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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轉車 타고 티베트高原 가봤나요?… 苦痛도 極에 達하면 喜悅입니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東亞日報

“自轉車 타고 티베트高原 가봤나요?… 苦痛도 極에 達하면 喜悅입니다”[양종구의 100歲 時代 健康法]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2日 12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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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年 美國 時事週刊誌 ‘타임’에서 山岳自轉車(MTB)를 처음 봤어요. ‘내게 적합한 運動이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 2年 지났을 때 親舊가 自國으로 돌아가는 外國人으로부터 自轉車를 사 왔는데 그게 MTB였죠. 제가 자주 빌려 탔고 結局 제 것이 됐죠. 제 自轉車 人生의 始作입니다.”

김규만 굿모닝한의원 원장이 2007년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중국과 파키스탄을 나누는 분수령 쿤제랍패스를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달리고 있다. 여긴 해발 4700m 고지다. 1986년 MTB를 처음 접한 그는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 1800km를 종단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리는 등 매년 해외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김규만 원장 제공.
김규만 굿모닝韓醫院 院長이 2007年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中國과 파키스탄을 나누는 分水嶺 쿤제랍패스를 山岳自轉車(MTB)를 타고 달리고 있다. 여긴 海拔 4700m 告知다. 1986年 MTB를 처음 接한 그는 ‘世界의 지붕’ 티베트 高原 1800km를 宗團했고, 스페인 산티아고 巡禮길을 달리는 等 每年 海外에서 自轉車 旅行을 하고 있다. 김규만 院長 提供.
김규만 굿모닝韓醫院 院長(66)은 1986年 처음 MTB를 接한 뒤 40年 가까이 自轉車를 타며 全 世界도 누비고 있다. 올 설 連休 때 自轉車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와 메디나를 巡禮했다. 이슬람의 聖地를 다녀온 것이다. 지난해엔 가톨릭 聖地 포르투갈 파티마와 스페인 산티아고를 疾走했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게 MTB의 魅力입니다. 우리는 定해진 道路로만 다니죠. 그런데 MTB는 길 없는 곳을 달릴 수 있죠. 過去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을 MTB를 타고는 갈 수 있습니다. 自轉車를 타고 山을 달린다고 想像이나 해봤습니까?”

김규만 院長이 MTB를 타고 疾走하고 있다. 김규만 院長 提供.
스포츠와는 事實上 담을 쌓고 지내던 金 院長은 26歲 때 大學 山岳部와 요트部에 들어가 요트 세일링, 윈드서핑, 巖壁 氷壁 宗主 登攀 等을 즐기고 있었다. MTB는 오르막을 오를 때 心臟이 터질 것 같은 ‘오르가즘’을, 내리막을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疾走할 땐 즐거운 ‘內里街즘’을 줬다. MTB는 그를 새로운 世上으로 案內했다. 以後 새로운 刺戟을 주는 冒險을 찾아다녔다. 행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날았고, 山岳 스키와 急流 카약도 탔다. 1988年엔 몇 달 동안 海外 背囊旅行을 다녀왔다. 그는 MTB 1世代이자 海外 背囊旅行도 1世代다.

山岳會 先後輩들이 에베레스트 登頂 遠征팀을 꾸린다는 消息에 合流해 1991年 네팔로 날아갔다. 그는 “當時 8000m까지만 올랐지만 내가 告訴 適應 能力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高山 登攀 經驗이 있는 사람들보다 짐도 잘 들고, 移動 速度도 빨랐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自信感을 얻었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登攀을 하면서 네팔의 劣惡한 醫療 環境을 切感했다. 1993年 韓醫師 4名이 모여 ‘大寒한放海外醫療봉사단(KOMSTA)’을 結成해 네팔을 찾았다. 初代 丹粧을 했고 只今까지 네팔, 中央아시아 等 海外 奧地를 다니며 機會가 있을 때마다 醫療 奉仕를 하고 있다.

