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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己 勢力보다 社會 重視… 에도 내준 가쓰의 ‘秩序 있는 退却’[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東亞日報

自己 勢力보다 社會 重視… 에도 내준 가쓰의 ‘秩序 있는 退却’[박훈 韓國人이 본 日本史]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9月 14日 23時 3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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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 가이슈(1823∼1899년)의 얼굴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쓰 가이슈(1823∼1899年)의 얼굴 寫眞.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가쓰 가이슈(勝海舟·1823∼1899), 韓國 讀者들에게 좀 낯선 이름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會長이 尊敬했다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幕府의 家神으로 메이지 유신軍이 도쿠가와 幕府의 首都 에도(江戶·지금의 도쿄)까지 쳐들어왔을 때 幕府 側 總司令官이었다. 말하자면 歷史의 敗北者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멋있고, 意味를 남긴 敗北者를 알지 못한다. 오늘은 ‘멋진 敗北者’의 얘기다.》





이기면 官軍, 지면 逆賊

박훈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박훈 서울대 歷史學部 敎授
幕府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政治的 嗅覺이 타고난 사람이었다. 幕府에 叛亂을 일으켰던 조슈번(長州藩) 征伐에 失敗하자, 權力을 維持할 길은 幕府를 抛棄하는 方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臺정봉환(大政奉還), 스스로 270年間 繼續되던 幕府를 廢止하고 自身도 쇼군 자리에서 내려왔다. 幕府를 指彈하던 輿論이 瞬息間에 바뀌어 그의 勇斷을 支持했다. 그가 노린 대로였다. 요시노부의 노림數는 支持 輿論을 모아 天皇 밑에 新政府를 세우고 그 實權者가 되려는 것이었다. 幕府의 武力打倒를 計劃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唐慌했고, 그 反轉을 꾀한 것이 王政復古 쿠데타다.

‘이기면 官軍(官軍), 지면 逆賊이다.’ 쿠데타로 天皇을 손아귀에 넣은 그들은 하루아침에 ‘官軍’이 되어 ‘逆賊’ 도쿠가와 勢力을 치러 에도로 行軍했다. 그들을 막아선 사람이 갑자기 막夫君 總司令官에 任命된 가쓰 가이슈다. 그는 寒微한 집안 出身이었다. 卓越한 才能 德에 昇進을 거듭했지만, 幕府 主流 勢力을 좇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幕府의 餘名은 얼마 남지 않았다. 幕府의 終末을 避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最大限 意味 있게 ‘마무리’해야 할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努力으로 因緣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김광진 ‘편지’). 權力에 對한 未練은 戀人보다 더 질긴 法이지만, 歷史의 大勢를 거스르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그걸 洞察하는 사람은 드물거니와, 洞察했다 해도 未練을 끊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陳永 뛰어넘은 두 豪傑의 만남

幕府 主流 勢力들은 그의 路線을 輕蔑하고 閑職으로 내쳤다. 挫折하지 않고 海軍 建設에 뛰어들었다. 自己를 내쳤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작은 海軍調鍊소 設立을 支援해 달라고 呼訴했다. 머지않아 幕不渡 番(藩·封建國家)도 없어진 다음에는 새로운 日本을 建設해야 할 터인데, 그 日本을 지켜주는 것은 海軍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함께 일했던 사람이 사카모토 료마다. 젊은 료마는 누나에게 “요즘은 天下에 둘도 없는 軍學者(軍學者) 가쓰 린타로(가쓰 가이슈)라는 大先生님의 文人이 되어 宏壯히 귀여움을 받고 있어. (中略) 가까운 將來에 오사카에서 40km 程度 떨어진 곳에 海軍을 가르칠 곳을 設立하고, 80m, 90m 程度 되는 배를 만들 거야. 弟子들도 400∼500名 程度 各地로부터 모여들고 있어”라고 하며 신나했다. 그러나 執權者들은 이를 支援하지 않았다.

街쓰는 半幕府勢力의 中心인 사쓰마번의 리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도 親交를 맺었다. 1864年 사이고를 만나 幕府獨裁를 허물고 雄番(雄藩·큰 封建國家들) 聯合政權이 세워져야 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놀란 것은 사이고였다. 그는 이를 ‘共和政治’라 명명했다. “(街쓰는) 實로 놀라운 人物로, 두들겨 패줄 心算으로 만났지만 完全히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얼마만큼 智略이 있는지 모를 程度였다. 學問과 見識은 사쿠마 쇼盞(佐久間象山·李 時期 最高의 洋學者)李 拔群이지만, 實際 일을 다루는 솜씨에서는 가쓰 先生이 最高다. 正말 반해 버렸다”고 吐露했다. 反하기는 가쓰度 마찬가지. “그(사이고)를 만나 봤더니 識見과 論理 面에서는 내가 오히려 더 나았지만, 이른바 天下臺詞를 짊어지는 것은 結局 사이고가 아닐까.”

