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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더 넓은 집에 살 自由|新東亞

에세이

‘한 뼘’ 더 넓은 집에 살 自由

  • 박사랑 作家

    入力 2021-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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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는 갑자기 나의 삶에 밀려들었다. 政府는 全 國民에게 집에 있으라 强勸했다. 暫時 거리를 두고 멀어져야 더 가까워질 수 있다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元來 집순이이기 때문에 別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참 가볍게도.

    작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에 있는 時間이 늘자 사람들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잇거리를 찾기 始作했다. 처음으로 試圖한 일은 料理였다. 유튜브에서 가르쳐주는 레시피대로 움직이기도 했고 나름의 創意性을 담아 試圖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내 意欲을 꺾은 要因은 너무나 좁은 부엌이었다. 도마를 쓰려면 말리기 위해 엎어놓은 그릇들을 치워야 했고 菜蔬를 다듬으면 개수臺 구석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인덕션은 한 舊뿐이어서 김치볶음밥을 할 때면 밥을 볶고 치운 뒤 국을 데우고 그것까지 치운 뒤 달걀프라이를 해야 했다. 이 모든 過程을 거쳐 달걀프라이를 얹을 때면 이미 밥은 식어가는 狀態였다.

    그 뒤 配達 飮食으로 延命하다 나는 흘러나온 옆구리 살과 마주하게 됐다. 코로나 確診者가 아니라 ‘확찐자’가 는다더니 나도 그 隊列에 合流하는 것인가. 확찐자의 恐怖가 성큼 다가와 急하게 홈트레이닝을 檢索했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映像이 떴다. 映像에서는 部位別 狀態別로 仔細한 運動法을 알려주었다. 나는 語塞한 몸짓으로 畵面 속 先生님을 따라 했다. 30餘 年間 運動과 동떨어져 살았던 내 몸은 ‘플랭크’(腹筋運動의 一種) 30秒에도 바들거리며 무너졌다. 그러나 危機의 李舜臣에게도 12隻의 배가 있듯 나에게는 計劃만 세우면 이어가는 꾸준함과 誠實性이 있었다.

    어설픈 動作이어도 나는 쉬지 않고 每日 運動했다. 같은 映像을 켜두고 같은 速度로 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되든 안 되든 그냥 했다. 每日 食單을 적었고 運動量을 체크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古代 遺物처럼 숨겨져 있던 허리도 發掘하고 둥글게 말아지던 어깨도 제법 日子에 가까워졌다. 샤워할 때마다 거울에 몸을 비춰보고 稀微한 腹筋의 痕跡에도 호들갑을 떨었다. 只今껏 한 番도 입어보지 않은 크롭티를 購入하고 몸을 조여주는 運動服도 여러 個 具備했다.

    3週間의 運動을 마치고 願하는 허리 사이즈를 完成한 날, 나는 나에게 갓 튀긴 돈가스와 이 시린 麥酒를 사주며 自祝했다. 그리고 곧 다음 運動 計劃을 짜기 始作했다. ‘종아리와 허벅지 運動도 追加하고 어깨와 팔 運動도 해야지. 아침마다 空腹에 스트레칭도 해보자.’ 計劃은 完璧했고 그것을 지키는 나도 꽤 忠實했다. 걸림돌은 따로 있었다. 왼쪽 팔을 뻗으면 冷藏庫에 닿고 오른쪽 팔을 뻗으면 寢臺에 닿는 내 작고 작은 집, 그게 내 발목을 잡았다.



    딱 집만큼 좁아지는 마음

    [GettyImage]

    [GettyImage]

    몇 年 前 獨立을 決心하고 豫算에 맞춰 집을 보러 갔을 때, 나는 理想과 現實의 乖離에 말을 잃었다. 仲介人이 보여준 집은 하나같이 비좁고 어두웠다. 寢臺를 놓으면 움직일 틈이라고는 없어 보였고 窓은 있어도 窓門形 에어컨에 半쯤 막혀 볕이 잘 들지 않았다. 化粧室은 便器와 洗面臺가 겨우 具色을 갖추고 있는 程度였다. 仲介人은 “컨디션이 괜찮은 집”이라 말했다. “於此彼 잠만 잘 거니까 이 程度면 充分하잖아요?” 그 말에 나는 例도 아니오도 아닌 語塞한 웃음으로 對答을 代身했다. 더 絶望할 기운도 없을 때 只今의 집을 봤고 別수 없이 契約했다. 그러니까 내 집은 개中에서 그나마 넓고 환한 집이었다.