김규만 원장이 MTB를 타고 산을 넘고 있다. 김규만 원장 제공.
김규만 院長이 MTB를 타고 山을 넘고 있다. 김규만 院長 提供.
1994年 印度 最北端 히말라야山脈이 지나가는 古代 王國 라다크를 MTB 타고 세 次例 橫斷과 宗團을 試圖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海拔 3000~5000m 고개에 數없이 挫折했지만 非夢似夢, ‘苦難에 살고, 安樂에 죽는다(生於苦難, 死於安樂)’는 精神으로 約 800km를 달렸다. 以後 ‘世界의 지붕’ 티베트 高山地帶 1800km를 縱斷했다. 中央아시아 타클라마칸 沙漠, 4個의 巨大 山脈을 지나야 하는 카라코룸 하이웨이 等도 MTB 두 바퀴로 달렸다.

100km 울트라마라톤과 鐵人3種 哲人코스(水泳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도 數次例 完走했다. 記錄을 얘기하자 그는 “내게는 몇 時間에 完走했는지 記錄은 크게 重要하지 않다. 記錄은 어느 程度까지는 訓鍊時間에 比例하기 때문이다. 내가 本業과 다양한 일을 하면서 最善을 다해 完走했다는 것이 意味 있을 뿐”이라고 했다.

김규만 院長(오른쪽)李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달리다 포즈를 取했다. 김규만 院長 提供.
“苦痛(陰)이 極에 達하면 喜悅(陽)이 됩니다. 陰極仕樣(陰極似陽), 마라톤에서는 러너스하이라고 합니다. 이런 經驗을 하면 못 잊죠. 韓醫師가 참 답답한 職業입니다. 每日 診療 봐야 하는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죠. 뻔한 日常에서 재밌게 逸脫하는 方法이 있어야 합니다. 저를 끝까지 몰아붙여 精神을 번쩍 나게 하는 것도 方法 中 하나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奧地에서 페달을 밟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後悔하는 거죠. ‘내가 미쳤지’라며. 맛있는 三겹살에 燒酒를 마시고 싶은데…. 가만히나 있을 걸 왜 사서 苦生을 할까?라며. 하지만 어느 程度 時間이 지나면 快樂을 느낍니다. 이렇게 말하면 異常해 보일 수도 있지만, 苦痛도 中毒이 됩니다. 마라톤 러너스 下이처럼 運動을 했을 때 나타나는 身體的인 스트레스로 인해 幸福感이 發現됩니다. 모든 運動은 苦痛을 隨伴하지만 어느 瞬間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사람은 입에 단 藥은 오래 먹을 수 없지만 쓴 藥은 오래 먹을 수 있습니다. 飮食을 먹을 때 소금이나 소스만 따로 먹으면 짜고 毒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飮食을 먹을 수 없죠. 우리 人生에서 苦痛은 소금이나 소스와 같은 겁니다. 삶이 再整備되고 活氣次期 위해서 必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규만 院長이 海外에서 自轉車를 타다 포즈를 取했다. 김규만 院長 提供.
金 院長은 冊도 많이 썼다. 2010年 ‘怪짜 韓醫師의 眞짜 MTB이야기’라는 副題를 달아 펴낸 ‘올댓 MTB’라는 冊은 MTB의 敎科書로 通했다. ‘산띠아고에 太陽은 떠오르고’,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마지막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라!-티베트 自轉車 奇行’ 等 다양한 冊을 出刊했다.

金 院長은 KOMSTA 醫療奉仕를 하며 自身이 直接 開發한 施術法을 施行하고 알려주고 있다. ‘所聞鍼法’과 ‘骨盤矯正 治療法’, 그리고 ‘올리브(All+Live) 健康法’이다. 金 院長은 朝鮮 末期의 大學者로 ‘素問大要(素問大要)’를 펴낸 夕哭 이규준의 弟子 무위당 이원세를 스승으로 모시고 ‘所聞學會’에서 活動했다. 그리고 沙巖鍼法을 素問大要의 理論에 맞게 進化시킨 ‘所聞鍼法’을 創案했다. 그는 “所聞鍼法이 單純하면서 效果가 直放인 鍼術”이라고 말한다. 海外는 勿論 國內에서도 機會만 되면 醫療 奉仕를 하고 있다.

