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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健熙 會長은 카피라이터이자 宣傳煽動家였다[경제사상가 李健熙 探究⑫]|新東亞

李健熙 會長은 카피라이터이자 宣傳煽動家였다[경제사상가 李健熙 探究⑫]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1-04-28 10: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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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原點(原點) 事故가 먼저, 對蘇 緩急은 다음

    • “나 없을 때 우리 집에 가서 寢室도 보라”

    • “祕書는 내 假面만 써도 會長인 줄로 알아야”

    • 組織 내 言語를 統一시켜라

    1993년 4월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삼성전자 제공]

    1993年 4月 12日 서울 강남구 일원동 三星서울病院 建設 現場을 訪問한 李健熙 會長. [三星電子 提供]

    李健熙 會長이 말했던 ‘업(業)의 槪念’은 어떤 事物이나 狀況을 判斷할 때 ‘本質’을 먼저 보려고 努力했던 ‘李健熙 想像力’의 決定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冊 中 ‘먼저 숲을 보자’라는 題目의 글 中 一部다.

    “나는 일하고 챙기는 데 나름의 몇 가지 原則과 習慣이 있다. 먼저 目的을 明確히 한다. 報告를 받을 때도 보고의 目的과 決定해야 할 일을 分明히 한다. 다음은 일의 本質이 무엇인가를 把握한다. 本質을 모르고는 어떤 決定도 하지 않는다. 本質이 把握될 때까지 몇 番이고 反復해서 물어보고 硏究한다. 나는 三星의 任職員들에게 ‘업(業)의 槪念’에 對해 자주 이야기한다. ‘當身이 하는 일의 業의 槪念이 무엇이냐’ 물으면 大部分 사람들이 唐慌한다. 對答할 準備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自己가 하는 일의 本質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意味이다.”

    原點 事故가 먼저, 다음은 大小緩急

    그는 本質에 닿으려고 努力했던 想像力을 ‘原點(原點) 事故’라고 명명했다. 그의 冊 中 ‘原點에서 생각하자’라는 글의 一部다.

    “모든 事物과 일을 對할 때 原點思考를 갖고 새롭게 바라보아야 비로소 本質을 把握할 수 있다. 프로 골퍼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골프채 잡는 法부터 새로 始作하는 것도 이런 理由 때문이다. 日本 出張길에 들었던 혼다(本田) 會長 이야기는 原點 事故가 갖는 重要性을 새삼 일깨워 준다. 혼다가 自動車 産業에 進出하려고 할 때 혼다 會長은 幹部들을 모아놓고 最大限 原價를 낮출 수 있는 方案을 講究하라고 指示했다고 한다. 一週日이 지난 뒤 幹部 代表가 ‘競爭社인 도요타 自動車를 分解해 모든 部品마다 혼다가 더 싸게 납품받을 수 있는 價格을 適用해보니 1%~2% 原價 節減이 可能하다’는 報告를 했다. 그러자 혼다 會長은 ‘自動車가 別것인가? 오토바이 두 臺를 쇠파이프로 連結시키고 거기다 뚜껑을 덮은 것 뿐인데…’라고 중얼거리며 會議場을 떠났다고 한다. 幹部들은 큰 衝擊을 받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檢討했다고 한다. 果然 이 部品이 必要한지, 規格을 바꿀 수는 없는지 原點에서 생각한 結果 相當한 價格 競爭力을 갖춘 自動車를 만들 수 있다는 結論에 到達했다는 것이다. ‘原點 事故’는 劃期的인 改善과 代案 提示에 좋은 出發點이 될 수 있다. 오늘날처럼 變化가 일정한 軌道 없이 빨라지는 時代에 過去 志向的 思考는 後退와 失敗를 의미한다. 日常生活에서부터 모든 것을 뒤집어 보는 原點 思考가 必要한 時點이다.”



    故人이 말하는 原點 思考를 하려면 숱한 가지치기를 통해 한곳으로 깊게 들어가야 한다. 이는 旣存에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들, 最善이라고 하는 基準들을 모두 ‘생각의 테이블’에 올려 놓고 果然 이 생각이 맞는지를 곰곰이 따지는 行爲라고 할 수 있다. 故人의 말처럼 ‘軌道 없는 變化’가 支配하는 只今 時代야말로 ‘原點 事故’에 對한 깊은 熟考가 必要한 時點 아닐까.

