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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瓦臺 ‘無補職有賃金’ 제 食口 챙기기?|주간동아

週刊東亞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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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瓦臺 ‘無補職有賃金’ 제 食口 챙기기?

100餘 名 退職 祕書官 中 18% 免職 以後에도 事實上 待機發令 形式으로 在職

  • 송홍근 記者 carrot@donga.com

    入力 2006-11-13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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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무보직유임금’ 제 식구 챙기기?
    “한 番 마음에 들기 始作하니까 그때부터는 노무현이 하는 건 다 이뻐 洑입디더. 이마의 일자주름도 이쁘고 볼이 통통한 것도 좋데예. 얼굴이 울퉁불퉁한 거이 꼭 제가 파는 아구하고 닮아서리 아침에 아구 손질하면서 실실 웃습니더.”

    2002年 12月4日에 放送 電波를 탄 魚物廛 主人 이일순(61·자갈치 아지매) 氏의 放送 演說은 大選 局面에서 큰 反響을 일으켰다. 大選候補 贊助 演說 中 가장 높은 視聽率을 記錄한 이 演說은 盧 候補가 미디어 選擧에서 勝利하는 데 디딤돌 구실을 했다.

    ‘자갈치 아지매’를 發掘한 사람은 趙光漢 前 大統領弘報企劃祕書官. 조氏는 大選 때 盧 候補 캠프에서 贊助演說企劃團을 이끌었다. 弘報戰에서 赫赫한 功을 세운 그는 現 政權 出帆 後 大統領祕書官을 거쳐 韓國가스公社 監査를 지냈다.

    노무현 政權의 ‘제 食口 챙기기’가 批判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조氏처럼 大統領祕書室에서 經歷을 쌓은 뒤 政府 傘下機關 企業體 等에서 알짜배기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조氏는 大選에서 功을 세운 盧 大統領의 386參謀 가운데 權力 核心部에서 일찌감치 밀려난 人士로 꼽힌다. ‘言論 改革論者’들로 가득 찬 靑瓦臺에서 ‘悠然한 臺(對)言論 接近法’을 强調하다가 內部 競爭에서 밀렸다는 말이 나왔다.



    退職 後 傘下機關 等 알짜배기 차지하기도

    조氏는 노무현 政府의 大統領祕書室이 꾸려진 2003年 3月 靑瓦臺에 入城했다가 같은 해 12月22日 靑瓦臺 祕書室 改編에서 落馬했다. 그가 9個月 만에 靑瓦臺에서 밀려난 일은 當時로선 뜻밖이었다.

    靑瓦臺는 조氏를 落馬시키면서도 꼼꼼하게 챙겼다. 그는 2004年 3月까지 ‘특정한 補職 없이’ 祕書官 身分을 維持했다. 12月 改編에서 물러난 金賢美(열린우리당 議員), 朴範界 前 祕書官 等 다른 人士들과 달리 靑瓦臺에 繼續 敵을 두게 해 給與를 支給한 것.

    조氏는 結局 2004年 4月21日 韓國가스公社에 ‘落下傘 感謝’로 내려갔다. 言論 報道를 통해 조氏가 韓國가스公社 監査에 內定된 事實이 알려진 때는 같은 해 3月8日. 공교롭게도 그날은 조氏가 靑瓦臺를 ‘正式으로’ 退職한 날이었다. 以後 조氏는 監事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美國으로 留學을 떠났다.

    조氏에 對한 靑瓦臺의 이런 配慮는 어떻게 보면 ‘人間味 넘치는’ 人事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稅金을 내는 國民 處地에서 보면 꺼림칙한 게 事實이다. 退職을 앞둔 公務員이 正常的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 月給을 받았다면 이는 分明 國民 稅金이 浪費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무보직유임금’ 제 식구 챙기기?

