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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테남’? 난 ‘테北共和國’에 산다!|주간동아

週刊東亞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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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

넌 ‘테남’? 난 ‘테北共和國’에 산다!

가진 者들의 差別化 欲望이 낳은 江南 噴火 … 테헤란로, 양재천 等 到處가 分斷線

  • 송화선 記者 spring@donga.com

    入力 2016-07-01 16: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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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에서 ‘南쪽’이라는 單語는 ‘北쪽’에 比해 相對的으로 肯定의 意味를 갖는다. 1987年 家族과 함께 脫北한 김만철 氏는 “따뜻한 南쪽 나라에 가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도 漢江 南쪽이 北쪽보다 社會的 選好度가 높다. 그런데 이 잣대를 江南區 안에 들이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압구정동, 淸潭洞, 삼성동 等이 布陣한 ‘江南 北쪽’李 일원동, 紫谷洞, 細谷洞 等이 있는 ‘江南 南쪽’에 비해 땅값, 住居 與件 等 여러 面에서 優越한 것으로 評價받기 때문이다.

    “일원동이 어디 江南이야. 狎鷗亭, 淸潭, 三星, 이렇게 3個 棟 아니면 옛날엔 江南이라고 안 했어요.”



    압구정동은 財力, 대치동은 敎育熱

    1970年代 中盤 只今의 新寺驛 近處 單獨住宅으로 移徙하면서 ‘江南生活’을 始作했다는 한 市民은 20代 總選 結果를 얘기하다 이렇게 말했다. 4月 總選 當時 더불어民主黨 全賢姬 議員은 개포동, 일원동 等이 包含된 ‘江南乙’ 選擧區에서 當選했다. 여러 言論이 ‘江南地域 野黨 議員 誕生’을 떠들썩하게 報道했다. 그러나 이 市民은 “眞짜 江南 사람 치고 거길 江南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別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옛날에는 대치동, 도곡동度 江南이 아니었어요. 只今 봐도 그렇지. 테헤란로 넘어가면 煩雜하고 정신없고…. 完全 딴 洞네 아니오.”



    강남구 압구정동 한 公認仲介士 事務所에서 만난 이 市民의 얘기에, 같이 있던 公認仲介士度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不動産業界 關係者들에 따르면 ‘江南 사람’들이 삼성역, 선릉역, 驛三驛 等을 잇는 테헤란로를 境界로 江南의 南北을 가르기 始作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1970年代 江南 開發이 始作되고 75年 江南區라는 行政區域이 新設된 以來 江南의 權力은 줄곧 北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대표되는 超高價 住宅團地가 續續 들어섰을 때 먼저 자리를 잡은 건 高位官僚와 國會議員, 企業人 等이었다. 新都市의 便宜를 누리면서도 다리(聖水大橋 또는 동호大橋)만 건너면 旣存 都心에 쉽게 接近할 수 있는 立地가 좋은 評價를 받았다는 分析이다.

    反面 ‘大峙洞 銀馬아파트’로 象徵되는 테헤란로 南쪽은 相對的으로 開發 速度가 느렸다. 이미 ‘江南 北쪽’의 權威와 自負心이 完成된 狀態에서 새롭게 造成된 아파트村에 入住한 이들은 醫師, 法曹人 等 專門職 從事者와 大企業 任職員들이었다. 特히 1990年代 後半 外換危機 影響으로 삼성물산이 도곡동에 지은 타워팰리스에 大規模 未分讓 事態가 發生하면서 삼성그룹 關係者들이 大擧 ‘江南 南쪽’에 둥지를 틀었다. 한 入試 컨설턴트는 “江南 南쪽에 사람이 모여드는 時期는 마침 6共和國이 出帆하고 政府의 ‘課外禁止’ 政策이 緩和되면서 段階的으로 學院 受講이 許容되던 時期와 겹친다. 이때 子女를 京畿, 서울, 휘문 等 이른바 ‘名門高’에 進學시키려고 강남행을 擇한 專門職 從事者들이 積極的으로 私敎育業體를 活用하기 始作하면서 江南 南쪽은 ‘점잖은 富村’의 性格을 띠고 있던 江南 北쪽과 完全히 다른 樣相으로 發展하기 始作했다”고 밝혔다. 2000年代 初盤 대치동이 ‘私敎育 1番地’로 名聲을 얻으면서 江南의 分化는 더욱 促進됐다. 子女敎育을 위해 傳貰를 얻어 대치동에 進入한 大田族(대치동 傳貰族)李 늘고, 對峙4棟 等을 中心으로 地方 留學生 等이 多數 居住하는 원룸村까지 생겨나면서 ‘傳統 있는 富者’와 ‘新興 江南 住民’을 區別하려는 試圖가 생겨난 것이다. 이 때문에 江南에서는 테헤란로를 境界로 北쪽과 南쪽을 가르는 ‘테北’과 ‘테남’이라는 單語가 널리 쓰인다고 한다. 限 私敎育業界 關係者는 “一般人 視角에서 보면 대치동에 살든 압구정동에 살든 다 똑같은 江南 사람이고, 大峙洞에서 傳貰를 살아도 分明 富者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差異가 分明히 드러난다”며 “江南에서는 子女가 ‘工夫가 어렵다’고 하면 大峙洞 엄마는 ‘學院을 옮겨보자’고 하고, 狎鷗亭洞 엄마는 ‘네가 留學 갈 때가 됐구나’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돈다”고 밝혔다.