가쓰 가이슈와 관군 총사령관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이틀간 협상을 벌였다. 가쓰는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막부의 본거지인 에도를 관군에 내어준다. 당시 협상을 그린 삽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쓰 가이슈와 官軍 總司令官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이틀間 協商을 벌였다. 街쓰는 無辜한 犧牲을 막기 위해 幕府의 本據地인 에도를 官軍에 내어준다. 當時 協商을 그린 揷畵.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陣營을 뛰어넘은 두 豪傑의 만남은 몇 年 後 日本의 運命을 결정지었다. ‘官軍’李 에도城 總攻擊을 앞두고 있을 때, 얄궂게도(다행히도?) 兩軍을 指揮하고 있던 것은 두 사람이었다. ‘共和政治’에 뜻을 같이했던 사람이 싸울 일은 없었다. 에도城 外郭에서 單둘이 이틀 동안 會談했다. 둘은 外勢侵入을 目前에 둔 마당에 오직 ‘日本’이라는 國家만을 생각하자고 했다. 사이고는 無理한 要求를 하지 않았고, 街쓰는 豫想치 못한 讓步案을 내놓았다. 사이고는 占領軍이었지만 깍듯이 禮儀를 갖췄다. “사이고는 나에 對해 幕府中신의 禮遇를 잃지 않았다. 談判할 때 始終 姿勢를 바로 하고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조금도 勝利한 威光으로 敗將을 輕蔑하는 듯한 모습은 없었다.” 이 談判 없이 總攻擊이 이뤄졌다면 100萬 名의 에도 市民은 慘禍를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梁君 間에 벌어졌을 悽絶한 戰鬪는 두고두고 깊은 怨恨과 分裂을 招來했을 것이다.

끝까지 ‘敗者의 品格’을 지킨 가쓰

천황을 등에 업은 관군이 에도를 함락하기 위해 진군하는 과정에서 도쿠가와 막부와 벌인 고슈·가쓰누마 전투(1868년)를 그린 
삽화. 이 전쟁의 패배로 막부는 더욱 수세에 몰렸고, 당시 막부군 총사령관이었던 가쓰 가이슈는 항복을 결심하게 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天皇을 등에 업은 官軍이 에도를 陷落하기 위해 進軍하는 過程에서 도쿠가와 幕府와 벌인 고슈·가쓰누마 戰鬪(1868年)를 그린 揷畵. 이 戰爭의 敗北로 幕府는 더욱 守勢에 몰렸고, 當時 막夫君 總司令官이었던 가쓰 가이슈는 降伏을 決心하게 된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에도를 占領한 사이고는 暫時 교토로 떠나게 되자 “어떠십니까, 잘 付託드립니다. 只今부터의 일은 가쓰 先生께서 어떻게든 해주시겠지요”라며 治安 責任을 가쓰에게 맡겨 버렸다. (以上 直接 引用은 拙著 ‘메이지維新을 設計한 最後의 사무라이들’.) 勝者는 勝者다운 品格이 있어야 한다. 조그만 승리에 우쭐해서 占領軍처럼 行世하는 者들에게 承服할 敗者는 없다.

街쓰는 敗者의 品格을 지켰다. 會談 結果를 받아들이지 않고 抵抗하는 幕府君을 끝까지 說得했고, 幕府 家臣들을 이끌고 도쿠가와 勢力의 本據地 시즈오카로 선선히 물러났다. 幕府 家臣들은 그를 사쓰마, 조슈와 妥協해서 幕府를 팔아먹은 者라고 賣渡했지만, 그는 辨明하지 않았다. 以後 메이지 政府의 거듭된 立脚 要請에 應하지 않고, 남은 生涯 동안 그가 한 일은 主君을 잃고 加錄(家祿)을 잃어, 名譽도 生計도 寞寞해진 幕府 家臣들과 그 食率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한 社會의 變革 過程에서는 勝利한 勢力의 行態도 重要하지만, 敗者의 ‘敗北하는 方式’도 그에 못지않게 重要할 때가 많다. 大勢를 읽지 못하고 無謀한 執着을 부리면, 無辜한 人命은 損傷되고 社會的 費用도 엄청나게 커진다. 물러나면서 行한 銃질로 廢墟가 되면 社會 再建은 그만큼 어렵다. 自己 勢力을 넘어서 社會 全體의 存亡을 念頭에 두고, 未練을 끊어 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眞正한 指導者다. 가쓰 가이슈가 이끈 ‘秩序 있는 退却’李 日本을 살렸다.



박훈 서울대 歷史學部 敎授
#가쓰 가이슈 #秩序 있는 退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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