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개성중學校 暴行 致死 事件

위키百科, 우리 모두의 百科事典.

부산개성중學校 暴行 致死 事件 (釜山開成中學校 暴行事件)은 2005年 10月 1日 午前 10時 50分頃 [1] 釜山廣域市 釜山鎭區 부산개성중學校 에서 최원의(최우석으로 改名)君이 洪某君을 一方的으로 暴行하여 숨지게 한 事件이다. 紅軍은 入院하던 中 10月 5日 에 死亡하였으며 崔君은 11月 1日 에 保釋 釋放되었고 12月 2日 釜山地方法院으로부터 保護處分을 받았다. [2]

事件 槪要 [ 編輯 ]

2005年 10月 1日 午前 10時頃 釜山個性中學校에서 洪 軍은 옆班에서 빌린 數學冊을 갖다주러 갔다가 갑자기 몸을 움직인 崔 君의 어깨를 스쳤다. 1991年生인 崔 君은 中學校 2學年生이었지만 키가 178cm이었다. 주먹으로 周圍 學校까지 平定하던 俗稱 일진 學生이었다. 崔 君은 洪 君에게 스친 理由를 5가지 대라고 했고 한 가지씩 말할 때마다 洪 軍의 가슴을 쳤다. 洪 軍은 돌아서 가려 했는데 崔 君은 洪 軍이 呻吟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自尊心이 傷했던지 洪 軍을 다시 불러 暴行 하였으며 洪 軍의 가슴을 椅子로 찍고 발길질까지 하면서 洪 軍을 意識不明 狀態에 빠뜨렸다. [1] [3]

病院에 入院한 洪 軍은 外傷이 없는 狀態에서 肺가 破裂되었고 蜘蛛膜下出血로 인해 머리 全體에 피가 고여 있어 手術이 時急하였으나 事實上 죽은 狀態와 다름 없는 狀態에서 手術을 할 수 없는 狀況이었고 洪君은 4日 동안 그 狀態로 버티다가 10月 5日 에 死亡하였다.

犯人 [ 編輯 ]

事件 當時 中學校 2學年이었던 加害者 崔 君은 키 178 cm, 體重 70kg의 작지 않은 體軀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成跡도 全校 2等을 할 程度였으며 學校 內外에서 싸움을 잘 하는 것으로 有名한 學生이었다 [4] . 試驗 期間에는 쉬는 時間에 시끄럽단 理由로 班 學生들에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學生들은 化粧室조차 갈 수 없었다. 事件 後 裁判에서 懲役 2年 6個月을 宣告 받았을 때, 釜山地法 5刑事部는 加害者에 對해 少年部 送致 決定을 내렸다. 이에 따라 加害者 崔 君은 刑事處罰 代身 少年法上의 保護處分을 받게 되었다. 또한 被害者 洪 君의 遺族과 合意를 통해 11月 1日 保釋으로 풀려났으며, 住所地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5] 以後 아무런 處罰 없이 大學에 入學을 하였고 軍隊도 다녀 왔다.

被害者 [ 編輯 ]

崔 君에게 暴行당한 洪 軍은 肺가 破裂되어 病院으로 移送되었지만 5日 만에 死亡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원통한 죽음에 敎育廳을 相對로 訴訟을 提起하고 2007年 2月 洪 君이 다니던 學校인 開城中學校의 卒業式날에 아들의 影幀寫眞을 들고 學校에 訪問하였지만 別 成果는 없었다. [6]

洪 軍 父母는 子女가 繼續해서 괴롭힘을 當해왔다는 主張을 펴고 있다. 이들은 "學院에 가야 하는데도 崔 君이 洪 君의 아버지로 假裝해 電話해서 學院에 못 간다고 한 적도 있고, 아파트에 있을 때 찾아와서 門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발로 찬 적도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아들은 崔 군보다 體格이 작은데, 그동안 만나지 말라는 말도 한 적이 있다"면서 "携帶電話 文字 메시지와 學生들의 陳述을 볼 때 繼續해서 괴롭힘을 當해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7]

學校 側의 事件 隱蔽 與否 [ 編輯 ]

學校에서 殺人 事件이 發生 하자 敎師들은 會議를 열었고 어떻게 對處 해야 할지 討論하였다. 放送社에서도 取材를 要請했으나 學校 側에서는 拒否 하였다.사건 以後 被害者 洪 君의 아버지는 學校 側이 問題를 隱蔽하려고만 하고 [8] 公式 謝過도 하지 않았다며 [9] 다른 學校暴力 被害者 父母와 함께 서울特別市 鍾路區 世宗路 政府中央廳舍 앞에서 學校暴力 豫防 對策을 促求하는 記者會見을 열었다.

