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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허브

楊平 뮤지엄허브

建立趣旨 및 背景

황순원文學村 소나기마을
建立 趣旨와 背景

背景

近來 들어 有名 文人이 作故하면 그 文人의 弟子들이나 故鄕 사람들이 記念事業會를 結成하고 故鄕에 文學觀을 建立하는 境遇가 많아졌다. 그것은 그 文人의 業績을 기리고 널리 宣揚하는 것은 勿論 同時에 地自體가 自己故障을 弘報하자는 意圖를 反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황순원의 故鄕

그러면 故鄕이 南韓에 있지 않은 有名 文人이 作故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황순원 先生의 故鄕은 平安南道 大同郡으로 北韓에 있다. 이를테면, 先生은 代表的인 失鄕民作家라 할 수 있다.
「北間島」의 안수길,「오발탄」의 이범선, 「風流잡히는 마을」의 최정희 先生 等 文人들 가운데는 失鄕民 作家인 채로 돌아 가신 분이 많다. 後輩 文人들은 그분들 모두에게 故鄕을 찾아드리는 일을 해야 할 義務가 있다. 統一이 되어 故鄕이 復元되는 날, 그곳으로 文學奇行度 가고 그곳에 生家도 復元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미리 힘을 기르고 마음을 다지며 資料를 保管하고 管理하면서 그 분들의 業績을 宣揚할 場所를 마련해야 한다.

황순원의 作品과 後進

황순원 先生은 故鄕이 以北이지만 生涯의 3分의2를 南韓 땅에 살면서 많은 作品을 썼으며 한便으로는 23年 6個月 동안 慶熙大學校 國文學科에 奉職하면서 많은 文人 弟子들과 敎授들을 길러내었다. 先生이 2000年 9月 15日 他界하자 文人 弟子들과 敎授들이 先生의 文學을 온 國民이 體驗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적합한 空間을 찾아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代表作 '소나기'

이들은 于先 先生의 作品들 中에서 短篇小說의 白眉인 「소나기」가 온 國民들에게 널리 알려진 作品이라는 데 着眼하였다. 시골 少年과 都市에 살았던 少女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感情을 描破한 이 短篇小說은 1953年 發表된 以後 半世紀 넘게 꾸준히 影響力을 發揮해왔다. 敎科書에 실리고 수많은 葉書와 便紙에 認容되는가 하면 뮤지컬과 오페라까지 만들어지면서 人口에 膾炙되었다.

作品의 背景 楊平

"어른들의 말이, 來日 少女네가 양평읍으로 移徙간다는 것이었다." 라는 「소나기」속의 文章으로 미루어 볼 때, 이 作品의 場所的 背景은 京畿道 楊平郡 管內라는 推定이 可能하다. 적어도 少女가 양평읍으로 移徙 가기 前 그 隣近에서 살았다는 作品上의 事實은 否定될 수 없다. 이 '소나기' 테마를 實現할 수 있는 最適의 場所는 바로 楊平郡日 수밖에 없는 根據가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경희대학교는 楊平郡과 協議하여 2003年 6月 姊妹結緣을 맺음으로써 '소나기마을' 建立의 基礎를 마련했다.

소나기마을 建立 趣旨

소나기마을은 旣存에 보던 文學觀의 形式에 그치지 않고 小說의 意味를 되새기며 體驗할 수 있도록 꾸며진 테마파크다 . 文學의 疏通 媒介는 글이다. 인터넷의 活潑한 普及은 視聽覺的인 生産物의 茶山 못지않게 글의 梁山도 幾何級數的으로 增加시켜놓았다. 좋은 글이 쓰레기 더미에 떠밀려 가는 일이 없도록 제대로 지켜야 한다. 楊平郡과 경희대는 이러한 使命感에서 '황순원'이라는 文學的 象徵을 여기에 심어놓은 것이다.

소나기마을은 4萬7千640㎡(藥 1萬4千坪) 敷地 위에 造成되었고 延面積 2千305㎡(藥 8百坪) 規模의 3層 文學觀이 建立되었다. 推進委員會는 2006年 末 着工하여, 國費 50億원, 道費 25億, 軍備 49億 等 모두 124億원을 投入하면서 建立을 위해 온갖 精誠과 心血을 쏟았다. 姊妹結緣 後 경희대 總長 2代, 楊平 郡守 2臺를 經過하면서 姊妹結緣 以後 6年만인 2009年 6月 13日에 開場을 보게 되었다.

소나기마을 建立 過程
(2003-2008年)

소나기마을에는 作家 황순원의 生前 執筆室이 本디 그대로 옮겨져 있고, 故 황순원 先生의 墓域이 造成되어 있습니다. 作家의 肉筆原稿와 稀貴本 書籍들이 展示 或은 保管 되어 있습니다. 作家의 遺族들과 경희대학교에서 關聯 資料들을 無償으로 寄附해서 마련되었습니다.

