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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汝貞, 오스카를 쥐었다, 世界人 마음을 잡았다|신동아

尹汝貞, 오스카를 쥐었다, 世界人 마음을 잡았다

女優助演賞 受賞…102年 韓國 映畫史 새로 쓴 尹汝貞

  • 황승경 公演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1-04-26 11: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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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나리’의 强靭한 生命力, 尹汝貞의 삶이었다

    • 學費負擔 덜려 始作한 放送…才能 發見하다

    • 대쪽같이 子息 키운 홀어머니, 尹 演技도 키워

    • 最全盛期 1974年 美國行, 1985年 초라한 歸國길

    • 撮影 準備 안 된 後輩?스텝에게 毒舌

    • ‘사랑과 野望’ 김수현 作家, 尹 出演을 꺼린 事緣

    • 바람난 家族, 下女, 죽여주는 女子…縱橫無盡

    • 俳優 50年…74歲에 이룬 39冠王 大記錄

    윤여정이 4월 26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Gettyimages]

    尹旅程이 4月 26日(韓國時刻) 美國 캘리포니아州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劇場에서 열린 93回 아카데미 施賞式에서 女優助演賞 受賞者로 選定된 뒤 所感을 밝히고 있다. [Gettyimages]

    尹旅程이 韓國 俳優 最初로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며 102年 韓國 映畫史에서 새 歷史를 썼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餘波로 두 달 假量 늦은 4月 26日(韓國時間) 美國 캘리포니아州 로스앤젤레스(LA) 돌비 劇場과 유니언 스테이션 等에서 同時에 열린 第93回 美國 아카데미 施賞式에서 尹汝貞은 마리아 바칼로바, 글렌 클로즈, 올리비아 콜만, 아만다 사이프리드 等이다 等 錚錚한 競爭者들을 물리치고 女優助演賞 受賞者로 選定됐다.

    오스카賞은 前年度 美國 LA에서 一週日 以上 上映한 美國映畫와 美國에서 上映된 外國映畫를 對象으로 美國 映畫藝術科學아카데미協會(AMPAS) 會員들의 投票로 選定되는 世界的인 權威의 映畫祭로 손꼽힌다.

    尹旅程이 出演한 映畫 ‘미나리’는 作品賞, 監督賞, 脚本賞, 男優主演賞, 女優助演賞, 音樂賞 等 總 6個 部門에 노미네이트 돼 話題가 됐다. ‘미나리’는 1980年代 美國으로 移民 온 韓人家庭의 定着期를 그린 正이삭 監督의 自傳的 映畫로, 尹汝貞은 劇 中 할머니(荀子 分)로 熱演했다.

    아카데미賞 受賞 以前까지 이미 世界 代表 映畫祭에서 女優助演賞 38冠王이라는 記錄을 達成한 尹汝貞의 受賞은 어쩌면 當然한 手順이었다. 할리우드의 施賞式 豫測사이트 ‘골드더비’ ‘뉴욕타임즈’ 等 各種 媒體는 尹汝貞을 有力한 受賞者로 점찍었고, 코로나19로 商業 映畫들이 줄줄이 撮影을 미루거나 開封을 늦추면서 相對的으로 ‘미나리’같은 低豫算 獨立映畫들이 强勢를 보이며 剛한 演技色彩를 보여준 尹汝貞에게 世界의 耳目이 集中됐다. 映畫界 데뷔 50年이 된 尹汝貞의 受賞 收監도 話題가 됐다.

