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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 文明 이은 또 하나의 실크로드 ‘燒酒의 길’[강인욱 世上萬事의 起源]|東亞日報

東西 文明 이은 또 하나의 실크로드 ‘燒酒의 길’[강인욱 世上萬事의 起源]

  • 東亞日報
  • 入力 2022年 9月 2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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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의 증류주 제조 모습을 담은 몽골 화가 샤라브의 ‘몽골의 하루’(1910년). 소주의 기원은 몽골로 추정된다. 몽골의 증류 기술이 정복 활동을 통해 널리 퍼지며 소주가 널리 사랑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제공
몽골人들의 蒸溜酒 製造 모습을 담은 몽골 畫家 샤라브의 ‘몽골의 하루’(1910年). 燒酒의 起源은 몽골로 推定된다. 몽골의 蒸溜 技術이 征服 活動을 통해 널리 퍼지며 燒酒가 널리 사랑받게 되는 契機를 만들었다. 주영하 韓國學中央硏究院 敎授 提供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
《술은 人間의 歷史와 함께 始作된 自然의 膳物이다. 과일이나 穀物 속의 糖分을 酵母가 分解하면서 알코올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中에서 蒸溜酒人 燒酒는 特別하다. 알코올의 沸騰點을 利用하여 分離해낸 人間의 努力과 科學 技術의 産物이다. 좋은 술에 對한 人間의 끊임없는 努力이 실크로드를 통해 傳해진 結果가 바로 燒酒이다. 누구나 負擔 없이 기울이는 燒酒 한 盞에 숨겨진 東西 文明의 交流를 살펴보자.》

燒酒의 起源, 中國 아닌 滿洲

燒酒의 起源을 한마디로 定義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蒸溜 技術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數千 年 文明의 發達 中에 漸次 形成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2500年 前에 페르시아에서 始作된 方術(方術)李 中國으로 傳해져서 秦始皇 때에 이미 다양한 放射(方士)들이 登場했다. 이때에 水銀을 구워서 多樣한 斷藥(丹藥)을 만드는 蒸溜 技術이 發達했고, 알코올도 蒸溜했을 可能性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嗜好品으로 蒸溜酒가 널리 퍼진 것은 흔히 몽골帝國 以後利器 때문에, 몽골이 燒酒의 起源이라고 보는 것이 一般的이었다.

最近 中國 考古學界에서 흔히 배갈이라 불리는 中國의 蒸溜酒(白晝)는 中國 起源이라는 主張이 擡頭되었다. 2006年에 滿洲 쑹화江 平原 한가운데인 지린省 多안의 한 배갈工場에서 建物을 새로 짓다가 땅속에서 거란 時代의 술고리(술을 빚는 솥과 錚盤)를 發見했다. 甚至於 그 옆에는 10, 11世紀에 만든 4000枚의 銅錢이 그득한 돈 缸아리마저 나왔다. 考古學者들은 發掘된 술고리를 復元했다. 술을 빚어서 2番을 걸러보니 只今 마시는 것과 거의 비슷한 40∼50度의 蒸溜酒가 나왔다. 이에 中國은 배갈이 書房이 아니라 中國 自體의 發明品이라고 大大的으로 弘報를 했다.

하지만 滿洲의 平原地帶人 지린省에 나온 것을 들어서 中國 起源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當時 이 地域은 中原과는 멀고 高麗時代 우리와 北쪽으로 隣接한 거란이 살던 地域이다. 그러니 中原이 아니라 滿洲에서 첫 番째 燒酒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왜 何必 거란에서 첫 番째 蒸溜酒가 나왔을까. 遊牧民인 거란도 巨大한 帝國을 만들고 몽골까지 進出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中央아시아와 다양한 交流를 했다. 이미 아라비아의 蒸溜 技術은 그 前부터 널리 發達했으니, 그 技術을 利用해서 蒸溜酒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韓國도 新羅 때에 이미 아라비아 및 페르시아의 商人들과 活潑한 交流가 있었지만 燒酒를 만들었다는 證據는 없다. 거란족이 最初의 燒酒를 만든 理由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遊牧이라는 生活과 滿洲라는 地理環境 때문이다. 遊牧 生活을 하면서 빠르게 만들 수 있고 携帶하기 便한 蒸溜酒는 매우 要緊하다. 게다가 겨울이 길어서 알코올을 거르는 데 必須的인 冷却劑로 얼음을 쓰기도 쉬웠다. 滿洲 地域에는 農事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살아서 收受와 같은 材料를 求하기도 쉬웠으니, 燒酒를 大量으로 만들기에 너무나 좋은 條件이었다. 高麗는 거란과 餘震 때에 다양한 술을 包含한 많은 物産을 輸入했다. 그러니 最初의 燒酒는 몽골 侵略 以前 이미 滿洲에서 發源해서 高麗로 들어왔을 可能性은 充分하다.

