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대香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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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香爐
(百濟金銅大香爐)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國寶
種目 國寶
( 1996年 5月 30日 指定)
面積 높이 61.8cm , 무게 11.8kg
數量 1點
時代 百濟
所有 大韓民國
位置
백제 금동대향로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금동대香爐
백제 금동대香爐(大韓民國)
住所 忠淸南道 扶餘郡 부여읍 金星로 5,
國立扶餘博物館 (동남리, 國立扶餘博物館)
座標 北緯 36° 16′ 35″ 東經 126° 55′ 08″  /  北緯 36.2764342° 東京 126.9189617°  / 36.2764342; 126.9189617
連結 http//buyeo.museum.go.kr/(國立扶餘博物館)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백제 금동대香爐 (百濟金銅大香爐)는 百濟 에서 만들어진 琴童 博山爐 다. 1993年 12月 12日 忠淸南道 扶餘郡 능산리 절터의 木槨 수로 안에서 發見되었으며 國寶 第287號로 指定되었다. 이 香爐는 百濟가 熊進 으로 都邑을 옮긴 後 政治的 安定을 되찾은 6世紀 初의 百濟人들의 精神世界와 藝術的 力量이 含蓄되어 이루어진 工藝品이다. 또한 백제 금동대香爐에 使用된 鍍金과 주조 技術은 當時 東아시아 最高의 技術的 成果라는 評價가 있다. [1] 眞品은 國立扶餘博物館 에 展示되어 있으며 國立中央博物館 에는 똑같이 생긴 複製品이 있다.

發掘 過程 [ 編輯 ]

百濟金銅大香爐는 駐車場을 建設하던 곳에서 發見되었다. 駐車場 工事가 臨迫한 時點에 發見된 것이다. 發見 當時 百濟金銅大香爐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서는 기와 조각과 土器 조각이 發見되었다. 周邊에서는 纖維 조각이 發掘되었는데, 發掘團은 이 纖維 조각이 百濟金銅大香爐를 감쌌던 것으로 推定했다. 또, 臺香爐가 오랜 歲月에도 完璧하게 保存될 수 있었던 理由는 진흙에 잠긴 眞空 狀態에서 保管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2]

1995年의 發掘 調査로 臺香爐가 發見된 一帶가 百濟 時代 王室 절터였음이 立證되었다. 發掘된 木塔 痕跡에서 發見된 扶餘 능산리사지 石造舍利감 에서 "昌王( 위덕왕 ) 13年( 567年 )에 定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記錄이 發見된 것이다. 學界는 이 點에 注目하여 백제 금동대香爐가 單純한 香爐가 아니라 백제王室 意識이나 祭祀用으로 使用된 信物로 推定하고 있다. [3]

構成 [ 編輯 ]

百濟金銅大香爐는 全體 높이가 61.8cm이며 龍 模樣의 香爐 받침, 蓮꽃이 새겨져 있는 香爐의 몸體, 山岳徒가 솟아있는 向路 뚜껑, 뚜껑 위의 鳳凰 裝飾의 네 部分으로 이루어져 있다. 鳳凰과 向路 뚜껑은 하나의 鑄物로 製作되어 있어, 製作 過程에서 세 個의 鑄物틀이 使用되었음을 알 수 있다. 香爐 本體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文樣 아래에는 蓮꽃이 핀 蓮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個 있는 山들이 있다. 이 山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神仙으로 보이는 사람들, 虎狼이, 獅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駱駝 等 많은 動物들이 裝飾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瀑布, 나무, 불꽃 무늬, 鬼面像 等이 있다. 祭壇 模樣으로 꾸며진 頂上에는 鳳凰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樂士가 있는데 이들은 短簫, 피리, 琵琶, 北, 現金을 연주하고 있다. 그 周圍의 다섯 봉우리에는 各各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鳳凰과 함께 춤추는 形象이 있다. 香爐의 몸體에는 蓮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武藝를 하는 人物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個 있는 容易 위의 蓮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龍틀임을 하고 있다. [4]

처世界 [ 編輯 ]

中國에 西域의 鄕品이 傳해져서 戰國時代 末期부터 惡臭를 없애고 不正을 쫓기 위해 香爐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香爐의 起源을 中國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依하면 백제 금동대香爐는 漢나라의 影響을 받아 백제的인 要素가 加味되어 製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길쭉한 下待에 알의 模樣을 얹은 박산 香爐의 形式에 있어서만 有效한 論證이다. 中國의 박산型 香爐에 비하여 백제 琴童 臺香爐는 그 審美性과 精密함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5]

佛敎文化硏究家들은 百濟金銅大香爐가 佛敎의 연화化生설 과 關聯있다고 하는데, 佛敎의 理想鄕인 연화장의 世界는 毘盧遮那佛이 있는 廣大하고 莊嚴한 理想世界를 말한다. 연화장 世界의 맨 아래에는 風輪이 있고, 風輪 위에는 香水海가 있어 그 鄕愁해에 큰 蓮꽃이 핀 것을 연화장이라 하는 以上世界이다. 卽, 臺香爐를 받치고 있는 龍은 香水海를 의미하고 蓮꽃잎 위의 世界가 理想世界라는 說明이다.

鳳凰을 古代 東北亞에서 神聖視해 온 天界(天界)로 보고, 5樂士와 기러기 를 百濟의 5部로 보아 百濟臺香爐에 古代 東北亞의 傳統思想이 反映되었다.

한便 最近에는 백제 금동대香爐가 '道敎와 佛敎의 習合'을 反映했다는 旣存 見解에 反論하기도 한다. 當時 佛敎界에서 傳承되었을 文獻 가운데 '迦樓羅(金翅鳥) 목 아래에 如意珠가 있다[如意者, 此鳥頸下有如意珠.]'라는 記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大般涅槃經』 中 '神仙이 器樂을 演奏한다[神仙呪術,作倡伎樂]'는 記錄이 있고, 『妙法蓮華經』에도 '사람이 北, 퉁소, 거문고, 琵琶 等을 演奏한다[若使人作樂, 擊鼓吹角貝, 簫笛琴??, 琵琶?銅?]'라는 文句가 있다. 卽, 백제 금동대香爐의 道上을 불傳(佛典) 內에서 찾을 수 있다는 主張이 提起된 것이다. [6] 特히 數當代에 걸쳐 佛敎 內에서는 『홍명집』 等을 著述해 道敎에 批判的인 立場을 提起하는 境遇가 많았다. 따라서 隔意佛敎로 當時의 佛敎像을 定義하기엔 問題가 있다. 香爐의 道上에 對해 지나친 推定과 想像은 止揚되어야 하고, 向後 具體的인 典據를 들어 살펴볼 必要가 있다.

寫眞 [ 編輯 ]

各州 [ 編輯 ]

  1. 조용중 (1994). “中國 博山香爐에 關한 考察”. 《美術資料》 (국립중앙박물관).  
  2. 《HISTERICA 韓國史 高句麗+百濟》. 273쪽.  
  3. 정종목 (2000). 《역사스페셜 (原作 KBS 歷史스페셜)》. 서울: 효형출판. 119쪽.  
  4. 西征錄, 百濟金銅大香爐, 2001年, 圖書出版 학고재
  5. 조용중 (1994). 《中國 博山香爐에 關한 考察》. 國立中央博物館. 53쪽.  
  6. Chin, Young-ah (2020年 6月 30日). “A Re-examination of the Top of Baekje Incense Burner Icon- The Possibility of Being Interpreted as Garu?a -” .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42 : 319?346. doi : 10.21718/eabc.2019.42.12 . ISSN   2714-0938 .  

參考 資料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