舞踊을 한 그는 “運動으로 보면 完全히 다르다. 舞踊은 몸의 힘을 풀고 始作하는데 보디빌딩은 온몸에 힘을 주고 始作해야 한다. 다만 舞踊을 하면서 익힌 呼吸法이 보디빌딩할 때 힘을 주고 빼고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김 氏는 이젠 男便 等 家族들의 積極的인 支持를 받고 있으며 親舊들의 부러움도 사고 있다. 그는 “親舊들이 ‘네가 우리들 中 가장 멋진 人生을 사는 것 같다’고 한다. 모두 健康하고 멋진 몸을 만들고 싶지만 筋肉은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說明했다.김 氏를 보고 따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는 “혼자 個人 運動을 하는데 헬스클럽에서 에어로빅 等 GX프로그램을 하던 분들이 PT를 받으며 다양한 器具로 運動한다. 제가 周邊에 좋은 香을 끼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周圍에서 指導해달라는 付託도 자주 받는다.“피트니스센터에서 제가 運動하는 것을 보고 ‘저도 가르쳐주세요’라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鄭重히 辭讓합니다. 보디빌딩은 그냥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몸의 어떤 部位를 어떻게 使用해야 하는지를 正確하게 알고 指導해야 하거든요. 전 아직 指導者 資格證을 따지 않았어요. 指導者의 役割이 따로 있죠. 前 먼저 選手 生活에 集中하고 나중에 指導者 資格證을 딴 뒤 사람들에게 筋肉 키우는 法을 傳授하고 싶습니다.”지금까지 어떤 게 가장 힘들었을까?“모든 게 다 自身과의 싸움이잖아요. 그래서 뭐 어떤 일을 하든지 間에 自己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끈氣 있게 꾸준히 하는 게 重要합니다. 한마디로 성실한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명예퇴직을 일찍 한 게 後悔되지는 않을까?“주위에서는 다들 그렇게 얘기합니다. ‘왜 그렇게 빨리 나왔냐’고. 하지만 제 人生을 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 30年 程度 指導했으면 된 것 아닌가요? 제가 하고 싶은 것에 專念하고 있는 現在가 너무 즐겁습니다.”그는 말했다.“목표는 失敗하면 自愧感이 들 수 있잖아요. 前 目標라기 보다는 挑戰이라고 말하는 게 좋아요. 挑戰은 失敗해도 다시 挑戰하면 되잖아요.”김 氏는 4月 다시 國家代表 選拔戰, 6月 아시아選手權에 挑戰한다.12월 世界女子選手權에도 다시 挑戰할 計劃이다. 勿論 國家代表에 選拔돼야 아시아選手權이든 世界選手權이든 出戰할 수 있다. 그는 “이런 挑戰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原動力이 된다. 그래서 제 삶은 언제나 現在 進行形”이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 2024-02-10
    • 좋아요
    • 코멘트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