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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 歷代級 現代美術 寄贈作 다 모인다|신동아

성북동에 歷代級 現代美術 寄贈作 다 모인다

三星 等 財界 이어 美術界까지 美術品 寄贈 나서

  • 이광표 西原大 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1-09-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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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健熙 컬렉션으로 關心 커진 美術品 寄贈

    • ‘세한도’包含 305點 作品 寄贈한 손창근

    • 他界하며 自身 作品 寄贈한 서세옥·최만린

    • 各界各層 寄贈으로 풍요로워진 韓國 美術 文化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이광표 제공]

    서울 城北區 貞陵洞에 位置한 ‘城北區립 최만린美術館’. [이광표 提供]

    最近 文化界의 話題는 李健熙 컬렉션 寄贈이다. 旌善의 ‘仁王霽色圖(仁王霽色圖)’, 金弘道의 ‘추성부度(秋聲賦圖)’, 高麗佛畫, 李仲燮의 ‘황소’와 ‘흰소’, 金煥基의 ‘女人들과 缸아리’ 等 寄贈作 2萬6000餘 點은 그 量과 質에서 壓倒的이다. 寄贈받은 國立中央博物館, 국립현대미술관, 大邱美術館, 楊口郡립朴壽根美術館 等은 記念 特別展을 열고 있으며 展示場엔 連日 觀覽客이 몰린다. 觀覽客들은 寄贈作 自體의 美學이나 作品性을 吟味하는 데 그치지 않고 寄贈의 感動을 經驗하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80年代 들어 文化財와 美術品 寄贈이 늘어나기 始作했다. 2000年代 以後 더욱 活性化하면서 하나의 文化로 定着되었다. 寄贈은 感動을 주고 感動은 그 作品의 스토리가 되어 作品의 價値를 높여준다. 文化財·美術品 寄贈이 擴散하면서 寄贈의 形式과 關聯 스토리도 무척 다양해졌다.

    “그럼, 歲寒圖는요?”

    2018年 11月, 한 元老 컬렉터가 文化財 304點을 국립중앙박물관에 寄贈했다. 最初의 한글 書籍인 ‘龍飛御天歌(龍飛御天歌)’ 初刊本(1447), 17世紀 名筆 조문수와 吳竣의 글씨, 旌善·沈師正·金得臣·金正喜·電氣·金秀哲·허련·남계우·장승업·안중식 等 韓國 美術史에 길이 빛나는 作家들의 그림…. 特히 金正喜의 그림 ‘不二禪蘭圖(不二禪蘭圖)’와 글씨 ‘盞서완석루(殘書頑石樓)’가 世上의 耳目을 집중시켰다.

    寄贈者는 企業인 손창근(孫昌根). 올해 나이 92歲인 그는 國內의 내로라하는 文化財 컬렉터 가운데 한 名이다. 2018年 當時 世上 사람들은 孫 先生이 내놓은 寄贈作의 面面에 놀라움을 禁치 못했다. 最高 水準의 컬렉션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는 寄贈에서 除外됐다는 얘기도 言論을 통해 傳해졌다.

    當時 어느 美術界 人士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이제 손창근 先生에게 歲寒圖만 남게 됐군요. 그런데 歲寒圖度 果然 寄贈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對答했다. “제가 손창근 先生의 來歷을 좀 아는데, 몇 年 기다리면 틀림없이 寄贈하실 겁니다. 99.9% 確信합니다!” 그때, 그 사람은 내게 왜 이런 質問을 했고 나는 왜 그렇게 斷定的으로 對答했을까.



    손창근 先生의 寄贈品을 두고 ‘손세기·손창근 컬렉션’(以下 손·손 컬렉션)이라 한다. 아버지 손世紀(孫世基·1903~1983)로부터 물려받은 컬렉션과 아들 孫 先生이 直接 蒐集한 컬렉션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秋史 金正喜의 ‘세한도’(國寶 第180號)도 손·손 컬렉션이다. ‘세한도’는 孫 先生이 아버지 손世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손·손 컬렉션 中에서도 가장 象徵的이다.