遺族과 경희대 出身 文學人을 中心으로 한 文學界가, 建立主體人 楊平郡에게 건넨 付託은 簡潔합니다. 황순원의 文學을 기리고, 短篇 소나기의 純粹性을 保全해 달라, 가 付託의 全部입니다. 楊平郡은 쾌히 受諾했습니다. 이 要請이 소나기마을의 바람직한 運營 土臺임에는 서로 理論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建立 以後
(2009年-)

文學觀은 人氣 없는 文化施設입니다. 흥미롭고 新奇한 展示物이 櫛比한 博物館에 비해, 그리고 視覺的 즐거움을 주는 美術館에 비해 興味誘發의 要素가 貧弱해서입니다. 그럼에도 50餘個 地自體들이 公立文學觀을 運營하고 있습니다. 文學觀은 所在 地域 文化水準의 尺度이며, 文學은 모든 文化藝術의 母胎이기 때문입니다.

황순원文學村 소나기마을의 年平均 觀覽客은 10萬餘 名입니다. 接近性이 매우 떨어짐에도 觀覽客 數値가 餘他 文學觀을 크게 壓倒하는 것은 純全히 短篇 「소나기」의 힘입니다. 短篇 「소나기」는 大韓民國 國民 모두가 한 때 지녔으며 늘 그리워하는 ‘첫사랑 時節의 純粹’를 歲月과 無關하게 간직하고 있어서입니다.

肯定的 地域 이미지의 效果는 數字로 換算할 수 없으며 그 威力 또한 數字의 範圍로 測定不可입니다. 소나기마을은 餘他 다른 文學觀과는 確然히 區分되는, 肯定的 地域이미지 構築의 힘을 타고 났습니다. 國內 거의 모든 文學觀의 作家와 作品은 鄕土色, 政治的 理念, 歷史性, 藝術性에 根據하지만 소나기마을의 旗幟는 時代와 政治, 歷史와 藝術, 世代와 趣向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거듭 强調하건대, 첫사랑 時點의 純粹性은 모든 人間에게 가장 所重하고 그리운 對象이기 때문입니다.

황순원文學村 소나기마을은 楊平의 가장 정갈한 얼굴입니다. 開館 以後 約 百萬名의 觀覽客, 그리고 그보다 여러 곱절의 國民들이 短篇 「소나기」의 感性과 楊平의 感性을 同一線上에서 認識합니다. 楊平이라는 곳에는 短篇 「소나기」 속의 風景과 人物들이 過去에도 現在에도 또 未來에도 存在하리라는 漠然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認識과 믿음이 楊平에 어떤 種類의 얼마만큼의 肯定的 效果를 주는 지는 測定할 道理가 없으니 다만 斟酌에 맡길 수밖에 없겠습니다.

소나기마을의 現在

소나기마을은 올해 開館 15年을 맞습니다. 建立計劃 樹立 當時 遺族과 경희대 文人 그리고 楊平郡이 서로 뜻과 힘을 모아서 建立에 成功했듯이 그間 서로의 協力을 바탕으로 運營에도 成功해서 最多 觀覽客이 찾는 國內 文學觀의 模範이 되어왔습니다.

文化消費 性向이 急激히 變化하는 時代인지라 開館 初期의 展示시스템으로는 觀覽客 滿足度 充足에 限界가 있었으나, 文化體育觀光部의 實感콘텐츠 公募事業에 選定됨으로써 10億 원의 映像 콘텐츠 構築事業으로 相當 部分 補完되었고, 連이어 스마트博物館 構築 2億원 公募事業에 選定되어 觀覽客들에게 디지털 글쓰기 體驗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外에도 楊平郡 支援事業을 包含 外部 公募事業으로 確保한 展示, 敎育, 公演 프로그램들을 圓滑히 進行하기 위해 나름대로 最善을 다하고 있습니다.

作家 황순원과
소나기마을의 未來

短篇 「소나기」의 情緖와 感性은 歲月의 흐름 따위에 사라질 수 없는, 時代文化가 歲月의 흐름을 따라 더욱 刺戟과 選定으로 치달을수록 더욱 所重해질 수밖에 없는 不變의 價値를 품고 있습니다. 短篇 「소나기」는 時間槪念으론 現代文學에 屬하지만, 評價槪念으론 이미 古典 班列에 올라있습니다.

作家 황순원은 楊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楊平의 人物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소나기마을이 楊平에 있음은 이제 大韓民國 國民의 一般常識입니다. 作家 황순원이 楊平의 人物로 一般常識化되는 時點과 實現與否는 向後의 努力에 달려 있겠습니다.

소나기마을의 未來는 單純한 文學觀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고 確信합니다. 短篇 「소나기」가 文學作品 以上의 價値를 지녔듯이 소나기마을 亦是 文學館 以上의 價値를 開拓해나가야 합니다. 短篇 「소나기」의 情緖와 感性이 混濁한 時代相을 정갈하게 닦아내듯이, 소나기마을은 混濁한 時代의 日常에 지친 國民의 情緖와 感性을 정갈하게 닦아낼 수 있는 참된 文學公園이 되기 위해 努力하고 있습니다.

斷言컨대, 作家 황순원 先生과 短篇 「소나기」는 楊平이 選擇하고 集中할 수 있는 훌륭한 文化資産의 하나이며, 歲月이 흐를수록 價値가 더해지고 높아질 게 分明한 楊平의 文化遺産입니다.

楊平郡民 여러분의 關心과 激勵를 付託드립니다.

비전 및 核心價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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