    李健熙 會長은 일의 目的과 本質이 把握되면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려는 努力을 習慣化시키라’고 助言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東西洋의 住所 表記法 差異를 例로 들며 이렇게 말한다(책에서 引用).

    “東洋과 西洋은 크게 다른 思考方式을 가지고 있는데 代表的인 例가 住所 表記法이다. 우리는 國家, 市·道, 市?郡?區 邑?面?東 巡으로 全體에서 部分으로 接近하고 있다. 나는 이런 方式으로 問題에 接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의 大小緩急(大小緩急)을 區分하는 것도 매우 重要하다. 일의 本質에 바탕을 두고 優先順位를 判斷하는 것이다. 몇 年 前, 어떤 工場을 訪問했을 때 建物은 한창 建設 中인데 造景 工事가 마무리 段階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工場을 세우는 것이 最優先的으로 할 일인데 庭園을 먼저 가꾸고 있다는 것은 쉽게 納得되지 않는 일이다. 大小緩急을 區分하지 못한 代表的인 境遇다.”

    “나 會長인데요…”

    2006년 9월 19일 이건희 회장이 뉴욕 맨하탄에 있는 삼성체험관을 방문해 전시된 최신 휴대폰을 직접 시현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06年 9月 19日 李健熙 會長이 뉴욕 맨하탄에 있는 三星體驗館을 訪問해 展示된 最新 携帶폰을 直接 示現해보고 있다. [三星電子 提供]

    若干 雰圍氣를 바꿔보자. 會長은 自身의 生活 속에서도 業의 槪念을 實踐했던 點이 特異하다. 이와 關聯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 紹介한다.

    기외호 前 코리아헤럴드 社長은 1977年부터 1980年까지는 이병철 選對 會長 祕書팀長을, 李健熙 會長 就任 初期인 1989年부터 1991年까지는 李健熙 會長 祕書팀長을 맡았다.

    三星의 境遇 祕書室長은 祕書室과 그룹 系列社를 總括 管理하는 祕書室의 收藏이고 祕書팀長은 至近距離에서 會長을 輔弼하는 말 그대로 祕書다.

    當時에 李健熙 會長은 出勤하는 날이 많지 않아 隨時로 祕書팀長을 自宅으로 불러 業務指示를 내렸다고 한다. 기외호 前 祕書팀長은 李健熙 會長 就任 初期 唯一하게 會長을 一帶一路 대면하며 對話를 나눴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이다.

    “會長은 系列社 社長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집에서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時間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삼성그룹이 激動期도 아니었고 하던 事業도 別 蹉跌 없이 運營되던 時節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會長은 未來를 내다보며 三星의 앞날을 깊게 苦悶했던 것 같습니다. 늘 午後 5時쯤이면 電話가 왔습니다. ‘나 會長인데요, 別일 없으면 집에 들렀다 가소’ 하시는 거예요. 서울 한남동 自宅에 가면 홍라희 女史가 ‘오셨어요? 두 분 얘기 나누세요’ 하고 자리를 비켜주시고, 會長님과의 獨對가 始作됩니다. 會長님은 잠옷에 파자마 가운을 입고 슬리퍼에 兩班다리를 하고 앉으시고 部長인 저는 넥타이를 맨 正裝을 입고 對話를 나누는 거였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超緊張 狀態였을지 한番 想像해보십시오.”

    對話는 빠르면 밤 12時, 늦으면 새벽 1, 2時까지 이어지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나눴나요.

    “수많은 質疑와 業務指示가 떨어집니다. 三星電子 얘기, 소니 얘기, 東京, 프랑크푸르트, 뉴욕 狀況부터 政治 이야기, 社會 돌아가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縱橫無盡이었습니다.

    對話라는 게 한사람만 繼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會長이 오늘은 무엇을 물을지, 뭘 素材로 對話를 나눌지 豫測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할 수 있지요. 어느 날은 제가 좀 안 돼 보였던지 쓱 微笑를 지으시면서 ‘三星 會長의 時間이 얼마나 비싼지 아느냐, 榮光으로 알아라’ 이러시는 거예요. 속으로는 ‘저는 죽겠습니다’ 말도 못하고(웃음).”

    -술이라도 좀 하셨나요.

