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肝타로
(
日本語
:
鈴木貫太?
,
1868年
1月 18日
~
1948年
4月 17日
)는
日本
의 海軍 軍人이자 政治人이다. 聯合 艦隊 司令長官, 海軍 軍令 部長 等을 歷任하였고,
1945年
4月
부터
太平洋 戰爭
의 日本의 降伏 直後까지 제42대 內閣總理大臣을 지냈다.
에도 時代
에 태어난 마지막 內閣總理大臣이기도 하다.
退役 以後에는 天皇의 側近인 侍從長으로 勤務하다가
2.26 事件
때는 過激 靑年 將校들의 暗殺 標的이 되어 銃傷을 입기도 했으나 艱辛히 목숨을 건졌다.
從前의 主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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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年
4月 7日
오키나와 陷落 以後
고이소 구니아키
가 辭任한 以後 그는 77歲의 나이로 首相에 올랐다. 그는 戰況이 기울었음을 느끼고
蘇聯
의 仲裁를 通한 終戰을 摸索하였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原爆이 投下
되고, 蘇聯이 不可侵 條約을 破棄하고 對日戰에 參戰하자,
日本
에게
無條件 降伏
을 要求한
포츠담 宣言
의 受容이 不可避함을 閣議를 통해 밝혔다. 그는 이를 整理하여 이미 無條件 降伏을 受容하려던
쇼와 天皇
에게 上申했고 히로히토는 이에 同意하였다.
그러나 戰爭의 繼續을 主張하는 一部 靑年 將校들은 이에 反撥하였다. 그리하여
포츠담 宣言
을 受容하여 쇼와 天皇의 育成 放送 前인 8月 15日 새벽 그를 暗殺하려는 쿠데타 陰謀가 있었으나, 官邸에 들어오지 않아 暗殺 陰謀를 避하였다.
降伏이 恐怖
된 以後 그는 辭任했고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王
이 次期 總理로 就任, 以後
1948年
自然死했다. "軍人은 政治에 關與하면 안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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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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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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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大臣
| 태정官달 第69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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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省 管制(1898年 勅令 第258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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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省 設置法(1949年 法律 第135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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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省 設置法(1951年 法律 第283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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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務省 設置法(1999年 法律 第94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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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級掌令間
對立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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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謀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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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殺 標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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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係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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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聯項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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