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皇 사비니아노
(
라틴語
:
Sabinianus PP.,
이탈리아語
:
Papa Sabiniano)는 第65代
敎皇
(在位:
604年
9月 13日
-
606年
2月 22日
[1]
)이다.
사비니衙奴는
비테르보
隣近의
블레라
에서 태어났다. 로마 敎會의
首席副제
로 敍品받았으며,
敎皇 그레고리오 1歲
의 使節로
東로마 帝國
의
콘스탄티노폴리스
로 派遣되었다. 使節의 任務를 잘 遂行하여 그레고리오 1歲의 信任을 받았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總大主敎
가 스스로 ‘世界 總大主敎’로 稱하자 그레고리오 1世는 사비니衙奴가 너무 妥協的이라고 判明하여 597年 書信에서 “나는 그(總大主敎)가 當身을 속였다고 보며 …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일에 있어서 해야 할 바를 敎皇의 穩全한 權威로 履行하십시오.”라고 하였다. 結局 597年 사비니衙奴는
로마
로 召喚되고 아나톨리우스가 後任者로 派遣되었다.
[1]
사비니衙奴는 604年 9月 13日 敎皇으로 選出되었으며, 9月 13日에 東로마 帝國 皇帝의 承認을 받았다. 그의 짧은 在位는
이탈리아
中部의 飢饉과
랑고바르드族
의 再侵攻으로 混亂의 持續이었다. 《
敎皇 年代表
》에 記錄된 바에 依하면, 로마에 飢饉이 닥치자 사비니衙奴가 市民들에게 穀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能熟하지 못한 經濟 政策으로 사람들의 信望을 잃게 되었다. 1557年
이탈리아
의
아우구스티노會員
오노프리오 判批니오
는 自身의 著書 《로마 敎皇들의 簡略한 歷史》(Epitome pontificum Romanorum)에서
聖務日禱
와
미사
中 盛饌 典禮 때 거양 聖體 때 打鐘하는 慣習을 導入한 것이 사비니아노라고 밝혔다. 이에 對한 最初의 言及은 13世紀
귀욤 뒤랑
의 《聖務日禱서》(Rationale Divinorum Officiorum)에서였다.
[1]
사비니衙奴는 그레고리오 1歲에 비해 不足한 人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똑같이 外勢의 侵入이 닥쳤을 때, 그레고리오 1世와 사비니衙奴의 對處 方式은 相異하게 달랐다. 그레고리오 1世는 穀食 倉庫를 열어서 로마 市民들에게 無料로 나누어 주었던 데 反해, 사비니衙奴는 높은 價格으로 販賣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레고리오 1歲의 一代記를 쓴 傳記作家들이 虛僞로 記載한 것이라는 主張도 있다. 《敎皇 年代表》는 그레고리오 1世와는 달리
基督敎
內 要職을 聖職者들로 가득 채운 것을 사비니衙奴의 業績으로 記載하였다.
[1]
各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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