兄弟福祉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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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福祉法人 兄弟福祉院
大韓民國 第5共和國 의 一部
位置 부산직할시 北區 주례동 山18番地
發生日 1975年 ~ 1987年
種類 拉致 , 强制 收容所 , 무自由 勞動
死亡者 531名 以上
攻擊者 박인근 (豫備役)
動機 金錢的 利得(支援金 竊取 및 逋脫)

社會福祉法人 兄弟福祉院 (社會福祉法人兄弟福祉院)은 1975年부터 1987年까지 大韓民國 부산직할시 北區 주례동 山 18番地(現在 釜山 사상구 주례동 백양대로 372)에 있었던 强制收容所로, 3,146名이 收容 可能한 大韓民國 最大의 强制 受容施設이었다. 1987年 3月 22日 職員의 毆打로 院生 1名이 숨지고, 이에 35名이 脫出함으로써 그 內部에서 일어난 人權蹂躪이 드러나게 되었다. 1975年 內務部訓令 第410號, 그리고 1986年 아시안 게임 1988年 夏季 올림픽 을 앞두고 大韓民國 政府가 大大的인 浮浪인 團束에 나선 것이 兄弟福祉院 設立의 背景이었다. [1] [2] [3] [4]

兄弟福祉院은 閉鎖 以後, 世上에 떠들썩하게 알려졌지만, 以後 빠르게 잊혔다. 27年 뒤, 1984年 入所하여, 1987年 閉鎖當時 全員措置된 被害者인 한종선이 2012年 5月 國會 앞에서 1人示威를 통해 世上에 알리고, 전규찬과의 共著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의 冊을 통해 兄弟福祉院에서의 實相을 글과 그림으로 證言하며 世上에 알려졌다. 以後 兄弟福祉院眞相糾明을 위한 對策委員會, 兄弟福祉院避해생존자모임이 結成되었다. 2014年 3月 22日, SBS '그것이 알고싶다-홀로코스트 그리고 27年:兄弟福祉院의 眞實'에서는 27年 間 감춰져 온 이 事件의 疑惑과 眞實이 放映되었는데, 이 福祉院에서는 需用者들의 重勞動은 勿論 需用者들에 對한 毆打와 監禁 그리고 性暴行까지 恣行됐으며, 12年 동안 500名이 넘는 人員이 死亡한 것으로 調査되었다. [5]

문무일 檢察總長은 2018年 11月 27日에 한종선氏 等 兄弟福祉院 被害者 30餘名을 만나 "檢察이 外壓에 屈服해 搜査를 早期에 終結하고 말았다는 過去史 委員會의 調査結果를 무겁게 받아 들인다"고 하면서 "檢察이 眞相을 明確히 糾明하였다면 兄弟福祉院 全體의 人權侵害 事實이 밝혀지고, 人權侵害에 對한 適切한 後續措置도 이루어졌을 것"이라며 "被害事實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現在까지 維持되는 不幸한 狀況이 發生한 點에 對하여 마음깊이 謝過드린다"고 했다. [6]

事件 槪要 [ 編輯 ]

부산직할시 北區 주례동 [7] 에 位置한 <釜山 兄弟福祉院>은 浮浪인 先導를 目的으로 해마다 20億 원씩 國庫의 支援을 받고 있는 곳이었다. <釜山 兄弟福祉院>은 浮浪인 先導를 名目으로 驛이나 길거리에서 住民登錄證 이 없는 사람이나 露宿者, 汽車驛에서 TV를 보고 있거나, 市場에서 飮食을 먹던 無辜한 市民 等을 浮浪人으로 생각하고 아무도 모르게 無條件 끌고 가서 不法 監禁하고 强制奴役을 시켰으며, 女性은 强姦 까지 當했다. 抵抗하면 굶기고 毆打하거나 甚至於는 죽이고 暗埋葬까지 했다. 人員數만큼 國家에서 支援金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式으로 12年 동안 無慮 589名이 死亡했고, 一部 屍身은 300~500萬 원에 醫科大學의 解剖學 實習用으로 팔려나갔다. 또한 院長 박인근 (當時 58歲)은 自身의 땅에 運轉敎習所를 만들기 위해 院生들을 祝辭에 監禁했고, 하루 10時間 以上의 重勞動을 시켰다. [8] [2]

兄弟福祉院에서 院生 生活을 하던 사람이 證言한 바에 依하면, 野山에 埋藏된 屍身이 비가 오면 쓸려 내려오는데, 진흙과 사람의 살點이 뒤섞인 것을 아이들이 뭉쳐서 '쫀득이'라고 부르고 먹으며 虛飢를 채우며 너무도 不足한 食事와 間食 때문에 주린 배를 채웠다는 內容도 있었다. [9] 兄弟福祉院에 갇힌 사람들을 調査한 結果, 70%가 家庭이 있는 一般人이었고, 海雲臺에 놀러온 서울大 生과 日本人 도 있었다. [10]