    學費負擔 덜려 始作한 放送…才能을 發見하다

    윤여정(오른쪽)의 영화 데뷔작인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품 ‘화녀’. [(주)콘텐츠존 제공]

    尹汝貞(오른쪽)의 映畫 데뷔作인 김기영 監督의 1971年 作品 ‘化女’. [(週)콘텐츠존 提供]

    俳優(俳優)를 指稱하는 漢字 ‘俳優 倍(俳)’는 사람인 便(?)에 아닐 비(非). 이는 俳優가 여러 캐릭터를 演技해야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아니다’의 意味와 가깝다. 觀客이나 視聽者는 스크린이나 브라운管에서 接하는 俳優의 모습으로 그 俳優를 判斷하지만, 俳優에게 카메라 속 모습은 自身이 아니다. 따라서 配役마다 살아있는 캐릭터를 創造해야하는 俳優의 演技 濃度는 球歷이 붙을수록 카메라 밖 俳優의 實際 삶에 影響을 받을 수밖에 없다.



    尹汝貞은 1947年 只今은 北側 非武裝地帶인 된 開城 隣近의 내로라하는 땅 富者집 長女로 태어났다. 4살 때 터진 6?25戰爭으로 家族은 서울로 避難 와 定着했다. 집안의 大들보였던 아버지마저 肺病으로 서른세 살 한참 나이에 世上을 등지자, 養護 敎師였던 어머니가 집안의 家長이 돼 세 딸을 키웠다(윤여정의 막내 女同生은 LG그룹 첫 女性 任員이자 前 LG아트센터 代表인 윤여순이다).

    어머니는 모진 風波를 헤쳐 나가며 모든 일에 最善을 다한다는 所信으로 대쪽같이 子息들을 키웠다고 한다. 이는 尹汝貞의 당찬 演技 人生에 큰 流産이 됐다. 1960年 中學校 入學 시에는민관식 前 國會議長이 設立한 奬學財團 中産육영회의 奬學金을 받아 學生 代表로 踏査를 하기도 했다.

    平素 큰 딸 尹汝貞을 依支했다는 어머니 故 신소자 女史는 지난해 10月 96歲로 所天할 때까지 尹汝貞과 함께 살며 그가 出演하는 藝能 프로그램에 잠깐씩 얼굴이 비춰지기도 했다. 尹汝貞은 이화女高를 거쳐 한양대 國文科에 進學한다. 어머니의 學費負擔을 덜어드리고자 始作한 放送일을 契機로 그는 自身의 藝術的 才能을 發見하게 된다.

    1966年 尹汝貞은 TBC公採 탤런트가 되며 俳優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데뷔 5年째인 1971年, 24歲의 尹汝貞은 MBC드라마 ‘張禧嬪’에서 張禧嬪 役으로 出演해 이름 석 字를 確實하게 大衆에 刻印시켰다.

    같은 해 충무로에서는 김기영 監督의 映畫 ‘化女’로 스크린에 데뷔해 大鐘賞과 靑龍映畫祭 女優主演賞을 휩쓸며 新人賞과 女優主演賞 트로피를 함께 受賞하는 氣焰을 吐했다. ‘化女’에서 尹汝貞은 狂氣와 히스테리를 품은 頹廢的 人物인 家政婦 명자로 分解 果敢하면서도 농익은 演技를 펼치며 俳優로서 眞價를 發揮했다.

    醫師 出身 監督인 김기영 監督은 살아있는 쥐를 女俳優가 손으로 잡게 하는 等의 多少 奇怪한 서스펜스 延期를 要求했는데, 尹汝貞은 監督의 意圖를 제대로 看破한 것이다.

    俳優로서의 坦坦大路일 것만 같았던 最全盛期였던 1974年, 瞥眼間 그女는 結婚과 함께 갑자기 美國行 飛行機에 몸을 싣는다. 그로부터 12年 後인 1985年 그는 男便 조영남과 歸國했다. 前途有望한 靑春 女俳優와 歌手는 靑雲의 꿈을 안고 美國 플로리다로 向했지만 歸國길은 초라했고 그는 이미 잊힌 俳優였다. 歸國 이듬해 離婚圖章을 찍은 그는 當場 남겨진 두 아들을 위해 生活前線에 뛰어들어야 했다.

