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들度 直言 傾聽… 民心 이기는 權力은 없다[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1853年 7月 美國 東印度艦隊 司令官 매슈 페리가 에도만에 나타났을 때, 조슈번社(長州藩士)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마침 公務로 에도에 와 있었다. 當時 23歲. 집채만 한 시커먼 蒸氣船이 煙氣를 내뿜고 쏜살같이 日本 海岸을 휘젓는 걸 目睹한 이 英敏하고 野心滿滿한 젊은이가 받은… 2024-03-28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朝鮮-明 公論政治를 西洋과 椄木한 日, 1890年 議會 開設[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바야흐로 總選의 季節이다. 내 記憶 속에 남아 있는 總選은 그 有名한 2·12總選이다(1985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聯合한 宸翰민주당(신민당)李 全斗煥 政權에 一擊을 加한 選擧로 投票率 84.6%는 只今도 깨지지 않은 記錄으로 남아 있다. 김영삼의 代理人으로 出馬한 이민우 候補가 … 2024-02-29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幕府에 250年 눌려 있던 天皇, 帝王敎育 받고 ‘깜짝 反旗’[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1858年 初 日本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當時 에도에서는 美國 總領事 타운센드 해리스가 幕府에 通商條約 締結을 强하게 壓迫하고 있었다. 反對 輿論을 撫摩하고자 幕府 쇼군은 로주(老中·總理) 홋타 마사요시(堀田正睦)를, 그동안 政治에는 干與하지 않던 교토의 天皇에게 보내 … 2024-02-01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反對派 包容” 쓴소리 無視… 內戰에 自滅한 미토番 榮州[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도쿠가와 나리아키(德川齊昭·1800∼1860)라는 다이묘(大名·封建領主)가 있었다. 도쿄의 東北쪽 一帶에 있던 미토(水戶)番이라는 封建國家의 영주였다. 正室에게서 난 兄이 世子로 있었으니, 側室 子息인 그는 平生 한篇에 찌그러져 있어야 할 運命이었다. 그런데 病弱하던 兄이 젊은 나이… 2024-01-04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世界 地理 受容해 中火主義 脫皮… 日도쿠가와 知識人들[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朝鮮時代 知識人들의 주된 關心事는 自國 朝鮮의 特性이나 傳統이 아니라 宇宙, 社會, 人間을 떠받치고 있는 普遍 原理였고, 이를 바탕으로 形成·維持되고 있는 普遍文明(中華文明)에 있었다. 그러니 李滉, 이이나 宋時烈에게서 제대로 된 ‘朝鮮론’을 볼 수 없는 것도, 19世紀 末 紹介된 … 2023-12-07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正當, 票만 좇지 말고 眞理 찾아야… 日나카에의 警告[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차라리 3金 때가 나았어.” 요즘 政治판을 보며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사람은 다 지나간 때를 아름답게 記憶하려는 傾向이 조금씩은 있지만, 그저 그래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요즘 우리 政治風景은 目不忍見이다. 問題의 深刻性은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는 데 있다… 2023-11-09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270個 番에서 한 國家로… 日 國家主義의 强化[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1937年 勃發한 中日戰爭을 起點으로 日本社會는 國家主義로 치달았다. 낮에는 反美示威에 參與하고 밤에는 이불 속에서 재즈를 듣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全般的으로 日本 國民들은 ‘國家’를 自己 이에(家)나 무라(村)와 같은 共同體로 내면화하기 始作했다. 