裁判 [ 編輯 ]

1審 [ 編輯 ]

  • 박인근(58歲 兄弟福祉院腸): 懲役 10年, 罰金 6億8千178萬원
  • 김돈영(50歲 兄弟福祉院 總務): 懲役 1年
  • 성태운(48歲 兄弟福祉院 小隊長): 懲役 1年
  • 이충렬(27歲 兄弟福祉院 小隊長): 懲役 3年
  • 주영은(48세 兄弟福祉院 事務長): 懲役 2年, 執行猶豫 3年
  • 임채홍(48歲 兄弟福祉院 小隊長): 懲役 1年, 執行猶豫 2年
  • 박두선(30歲 박인근 아들, 兄弟療養院 總務): 懲役 3年

抗訴審 [ 編輯 ]

大邱高等法院 刑事2部는 特需監禁罪 等 5個 罪目으로 被告人들에 對해 有罪를 認定했으나 情狀을 參酌하여 減輕하면서 박두선에 對해 "아들로 아버지의 犯法行爲에 對해 알고는 있었지만 直接 加擔하거나 幇助한 事實이 없다"고 했다. [11]

  • 박인근: 懲役 4年
  • 김돈영: 懲役 1年
  • 성태운: 懲役 8個月
  • 이충렬: 懲役 1年 6個月
  • 주영은: 懲役 1年, 執行猶豫 2年
  • 임채홍: 懲役 8個月, 執行猶豫 2年
  • 박두선: 無罪

上告審 [ 編輯 ]

大法院 刑事1部(主審 황선당 )는 1988年 3月 9日에 "特殊監禁罪와 刑法上의 政黨行爲의 法理를 誤解한 違法이 있다"며 破棄還送했다. [12]

破棄還送審 [ 編輯 ]

大邱高等法院 第1刑事部(裁判長 정용인 )는 "適法한 許可를 받은 施設로 볼 수 없다는 點에서 强制收用은 監禁罪에 該當한다"고 했다. [13]

  • 박인근: 懲役 3年
  • 김돈영: 懲役 1年

再上告審 [ 編輯 ]

大法院 刑事1部(主審 배만운 )은 1989年 7月 13日 "蔚州事業場에 收容 中인 浮浪人들의 離脫을 防止하기 爲해 就寢時間에 자물쇠로 鐵門을 잠그고 行動의 制限을 한 것은 社會福祉事業 等 法令에 따른 正當한 職務로서 監禁罪가 成立하지 않는다"며 박인근에게 特定經濟犯罪 加重處罰法 橫領罪만 適用하여 懲役 2年 6個月, 김돈영에게 無罪를 宣告한 原審을 確定했다. [14]

非常上告 [ 編輯 ]

문무일 檢察總長은 2018年 11月 20日 兄弟福祉院醬의 特殊監禁罪 等에 無罪를 宣告한 旣存 法院 判決에 對해 當時 兄弟福祉院이 浮浪者 等을 强制收用한 根據가 됐던 1985年 ‘內務部 訓令 410號’ [15] 이 △法律의 委任을 받지 않은 訓令이면서 △浮浪人의 槪念이 至極히 模糊하여 明確性의 原則에 反할 뿐만 아니라 △需用者들의 身體의 自由 및 居住 移轉의 自由를 明白히 侵害하여 過剩禁止原則에 違反되고 身體의 自由를 法에 根據하지 않고 侵害하여 適法節次原則에 反하는 것이어서 ‘法令 違反’이라 判斷하여 大韓民國 大法院 에 非常上告를 했다. [16]

事件 結果 [ 編輯 ]

1987年 當時 重要 事件은 法務部 長官까지 報告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事件은 靑瓦臺 까지 報告하도록 되어 있었다. [17] 이 事件 擔當 檢事는 김용원 이었고, 이 事件으로 인해 <釜山 兄弟福祉院> 院長 박인근 과 職員 주영은(당시 48歲) 等 5名이 拘束되었다. [18] [8] [2] 이 事件은 當時 民主化 進行 過程에서 落後된 大韓民國 內 福祉施設의 水準과 慘狀을 보여줬다. 以後 <釜山 兄弟福祉院>은 없어지고 그 地域에 아파트 團地가 생겼다. [19] 事件을 搜査하던 김용원 檢事는 當時 釜山地方檢察廳 檢事長 이었던 박희태 에게 事件 縮小 및 外壓 等의 指示를 받았다. [20] 院長 박인근은 橫領罪 等으로 가벼운 處罰을 받았을 뿐 不法拘禁, 暴行, 殺人 等에 對해서는 裁判조차 받지 않았다. 院長이 橫領한 國庫補助金이 12億 원에 이르지만 檢察은 7億에 對해서만 起訴하였다. 그는 抗訴審을 거쳐 懲役 2年 6個月型을 宣告받았다. [21]

