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식
(心意識)은
審
(心)
·
의
(意)
·
式
(識)의 세 낱말을 합친 複合語이다.
- 審
(心)은
산스크리트語
치타
(citta)의 번역어로
질다
(質多)라고도 音譯하며,
什器
(集起)를 뜻한다.
- 의
(意)는
산스크리트語
마나스
(manas)의 번역어로
末那
(末那)라고도 音譯하며,
사량
(思量)을 뜻한다.
- 式
(識)은
산스크리트語
비즈냐나
(vijn?na)의 번역어로
비야남
(毘若南)이라고도 音譯하며,
要별
(了別)을 뜻한다.
什器
(集起)는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李
마음作用
(心所法)을 비롯한
新
(身)
·
區
(口)
·
의
(意)
3업
(三業)을 쌓고 일으키는 側面 또는 能力이 있는 것을 말한다.
사량
(思量)은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李 過去, 卽 以前까지 쌓은 原因을 바탕으로 現在의
認識
對象 또는
마음作用
對象에 對해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헤아리는 側面 또는 能力이 있는 것을 말한다.
要별
(了別)은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李 사량(思量)을 바탕으로 現在의
認識
對象 또는
마음作用
對象에 對해 '
아는 것
'을 말한다. 例를 들어, 파란色이 소리가 아니라 色깔인줄 알며 나아가 노란色이 아니라 파란色인줄 아는 것을 말한다.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審
(心)
·
의
(意)
·
式
(識)의 側面 또는 能力에 對한 思想인
심의식 史上
(心意識思想)에서의 見解 差異는
部派佛敎
와
大乘佛敎
를 區別짓는 主要 思想的 側面들 中의 하나이다.
槪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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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審
(心)은
산스크리트語
치타(citta)의 번역어로 '新
·
區
·
의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뜻의
什器
(集起)를 뜻하고,
의
(意)는
산스크리트語
마나스(manas)의 번역어로 '過去에 쌓은 原因, 卽 業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
(思量)을 뜻하며,
式
(識)은
산스크리트語
비즈냐나(vijn?na)의 번역어로 '對象을 안다'는 뜻의
要별
(了別)을 뜻한다.
例를 들어, "야! 이 OST 正말 아름다운데! 어떤 歌手가 불렀을까? 音源을 어디에서 求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檢索해서 찾아보고 音源購入處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要별
(了別), 卽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要별作用 또는 尿別能力이고, 歌手가 누군지 그리고 音源을 어디서 求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
(思量), 卽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사량作用 또는 사량能力이고, 檢索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卽, 意志를 가지는 것)과 實際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檢索을 行하고 音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什器
(集起), 卽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什器作用 또는 什器能力이다.
크게 보면, 심의식(心意識), 卽
審
(心)
·
의
(意)
·
式
(識)은 모두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과 關聯된 것이므로,
심의식
(心意識)이라고 統稱하여 稱할 때나
審
(心)
·
의
(意)
·
式
(識) 個別로 稱할 때나 모두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細部的으로는
審
(心)
·
의
(意)
·
式
(識)의 個別에 對하여 이들이 具體的으로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어떤 面을 가리키는가에 對해서는
部派佛敎
와
大乘佛敎
間에 見解 差異가 있으며, 또한 이렇게 差異가 나는
大乘佛敎
의 見解에서도 다시 差異가 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審
(心)李 什器(集起)를 뜻하고,
의
(意)가 사량(思量)을 뜻하고,
式
(識)李 要별(了別)을 뜻한다는 것에는
部派佛敎
와
大乘佛敎
모두가 意見을 같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에
什器
,
사량
,
要별
의 作用 또는 側面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見解를 같이 하지만,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의 어떤 作用 또는 側面을
什器
라고 하고
사량
이라고 하고
要별
이라고 하는 가에 對해서는 意見이 갈린다.