    “그랬다면 좀 나았을 텐데 會長께서는 술을 全혀 못하는 體質입니다. 公式席上에서 外國人들과 와인 乾杯할 때 미리 와인 色과 비슷한 飮料를 컵에 담아 놓았을 程度였으니까요. 술 代身 當時 제일제당에서 나온 ‘게토레이’ 2리터짜리를 옆에 두고 繼續 그걸 마시면서 對話를 나누셨어요. 하지만 담배는 줄담배를 피우셨습니다. 하루에 네 甲, 다섯 匣을 피우셨으니까 ‘체인 스모커’셨지요. ”
    (故人은 88年 5月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酒量을 묻는 質問에 “麥酒 半컵만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고 근지럽기까지 하다. 醫學的으로는 알콜을 消化하는 酵素의 缺乏症이라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祕書는 내 假面만 써도 會長인 줄로 알아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會長으로부터 뜻밖의 指示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祕書팀長은 내 假面만 써도 누가 會長인줄 모를 程度로 나와 생각과 行動이 똑같아야 된다. 그래야 제대로 輔弼할 거 아닌가, 내가 집에서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 아는가? 나 없을 때 우리 집에 가서 寢室도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할 程度로 輔弼에 神經을 쓰라’는 뜻으로만 알고 넘겼는데 正말 하루는 느닷없이 ‘가 봤느냐’고 물으시는 겁니다. 제가 머뭇거렸더니 ‘弄談이 아니고 指示’라고 언짢아하시는 表情이 歷歷해 그날로 바로 漢南洞 宅 會長 寢室을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寢室 壁에는 텔레비전이 세 臺(TV 두 채널과 비디오)가 놓여 있었고 冊張은 勿論 바닥에까지 各種 冊과 資料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寢臺 네 모서리에는 美國 日本에서 보내 온 엄청난 映像 資料들, 各種 DVD가 마치 울타리라도 친 것처럼 삥 돌아 세워져 있던 것을 보고 正말 깜짝 놀랐던 記憶이 있습니다.”

    房을 둘러보고 있는데 會長이 電話를 걸어왔다고 한다.

    “‘어떤가’하고 느낌을 물어 보시는데 率直히 말씀드렸죠. ‘너무 어지러워서 于先 整理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했더니 ‘絶對 손도 대면 안 된다. 내 나름대로 다 整理해놓고 있는 거라 남이 건드리면 내가 못 찾는다’고 하시더군요.”

    기외호는 當時 逸話를 통해 “祕書라는 業의 本質을 잘 遂行하도록 하기 위해 當身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려 했던 會長의 純粹한 性品과 眞情性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祕書도 商事를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輔弼할 거 아닌가’ 하는 會長 마음이 强하게 傳達됐습니다. 事實 大그룹 財閥 總帥가 그렇게까지 自身을 숨김없이 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祕書室 弘報팀長을 맡았던 배종렬度 會長의 實踐을 통해 弘報라는 業의 槪念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弘報라는 게 뭔지 아나’ 물어 보시더니 ‘日本에 付託해서 關聯 冊을 한 10卷 보내라 하고, 美國 커뮤니케이션 關聯 冊도 求해서 다 工夫를 하라’고 했습니다. 딱히 뭐라고 이렇다 저렇다 說明이나 指示는 안 하시면서도 ‘業의 槪念을 把握하는 게 宏壯히 重要하다’고 몇 番이나 말했습니다. 會長은 指示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實踐하려 努力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當身이 갖고 있는 뜻과 哲學이 맨 아래 職員들에게까지 迅速하고 正確하게 傳達될 수 있을지, 또 職員들 뜻을 어떻게 하면 當身 쪽으로 올라오게 할 수 있을지를 늘 苦悶했으니까요. 그러면서 弘報라는 業의 槪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弘報라는 것은 國內外 돌아가는 狀況과 全般的인 흐름을 捕捉해 對外的으로 알리는 것도 重要하지만. 會社 內部的으로는 윗사람의 메시지와 뜻을 正確하게 傳達하고 職員들에게는 恒常 肯定的인 反響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第一 重要하다. 이것이야말로 眞正한 意味의 弘報다.’”

    組織 내 言語를 統一시켜라

    앞서 筆者는 ‘業의 槪念’이란 自身만의 獨特한 造語를 만들어내는 李健熙 會長의 言語的 想像力’을 言及한 바 있다. 生前에 會長과 가까이 일했던 三星맨들은 한결같이 “會長은 傾聽의 達人이었다. 當身 스스로는 말이 없고 訥辯에 가까울 程度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했다”고 傳한다.