韓國 ‘國家主義’의 頂點이었을 有… 2023-10-12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自己 勢力보다 社會 重視… 에도 내준 가쓰의 ‘秩序 있는 退却’[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가쓰 가이슈(勝海舟·1823∼1899), 韓國 讀者들에게 좀 낯선 이름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會長이 尊敬했다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幕府의 家神으로 메이지 유신軍이 도쿠가와 幕府의 首都 에도(江戶·지금의 도쿄)… 2023-09-14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太陽의 子孫” “萬國의 中心”… 日 ‘自尊妄大’의 歷史[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19世紀 後半 西洋勢力이 東아시아를 壓迫했을 때 中國은 華夷思想을 固守하며 傲慢한 態度를 바꾸지 않았다. 反面 危機感을 느낀 日本은 中國의 ‘自尊妄大(自尊妄大·함부로 잘난 체함)’를 비웃으며 敏捷하게 對應했다. 中國의 ‘自尊妄大’야 모두 다 아는 事實이지만, 日本이라고 그렇지 않았던… 2023-08-17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李承晩 自由-民主 爲해 反日… 只今 日本 批判은 뭘 爲한 건가”[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가장 有名하나 完全히 잊혀진 人物’, 나는 李承晩이 韓國人에게 이런 存在라고 생각한다. 李承晩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韓國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初代 大統領 하다 不正選擧로 下野했다는 것 말고 그에 對해 더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不名譽… 2023-07-20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위안스카이, ‘中의 威脅 要素’라며 朝鮮 獨立과 改革 막아[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最近 政治權과 言論에서 느닷없이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 이름이 오르내렸다. 싱하이밍(邢海明) 駐韓 中國大使가 韓國의 第1黨 代表 앞에서 韓國 政府의 外交 政策을 거칠게 批判한 데 對한 反應이었다. 나는 一旦 ‘위안스카이가 韓國人들에게 이렇게 많이 알려져 있었나?’ 하고… 2023-06-22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日 여러 番 謝過에도, 韓 왜 또 要求할까[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3月 尹錫悅 大統領의 訪日로 徵用 問題에 對해 韓國이 물컵의 半을 채웠으니, 이제 日本이 나머지 半을 채워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韓國의 輿論上 그것은 日本의 ‘또 한 番’의 謝過를 의미하는 것 같다. ‘또 한 番’이라고 한 것은 우리 머릿속에는 잘 안 떠오르는 일이지만 지난 數十 … 2023-05-26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痛切한 謝罪’ 이끌었던 日 戰後歷史學 衰退[박훈 韓國人이 본 20世紀 日本史] 《學生運動이 한창이던 1980年代 運動圈 學生들은 所謂 ‘意識化 敎育’에서 社會科學과 歷史書를 많이 읽었다. 그中에 ‘도야마 시게키(遠山茂樹)-시바하라 다쿠地(芝原拓自) 論爭’이란 게 있었다. 資本主義 履行 問題를 둘러싼 ‘모리스 돕-폴 스위지 論爭’만큼 注目받지는 않았으나, 一種의 … 2023-03-31 좋아요 個 코멘트 個 PDF紙綿보기
갑자기 찾아온 解放… 獨立 協商 全無했던 韓日[박훈 韓國人이 본 20世紀 日本史] 《1951年에 열린 第1次 韓日會談 豫備會談에서 韓國 側 양유찬 代表가 “Let us bury the hatchet(和解합시다)”라고 하자 日本 側 지바 고(千葉皓) 代表가 “What is bury the hatchet?(뭘 和解하자는 말입니까?)”라고 했다. 兩 代表는 氣가 막혔을 … 2023-03-03 좋아요 個 코멘트 個
맥아더 ‘手足’ 넘어 ‘切親’된 요시다… 戰後 日本 회생시켜[박훈 韓國人이 본 20世紀 日本史] 《1951年 샌프란시스코에서 日本은 美國과 安全保障條約을 맺었다. 現在 猛威를 떨치고 있는 美日同盟, 바로 그 條約이다. 不過 6年 前까지 死生決斷으로 太平洋 全域에서 싸웠던 두 나라, 勝戰國이 敗戰國을 占領하여 支配下에 둔 關係였던 두 나라가 갑자기 軍事同盟이 된 것이다. 蘇聯이 彭… 2023-02-03 좋아요 個 코멘트 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