    그렇기에 2018年 304點을 寄贈하기로 欣快히 決定하면서도 ‘세한도’만큼은 남겨놓았다. ‘不二禪蘭圖’ ‘盞서완석루’와 같은 傑作들을 내놓았음에도 “그럼 세한도는?”이라는 質問이 나온 것이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그때 ‘孫 先生이 머지않아 국립중앙박물관에 寄贈할 것’이라고 나 나름대로 確信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드러난 孫 先生의 履歷 德分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공개 전시했다. [이광표 제공]

    國立中央博物館은 秋史 金正喜의 ‘세한도’를 지난해 11月부터 올해 4月까지 公開 展示했다. [이광표 提供]

    代를 이어온 寄贈의 歷史

    孫 先生은 2005年과 2010年 두 次例에 걸쳐 國立中央博物館에 컬렉션을 寄託한 바 있다. ‘세한도’는 2010年에 寄託했다. 所有權을 完全히 넘기는 것이 寄贈이라면 寄託은 所有權은 갖고 있되 作品의 管理權을 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寄託받은 機關은 그 作品을 保管하면서 展示 硏究에 活用할 수 있다. 所有權만 所藏者가 갖고 있을 뿐, 다른 權限을 모두 넘겨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寄贈의 前(前) 段階라고 할 수 있다.

    또한 孫 先生은 2008年 國立中央博物館에 硏究 基金으로 1億 원을 快擲했다. 2012年엔 京畿 용인시의 林野 662ha(藥 200萬 坪)를 山林廳에 寄附하기도 했다. 當時 山林廳의 推算에 따르면, 그 市價가 1000億 원臺였다고 한다.

    이어 2017年엔 50億 원臺의 不動産과 現金 1億 원을 KAIST에 硏究用으로 寄附했다. 이뿐이 아니다. 아버지 손世紀는 生前인 1973年과 1974年 西江大 博物館에 古書畵 200餘 點을 寄贈했다. 그런 손世紀·손창근 富者였기에, 게다가 ‘세한도’를 이미 國立中央博物館에 寄託해 놓은 狀況이었기에, 孫 先生이 ‘세한도’를 寄贈할 것으로 充分히 豫測할 수 있었다.

    손창근 先生이 2018年 寄贈 目錄에서 ‘세한도’를 除外한 것은 그 作品을 끝까지 自身의 財産으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워낙 대단하고 象徵的인 作品이기에 暫時만 더 所有權을 維持하면서 ‘세한도’와의 因緣을 整理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結局 2020年 1月, 孫 先生은 自身의 마지막 컬렉션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寄贈했다. 單一 作品으로 보면, 우리나라 寄贈 文化財·美術品 가운데 斷然 最高 作品이라고 할 수 있다.

    世上은 그에게 敬意를 표했다. 政府는 文化勳章 가운데 最高의 榮譽인 金冠文化勳章을 授與했고, 文在寅 大統領은 2020年 12月 孫 先生을 靑瓦臺로 招待해 感謝와 尊敬의 뜻을 傳했다.

    作品 全部 城北區에 寄贈한 서세옥

    2020年 11月 17日 彫刻家 최만린(崔滿麟·1935年生)李 世上을 떠났다. 85歲의 高齡이었지만 比較的 健康한 便이었기에 그의 訃告는 갑작스러웠다. 최만린은 1950年代 末~1960年代 初 가난하던 時節 2年 程度 아나운서로 暫時 일하기도 했지만 이를 除外하면 平生을 彫刻과 함께 살아왔다. 傳統 書藝의 筆法과 東洋的 精神世界를 조각으로 具現했으며, 抽象 彫刻을 통해 韓國 現代彫刻의 새로운 地平을 開拓했다. 조각과 함께한 그의 삶은 늘 熱情的이면서 반듯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哀悼했다.

    한 달 뒤인 2020年 12月 初 韓國畫家 서세옥(徐世鈺·1929年生)의 訃告가 傳해졌다. 遺族들은 “코로나19 防疫 次元에서 家族葬으로 葬禮를 마친 後 別世 事實을 알리게 됐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서세옥은 11月 29日에 世上을 떠난 것이었다. 詩書畫(詩書畵)에 두루 能했던 서세옥은 韓國畫를 現代的으로 再解釋하며 새로운 地平을 열었다. 그런 그의 죽음을 葬禮式이 끝난 뒤에서야 알게 되다니, 美術界는 참으로 慌忙했다. 최만린이 世上을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狀況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韓國 現代美術의 두 巨匠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生을 마쳤다. 그러곤 몇 個月이 지났다. 李健熙 컬렉션 寄贈으로 世上이 떠들썩하던 올해 5月, 놀라운 消息이 傳해졌다. 서세옥의 作品과 그의 蒐集品(컬렉션)을 遺族들이 서울 城北區(城北區립美術館)에 寄贈한다는 消息이었다.

    城北區에 美術館 남긴 최만린

    서세옥이 平生 그린 作品 2300餘 點과 서세옥이 蒐集한 文化財와 美術品 990餘 點. 寄贈作은 서세옥의 美術을 總網羅한다. 特히 人間 群像을 抽象的으로 表現한, 그래서 水墨抽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람들’ 시리즈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드로잉과 殿閣, 그의 詩고(詩稿)까지 包含해 서세옥의 삶과 美術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創作品들이다.

