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制를 制壓한 雄辯家
3·1運動에 衝擊을 받은 日帝는 그 背後 核心人物인 夢陽 先生을 懷柔하기 위해 같은 해 11月 도쿄로 招請합니다. 日本을 訪問한 先生은 日本의 高官大爵들을 만나 論理的이고 堂堂하게 朝鮮의 獨立을 主張하여 그들을 오히려 주눅 들게 했습니다.
1919年 11月 27日 午後 3時 夢陽 先生은 도쿄帝國호텔에서 內外信 記者들을 모아놓고 朝鮮 獨立의 當爲性을 밝히는 演說을 했습니다. 이 演說에 感銘 받은 日本 指導者들이 夢陽 先生을 歡迎하는 晩餐을 열었으며 함께 ‘朝鮮 獨立 萬歲’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朝鮮 獨立運動史에 있어서 빛나는 成果로 評價받는 夢陽 도쿄 獨立宣言! 夢陽 先生을 懷柔하려다가 自身들의 首都를 朝鮮 獨立의 宣傳場으로 만들어준 꼴이 된 日本 政界는 큰 混亂에 빠져 結局 議會를 解散하고 새로 總選擧를 치르게 됩니다. 日帝의 콧대를 꺾어버린 朝鮮의 靑年, 그가 바로 夢陽 呂運亨先生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