審: 什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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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什器
(集起)는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審
(心)의
산스크리트語
原語인
치타
(citta)를 뜻에 따라 飜譯한 것이다. 치타(citta)의 語源인 치트(cit)는 '생각하다, 理解하다'의 뜻이지만, 다시 이것은 '쌓다'라는 뜻의 치(ci)에서 由來한 것으로, 이 本來의 語源에 따라 '什器(集起)'라고 飜譯한 것이다.
什器
(集起)라는 漢字語의 文字 그대로의 뜻은 '쌓고 일으킨다'로,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李
마음作用
(心所法)을 비롯한
新
(身)
·
區
(口)
·
의
(意)
3업
(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은 몸과 말과 마음을 使用하여 原因을 쌓으며 또한 이렇게 쌓은 原因을 바탕으로 行爲를 일으키는 能力 或은 側面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能力과 그 作用을 統稱하여
什器
(集起)라고 한다.
의: 사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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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량
(思量)은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의
(意)의
산스크리트語
原語인
마나스
(manas)를 뜻에 따라 飜譯한 것이다. 마나스(manas)의 語根인 萬(man)은 '생각하다'의 뜻으로 이에 따라 '사량(思量)'이라 飜譯한 것이다.
사량
(思量)이라는 漢字語의 文字 그대로의 뜻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로,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은
前刹那
의
意根
(意根), 卽 바로 直前까지
什器
(集起)했던 行爲의 總體, 卽 바로 直前까지의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 卽 바로 直前까지 蓄積된 모든 經驗을 土臺로 現在의
認識
對象 또는
마음作用
對象에 對해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헤아리는 能力 또는 側面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能力과 그 作用을 統稱하여
사량
(思量)이라고 한다.
式: 要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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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要별
(了別)은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式
(識)의
산스크리트語
原語인
비즈냐나
(vijn?na)를 뜻에 따라 飜譯한 것이다. 비즈냐나(vijn?na)는 '다르게 알다'라는 뜻의 비즈냐(vijn?)에서 由來한 낱말로 이에 따라 '要별(了別)'이라 飜譯한 것이다.
要별
(了別)이라는 漢字語의 文字 그대로의 뜻은 '분명하게 分別한다'로, 對象을 분명하게 區別하여
認識
(認識: 事物을 分別하고 判斷하여 앎
[8]
)하는 것을 말한다. 卽
要별
(了別)은 對象을
아는 것
, 卽
앎
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은
사량
(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을 바탕으로 現在의
認識 對象
또는
마음作用
對象에 對해
아는 能力 또는 側面
또는
分別하는 能力 또는 側面
, 卽
知識의 能力 또는 側面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例를 들어,
마음
(6式 또는 8式, 卽 心王, 卽 心法)은 파란色이
소리
가 아니라
色깔
인 줄 아는 能力과 파란色이 노란色과는 다른
色깔
인 줄 아는 能力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例로는,
도
가
色깔
이 아니라
소리
인 줄 아는 能力과
도
가
레
와는 다른
소리
(
音程
,
音높이
)인 줄 아는 能力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能力과 그 作用을 統稱하여
要별
(了別: 아는 것, 知識)이라고 한다.
佛敎 傳統에서의 심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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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初期佛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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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審
(心)
·
의
(意)
·
式
(識)이라는 낱말은
初期佛敎
經典인 《
잡아함경
》에서 使用되고 있다. 《
잡아함경
》에 收錄된
고타마 붓다
의 說法에는,
마음
을
審
(心)
·
의
(意)
·
式
(識)이라는 3가지 名稱을 使用하여 가리키기도 하고 또한
6式
(六識)에 對해서도 言及하고 있다. 하지만
審
(心)
·
의
(意)
·
式
의 差別性을 明確히 說明하거나 또는 이들의 差別性이 明確히 드러나 있는 說法이 없기 때문에, 《
잡아함경
》 自體에 依해서는 그 差異를 分明히 區別 할 수가 없다. 다만,
審
(心)
·
의
(意)
·
式
(識)의 3가지가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그
本質
[體, 性]은 하나라는 것만은 確認할 수 있다.