    허나 ‘經斷女’(經歷斷絶女)가 된 마흔의 女俳優가 放送界에서 다시 活動한다는 건 녹녹치 않았다. 往年의 팜므擺脫 女俳優로서의 自尊心도 접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端役부터 닥치는 대로 주어진 役을 消化해냈다. 빈 紙匣의 威力을 切感한 그는 목숨 걸고 演技했지만 좀처럼 機會가 주어지지 않았다.

    질긴 生命力 源泉은 성실함

    至誠이면 感天이었던가. 苦戰하던 그는 1987年 大韓民國을 强打한 國民드라마 ‘사랑과 野望’에서 比重 있는 役割인 패션디자이너 송혜주 役을 맡아 視聽者들에게 ‘돌아온 尹汝貞’을 確實하게 알릴 수 있었다. 尹汝貞은 個人的으로 ‘사랑과 野望’ 김수현 作家와 親分이 있었지만 金 作家는 尹汝貞을 自身의 作品에는 出演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實力이 아니라 親分으로 配役을 맡았다는 괜한 誤解를 부를 수도 있다는 憂慮 때문이었다. 當時 尹汝貞의 목소리는 거칠고 허스키했고, 딱딱 끊어지는 獨特한 話法의 演技스타일에 拒否感을 느끼는 視聽者들도 만만치 않았다. 憂慮는 現實이 됐고, 한동안 尹汝貞에게는 김수현 作家의 ‘落下傘 俳優’라는 汚名이 따라다녔다. 이 時節 그가 맡았던 役割은 至極히 制限的이었다. 主人公의 女同生, 主人公이 다니는 病院의 精神과 醫師 等 斷片的으로 定型化된 캐릭터였다. 그러나 主人公에 가려져 묻히는 助役이었지만 尹旅程이 맡으면 恒常 主演級 存在感을 誇示했다. 役割이 크든 작든 自身만의 스타일로 주어진 人物을 充實하게 分析하고 硏究해 支神만의 스타일로 創造했다. ‘쪽臺本’으로 며칠 前에 臺本이 急하게 나오더라도 撮影場에 完璧하게 臺本을 외워 나타나는 俳優로 定評이 났다. 그가 撮影場에서 準備가 덜 된 後輩나 스텝에게 毒舌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演技에 對한 그의 信念 때문이었다.

    1991年 平均視聽率 59.6%라는 前無後無한 記錄을 세운 김수현 作家의 MBC週末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45歲의 나이로 20代 中後半 딸들을 둔 엄마 逆으로 登場한 以後에는 다양한 엄마 役割을 消化하며 視聽者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나 ‘國民엄마’로 불리는 普遍的 어머니像은 그를 통해 個性的이고 獨特한 엄마로 變貌된다.

    映畫界로 돌아와 물 만난 물고기

    2016년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할머니 역할을 맡은 윤여정. [CGV아트하우스 제공]

    2016年 映畫 ‘죽여주는 女子’에서 박카스 할머니 役割을 맡은 尹汝貞. [CGV아트하우스 提供]

    TV드라마 ‘사랑과 野望’ 以後 그는 오롯이 TV드라마에만 ‘올인’했지만 2003年 임상수 監督의 映畫 ‘바람난 家族’으로 충무로로 돌아왔다. 當時 ‘男便 말고 愛人이 必要해’라는 文句와 新人이었던 門소리의 挑發的인 포즈가 印象的的이었다. ‘바람난 家族’에서도 尹汝貞은 主人公 황정민의 엄마 役割이었지만 性不具者人 男便을 15年 동안 外面하고 다른 男子와 바람난 엄마 홍병한 役을 맡는다. 大韓民國에서 어느 50代 女俳優가 이 役割을 延期할 수 있을까 싶을 程度로 ‘자유로운 靈魂’ 尹汝貞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能手能爛하게 露骨的인 臺詞와 露出신을 延期했다. 이 映畫는 尹汝貞의 延期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2005年 日日드라마 ‘굳세어라 金錞아’에서는 破格的으로 70代 할머니 役을 맡아 白髮의 村老로 登場했다. 萬 58歲 때였다. 當時 그는 “엄마 캐릭터는 主人公이 들어오면 밥 먹었냐고 묻고, 子息 結婚 反對하는 것이 全部다”고 인터뷰했다.

