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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家로 ‘人生 2幕’ 전군표 前 國稅廳長|新東亞

作家로 ‘人生 2幕’ 전군표 前 國稅廳長

“힘들어도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소설 ‘孝玉’, 한 달 만에 5刷 찍어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答하다’]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1-09-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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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人文學財團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삶이 묻는 것들에 答하다’ 시리즈를 進行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年 11月 設立된 國內 最初 人文學 支援 財團으로 人類의 오랜 知識과 智慧를 바탕으로 삶의 根源的 물음을 새롭게 傳한다는 趣旨로 硏究 支援, 大衆 講演, 온라인 포털 等 다양한 事業을 進行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삶이 묻는 것들에 答하다’는 코로나19 以後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世上에서 삶의 羅針盤을 잃어버린 듯 空虛感을 겪는 우리에게 새로운 精神的 價値를 摸索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進行한다. <編輯者 週>
    소설 ‘효옥’을 출간한 전군표 전 국세청장. [허문명 기자]

    小說 ‘孝玉’을 出刊한 전군표 前 國稅廳長. [허문명 記者]

    전군표 前 國稅廳長이 낸 첫 小說 ‘孝玉’李 出版街에서 話題다. 요즘 같은 出版 不況期에 出刊 한 달 만에 5刷를 찍은 것. 無名作家의 첫 小說이지만 完成度가 높다는 評을 듣고 있다. 實際 小說을 읽어보니 단단하면서도 힘이 있는 文體와 스피디하고 映像的인 構成, 單語 驅使, 歷史 考證이 탄탄했다. 隱退 以後 삶을 苦悶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公職의 삶을 내려놓고 作家로서 第2의 삶의 始作한 그를 만났다. 그에게 ‘글쓰기’는 어떤 意味였을까.

    端宗의 崎嶇한 삶, 死六臣의 올곧은 삶이 와닿다

    ‘孝玉’의 時間的 舞臺는 朝鮮 初期 癸酉靖難 때다. 孝玉은 조카 端宗을 몰아내고 임금이 된 首陽大君 世祖에 맞서다 慘酷한 죽임을 當하는 死六臣(死六臣) 中 한 名인 成三問의 딸 이름이다. 小說은 孝玉을 中心으로 成三問과 死六臣, 孝玉을 지켜주는 奴婢 바우, 首陽大君의 둘째 아들이자 後날 世祖에 이어 王位를 이어받은 8代 賃金 睿宗의 因緣이 얽히고설키면서 펼쳐진다. 그는 어떤 因緣으로 孝玉에게 빠져들었을까.

    “本來 死六臣에 對해 關心이 많았다. 理由는 運命的이라고밖에 說明이 안 되는데 30餘 年 前인가 江原道 寧越 稅務署長으로 일하는 同僚를 만나러 갔다가 寧越 청령포에 들른 적이 있다. 前生에 무슨 因緣이 있어서였는지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가슴이 떨릴 程度로 印象이 깊었다. 端宗의 崎嶇한 運命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 며칠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斷種, 死六臣, 首陽大君, 韓明澮, 申叔舟가 登場하는 朝鮮 初期 歷史를 뒤적이곤 했다.”

    - 청령포라고 하면 三寸 首陽大君에게 내쫓긴 端宗이 죽임을 當한 곳인데.

    “그렇다. 端宗이 묻힌 章陵이 있는 곳이다. 그런 事緣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곳에 가면 異常하게 슬픈 기운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當時 나는 公職에 있긴 했지만 軍事獨裁 政權에 對한 反感이 컸다. 1980年代 初盤의 暴壓的 時代 狀況이 그로부터 거의 600年 前인 1453年 癸酉靖難 때와 닮은 點이 많다고 느꼈다. 그러다 公職에서 물러나고 어느 날 ‘朝鮮王朝實錄’을 읽다가 두 個의 文章에 꽂혔다.”