《잡亞合慶》에서
審
(心)
·
의
(意)
·
式
(識)이라는 낱말이 使用되고 있는 소경(小經)들로는 다음과 같은 卿들이 있다.
- 《잡아함경》 第2卷 第35景 〈3정사경(三正士經)〉
- 《잡아함경》 第23卷 第604景 〈아육왕頃(阿育王經)〉
- 《잡아함경》 第33卷 第930景 〈者恭敬(自恐經)〉
- 《잡아함경》 第39卷 第1086景 〈마박경(魔縛經)〉
위의 卿들 中 〈者恭敬(自恐經)〉에서는
고타마 붓다
는 다음과 같이 審(心)
·
의(意)
·
式(識)을 言及하고 있다.
佛告摩訶男。汝亦如是。若命終時。不生惡趣。終亦無惡。所以者何。汝已長夜修習念佛.念法.念僧。若命終時。此身若火燒。若棄塚間。風飄日曝。久成塵末。而
心意識
久遠長夜正信所熏。戒.施.聞.慧所熏。
神識
上昇。向安樂處。未來生天。 時。摩訶男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고타마 붓다
는 마하남에게 말하였다. 너도 그와 같아서, 목숨을 마친 뒤에도
惡臭
(惡趣: 나쁜 곳, 卽 5惡臭)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오랫동안
念佛
(念佛:
불
을
廉
函, 6念, 8念, 10念意 하나)
·
染法
(念法:
法
을
廉
函,
6念
,
8念
,
10念
의 하나)
·
念僧
(念僧:
僧伽
를
廉
函,
6念
,
8念
,
10念
의 하나)의
隨行
을 닦고 익혀왔기[修習] 때문이다. 따라서, 목숨을 마치고 나서 이 몸이 불에 태워지거나 墓地에 버려져서 오랫동안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여 마침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審
(心) ·
의
(意) ·
式
(識)李 오랜 歲月 동안
바른 믿음
[正信]에 薰習(薰習)되었고,
界
(戒) ·
布施
[施] ·
들音
[聞:
聞慧
,
有漏慧
人
3慧
中 하나] ·
智慧
[慧,
無漏慧
]에 薰習되었기 때문에
新式
(神識)은 위로 올라가 安樂한 곳으로 向해 갈 것이요, 未來에는
天常
(天上)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 《잡아함경》, 第33卷 第930景 〈者恭敬(自恐經)〉.
漢文本
&
한글本
部派佛敎
[
編輯
]
部派佛敎
의
설일체유부
의 論死因
細雨
(世友)는 《
阿毘達磨品類族론
》에서
마음
[心]을 다음과 같이 定義하고 있다.
心云何。謂心意識。
此復云何。謂六識身。?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마음[心]이란 무엇인가? 심의식(心意識)을 말한다.
이것[심의식]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6式[六識身, 6가지 式]을 말한다. [6式, 卽 6가지 式이란] 곧 安息(眼識)
·
移植(耳識)
·
鼻息(鼻識)
·
舌識(舌識)
·
新式(身識)
·
意識(意識)이다.
? 《阿毘達磨品類族론》, 第1卷, 〈1. 便誤사품(辯五事品)〉.
漢文本
&
한글本
部派佛敎
의
설일체유부
의 敎學을 批判的으로 集大成한
世親
(世親: 316~396)의 《
俱舍論
》에 따르면,
審
(心)
·
의
(意)
·
式
(識)은 모두
마음
(卽 心王, 卽 心法)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本質은 同一하다.
그리고
部派佛敎
에 따르면
마음
(卽 心王, 卽 心法)은 1가지로 單一한 것이만 그 作動 根據에 따라
安息
·
移植
·
鼻息
·
舌識
·
新式
·
意識
의
6式
(
六識
)으로 나뉜다.