    2003年 7月31日 盧武鉉 大統領 主宰로 靑瓦臺 首席祕書官 및 補佐官 會議가 열리기 直前 當時 윤태영 代辯人, 이호철 民情1祕書官, 곽해곤 現場 모니터祕書官(오른쪽부터)이 鳩首會議를 하고 있다.

    靑瓦臺가 事實上의 ‘待機發令’ 制度를 運用하면서 職位에서 물러난 一部 祕書官들을 退職시키지 않은 채 一定 期間 給與를 支給한 것으로 確認됐다. 靑瓦臺가 金姬廷 議員(한나라당)에게 提出한 資料 等을 分析한 結果, 조氏처럼 退職 直前 數個月 동안 事實上의 ‘無任所 祕書官’으로서 給與를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盧 大統領의 夫人 권양숙 女史를 補佐한 김경륜 大統領 第2附屬室長은 2004年 5月18日 第2附屬室長職에서 물러났다. 當時 靑瓦臺는 “김경륜 第2附屬室長이 辭意를 表明해 第2附屬室長은 後任者를 求할 때까지 公席으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金 祕書官은 같은 해 9月1日까지 ‘특정한 補職 없이’ 祕書官職을 維持하면서 給與를 받았다.

    盧 大統領의 言論特報 出身으로 靑瓦臺 消息紙인 ‘靑瓦臺브리핑’ 製作 責任者이던 박종문 前 大統領國政弘報祕書官도 3個月 동안 總務팀 所屬 祕書官으로 消日했다. 朴氏는 大選캠프에서 ‘노무현 브리핑’을 만들었고 以後 ‘引受위 브리핑’을 거쳐 ‘靑瓦臺 브리핑’까지 製作한 노무현 캠프 弘報라인의 核心 人士.

    朴氏도 조氏처럼 政權 初 內部 競爭에서 밀려났는데, 靑瓦臺에 들어간 지 2個月 만인 2003年 5月 國政弘報祕書官에서 免職됐을 때는 “靑瓦臺 브리핑을 만들면서 混線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以後 事實上의 ‘無任所 祕書官’으로 3個月을 보낸 朴氏는 같은 해 9月15日 요코하마 總領事로 任命됐다. 朴氏가 靑瓦臺에서 退職한 것은 8月29日.

    안연길 前 大統領報道支援祕書官은 2004年 11月2日 報道支援祕書官職에서 물러났다. 安氏가 事實上의 待機發令 狀態로 靑瓦臺에 籍을 둔 것은 2005年 2月3日까지다. 安氏는 靑瓦臺 退職 直後 駐 이탈리아大使館 參事官(弘報館)으로 옮겨갔다. 11月2日부터 한동안 報道支援祕書官은 空席이었다.

    “就業할 곳 없는 祕書官들에 對한 配慮”

    송경희 靑瓦臺 代辯人은 두 次例나 事實上의 ‘待機發令’을 받았다. 現 政府 初代 代辯人으로 靑瓦臺에 들어갔다가 잇따른 失手로 2個月餘 만에 代辯人職에서 물러난 송氏가 3個月 동안 總務팀 所屬 祕書官으로 在職한 事實은 널리 알려졌다. 宋氏는 2003年 8月 國內言論祕書官으로 復歸했는데, 첫 番째 待機發令은 새 자리에 임명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點에서 크게 問題되지 않는다. 當時 宋氏는 靑瓦臺로 每日 出勤했다고 한다. 하지만 宋氏는 같은 해 12月 人事에서 趙光漢 前 祕書官 等과 함께 다시 물러났는데, 2004年 3月8日까지 靑瓦臺 祕書官 身分을 維持하면서 給與를 繼續 받았다.

    곽해곤 전 制度改善祕書官도 2003年 12月 人事에서 制度改善祕書官職에서 물러난 뒤 이듬해 3月2日까지 事實上의 無任所로 祕書官職을 維持했다. 郭氏는 靑瓦臺에서 退職하자마자 不動産信託業協會 副會長에 就任했다.