    그가 言及한 두 個의 文章이란 “亂臣(亂臣) 成三問의 아내 車産科 딸 孝玉은 운성府院君 박종우에게 奴婢로 주고”(실록 世祖 2年 1456年 9月 7日)란 句節과 그로부터 20年 만인 成宗 6年 1475年 5月 7日의 “車産科 딸 孝玉을 釋放해 주었다”는 句節을 말한다. 다시 作家의 말이다.



    “孝玉은 死六臣 여섯 名 집안 中 唯一하게 살아남은 後孫이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다 보니 살아남은 거다. 성삼문에게 어린 딸이 있었고 奴婢가 됐다는 이야기는 野史(野史)나 小說을 통해 스치듯 읽은 적은 있는데 果然 實存 人物이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다 實錄에서 實在한 人物이었음을 確認하는 瞬間, 어린 나이에 豫期치 못한 人生의 那落으로 빠진 孝玉의 運命이 그려져 며칠 동안 가슴앓이를 했을 程度였다.”

    - 歷史 記錄에 文學的 想像力을 입히는 歷史小說을 쓰는 게 쉬운 作業은 아닌데.

    “너무 힘들었다. 人物의 內面 探究뿐 아니라 時代 背景까지 함께 넣어야 하는 作業이라 만만치 않았다. 歷史的 記錄에 充實하면 논픽션이 되고 허구만 쓰면 판타지나 童話에 가까워졌다. 앞으로 歷史小說은 다시 쓰기 어려울 것 같다(웃음). ‘孝玉’李 實存 人物이긴 하나 묻혀 있던 人物이다 보니 資料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歷史라는 게 이긴 者들 便에서 記錄된 것이 많기 때문에 均衡感覺을 찾으려면 百姓 사이에 傳하는 野史나 口傳도 찾아 읽어야 하는데 남아 있는 것이 別로 없었다. ‘朝鮮王朝實錄’ ‘燃藜室記述’ ‘추강집’ ‘慵齋叢話’ 같은 冊을 읽으며 그 時代에도 充分히 可能했을 狀況을 想像하며 實際 事件과 結合해 小說에 녹이려 努力했다. 이番에 ‘孝玉’을 쓰기 前에 死六臣과 端宗, 世祖에 關聯된 資料를 土臺로 두 卷 分量의 冊을 整理해놓은 것이 도움이 됐다.”

    善惡 基準이 무너지기는 그때나 只今이나…

    - 死六臣의 죽음은 제법 알려진 事實이라 새로울 것은 없는데 朝鮮 王 中에서 存在感이 別로 없는 睿宗이 매우 改革的인 君主로 그려진 것이 特異했다. 이 亦是 歷史的 事實인가.

    “그렇다. 睿宗은 큰兄인 도원군 義警世子가 夭折하는 바람에 世祖를 이어 8代 임금이 된다. 나도 그랬지만 그에 對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갑작스러운 突然死로 在位 期間이 13個月에 不過했기 때문이다. 悲運의 임금이었지만 當時로서는 놀라울 程度로 매우 破格的인 改革을 推進하던 君主였다.

    睿宗의 改革 對象은 아버지 首陽大君과 함께 쿠데타로 執權한 功臣 權力이었다. 이들은 自身들의 旣得權을 維持하기 위해 各種 階級的 特權을 갖고 있었다. 官職을 사고파는 分頃(奔競)에서부터 殺人罪를 지어도 處罰받지 않는 免罪(免罪), 땅을 世襲할 수 있는 功臣田(功臣田), 稅金 納付를 商人들이 代行해 주는 貸納卷(代納權)까지 있었다. 睿宗은 果敢하게 이런 積弊 淸算에 손을 댄다. 分頃을 禁止하고 나라 땅을 百姓들이 耕作할 수 있는 直前手造法, 代納 禁止에서부터 奴婢 免賤까지 推進한다.”

    - 奴婢 免賤 措置에 따라 ‘孝玉’도 20年 만에 奴婢 身世를 면하게 되는 건가.

    “그렇다. 奴婢 免賤은 死六臣의 後孫들을 意識한 措置이기도 했다. 抑鬱하게 죽은 死六臣에 對한 名譽回復을 의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睿宗의 改革은 功臣들의 激烈한 反撥과 本人의 갑작스러운 死亡으로 물거품이 된다. 뒤이어 王位를 물려받은 成宗은 韓明澮의 사위였으니 結局 功臣들이 이긴 셈이 됐다.”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은 소설 ‘효옥’.