卽,
部派佛敎
에서는 各種
마음作用
과
業
을 쌓고 일으키는
什器
(集起)의 作用으로서의
審
(心)과, 생각하고 헤아리는
사량
(思量)의 作用으로서의
의
(意)와, 對象을 認識하는
要별
(了別) 卽 앎 또는 分別의 作用으로서의
式
(識)의 各各이 모두
마음
(卽 心王, 卽 心法) 卽
6式
의 한 側面 또는 狀態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部派佛敎
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審
(心)
·
의
(意)
·
式
(識)에 對해 解釋하기도 한다.
審
(心)으로 飜譯되는 치타(citta)에는 치트라(citra, 種種)의 뜻이 있는데, 이것은
마음
(6式, 卽 心王, 卽 心法)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依해
선
·
不宣
·
武器
等 여러 段階의 差別이 存在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러한 種種(種種)의 뜻에서는
마음
을
審
(心)이라고 한다. 그리고 種種(種種)의 뜻의
마음
, 卽
審
(心)은 現行하는
마음
卽 現行하는 認識의 根據가 되는
前刹那
의
意根
(意根)이 되어 現行하는
마음
의 소意志(所依止: 의지되는 者)가 되는데, 이러한
意根
(意根)의 뜻에서는
마음
을
의
(意)라고 부른다. 그리고 現行하는
마음
卽 現行하는 認識은
意根
(意根)의 뜻의
마음
, 卽
의
(意)를 依支하여 現在에 나타나므로 陵意志(能依止: 依支하는 者)가 되는데, 이러한 現行(現行)의 뜻에서는
마음
을
式
(識)이라고 부른다.
大乘佛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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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乘佛敎
에서는
審
(心)
·
의
(意)
·
式
(識)이 모두
마음
(卽 心王, 卽 心法) 卽
6式
의 한 側面 또는 狀態일 뿐이라는
部派佛敎
의 見解에 同意하지 않는다.
大乘佛敎
에서는
式
(識)은
部派佛敎
에서 把握한 第6食人
意識
(意識)에 該當하지만
의
(意)와
審
(心)은
마음
의 더 깊은 層으로
6式
, 卽 全5式과 第6式의 다른 側面 또는 狀態가 아니라 各各 第7式과 第8式으로 別途로 設定하여야 한다고 본다.
卽
大乘佛敎
에서는
마음
(卽 心王, 卽 心法)李 1가지로 單一하며
審
(心: 什器)
·
의
(意: 사량)
·
式
(識: 要별)의 側面을 지니고 있다는 點에는
部派佛敎
와 意見을 같이하지만,
마음
(卽 心王, 卽 心法)을
6式
으로 나누는
部派佛敎
와는 달리
마음
(卽 心王, 卽 心法)을
8式
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見解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大乘佛敎
에서는 第6息은
部派佛敎
에서 使用하는 同一한 이름을 그대로 使用하여
意識
(意識)이라 명명하지만, 제7식인
의
(意)와 第8食人
審
(心)에 對해서는 別途의 이름을 附與하여 各各
末那識
과
阿賴耶識
이라 명명한다.
이를 더 仔細히 說明하자면,
部派佛敎
에서는
마음
을
審
·
의
·
式
또는
6式
이라고 할 때, 本來부터 6가지의 서로 다른
마음
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마음
은 本來 1가지로 單一한 것이지만
時刻
과
聽覺
이 서로 다르듯이 그 認識의 種類에는 差別이 있는데 그 差別에 따라
6式
으로 나누는 것이 便利하기에 그렇게 分類하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 卽
審
·
의
·
式
또는
6式
의
체
(體)가 하나라고 본다.
[19]
이러한 理由로
설일체유부
의
5位 75法
의
法體系
에서 心法(心法)은
6式
을 하나로 묶은 1가지의
法
으로 構成되어 있다. 이에 비해
大乘佛敎
의
有識유가행派
에는
마음
卽
審
·
의
·
式
또는
8式
의
체
(體)가 하나라는
心體一說
(心體一說) 또는
食滯一說
(識體一說)의 見解와
審
·
의
·
式
또는
8式
各各에는 別途의
체
(體)가 있다는
心體別設
(心體別說) 또는
食滯別設
(識體別說)의 見解가 있다. 電子의
心體一說
또는
食滯一說
은
안혜
系統의
無償唯識派
(無相唯識派)의 見解이고, 後者의
心體別設
또는
食滯別設
은
호법
系統의
有償唯識派
(有相唯識派)와 中國의
法相宗
의 見解이다.