    그가 蒐集한 作品 990餘 點도 興味롭다. 韓國의 近現代期 西洋畫, 朝鮮時代 水墨畫, 中國繪畫, 전각과 各種 文化財 等 서세옥의 趣向과 眼目을 드러내는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特히 정약용(丁若鏞)과 金正喜의 것으로 推定되는 印章이 多數 들어 있다. 매우 興味로운 硏究 資料가 아닐 수 없다.

    서세옥 作品과 서세옥 컬렉션의 寄贈은 李健熙 컬렉션의 寄贈과는 또 다른 意味를 갖는다. 作家가 渾身의 힘을 다해 平生 創作한 作品을, 그것도 한두 點이 아니라 엄청난 量을 寄贈한 것이기 때문이다. 作家 或은 作家의 遺族이 이렇게 많은 量의 創作品을 公共機關에 寄贈한 것은 類例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세옥의 遺族들은 城北區에 寄贈하는 것 以外에 大邱美術館에 作品 90點을, 國立現代美術館에 作品 22點을 寄贈했다. 大邱는 서세옥의 故鄕이다. 이에 앞서 서세옥은 2014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館 開館에 맞춰 代表作 100點을 國立현대미술관에 寄贈하기도 했다.

    서세옥 作品 寄贈 消息이 알려지고 한 달 뒤인 2021年 6月, 최만린 作品 寄贈 消息이 들려왔다. 遺族들이 최만린의 조각과 드로잉 等 作品 443點과 資料 2095件을 城北區에 寄贈한 것이다. 繼續 이어지는 寄贈. 사람들은 “또 城北區!” 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事實 최만린은 이에 앞서 2018年에 自身의 主要 作品 126點을 城北區에 寄贈한 바 있다.

    성북구는 寄贈을 契機로 城北區 정릉동 北韓産 初入 住宅街에 位置한 최만린의 自宅을 買入해 美術館으로 리모델링했다. 바로, 2020年 8月 開館한 ‘城北區립 최만린美術館’이다. 최만린 遺族들은 2021年 5月 大邱美術館에도 作品 50餘 點을 寄贈했다.

    성북동과 貞陵洞서 活動해 온 서세옥·최만린

    최만린과 서세옥의 삶과 美術에는 興味로운 共通點이 있다. 모두 서울 城北區(城北區립美術館)에 作品과 컬렉션을 寄贈했다는 事實이다. 두 사람은 서로 因緣이 깊고 共通點도 많다. 同時代를 風靡한 美術界의 有名 人士였으며, 서울대 美大에서 敎授 生活을 함께 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歲月 성북구에 살면서 創作 活動을 했다. 이들은 老年에 城北區립美術館 設立에 寄與했고, 美術館 運營에도 熱情的으로 參與했다. 성북구의 文化藝術 傳統에 對한 自負心이 대단했고, 그 藝術의 傳統과 風趣 속에서 熱情的으로 創作을 했다.

    두 사람에게 성북구는 單純한 生活空間 以上이었다. 서세옥은 60餘 年 성북구 성북동에 살았다. 한용운, 오세창, 金容俊, 金煥基, 이태준, 조지훈, 김광섭, 전형필, 崔淳雨 等 錚錚한 詩人 墨客과 藝人들이 思惟와 創作 活動을 펼친 곳이다. 서세옥은 1970年代 성북동 언덕에 霧淞再(撫松齋)라는 韓屋을 지어 그들의 藝術魂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곤 끝내 이곳에서 生을 마감했고 自身의 作品을 모두 城北 地域 사람들에게 내놓았다. 이 地域에 對한 서세옥의 사랑은 藝術 創作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78年 城北 地域 美術人들과 함께 城北奬學會를 만들었다. 作品을 販賣한 收益金으로 基金을 마련해 地域 學生들에게 奬學金을 支給하기 위해서였다. 이 奬學會는 只今도 運營되고 있다.

    최만린度 城北區 貞陵洞에서 50年 넘게 살았다. 貞陵洞은 李仲燮, 翰墨, 박경리, 차범석이 藝術 活動을 펼쳤던 곳. 정릉동의 최만린 自宅은 이제 최만린美術館으로 바뀌었다. 末年에 그 變化 過程을 지켜본 최만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한便으론 감격스러웠을 것이고 한便으로는 아쉬웠을 것이다. 自身이 살던 집이 自身의 이름이 들어간 美術館으로 바뀌고 거기 自身이 寄贈한 作品들이 保管 展示되고….