    出刊과 同時에 話題를 모은 小說 ‘孝玉’.

    - 冊을 읽다 보면 慘酷한 苦痛 속에서도 삶에 對한 希望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우뚝 서는 孝玉의 드라마틱한 삶에 魅了된 作家의 마음이 읽히기도 하던데, 特히 어떤 部分에 魅了됐나.

    “善惡의 基準이 混沌스러운 亂世이기는 그때나 只今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孝玉은 最高 名門家에서 태어났지만 自身의 信念을 위해 죽음을 選擇한 아버지로 인해 한瞬間에 奴婢로 轉落한다. 요새 말로 金수저로 태어났지만 하루아침에 父母를 잃은 것은 勿論 自身의 處地도 가루처럼 부서져버린 狀況이 된 거랄까. 삶이란 게 正말 豫測 不可能하고 자칫 慘酷한 地境에 빠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處地에 屈하지 않고 自己 길을 찾아 自立해 가는 한 人間을 孝玉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 孝玉이 王妃가 돼달라는 睿宗의 請을 拒絶한다든지, 그 時代로는 드물게 은(銀)세공업에 뛰어들어 成功한 資本家(?)가 된다는 設定도 特異했다.

    “어려웠던 構想이다. 그女의 삶을 悲劇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팠고 해피엔딩으로 하고 싶어 苦悶을 많이 했다. 다만 結婚 잘해서 男子 德으로 身分 上昇을 하는 設定이 아니라 自己의 業(業)과 길을 찾아 自身만의 世界를 일구는 女人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着眼해 낸 것이 銀細工業이었다.”

    - 왜 何必 銀細工業인가.

    “파리 목숨(?)인 벼슬살이로 成功하기보다 女性 企業人으로 成功하는 設定을 해봤다. 孝玉에게 어떤 業을 주어야 可能할까 汨沒했다. 朝鮮時代 女性이 經濟的 自立을 이룰 수 있는 方法이라는 게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功臣들 마나님들이 名品 裝身具로 온갖 治粧을 했다는 記錄을 읽다가 ‘이거다’ 싶어 무릎을 탁 쳤다. 金屬工藝를 專攻한 조카에게 도움을 請해 이 分野에 對한 冊과 資料를 耽讀하면서 想像力을 펼쳐나갔다.

    睿宗과의 러브라인도 獨立的인 女性으로 그리기 위해 넣은 設定이다. 奴婢가 된 逆賊의 딸과 世子의 因緣이란 게 좀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時節도 사람 사는 世上이니 男女 間의 사랑이 없을 수 없지 않았겠나. 實錄과 各種 野史 資料 等을 뒤적이다 보니 孝玉과 바우, 睿宗의 苦痛과 煩悶이 어떠했을지 斟酌도 되고 한便으로는 서로 間의 憐憫과 愛憎도 깊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어 나름대로 連結고리를 만들어보았다. 나중엔 王妃가 돼달라는 請을 拒絶할 程度로 孝玉을 獨立的인 女性으로 表現하고 싶었다.”

    - 個人的으로 魅力을 느끼는 人物을 꼽는다면.

    “김시습이다. 記錄에 따르면 死六臣은 軍器監, 只今의 서울 光化門 프레스센터 앞에서 四肢가 찢기는 車裂刑에 處해지는데, 이들의 몸뚱이를 收拾해 鷺梁津에 묻어준 이가 바로 朝鮮 最高 天才 僧侶 金時習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벼슬을 버리고 스님이 됐는데, 首陽大君이 임금이 됐다는 消息을 傳해 듣고 佛經을 불사른 뒤 破戒僧이 돼 ‘金鰲新話’를 남겼다. 機會가 된다면 傳記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程度로 正말 魅力的인 人物로 다가왔다.”
    그는 이 대목에서 冊을 펼치더니 金時習의 이름을 빌려 讀者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 그게 뭔가.