[21]
이러한 理由로
有識유가행派
(正確히 말하면, 有償唯識派)와
法相宗
의
5位 100法
의
法體系
에서 心法(心法)은
8式
에 該當하는 8가지의
法
으로 構成되어 있다.
有識유가행派
[
編輯
]
大乘佛敎
의
有識유가행派
에서는 第8食人
阿賴耶識
은
業
의 種子(種子)를 積集하는 能力을 가지고 있으며
因緣
이 갖추어지면 積集된
業
의 種子가 現行의 狀態로 나타나게 된다고 主張하였으며 이러한 能力은 種種(種種)과
什器
(集起)의 뜻으로서의
審
(心)과 符合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제7식인
末那識
은 種子(種子)를 積集하는 能力을 가진
阿賴耶識
에 對해 잘못된 생각과 헤아림을 가져
阿賴耶識
을 '나[我]'로 執着하는
我執
(我執)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末那識
의 이러한 性格은
사량
(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의 뜻으로서의
의
(意)와 符合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6式
, 卽
前5式
과
意識
(意識)은 對象을 認識하는 것이므로
要별
의 뜻으로서의
式
(識)과 符合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大乘佛敎
의
有識유가행派
와
法相宗
에서는
阿賴耶識
이
審
(心)에,
末那識
이
의
(意)에,
前5式
과 第6
意識
(意識)을 合한
6式
이
式
(識)에 該當한다고 보았다.
달리 말하면,
有識유가행派
에서는
式
(識)이란
視覺器官
·
聽覺器官
·
嗅覺器官
·
味覺器官
·
觸覺器官
·
思考力
을 媒介로 하는 6가지 認識機能, 卽
6式
(六識)을 말한다. 그리고
의
(意)는 이 6가지의 認識機能에 隨伴되는
自我意識
을 의미하는데, 이 自我意識을
末那識
(末那識)이라 한다. 마지막의
審
(心)은 普遍的인 認識機能의 根底에 있는
潛在意識
을 의미하는데, 이 潛在意識을
阿賴耶識
(阿賴耶識)이라 한다.
그리고,
有識유가행派
에서는
審
(心)도
의
(意)도 모두 普遍的인 認識機能, 卽 넓은 意味의
式
(識)의 一部로 본다. 넓은 意味의
式
(識) 槪念에서, 6가지 認識機能 卽
6式
(六識)과
自我意識
卽
末那識
(末那識)은
潛在意識
人
阿賴耶識
(阿賴耶識)에 對하여 '現在化된 式, 現行하는 式 또는 現世的인 式'이라는 意味에서
現行式
(現行識, prav?tti-vijn?na)이라 불리거나
'阿賴耶識이 前變하여 現在 나타나 있는 式'이라는 意味에서
전식
(轉識)이라 불린다.
"
侑食
(唯識)"이라는 낱말에서의
式
(識)은
潛在意識
이 現在化된다는 것과, 現在化된
6式
(六識)의 現行하는 認識과 作用뿐 아니라 그 根底에 있는
自我意識
이나
潛在意識
을 모두 包括하여
式
(識)이라고 한 것인데, 이러한 點은
唯識學
의 特徵的인 事項이다.
囚衣 蕙園
[
編輯
]
隋나라
의
蕙園
(慧遠: 523~592))은 《
大乘起信論의소
(大乘起信論義疏)》에서
有識유가행派
와는 多少 다른 見解를 表明하고 있는데, 그는 제8식인
阿賴耶識
이
審
(心)에 該當하며,
業式
(業識)
·
전식
(轉識)
·
現識
(現識)
·
知識
(智識)
·
相續式
(相續識)의
5의
(五意)가 第7食人
末那識
을 이루고 이
末那識
이
의
(意)에 該當하며,
前5式
과 第6
意識
(意識)을 合한
6式
이
式
(識)에 該當한다고 보았다.