    “굳이 區別하자면 ‘테北’ 사람은 子女의 人性, 리더십을 重要하게 생각해요. 成績이 좋지 않으면 억지로 私敎育을 시키기보다 藝術이나 經營 쪽으로 外國 留學을 보내고, 카페든 레스토랑이든 하고 싶다는 걸 차려주는 쪽이죠. 反面 ‘테남’ 사람은 名門大 進學을 第1 目標로 생각합니다. 요즘 私敎育 過熱의 主犯으로 몰리는 ‘江南엄마’들은 다 ‘테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子女의 未來를 平生 책임질 만큼의 財力이 안 되기 때문에 子女한테 ‘名門大’라는 勳章을 달아주고 自己 앞길을 스스로 開拓하기를 바랍니다.”

    江南에서 ‘入試코치’로 불리는 한 私敎育 專門家의 말이다.



    江南 안의 2等 市民, 3等 市民

    이범 敎育評論家度 著書 ‘우리교육 100門100答’에서 “압구정동이나 淸潭洞 學父母와 相談하다가 ‘집에 돈 좀 있으시잖아요’라고 말하면 그냥 웃음으로 肯定을 表示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大峙洞 學父母에게 같은 말을 하면 正色하면서 否認하는 境遇가 많다”고 밝혔다. 테南에는 “父子는 富者인데 曖昧한 父子, 相續을 통해 自身의 社會經濟的 地位를 子女에게 물려주기는 어려운, 딱 그 程度 規模의 富者”가 많이 산다는 게 李 敎育評論家의 分析이다.

    實際로 江南區가 2月 發表한 ‘2015年 江南區 社會調査’에 따르면 調査 對象 狎鷗亭洞 家口의 65.5%가 月 所得이 500萬 원 以上이었다. 淸潭·三星卷 家口의 60.1%도 月 所得이 500萬 원을 넘었다(그래프 參照). 反面 ‘테남’에 屬하는 驛三·道谷卷 家口의 月 所得 500萬 원 以上 比率은 47.1%에 ‘그쳤고’, 더 南쪽에 있는 一員·水西卷 家口의 境遇는 40.8%의 月 所得이 300萬 원 未滿이었다. 서울市가 最近 公開한 ‘2016 서울서베이 都市政策地表調査’ 結果에 따르면 서울 全體에서 月 所得이 400萬 원 未滿인 家口는 37.2%이다. 卽 江南區 一部 地域은 所得 水準이 서울市 全體 平均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테남’과 이들을 區別하는 또 하나의 境界線이 存在한다. 양재천이다. 한 不動産 關係者는 “같은 江南이라 해도 良才川 以北과 以南은 完全히 다르다. 일원동, 水西洞, 紫谷洞, 細谷洞 等은 ‘江南 안의 江北’”이라고 밝혔다. 一部에서는 大峙洞을 境界로 兩者를 갈라 ‘對北’과 ‘對南’이라는 用語도 使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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