    하지만 故人은 言語와 말의 威力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洞察한 사람이었다. ‘마누라 子息 빼고 다 바꾸자’라는 簡單한 口號性 멘트가 象徵하듯 事物이나 狀況의 本質을 짧은 말로 縮約해 사람들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點에서 卓越한 ‘카피라이터’였다고나 할까. 어떤 面에선 言語를 統一해 構成員들 생각을 結集시키고 意識을 바꾸려 했었다는 點에서 뛰어난 宣傳煽動價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故人이 生前에 쓴 글인 ‘말의 威力’(冊에서 引用)이란 글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獨創的이고 含蓄的인 言語 開發과 메시지 發信에 沒頭했는지 歷歷하게 느껴진다.

    “나는 平素 任職員들에게 組織 內에서 使用하는 用語를 可及的 統一시키고 組織의 哲學과 價値觀이 含蓄돼있는 獨特한 用語를 開發하라고 말해오고 있다. 組織 내 言語인 用語는 經營活動의 實行手段이 될 뿐 아니라 그 組織의 質的 水準을 가늠케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組織 내 用語를 統一하는 것은 個性을 無視하는 劃一化와는 다른 次元이다. 用語를 統一하면 以心傳心으로 뜻이 통하게 돼 意思疏通에 드는 費用과 時間을 줄이고 誤解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組織의 비전과 經營方針에 對한 共感帶를 쉽게 形成해 나아갈 수 있다. 내 自身도 新經營을 推進하면서 職員들이 神 經營에 對해 쉽게 理解할 수 있도록 比喩와 例話 中心의 새로운 用語를 만들어내느라 苦心했다…용어는 時代變化를 리드하고 때로는 한 社會나 組織의 哲學을 代辯하기도 한다.”

    故人의 글에는 恒常 例話가 登場하는데 이 글에서는 美國 월트 디즈니사의 事例가 나온다.

    “顧客 滿足의 代名詞처럼 認識되는 월트 디즈니에서는 獨特한 自身만의 用語를 使用하고 있다. 그들은 從業員들을 (쇼)出演陣이라는 뜻인 ‘cast member’라고 稱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 産業에 從事하는 職員들에게 會社가 期待하는 바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顧客에 對해서는 집에 招待한 손님이라는 뜻의 ‘Guest’라는 表現을 쓰고 있다. 그리고 會社 내 文書作成을 할 때 이 單語가 文章 어디에 位置하든 반드시 大文字 G를 쓰도록 義務化함으로써 顧客의 重要性을 組織 內에 擴散시켰다. 나는 이 두 가지 用語가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를 만들어낸 祕藏의 武器가 아닌가 생각한다.”

    實際로 三星人들은 新經營 宣言 當時 每日 아침 10分씩 會長의 育成이 담긴 TV를 視聽했다고 한다. 이를 通해 톱 매니지먼트에서부터 末端 寺院에 이르기까지 統一된 用語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用語統一 自體가 新經營의 한 內容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世紀末 現象’ ‘質 爲主 經營’ ‘複合化’ ‘인프라’ ‘스케일’ ‘메기 理論’ ‘禮儀凡節’ ‘에티켓’ ‘만 名을 먹여 살리는 人材’ 等等 普通 사람들은 한두 個만 들어도 머리가 아찔해질 말들을 三星에서는 生産 現場에서도 가볍게 쓰게 되었다고 三星맨들은 傳한다.

    지난 1月 ‘월간조선’이 公開한 會長의 育成 中 一部다.

    “三星 重役들한테 方程式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어. (밖으로) 나가는 목소리는 하나여야 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 等等 分野 합쳐서 틀을 딱 만들어 놓고 얘기할 땐 거기에 自己 會社나 自己 職級에 따라 살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거지. 醫師의 境遇 解剖學과 病理學 같은 基本은 다 같고 小兒科나 內科 等等으로 나뉘는 것처럼 基本을 갖고 디테일은 自己가 만드는 거야. 任員이라는 사람들이 맨날 그저 ‘밤잠 안자고 熱心히 했습니다’라고 해서야 남들이 理解가 되냐고. 혼자 알면 所用없어. 다른 사람들을 說得해야지.”

    #李健熙 #宣傳煽動가 #業의개념 #經濟思想家 #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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