김규만 院長(왼쪽에서 두 番째)李 티베트에서 現地人들과 찍은 寫眞. 김규만 院長 提供.
骨盤矯正 治療法은 뼈와 關節과 筋肉에 對한 解剖學을 基本으로 카이로프라틱, 推拿 分野의 在野 高手들을 찾아다니며 배운 技術과 理論을 더하고 빼면서 完成했다. 그 核心은 우리 몸의 中心인 骨盤이 틀어져서 萬甁이 생긴다는 거다. 그가 骨盤을 바로잡는 方法은 좀 過激하고 暴力的이다. 腰痛, 關節痛 같은 痛症 患者를 눕혀놓고 엉덩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두들겨 팬다. 그렇게 해서 骨盤이 똑바로 자리 잡으면 脊椎가 바로 서고, 上體 下體의 均衡이 잡혀 痛症이 사라진다고 했다.

“이 治療法이 겉모습은 宏壯히 暴力的이에요. 틀어진 뼈를 발로 막 車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그런데 그렇게 한 5分만 바로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效果가 나타납니다. 骨盤이 똑바로 자리 잡으면 脊椎가 바로서고, 上體 下體 몸 全體의 均衡이 잡힙니다.”

金 院長은 所聞鍼法, 骨盤學을 包含한 自身의 모든 韓醫學的 經驗과 健康法을 通稱해 ‘올리브 健康法’이라고 부른다. 올리브 ‘모두가 살고, 모두를 살린다’는 뜻으로 그가 作名했다. 걷기, 달리기, 눕기, 呼吸法 等 언제 어디서든 生活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具體的이고 實踐 可能한 方法들을 담았다. 여기서 가장 重要한 워킹. 어깨와 骨盤을 反對 方向으로 交叉시키면서 걸어야 骨盤이 바로 잡힌다고 한다. 이런 걷기法을 그는 올리브 워킹이라고 한다.

김규만 院長(왼쪽)에 海外 自轉車 투어를 하다 포즈를 取했다. 김규만 院長 提供.
金 院長은 한때 車 없이 自轉車와 두 발로만 다녔다. ‘化石 燃料 태우면서 快速으로 달리는 것보다 좀 늦더라도 내 肺와 心臟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只今은 車가 있지만 ‘마이카時代’에 家族들은 한동안 車 없는 不便함을 甘受해야 했다.

“제가 家族들로부터 얼마나 迫害를 많이 받았겠어요. 亦是 大衆의 時計에 맞추는 게 맞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車를 샀고 家族들도 便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낮 밤 가리지 않고 時間 날 때마다 自轉車를 탄다. 狀況에 따라 MTB와 로드 사이클, 미니벨로를 탄다. 韓議員이 있는 서울 恩平區 불광역에서 불광천을 타고 내려가서 漢江을 따라 上流 下流로 달리다 보면 다양한 河川과 連結된다. 洞네 隣近 野山과 백련산, 安山, 北漢山 等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가까운 거리는 두 발로, 더 먼 距離는 自轉車를 타고 다닌다.

김규만 院長이 MTB를 타고 疾走하고 있다. 김규만 院長 提供.
金 院長에게 自轉車 타기는 熟考의 時間이다. 그는 “自轉車는 여럿이 함께 달려도 事實 혼자 간다. 和而不同(和而不同)이다.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人間은 反省하고 悔改하는 時間이 必要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에 對한 고마움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最近 宗敎에 相關없이 巡禮길을 많이 다니고 있는 理由다. 巡禮者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을까를 생각하며 달린다. 그는 “앞으로 10年은 더 自轉車 海外 투어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1年에 한 番은 約 보름 韓醫院 門을 닫고 海外로 나간다. 그는 “自轉車 타며 숱하게 넘어져 다쳤지만 多幸히 管理를 잘해 아직은 몸이 탄탄하다”며 웃었다.
양종구 記者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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