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漢江이 내려다보이는 墓骨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先生의 生家는 咸陽 呂氏가 楊平에 입向한 1715年(肅宗 41年)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呂運亨 先生은 1885年 태어나서 1908年 父親 脫喪을 끝내고 서울로 移徙 갈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으며, 解放 前後인 1940年代 初中盤에도 種種 내려와서 지내셨습니다. 先生이 떠난 後 집은 漸次 頹落하여 바깥채 지붕이 草家로 變更되었다가 6·25 戰爭 渦中에 消失되었습니다. 2001年 楊平郡民들의 努力으로 生家터가 整備되었고 2011年 復元되었습니다.
집은 기역字 기와집 안채와 기역字의 기와집 바깥채로 되어 있고, 안채는 돌層階 위에 자리 잡았으며 뒷마당에는 디딜방아가 있습니다. 안채 房안에는 呂運亨 先生이 속옷 차림으로 앉아서 面刀하는 모습의 模型이 設置되어 있어 觀覽客들로 하여금 親近感을 느끼게 합니다. 집안에 展示된 家口들은 1930年代 以後 先生이 사셨던 서울 季冬 집에 있던 것들로 後孫들이 寄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