論難 [ 編輯 ]

學生들의 袖手傍觀 [ 編輯 ]

級友 暴行 事件 當時, 같은 班 學生들은 被害學生이 죽음에 이를 程度의 暴行을 當하는 데에도 보고만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 問題는 崔 君이 洪 君을 無差別로 暴行하고 있었는데에도 말리는 學生이 없었다는 것. 6日 쿠키뉴스는 警察 調査結果를 引用해 "崔 君은 이 學校의 '짱'으로 통하며, 이 學校는 勿論 隣近 學校에까지 所聞이 날 程度로 平素 學院暴力을 일삼아 級友들이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傳했다. [10]

不適切한 對應 [ 編輯 ]

事故 當時 保健敎師 및 生活指導部長은 隣近 病院이 學校 近處에서 乘用車로 1分 距離에 位置하고 있었는데도 不拘하고 洪 君을 소생시키기 위해 아무런 努力도 없이 學校에서 20分이라는 時間을 虛費하였다. [4]

포털 사이트 介入說 [ 編輯 ]

事件 直後 다음 , 네이버 , 야후코리아 等의 포털에서 實名이 公開되자, 포털에서는 關聯 資料들을 削除시켰다. 이 때문에 崔 君의 아버지가 大韓民國의 大企業인 某 포털 사이트의 幹部라는 說이 있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다 [11] . 父親으로 指目된 사람의 아들은 當時 初等學生이었다 [12] . 한便 加害者의 이름이 該當 포털에서 禁飭語로 指定되었지만 業體 社長과 關聯된 글을 削除했다는 것은 否認했다. 이에 對해 포털들이 內部 人士들만을 擁護한다는 二重 잣대 疑惑이 있었다 [13] .

사이버 테러 論難 [ 編輯 ]

事件 當時 加害者의 이름과 寫眞이 인터넷에 公開되었으며, 該當 中學校 揭示板은 非難의 글로 넘쳤다. 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加害者에 對한 거짓 所聞이 急速度로 퍼지는가 하면 인터넷의 匿名性을 利用해 流言蜚語와 造作된 글이 퍼지기도 했다. [14] 加害者 崔君은 被害者 紅軍의 遺家族 側과의 合意로 保釋 釋放되었지만 [5] , 加害者의 反省이 別로 없다는 點이 提起되어 問題가 되기도 했다.

縮小 報道 疑惑 [ 編輯 ]

大韓民國 의 現行 少年法 第68條에는 調査 또는 心理 中에 있는 刑事 事件의 個人情報를 露出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15] 事件 當時에는 言論에서 實名 公開를 하지 않는 것이 適法한 狀況이었다.

加害者의 延世大學校 支援說 [ 編輯 ]

이 事件의 加害者인 崔 君이 2009年 延世大學校 原州 醫科大學 隨時典型에 支援, 合格하여 入學을 기다리고 있다는 所聞이 인터넷에 퍼졌으나, 延世大學校 側은 터무니 없는 루머에 强力히 否認하였다. 또한 홍익대 法大를 다닌다는 所聞도 茂盛하다 [16]

加害者의 態度 [ 編輯 ]

事件 發生 後 加害者는 自身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自身의 미니홈피에 "殺人도 하나의 經驗"이라는 글을 올리는 等 잘못을 反省하지 않는 態度를 보임으로써 많은 論難을 빚었다. 또한 아버지의 權力으로 事件을 덮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反感을 샀다.

氣의 [ 編輯 ]

  • 라마 의 노래 '10月 1日'은 이 事件을 主題로 하는 노래이다.
  • [1]

脚註 및 引用 [ 編輯 ]

  1. “中學生이 班 親舊 毆打해 意識不明” . YTN. 2005年 10月 2日.  
  2. 윤성효 記者 (2005年 12月 2日). “親舊 死亡事件 加害 中學生 少年部 送致” . 오마이뉴스.  
  3. “漫畫冊 보다 싸우던 中學生, 親舊한테 맞아 숨져” . 한겨레. 2005年 10月 5日.  
  4. “釜山 個性中 學生死亡事件… 眞實은?” . 한겨레. 2005年 10月 14日.  
  5. 釜山CBS 박상희 記者 (2005年 12月 3日). “親舊 暴行致死 中學生 刑事處罰代身 保護處分” . 노컷뉴스.  
  6. 윤성효 (2007年 7月 3日). “大法院 "學校暴力, 敎育廳 相對 損害賠償請求 棄却 " . 오마이뉴스 . 2009年 10月 1日에 確認함 .  
  7. 윤성효 記者 (2005年 10月 6日 11:06 KST). “敎室에서 親舊에게 주먹질 當한 中學生 끝내 死亡” . 오마이뉴스.  
  8. 채희창·김형구·우한蔚·나기천 (2007年 3月 7日). " 學校 名譽 毁損될라" 解決은 뒷전 "쉬쉬 " . 世界日報 . 2009年 10月 1日에 確認함 .   (技士 中盤에 있는 洪君의 아버지 寫眞 下段에 言及된 說明)
  9. 안홍기·권우성 (2005年 11月 2日). " 더以上 學校暴力으로 죽는 아이들 생기지 않길 " . 오마이뉴스 . 2009年 10月 1日에 確認함 .  
  10. 釜山 中學生 級友 暴行致死 때 親舊들 袖手傍觀 Archived 2015年 7月 9日 - 웨이백 머신 中央日報 2005.10.06.
  11. 박동휘 記者 (2008年 7月 18日). “최휘영 NHN 代表 "나도 한때 惡性댓글 被害者 " . 韓國經濟.  
  12. 김준모 記者 (2008年 7月 17日). “‘최휘영 vs 진성호’…前職 記者들의 '眞實對決 ' . 世界日報.  
  13. 박동휘 記者 (2008年 8月 7日). “포털에 하소연한 檢察總長” . 韓國經濟.  
  14. 현영준 (2005年 10月 13日). “釜山 한 中學校 暴行事件, 거짓 所聞으로 사이버 테러 論難” . MBC뉴스.  
  15. 少年法 專門 - 大韓民國 國家法令情報센터
  16. 권지현 記者 (2009年 9月 29日). “中學生 敎室 暴行致死事件 加害者가 名門大 進學?” . 디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