新羅의 元曉
[
編輯
]
新羅
의
元曉
(元曉: 617~686)는 《
起信論소
(起信論疏)》에서
5의
(五意) 中
業式
(業識)
·
전식
(轉識)
·
現識
(現識)李 第8食人
阿賴耶識
을 이루고 이
阿賴耶識
이
審
(心)에 該當하며,
5의
(五意) 中
知識
(智識)李 第7食人
末那識
을 이루고 이
末那識
이
의
(意)에 該當하며,
5의
(五意) 中 마지막
相續式
(相續識)李 第6食人
意識
(意識)을 이루고 이 第6
意識
이
前5式
과 第6
意識
(意識)을 統稱하는
式
(識)의 一部를 이룬다고 보았다.
黨의 法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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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唐나라
의
法匠
(法藏: 643~712)은 《
大乘起信論의기
(大乘起信論義記)》에서
5의
(五意) 中
業式
(業識)
·
전식
(轉識)
·
現識
(現識)李 第8食人
阿賴耶識
을 이루고 이
阿賴耶識
이
審
(心)에 該當하며,
5의
(五意) 中 나머지
知識
(智識)
·
相續式
(相續識)李 第6食人
意識
(意識)을 이루고 이 第6
意識
이
前5式
과 第6
意識
(意識)을 統稱하는
式
(識)의 一部를 이룬다고 보았다. 그리고
法匠
은 第7食人
末那識
에 對해서는 言及하지 않았다.
世親과 眞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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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便,
大乘佛敎
權의 이러한 見解들과는 相異한 見解로서,
大乘佛敎
의 主要 논사들 中 한 名인
世親
(世親: 316~396)의 《
佛性論
(佛性論)》의
眞際
(眞諦)의
韓譯本
의 第3卷에서는
前5式
과 第6
意識
(意識)을 合한
6式
(六識)을
審
(心)에 該當시키고,
아타나式
(阿陀那識) 卽
집知識
(執持識)을
의
(意)에 該當시키고,
阿賴耶識
을
式
(識)에 該當시키고 있다.
지론종
,
眞際
(眞諦) 系統의
攝論宗
, 그리고
天台宗
등에서는
아타나式
이
末那識
의 別名인 것으로 보았으며,
現場
(玄?) 系統의
法相宗
에서는
아타나式
이
阿賴耶識
의 別名인 것으로 보았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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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參考 文獻
[
編輯
]
- 곽철환 (2003). 《
施工 佛敎事前
》. 時空社 / 네이버 知識百科.
- 區喇叭타라(求那跋陀羅) 漢譯 (K.650, T.99). 《
잡아함경(雜阿含經)
》. 한글大藏經 檢索시스템 - 電子佛殿硏究所 / 동국譯經院. K.650(18-707), T.99(2-1).
- 권오민 (2003). 《阿毘達磨佛敎》. 民族史.
- 世親 지음, 現場 漢譯, 권오민 飜譯 (K.955, T.1558). 《
阿毘達磨俱舍論
》. 한글大藏經 檢索시스템 - 電子佛殿硏究所 / 동국譯經院. K.955(27-453), T.1558(29-1).
- 水産 (2007). 《阿毘達磨佛敎의 心所法 硏究》. 韓國禪學會.
- 오형근.
〈唯識學과 人間性 - (3) 심의식(心意識)思想의 槪要〉
. 《月刊불광 (125號)》. 불광出版社. 2014年 3月 17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2年 10月 3日에 確認함
.
- 耘虛. 동국譯經院 編輯, 編輯. 《
佛敎 事前
》.
- 황욱 (1999). 《無着[Asa?ga]의 唯識學설 硏究》. 동국대學院 佛敎學과 博士學位論文.