    移徙짐을 나르며 아빠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짐만 여기저기 욱여넣었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그 좁은 집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답답해서, 한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내 房과 내 處地가 서러워서. 하지만 사람은 適應의 動物이었다. 나는 곧 내 좁은 空間에 익숙해졌다. 좁아도 조용하고 따뜻하잖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잘 지낸다고 스스로 慰安하며 살아왔는데 코로나의 波高는 내 日常을 뒤흔들었다.

    兩팔을 함께 뻗을 수 없는 집에서 運動을 하다 나는 짜증을 내며 돌아누웠다. 텔레비전에는 아이들과 강아지가 뛰노는 드넓은 演藝人의 집이 자주 나왔다. 유튜브 브이로그 속 작은 自炊房도 내 집보다는 넓어 보였다. 집은 내가 아닌데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집을 보며 繼續 萎縮됐다. 짜증이 늘고 火가 치솟았다. 내 房만큼 내 마음도 좁아졌다.

    코로나 防疫 段階가 높아지며 카페 利用이 禁止됐다. 더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房에 낮은 테이블을 펴고 노트북을 켰다. 牛乳를 듬뿍 넣은 카페라테를 만들어 자리에 앉았다. 글을 쓰려고 보니 參考 書籍을 두고 온 게 떠올라 몸을 일으키다 方今 만든 커피를 모두 바닥에 쏟고 말았다. 分明 내 不注意로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만 더 操心하면 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보다 좀 더 넓은 곳이라면 내 不注意가 容認될 空間도 늘어날 것이란 確信이 일었다.

    於此彼 契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날로 나는 새집을 찾기 始作했다. 마침 용산에 靑年賃貸住宅이 들어선다는 걸 알았다. 驛勢圈에 투룸이라니! 居室과 房 하나. 居室을 寢室로 쓰고 房은 作業室로 만들고 싶었다. 넓은 冊床을 두고 한쪽 壁을 冊欌으로 채우는 想像을 했다. 書類를 넣고 當籤者 發表가 날 때까지 빌고 또 빌었다. 올해 韻을, 아니 來年 韻까지 다 몰아서 當籤에 쓰게 해달라고. 뭐, 反轉 없이 나는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競爭率이 100對 1을 넘었으니까. 나중에 들으니 원룸 形態로 된 좁은 坪數는 競爭率이 그 半의 半도 안 됐다고 한다. 甚至於 두 名이 入住하는 셰어刑으로 募集한 世代는 未達이었다.

    부풀었던 꿈이 쪼그라들어도 쉴 틈은 없었다. 나는 바로 집 알아보기에 着手했다. 條件은 現在 집보다 넓을 것, 하나였다. 不動産 앱으로 數많은 賣物을 보다 無理해서 豫算을 맞추면 可能한 집을 發見했고 다음 날 보자마자 契約했다. 살던 집보다 넓고 窓이 크다는 理由만으로.

    우리에게는 팔 다리를 뻗을 尊嚴이 必要하다

    包裝移徙를 하러 온 분들은 작은 집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짐에 놀랐다. 特히 테이블과 싱크臺와 寢臺 밑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冊에 고개를 저었다. 구석에서 나온 冊 박스를 들어 옮기며 그는 내게 물었다. “或是 作家세요?” 나는 “罪悚해요, 冊이 좀 많죠?”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많은 짐과 더 많은 쓰레기를 이고 지고 移徙를 했다.

    엄마는 移徙짐을 整理하다 指壓 슬리퍼를 發見하고는 이건 언제 샀느냐고 물었다. 나는 몇 年 前부터 있던 거라고 대꾸했다. 한 番도 못 봤는데? 當然하지, 안 꺼내놨으니까. 왜? 왜긴 왜야, 다섯 걸음도 못 걷는 집에서 슬리퍼 신을 일이 있어야지. 엄마는 끄덕이며 슬리퍼를 테이블 아래 가지런히 整理 해두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마음껏 팔을 뻗어 運動하고 指壓 슬리퍼를 신고 집 안을 徘徊하며 멍하니 窓밖의 夜景을 본다. 그게 내가 月貰 15萬 원을 더 주고 얻은 餘裕다. 비좁은 집을 두고 人權이나 尊嚴이라는 무거운 談論을 꺼내고 싶진 않다. 다만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맘껏 팔다리를 뻗을 수 있는 程度의 餘裕와 自由는 必要하다. 아무리 집에서 잠만 자더라도.

    #不動産 #작은집 #에세이 #新東亞

    박사랑 作家
    ● 1984年 出生
    ● 2012年 ’어제의 콘스탄체‘로 문예중앙 新人文學賞 受賞
    ● 2017年 小說集 ’스크류바‘ 2019年 長篇小說 ’宇宙를 담아줘‘ 發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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