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承晩 自由-民主 爲해 反日… 只今 日本 批判은 뭘 爲한 건가”[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東亞日報

“李承晩 自由-民主 爲해 反日… 只今 日本 批判은 뭘 爲한 건가”[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7月 20日 23時 36分


코멘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에서 손을 잡고 있는 이승만(왼쪽)과 김구. 동아일보DB
1948年 8月 15日 大韓民國 政府 樹立 慶祝式에서 손을 잡고 있는 李承晩(왼쪽)과 金九. 東亞日報DB
《‘가장 有名하나 完全히 잊혀진 人物’, 나는 李承晩이 韓國人에게 이런 存在라고 생각한다. 李承晩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韓國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初代 大統領 하다 不正選擧로 下野했다는 것 말고 그에 對해 더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불명예스럽게 退場했고, 그의 靜寂들이 곧바로 執權했으며, 뒤이은 朴正熙 政權도 그를 ‘띄울’ 理由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로 워싱턴서 有名해져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박훈 서울대 歷史學部 敎授
社會人들을 相對로 韓日 近代史에서 李承晩이 한 役割에 對해 講演할 機會가 있었는데, 그가 20代 때인 1899年 投獄되어 5年 7個月間 監獄 生活을 한 일에 對해 알고 있는 聽衆이 거의 없었다. 萬民共同會에서 高宗 政府를 辛辣하게 批判하고 高宗 廢位 陰謀에 加擔했다는 嫌疑였다. 어떤 분은 ‘그렇게 옛날 사람이었나?’라며 놀라기도 했다. 1875年生이다. 金九(1876年), 안창호(1878年), 安重根(1879年)李 비슷한 時期 태어났다.

그러고 보면 1870年代는 後날 韓國의 民族主義와 民主主義를 水準 높게 建設해간 人物들이 무더기로 태어난 時期다. 그들의 先輩들이 이끈 甲午改革은 破格的인 近代化 政策으로 方向은 옳게 잡았으나, 淸日戰爭의 渦中이기도 해서 日本의 影響力下에 있었다. 그에 비해 이 ‘1870年代生’의 젊은 活動家들이 活躍한 獨立協會와 萬民共同會는 近代와 自主라는 時代的 方向을 제대로 體現한 世代로 注目해야 한다. 大韓民國의 精神史에서 崔良質(最良質)의 資産은 거의 이들에게서 發源했다.

最近 李承晩이 쓴 ‘日本의 假面을 벗긴다(류광현 飜譯·비봉출판사·原題: Japan Inside out·寫眞)’를 읽었다. 이 冊은 眞珠灣 奇襲(1941年 12月)으로 太平洋戰爭이 始作되기 不過 넉 달 前에 出版되었다. 太平洋戰爭을 豫見한 이 冊은 瞬息間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워싱턴에서 一躍 有名人士가 되었다. 小說 ‘대지’의 作家 펄 벅 女史는 書評에서 “이것은 무서운 冊이다. … 나는 이 博士가 美國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事實, 卽 美國이 1905年에 朝美(朝美)修好通商條約(1882年)을 수치스럽게 破棄했고, 그로 인하여 日本이 韓國을 집어삼키도록 許容했다고 말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썼다.

美의 조미修好條約 破棄 세게 叱咤

1882년 인천 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 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그린 당시 삽화. 이승만은 그의 저서를 통해 미국이 이 조약을 파기했고, 그로 인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고 지적했다. 나무위키 제공
1882年 仁川 濟物浦에서 朝鮮과 美國 間에 締結된 朝美修好通商條約을 그린 當時 揷畵. 李承晩은 그의 著書를 통해 美國이 이 條約을 破棄했고, 그로 인해 日本이 韓國을 侵略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고 指摘했다. 나무위키 提供
나는 이 冊을 읽으면서 이제야 읽은 걸 反省했다. 이것은 大學의 日本 近代史 授業에 그대로 敎材로 써도 될 만큼 水準 높은 著作이다. 美國의 當局者와 市民들에게 日本의 侵略 野慾을 强烈하게 警告하면서 때로는 語調에 感情이 실리기도 하지만, 그 主張의 根據는 언제나 탄탄하다. 大略 1939年부터 2年間 執筆했다고 하는데 貧寒한 亡命客이 어디서 이런 資料를 모을 餘裕가 있었는지 疑訝했는데, 最近의 硏究들로 疑問이 풀렸다(김정민 ‘李承晩의 新聞 스크랩을 通해 본 Japan Inside Out의 國際政治史’, 김명섭 ‘위싱턴會議 時期 李承晩의 外交活動과 新聞 스크랩, 1921-1922’). 그는 新聞 스크랩狂이었던 것이다. 그는 食事 費用까지 꼼꼼히 적어놓을 程度의 메모狂이기도 했지만, 多年間에 걸친 新聞 스크랩에 對한 執着도 他의 追從을 不許할 程度였다. 그의 피가 조금만 덜 뜨거웠다면 革命家가 아니라 學者로서도 크게 成功했을 것이다.