    그런데 최만린美術館이 開館하고 不過 3個月 만에 최만린은 世上을 떠났다. 지난해 11月 최만린 殯所에서 俳優 최불암 氏를 만난 적이 있다. 최불암 氏는 최만린의 손아래 同壻多.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형님은 최만린美術館 開館을 매우 熱望하셨지요. 그 過程에서 모든 基(氣)를 쏟아붓는 것 같았습니다.” 感動的이면서도 참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최만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조각 ‘이브 58-1’. 현재는 성북구 최만린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최만린의 代表作 中 하나인 조각 ‘이브 58-1’. 現在는 城北區 최만린美術館이 所藏하고 있다. [城北區립美術館 提供]

    寄贈 통해 直接 觀客 만나는 巨匠의 作品들

    最近 우리 文化藝術界는 寄贈을 통해 特別한 經驗을 하고 있다. 그동안 持續的으로 文化財·美術品의 寄贈이 있어왔지만 이렇게 굵직한 寄贈이 同時多發로 이뤄진 境遇도 흔치 않다. ‘세한도’ ‘불이선란’ ‘仁王霽色圖’ ‘황소’ ‘女人들과 缸아리’ 等. 이미 名作으로 評價받아 온 作品이지만 寄贈을 契機로 더 많은 사람과 感動的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최만린과 서세옥의 作品도 마찬가지다. 두 作家의 作品은 이미 그 自體로 韓國 現代美術의 代表作들이지만 最近의 寄贈은 그 作品의 意味와 價値를 더욱 높여주었다. 최만린의 ‘이브’ ‘千(天)’ ‘知(地)’ ‘現(玄)’ ‘아(雅)’ ‘태(胎)’…. 傳統에 뿌리를 두면서도 漸漸 抽象의 世界로 進入한 최만린의 조각들. 언뜻 單純해 보이지만 그건 生命의 根源과 本質에 對한 깊은 探求였다. 오랜 苦悶과 깊은 省察을 土臺로 삶의 여러 側面을 簡潔하게 抽象化함으로써 韓國 現代 彫刻의 새로운 世界를 構築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熾烈해 보인다.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된 서세옥의 수묵화 ‘잠자는 새’. [성북구립 미술관 제공]

    城北區립美術館에 寄贈된 서세옥의 水墨畫 ‘잠자는 새’. [城北區립 美術館 提供]

    서세옥의 ‘구름이 이어지는 空間’ ‘잠자는 새’ ‘기다리는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사람’…. 傳統 水墨畫의 世界를 自身만의 獨特한 抽象的 造形言語로 새롭게 表現한 作品들이다. 水墨과 抽象의 만남은 그 自體로 新鮮한 衝擊이었다. 그건 서세옥만의 勇氣와 省察과 苦惱의 結果였다. 墨線과 餘白으로 만들어낸 人間 群像 시리즈가 서세옥 美術의 象徵이 되고 현대 水墨畫의 代表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의 藝術은 始終 熾烈하고 苦惱 가득한 것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單純 明瞭했다. 寄贈을 通한 共有! 나의 彫刻과 水墨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時代의 것이라는 認識이다. 최만린과 서세옥의 作品들은 이제 作家와 遺族의 손을 떠나 모든 이의 것이 됐다. 特히 自身이 살면서 作業한 作品을 地域社會에 寄贈했다는 것이 더욱 印象的이고 感動的이다. 그들의 길었던 美術 人生에서 2020年, 2021年은 어쩌면 가장 重要한 瞬間이 될지 모른다.

    文化財·美術品 寄贈은 그것을 더 많은 사람과 共有하는 것이다. 최만린과 遺族들의 寄贈 德分에, 우리는 최만린의 空間에서 최만린의 美術을 맘껏 만날 수 있게 됐다. 최만린의 抽象 彫刻은 國立現代美術館, 牡丹美術館 等 곳곳에 所藏돼 있다. 모두 重要하지만 그의 藝術的 熱情과 苦惱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삶의 空間에서 作品을 鑑賞할 수 있다는 것 自體로 感動이 아닐 수 없다.

    최만린美術館에서는 9月부터 ‘최만린 1週期展’이 열린다. 城北區립美術館은 現在 서세옥 寄贈品을 定理 硏究하느라 奔走하다. 이 作業이 어느 程度 마무리돼야 展示가 可能할 텐데, 워낙 그 量이 厖大하다 보니 時間이 꽤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올해 12月 서세옥 1周忌 때엔 學術行事를 먼저 마련할 計劃이다. 성북구와 城北區립美術館은 성북동에 서세옥美術館 建立도 推進한다. 美術館이 建立되면 서세옥 美術의 全貌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寄贈 德分이다. 2021年 韓國의 美術 文化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城北區 #최만린 #歲寒圖 #新東亞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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