- (中國語)
區喇叭타라(求那跋陀羅) 漢譯 (T.99). 《
잡아함경(雜阿含經)
》. 對精神수大藏經. T2, No. 99, CBETA.
- (中國語)
星雲. 《
佛光大辭典(불광대事前)
》 3板.
- (中國語)
世親 兆, 現場 漢譯 (T.1558). 《
阿毘達磨俱舍論(阿毘達磨俱舍論)
》. 對精神수大藏經. T29, No. 1558, CBETA.
- (中國語)
원휘(圓暉) (T.1823). 《
俱舍論송小論本(俱舍論頌疏論本)
》. 對精神수大藏經. T41, No. 1823, CBETA.
各州
[
編輯
]
- ↑
"
認識(認識)
", 《네이버 國語辭典》. 2012年 10月 18日에 確認.
- ↑
"오형근. 《月刊불광》, 〈
唯識學과 人間性: (3) 심의식(心意識)思想의 槪要
Archived
2014年 3月 17日 -
웨이백 머신
〉. 불광出版社. 2013年 1月 19日에 確認.
"小乘佛敎時代에 著述된 품류족론(品類足論)과 阿毘曇審論(阿毘曇心論) 等에 依하면 『審(心)은 곧 의(意)이며, 의(意)는 또 式(識)으로서 그 體性(體性)은 서로 같으며 이름만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依하면 小乘佛敎時代에는 심의식(心意識)이라는 名稱이 서로 表現만 다를 뿐 그 體性은 同一한 것으로 보았으며 同時에 이러한 심의식 思想이 一般化되었다고 할 수 있다. 勿論 全體 小乘思想을 통해 본다면 人間의 心性은 그 體性이 各其 다르며 活動도 다르게 한다는 學說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大體로 人間의 心體(心體)는 唯一한 것이며 그 活動하는 作用만 다를 뿐이라고 主張한 學說이 大部分이었다. 그 代表的인 學說은 小乘佛敎를 最終的으로 綜合하여 整理하였다는 世親論士(世親, AD. 4世紀)의 阿毘達磨俱舍論(阿毘達磨俱舍論)에 잘 나타나 있다.
阿毘達磨俱舍論에 依하면 『심의식의 3가지 이름은 그 表現의 뜻이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그 體性은 唯一하다<心意識三名 所 異 而體是一>』라고 하였다. 이에 依하여 小乘佛敎는 우리 人間의 心體(心體)를 하나로 본 것이 支配的이었다고 볼 수 있다. "
- ↑
"오형근. 《月刊불광》, 〈
唯識學과 人間性: (3) 심의식(心意識)思想의 槪要
Archived
2014年 3月 17日 -
웨이백 머신
〉. 불광出版社. 2013年 1月 19日에 確認.
"以上과 같이 世親論士는 심의식을 매우 合理的으로 解釋하여 精神 活動의 內容을 從來의 理論보다 훨씬 깊고 넓게 解釋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식 思想은 大乘佛敎에 이어지면서 唯識學에서는 小乘的인 思想을 大幅 改革하고 또 그 思想을 大乘的으로 크게 增補 하였다.
그리고 심의식을 各各 分離시켜 오늘날의 八識思想으로 組織化하였던 것이다. 唯識學에서 심의식 思想을 가장 重要視 하고 있는 經典과 論戰의 例를 들면 解深密經(解心密經)의 심의식商品(心意識相品)을 비롯하여 瑜伽師地論(瑜伽師地論), 顯揚聖敎論(顯揚聖敎論), 阿毘達磨집론(阿비達磨集論) 等 여러 經論 等을 들 수 있다.
이들 經論에 依하면 審(心)과 의(意)와 式(識) 等은 그 活動과 役割하는 作用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 體性度 各其 다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小乘佛敎에서 大體로 심의식의 體性을 同一하다고 본 것에 對하여 大乘佛敎의 油價唯識學派(瑜伽唯識學派)에서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佛敎에는 心體(心體)의 同一說과 心體의 區別說을 말하는 心體一說(心體一說)과 心體別設(心體別說)李 傳統的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