    ‘週刊東亞’가 分析한 100餘 名의 退職 靑瓦臺 祕書官 中 18%假量이 免職日 以後에도 待機發令 形態로 靑瓦臺에서 祕書官으로 在職했다. 勿論 이 中엔 退職 節次가 늦어져 退職이 1~3週假量 늦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도 包含돼 있다. 나머지 80%는 모두 免職과 同時에 退職했다. 왜 靑瓦臺는 事實상의 待機發令 形式으로 特定 人士들의 退職을 미룬 것일까? 안봉모 前 大統領國定記錄祕書官의 說明이다.

    청와대 ‘무보직유임금’ 제 식구 챙기기?

    2003年 10月 當時 靑瓦臺 祕書官들이 서울空港에서 아세안+3 會議를 마치고 歸國하는 盧武鉉 大統領을 기다리며 堵列해 있다.

    “待機發令 制度는 靑瓦臺를 나간 뒤 곧바로 就業할 곳이 없는 祕書官들에 對한 一種의 配慮였다고 보면 된다. 待機發令을 받은 사람들은 大部分 出勤을 안 했는데, 나는 國政記錄이라는 業務의 特性上 整理할 것들이 많아서 待機發令 期間에도 繼續 出勤했다. 待機發令 期間엔 基本給만 支給됐다.”

    또 다른 前職 大統領祕書官은 特定 補職 없이 發令을 낸 것은 退職者에 對한 一種의 禮遇였다”면서 “企業에서도 退職 前에 猶豫期間을 주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盧 大統領의 釜山地域 言論特報 出身인 安 前 祕書官은 2004年 5月18日 國政記錄祕書官職에서 免職된 뒤 같은 해 9月1日까지 事實上의 待機發令 狀態로 祕書官 身分을 維持했다. 安氏는 1987年 釜山日報 記者 時節 大宇造船 이석규 氏 死亡事件을 取材하면서 盧 大統領과 因緣을 맺었다. 그는 靑瓦臺를 나온 뒤 2006年 初 韓國交通放送(TBN) 釜山本部長을 지냈다.

    신봉호 서울市立大 敎授(經濟學部)는 現 政府 出帆 後 2003年 3月부터 12月까지 靑瓦臺에서 政策調整祕書官 等으로 일했는데, 申 敎授도 2003年 12月 政策調整祕書官職에서 물러난 뒤 이듬해 2月 中旬까지 特定 補職이 없는 祕書官으로서 靑瓦臺에 籍을 뒀다. 申 敎授는 靑瓦臺에서 退職한 뒤 곧바로 서울시립대에서 敎授로 일하기 始作했다.

    이들 外에도 2004年 7月 大韓鑛業振興公社 監査로 就任한 양민호 前 大統領民願提案祕書官, 권선택 議員 等 退職을 앞두고 事實上의 待機發令 形式으로 一定 期間 靑瓦臺에 籍을 둔 前職 祕書官들이 적지 않다.

    靑瓦臺 側 “祕書室 職制에 對한 誤解”

    權 議員은 申 敎授와 같은 날 當時 補職에서 免職된 뒤 2月18日까지 靑瓦臺에 籍을 두었다. 그는 大統領祕書官 身分을 維持한 채 2004年 2月 大田에서 出馬 記者會見을 열기도 했다. 原則대로라면 靑瓦臺에 出勤했어야 할 祕書官이 地方에서 政治活動을 한 셈이다.

    이러한 靑瓦臺의 人事 行態는 最近까지도 繼續되고 있다. 辭退 意思를 밝힌 뒤 8月25日 儀典祕書官職에서 免職된 천호선 氏의 實際 退職日은 10月17日인 것으로 알려졌다.

    退職 前 待機發令 制度와 關聯해 靑瓦臺 關係者는 “待機發令, 無任所 祕書官 等의 表現은 大統領祕書室 職制에 對한 誤解에서 비롯한 것으로 事實과 다르다. ‘特定 補職의 祕書官’에서 그냥 ‘大統領祕書室 祕書官’으로 發令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强調했다.