2005年부터 100億원이 넘는 돈을 社會福祉財團 名義로 貸出 받아 18億 異常을 個人 用途로 使用한 것이 檢察에서 確認이 되어 박인근 院長과 그의 아들은 2014年 裁判을 받는다. [15]

閉鎖 以後 [ 編輯 ]

兄弟福祉院 閉鎖 以後 收容者( 需用者) 들은 露宿者가 되고, 採血(採血) 後 獻血車에서 주는 빵으로 生活한 이도 있었다. 當時 12~15歲의 少年과 少女도 많았는데, 너무 오래 갇힌 채 被動的인 삶을 살아서 社會에 適應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인근은 出所 後 兄弟福祉院 敷地를 賣却하고 旣存에 兄弟福祉院을 再引受하여 1000億 원臺의 財産을 保有하고 있다. [21] 兄弟福祉院 兄弟福祉支援財團 으로 똑같이 存在하며 釜山廣域市 機張郡 鼎冠邑 곰內길 483(달산리 985-2)에 施設을 세웠다. 박인근의 셋째 아들은 이 財團(2014年 2月 社會福祉法人 느헤미야 로 法人名 變更)에 代表로 있으면서 실로암의 집 을 運營하였으며, 2016年 以後 現在 運營하지 않는다. 現在 그자리에는 아파트와 駐洋초等學校 가 있다.

27年 뒤, 1984年 入所하여, 1987年 6月 30日 兄弟福祉院 閉鎖當時 [22] 電源措置된 被害者인 한종선 이 2012年 5月 國會 앞에서 1人 示威를 통해 世上에 알리고, 전규찬과의 共著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지음)의 冊을 통해 兄弟福祉院에서의 實相을 글과 그림으로 證言하며 그 眞相이 世上에 알려졌다. 한便 한종선 外 兄弟福祉院 被害者들은 2013年 12月 24日 國家를 相對로 人權侵害에 對한 眞相 調査와 賠償을 要求했다. 結局 2018年 10月 非常上告 決定이 내려졌다 [23]

한便 이 事件과 關聯해 박인근 院長은 1981年 4月 20日 保健部 國民褒章을 받았고, 1984年 5月 11日 에는 國民勳章 동백장을 받았으나, 2018年 7月 10日 行政安全部 는 '不適切한 徐薰 取消(案)'을 審議·議決해 敍勳을 取消했다. [24] 2018年 10月 現在 檢察位는 이 事件에 非常上告 勸告를 내린 狀態다.

兄弟 育兒院 [ 編輯 ]

兄弟福祉院의 前身으로 세워져 學校를 通學하는 實際 孤兒들과 돈벌이를 目的으로 끌려온 아이들을 區分해서 受容하였다. [17] 美國 에서 支援해주던 後援者들이 찾아오면 하루 동안 새 옷을 입혔으며 그 하루 동안 입힌 새 옷들을 處分하다가 박인근은 拘束되기도 하였다. [17] 育兒 輸出事業度 하며 海外 入養 家庭에 感謝 便紙를 보내서 後援 物品을 보내 달라는 要求를 便紙에서 꼭 하였다고 한다. [17] 그러나 要求事項을 들어주지 않았다.

評價 [ 編輯 ]

兄弟福祉院 裁判에 參與하였던 한 大法院 法官은 不法 監禁이 無罪라는 判決에 對하여 "只今 基準으로는 有罪이며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때는 일어날 수 있었다"고 個人的인 생각을 남겼다. [17]

2015年 SBS '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지난해 大韓民國을 衝擊을 빠뜨렸던 韓國판 홀로코스트 라고 兄弟福祉院을 評價했다. [17]

2019年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兄弟地獄원이라는 字幕을 넣고 最近 復活하고 있는 韓國版 아우슈비츠 라고 評價했다. [25]

한종선 [ 編輯 ]

한종선은 兄弟福祉院 事件의 被害者이자 《살아남은 아이》의 著者이다. 1987年 閉鎖 以後 아무도 믿지 않는 兄弟福祉院 事件을 알리기 위해, 2012年 5月 國會 앞에서 1人 示威를 하던 中 전규찬 敎授를 만나 兄弟福祉院의 實相을 밝힌 冊인 《살아남은 아이》를 發刊하게 되었다. 2012年에 나온 《살아남은 아이》는 1988年에 나온 《兄弟福祉院:生地獄의 낮과 밤》의 뒤를 잇는 兄弟福祉院 被害者의 2番째 冊이다.