그는 開港 以後 한동안은 日本이 ‘韓國 開化派의 親舊’였다고 認定한다(30쪽). 事實 이런 認識은 金九의 ‘白凡逸志’에도, 安重根의 ‘東洋平和論’에도 나온다. 그러므로 開港 以後 韓國近代史의 挫折을 모두 日本 탓으로 돌리는 ‘日本 還元主義’는 修正되어야 한다. 當時를 살았던, 最高의 ‘反日鬪士’들이 한결같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李承晩은 그런 日本이 乙巳保護條約으로 韓國 開化派들을 背信한 것을 始終一貫 糾彈하고, 美國이 그런 日本과 가쓰라-태프트密約을 맺어 조미修好條約에서 韓國에 무슨 일이 생길 때에는 仲裁權을 行使하겠다(use its good offices)고 했던 約束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을 執拗하게 叱咤한다. 앞에서 말한 펄 벅 女史도 그 點에 反應했던 것이다.

反日 통해 가려는 指向點이 重要

이 冊에서 또 하나 注目해야 할 點은 드넓은 國際政治的 視野다. 特히 이 點에 關해서는 日本近代史 專門家인 내가 그동안 읽은 어느 冊보다 훌륭하다. 都大體 世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日本의 大陸 膨脹이란 게 全 世界的인 側面에서 어떤 意味를 갖는 行爲인지, 그리고 그것이 太平洋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美國에 將次 어떤 影響을 미칠 것인지, 그런 巨大하고 長期的인 視野에서 韓國 獨立이란 게 어떤 人類史的 意味가 있는지를 雄壯한 語調로 喝破한다. 咆哮에 가깝다. 아마도 그 어떤 韓國人의 主張보다 國際社會 說得에 效果가 있었을 것이다. 21世紀 또다시 불끈거리는 地政學의 한복판에 서 있는 韓國人들이 가져야 할 眼目과 趣向과 姿勢가 이 冊에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날카로운 指摘도 注目할 만하다. 그는 日本의 中國 侵略이 반드시 失敗할 理由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하나는 日本 軍國主義者들이 “潛在해 있다가 이제 깨어나고 있는 中國人들의 愛國精神을 正確하게 評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日本軍 앞에서 抵抗 한番 못 하고 흩어지는 中國人들을 嘲弄하는 雰圍氣에서, 李承晩은 中國 내셔널리즘의 發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또 하나는 日本이 韓國 倂合 때처럼 “忍耐心을 가지고 緩慢하고 隱密한 過程”을 거치지 않고, 中國에 있는 西歐 列强의 利權을 거칠게 侵奪하고 있어 둘 사이의 對立이 招來될 것이라는 點이다. 그러면서 그는 韓國 倂合 當時 日本 指導層의 老獪한 戰略에 비해, 限없이 어설픈 軍國主義者들의 戰略을 비웃고 있다(58∼59쪽).

李承晩은 이 冊에서 激烈한 反日 民族主義者로서의 面貌를 遺憾없이 發揮하지만, 그저 日本이라서 憎惡하는 것은 아니다. 當時의 日本이 自由와 民主, 人權과 平和에 違背되는 行爲를 하고 있기 때문에 批判하는 것이다. 그가 ‘反日’을 통해 追求하려 했던 것은 自由와 民主였다. ‘反日’을 통해 全體主義나 共産主義로 가는 것은 그가 限死코 沮止하고자 했던 길이다. ‘反日’이 重要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려고 하는 反日인가’가 重要하다. 最大의 ‘反日’ 國家는 北韓이지만, 李承晩도 우리도 ‘反日’을 통해 그리로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박훈 서울대 歷史學部 敎授


#李承晩 #自由-民主 #反日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