高麗 때 ‘이슬’로 表現된 燒酒


소주를 만드는 한국의 소줏고리 모습. 고려시대 때 소주는 ‘아랄길’이라 불렸는데, 몽고어로 증류시설을 뜻하는 ‘알렘빅’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燒酒를 만드는 韓國의 燒酒고리 모습. 高麗時代 때 燒酒는 ‘아랄길’이라 불렸는데, 蒙古語로 蒸溜施設을 뜻하는 ‘알렘빅’에서 影響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高麗時代에 이미 燒酒가 滿洲 一帶에서 流行했지만, 皇帝의 行事에서만 쓰였다. 이것이 世界의 술로 登場한 것은 몽골帝國의 登場 時期부터였다. 巨大한 몽골의 征服 活動과 驛站(驛站)으로 世界는 하나로 엮였고, 東西洋 할 것 없이 몽골의 影響이 미친 곳은 모두 各自의 方法으로 蒸溜酒를 만들었다. 그 몽골의 影響은 只今도 ‘아라機’라는 이름에 잘 남아 있다.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等 유라시아 大部分의 地域은 勿論이고 東南亞 一帶에도 그 이름은 남아 있다. 韓國도 例外가 아니어서 高麗時代에 燒酒는 아랄길(阿剌吉)이라고 記錄했고 最近까지도 아라氣는 慶尙道 一帶 方言에서 술 또는 술지게미를 意味한다. 아라氣는 아라비아의 蒸溜施設人 ‘알렘빅’에서 由來했는데, 아랍語로 땀이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술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땀과 같기 때문이다. 韓國에서는 高麗時代 목은 異色(1328∼1396)의 市에서 이슬이라는 單語로 燒酒를 表現한 以來 只今도 이슬을 燒酒와 聯關짓는다. 聯想 單語는 다르지만 窮極的으로 不純物을 없애고 淨化되어 가는 過程을 燒酒라고 描寫한 것이다.

近代 以後에 車(茶)와 陶瓷器가 東西洋을 잇고, 現代社會가 인터넷으로 疏通하기 훨씬 前에 이미 世界는 燒酒로, 蒸溜酒로 大同團結한 셈이다. 燒酒가 가장 韓國的인 同時에 가장 普遍的인 술인 理由가 여기에 있다.

3000年 前에도 있던 ‘爆彈酒’


증류주와 도수 낮은 술을 섞은 폭탄주의 유래도 수천 년 전이다. 2500여 년 전 흑해 연안의 스키타이인들의 황금 잔 유물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 archaeology 홈페이지
蒸溜酒와 度數 낮은 술을 섞은 爆彈酒의 由來도 數千 年 前이다. 2500餘 年 前 黑海 沿岸의 스키타이人들의 黃金 盞 遺物에서는 痲藥 成分이 檢出되기도 했다. 寫眞 出處 archaeology 홈페이지
蒸溜酒하면 빠지지 않고 登場하는 것이 바로 爆彈酒이다. 20世紀 以後 러시아에서 始作해서 韓國으로 流入된 爆彈酒는 무척 다양하지만, 그 核心은 蒸溜酒와 度數가 낮은 술을 섞어서 적은 量으로 빠르게 取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起源은 數千 年을 거슬러 올라간다. 다양한 술과 藥을 섞는 方法은 古代 司祭들이 흔히 쓰던 方法이었다. 3000年 全義 조로아스터교의 司祭들은 失路視빈이라는 버섯과 蘇摩라는 알코올 飮料를 섞어 먹었다. 그리고 約 2500年 前 黑海 沿岸의 스키타이人들의 遺物 가운데서 痲藥과 大麻草 成分이 담긴 작은 黃金 盞들도 發見되었다.

古代의 爆彈酒는 一部 選擇된 司祭들이 神과 疏通하기 위하여 取한 狀態에 到達하려는 努力이었다. 反面에 只今의 爆彈酒는 말 위에서 서로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頻繁한 遊牧民들에게서 始作되었으니, 事情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現代社會에도 남아 있다.

‘蒸溜酒 祕法’ 퍼뜨린 몽골

燒酒와 같은 蒸溜酒가 가진 魅力은 良質의 술을 쉽게 供給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그러한 技術의 發達은 兩날의 칼이 될 수 있다. 皇室에서 蒸溜酒를 管理한 거란족과 달리 몽골帝國은 비밀스러운 蒸溜 技術을 널리 擴散시켰다. 여기에는 또 다른 몽골만의 意圖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征服地에 燒酒를 傳해주고 現地人들이 그 燒酒를 즐기다 보면 自然히 몽골에 對한 反感은 사그라지고 燒酒로 몽골의 世界에 童話가 되었을 것이다.

事實 被支配人들을 알코올로 다스린 것은 몽골뿐이 아니었다. ‘술 植民主義’라는 用語가 있다. 支配 國家가 被支配人들에게 알코올을 供給하여 抵抗의 意志를 喪失시키는 것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原住民을 征服할 때, 그리고 新大陸을 征伐한 유럽人이 알코올로 現地의 反撥을 눌렀다. 少數의 몽골人이 巨大한 帝國을 統治할 때에 各地에 度數 높은 蒸溜酒의 技術을 積極的으로 供與했을 것이다. 지나친 술이 얼마나 危險한지는 아무리 强調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괴로움을 달래는 若干의 燒酒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理由가 바로 여기에 있다.

東西洋을 가로지르며 完成된 蒸溜 技術은 燒酒로 完成되었으니, 실크로드는 바로 燒酒의 길이었다. 내가 마시는 燒酒 한 盞에는 바로 東西 文明을 가로지르는 人間의 智慧가 있었고, 또 哀歡도 숨어 있다. 人類의 歷史에서 술 한 盞만큼 서로의 警戒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로 만드는 飮食은 없다. 過飮의 弊害는 操心해야겠지만, 서로 銃칼을 겨누고 죽이는 것보다는 百倍 낫지 않은가. 한 盞의 燒酒로 서로를 理解하는 智慧가 그 어느 때보다 切實한 요즘이다.

강인욱 慶熙大 史學科 敎授
#燒酒 #蒸溜酒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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