關聯 書籍 [ 編輯 ]

  • 김영욱.《兄弟福祉院:生地獄의 낮과 밤》. 廳舍. 1988年 . ISBN 2006466001474
  • 김용원 . 《브레이크 없는 벤츠》. 隸下. 1993年 . ISBN   89-7385-718-5
  • 전규찬 · 한종선 · 박래군 . 《살아남은 아이》. 문주. 2012年 . ISBN   978-89-967670-4-6
  • 兄弟福祉院口述프로젝트, 《數字가 된 사람들-兄弟福祉院 被害生存者 口述記錄집》, 五月醫봄, 2015年. ISBN 978-89-97889-64-8
  • 서울대학교 社會學科 兄弟福祉院硏究팀, 《絶滅과 更生 사이 - 兄弟福祉院의 社會學》, 서울大學校出版文化院, 2021年. ISBN 978-89-521-2955-0

關聯 演劇 [ 編輯 ]

  • 《聖地에서 福祉로》(극단 자갈치(채희완 演出))( 1987年 ) [26]
  • 《우리는 難破船을 타고 琉璃바다를 떠돌았다》(에피소드 스튜디오(張志淵 演出)/第15回 서울邊方演劇祭 公式招請作)( 2013年 ) [27] [28]
  • 《해피투게더》(이수인 演出)( 2013年 ) [29]
  • 《못찾겠다 꾀꼬리》(프로젝트 업라이트)( 2018年 ) [30]

關聯 放送 [ 編輯 ]

再構成한 다큐멘터리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이재근. 釜山 兄弟福祉院 事件 發生 Archived 2014年 11月 29日 - 웨이백 머신 . 每日新聞. 2008年 3月 22日.
  2. 정은주. '누나는 性暴行·아빠는 精神病院行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 한겨레新聞. 2013年 2月 9日.
  3. 김민경. 26年 前 生地獄에서 살아남아 싸우는 아이 . 한겨레新聞. 記事入力 2013年 11月 9日. 記事修訂 2013年 11月 15日.
  4. 정락인. ‘兄弟福祉院 事件’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시사저널. 2016年 11月 17日.
  5. ‘그것이 알고싶다’ 兄弟福祉院, 12年間 513名 死亡…무슨 일이? . 해럴드經濟. 2014年 3月 23日.
  6. “문무일 檢察總長, 兄弟福祉院 被害者에 울먹이며 謝過” . 《www.hani.co.kr》. 2018. 11. 27.  
  7. 事件 當時에는 北區에 屬해 있었다.
  8. 구영식. '人權蹂躪' 兄弟福祉院 死亡者 38名 追加 確認 . 聯合뉴스. 2014年 3月 21日.
  9. “兄弟福祉院 實際 生存淡 입니다 視聽者(수야 님)의 무서운이야기”. 돌비恐怖라디오. 2020.  
  10. “朴正熙?전두환 政權에 잡혀간 市民들은 '浮浪者'로 죽었다” . 프레시안. 2021年 4月 9日.  
  1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1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13.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14.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15. 그것이 알고싶다 932回 兄弟福祉院 홀로코스트, 그리고 27年-兄弟福祉院의 眞實 SBS 2014-03-22
  16. “檢察總長, ‘兄弟福祉院 事件’ 非常上告” . 《韓國日報》. 2018. 11. 20.  
  17. 《977回 兄弟福祉院 다시 1年,, 검은배후는 누구인가》 . 그것이 알고싶다. SBS. 2015年 3月 21日.  
  18.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19.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NAVER Newslibrary》.  
  20. “‘그것이 알고싶다’ 박희태 前 議長 “兄弟福祉院 事件, 記憶 안난다”…당시 釜山高檢長으로 外壓論難” . 《ilyo.co.kr》. 2015. 3. 22.  
  21. 卞相昱, ' 兄弟福祉院 , 國家가 國民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CBS
  22. “‘누나는 性暴行·아빠는 精神病院行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 한겨레新聞. 2013年 2月 9日.  
  23. “釜山 兄弟福祉院 事件 被害者 人權委 集團 鎭靜” . 《news.naver.com》.  
  24. 朴聖敏 (2018年 7月 10日). “5·18 鎭壓子·間諜造作 有功者 等 勳褒章·表彰 무더기 剝奪” . 《聯合뉴스》 . 2018年 7月 10日에 確認함 .  
  25. 《184回 衝擊證言 '兄弟 地獄원'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JTBC. 2019年 2月 7日.  
  26. 極端 자갈치 [1] Archived 2016年 1月 9日 - 웨이백 머신
  27. 서울邊方演劇祭 [2] Archived 2018年 11月 5日 - 웨이백 머신
  28. 月刊 客席 公演評 (評論家 이은경) [3]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29. 박정환. 26年 前, 釜山에 實在했던 '生地獄'을 보여드립니다 . 오마이스타. 2013年 11月 12日.
  30. “[인터뷰] 演劇 演出家 한승훈” . 2018年 11月 4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8年 11月 3日에 確認함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