    이 關係者는 또 “大統領祕書室 祕書官으로 在職하면서 業務를 引繼하는 等 이런저런 일을 한 것으로 안다. 또 一部 祕書官의 境遇엔 辭表를 낸 뒤 退職 節次를 밟는 過程이 길어져 給與가 支給된 境遇도 있다. 出勤을 제대로 하지 않고 給與를 받은 事例는 退職 節次를 밟는 過程에서 벌어진 極히 一部에 該當하는 일”이라고 解明했다.

    金姬廷 議員은 이에 對해 “退職한 靑瓦臺 祕書官의 80% 以上이 免職과 同時에 靑瓦臺를 나왔는데, 一部 祕書官들만 退職을 앞두고 一種의 特惠를 받은 셈”이라면서 “靑瓦臺가 國民 稅金을 허투루 쓴 嫌疑에 對해 國會에서 問題 提起를 한 뒤 監査院 監査를 要請하겠다”고 밝혔다.

    靑瓦臺 出身 再就業 어느 程度氣에…

    4級 以上 退職 196名 中 79名 原隊 復歸, 61名 公企業 等으로


    現 政府가 들어선 뒤 靑瓦臺에서 勤務하다 退職한 4級 以上 高位 公務員 가운데 61名이 政府 部處나 傘下機關에 任員 等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把握됐다.

    大統領祕書室이 金姬廷 議員(한나라당)에게 提出한 ‘參與政府 出帆 後 4級 以上 退職者 再就業 現況’ 資料에 따르면, 靑瓦臺에서 勤務하다 退職한 4級 以上 公務員은 모두 196名으로 이 가운데 140名이 새 職場을 찾았다(6월 現在). 再娶業者 가운데 79名은 靑瓦臺에서 勤務하기 前에 自身이 일했던 分野로 돌아갔고, 나머지 61名은 政府 部處나 傘下機關 等의 高位職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傘下機關의 高位職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 中엔 靑瓦臺에서 退職한 直後, 甚至於 靑瓦臺 退職에 앞서 就業한 境遇도 있다. 靑瓦臺 出身 人士들의 傘下機關 就業實態를 分析한 주호영 議員(한나라당)에 따르면, 홍성일 前 靑瓦臺 行政官은 2004年 7月1日 靑瓦臺에서 退職하면서 바로 그날 韓國環境資源工事 監査로 選任됐다. 大統領報道支援祕書官으로 일한 권영만 氏는 靑瓦臺 退職보다 나흘 앞서 韓國敎育放送公社(EBS) 副社長에 選任되기도 했다.

    大統領人事首席祕書官室과 中央人事委員會는 2004年 10月 ‘公正 透明한 人事原則과 基準’을 發表한 적이 있다. 이 基準엔 “退職 公務員의 政府 傘下機關 再就業은 6個月 經過 後 任用 原則 遵守”라고 規定돼 있다.

    그러나 實際 이뤄진 人士는 이 基準의 趣旨를 無色케 한다. 朱 議員에 따르면, 권재철 前 祕書官은 靑瓦臺를 나온 지 3個月餘 만에 韓國雇傭情報院 院長으로 就任했고, 大統領祕書室 行政官을 지낸 정구철 氏는 지난해 4月22日 靑瓦臺에서 退職하면서 바로 그날 映像弘報원 院長으로 자리를 옮겼다. 靑瓦臺에서 退職한 뒤 4個月餘 만에 韓國電氣安全公社 監査로 간 김남수 前 祕書官 等도 基準을 어기기는 마찬가지다.

    朱 議員은 “노무현 政府는 人事가 공정하고 透明하다는 宣傳은 엄청 하면서도 實際로는 自身들이 만들어놓은 基準에도 어긋나는 人事를 하고 있다”고 指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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