    映畫와 TV드라마를 活潑하게 오고가던 그는 2010年 映畫 ‘下女’에 出演했다. 尹汝貞을 映畫에 데뷔시킨 김기영 監督의 同名映畫를 리메이크했는데, 當時 임상수 監督은 原作에도 없던 나이 많은 下女를 등장시켰다. 尹汝貞을 念頭해 둔 監督의 한수였다. 이 映畫로 尹汝貞은 椿事對象映畫祭, 夫日映畫賞, 大鐘賞, 大韓民國 映畫對象에 이어 靑龍映畫賞까지 女優助演賞을 모두 싹쓸이했다. ‘下女’와 2012年作 ‘돈의 맛’으로 尹汝貞은 연이어 칸 映畫祭 레드카펫을 밟는 榮光을 누리기도 한다.

    尹汝貞은 2016年 開封한 이재용 監督의 ‘죽여주는 女子’를 통해 다시 果敢한 挑戰을 敢行한다. 京畿 東豆川 美軍部隊 洋公主 出身으로 서울 鍾路一帶에서 活動하는 一名 ‘박카스 아줌마’ 윤소영 役割을 맡아 性賣買 老人女性의 現實을 赤裸裸하게 延期했다. 그의 熱演에 힘입어 이 映畫는 그동안 社會的으로 沈默했던 老人의 成果 貧困이라는 社會問題를 水面위로 끌어올렸다는 評價를 받았다. 映畫 末尾에 警察에 連行되며 自嘲 섞인 목소리로 “여기서 살기도 힘든데 矯導所에 가면 세끼 밥은 잘 나오겠네”라는 臺詞는 壓卷이었다. 그의 演技는 誇張이 없고 簡潔해 지루하지 않는 긴 餘韻을 남긴다.

    美國人에게 膳賜한 尹汝貞票 미나리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시네마 제공]

    映畫 ‘미나리’ 스틸컷. [판시네마 提供]

    映畫 ‘미나리’는 俳優 브레드 피트의 製作社 ‘플랜(Plan) B’가 製作을 맡고 美國에서 나고 자란 在美僑胞 正이삭 監督이 메가폰을 잡아 美國에서 撮影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移民 家庭의 成長過程을 그린 映畫 ‘미나리’는 가장 美國的인 映畫다. 다만 골든글로브를 主管하는 할리우드外信記者協會(HFPA) 規定上 大使의 50% 以上이 英語가 아니면 外國語 映畫로 分類하다보니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外國語映畫賞을 受賞했다.

    尹汝貞은 農場을 이루기 위해 南部 아칸소로 移住한 30代 夫婦를 찾아온 韓國의 親庭엄마 荀子 役을 맡았다. 映畫에서 唯一하게 尹汝貞만 美國情緖에 비켜나간다. 孫子 데이비드는 처음 보는 韓國 할머니가 美國 할머니들과 달라 不滿이다. 孫子는 할머니에게 마음의 門을 열지 않지만 無條件 自身을 믿어주고 받아주는 할머니의 사랑에 든든해한다. 荀子는 家族들을 위해 韓國에서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山기슭 냇가 附近에 심는다. 미나리는 雜草처럼 瘠薄한 땅에서도 適應하며 뿌리내린다. 正이삭 監督은 美國에는 生疏한 미나리를 통해 버거운 삶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移民家族의 希望을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그는 미나리 같이 새로운 곳을 찾아 强靭하게 適應했다. 그女의 强靭한 미나리 같은 삶이 演技로 昇華돼 映畫 속에서 生命力을 가지고 빛을 發한 理由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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