    “왜 선(善)은 惡(惡)에 질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때 世上에 묻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걸 孝玉이 묻고 金時習이 對答하는 式으로 쓴 거다.”

    그가 冊을 펼치더니 “왜 하늘은 옳은 者를 돕지 않느냐”는 孝玉의 絶叫에 答하는 金時習의 말을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이 世上의 時間으로는 判斷할 수 없다. 宇宙 萬物은 永遠하고 細細大隊 生命은 이어진다. 그 긴 時間 속에서야 이기고 지는 걸 判別할 수 있다. 또 世上살이에서 正義가 꼭 不義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娑婆世界에서 짧은 時間으로 보면 線이 악에게 질 때가 더 많다. 惡은 이기기 위해 選擇하는 方法조차도 狡猾하고 不道德하지만 線은 그리할 수 없기 때문에 판판이 惡에게 지고 만다. 그런데 긴 時間을 두고 보면 이긴다는 것도 진다는 것도 別 意味 없다. 죽음과 삶이 하나이듯 이 모든 것이 形體가 없어 무라고밖에 할 수 없다.” (171쪽)

    “時間이 멈춰 있는 것 같아도 每 瞬間 우리는 죽음으로 向해 가지 않더냐. 그들도 얼마 안 가 제 運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쓴들 世祖도 韓明澮도 머잖아 죽을 것이다. 남는 건 이름뿐이다. 짧도다. 부질없도다. 惡이 刹那라면 線은 永遠한 것… 너는 어떤 사람이고자 함이냐.” (172쪽)

    忠節, 믿음, 義理는 버려도 좋은 것인가

    - 執筆 期間이 길었다고 들었다.

    “꼬박 6, 7年이 걸렸다. 脫稿하고도 出版까지 또 2年이 걸렸다. 冊이 元來 500쪽 分量이었는데 344쪽으로 줄인 거다. 推敲를 한 스무 番 程度 한 것 같다. 이만하면 됐다 싶다가도 두세 달 지나 다시 보면 맘에 들지 않는 대목이 보여 時間이 오래 걸렸다.”

    그는 “抛棄할까 하는 瞬間도 여러 番 있었지만 다듬고 또 다듬었다”며 마음에 와닿는 單語를 찾기 위해 國語辭典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文章 곳곳에는 ‘배래기’ ‘우듬지’ ‘는개’ ‘노둣돌’ ‘거미치밀다’ ‘모들뜨다’ ‘노구메’ ‘지릅뜨다’ ‘搖頭轉目’ ‘孫石風’ ‘자빗間’ 等 生疏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이 눈에 많이 띈다.

    - 글은 當身에게 무엇이었나.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마음의 소용돌이가 많았다. 數字를 다루는 公職에서 오래 일했다는 것을 아는 周邊 분들이 小說을 냈다고 하니 놀라는 분들이 많았다. 事實 學校 다닐 때 冊을 너무 좋아해 記者가 되고도 싶었다. 그러다 公職을 마치고 글을 읽고 쓰면서 慰勞도 받고 沒入할 수 있어서 마음 속 힘든 感情들을 잊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 自身이나 共同體, 社會 個個人의 精神的 삶을 支撐해 줄 수 있는 일을 歷史와 文學을 통해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 結局 冊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뭐였나.

    “于先 忠節이라든지 믿음과 義理 이런 돈도 안 되는 價値들은 都大體 무엇인가? 3臺가 모두 죽고 집안 男子들은 모두 죽어나가고 어머니 아내 딸은 奴婢가 되는 慘酷한 地境을 堪當해야 하는데도 義理와 忠節을 지킨 여섯 名의 死六臣과 生六臣의 삶은 이렇게 잊혀도 되는 것인가…나라도 恨을 풀어주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現在의 우리는 지난 歷史 고비 고비마다 忠節을 지킨 朝鮮 선비들, 日帝 때 獨立運動家들, 現代에 들어서서는 民主化를 위해 獻身한,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價値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本人뿐 아니라 家族들까지 慘酷한 運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견뎌낸 先人들이 계셨기 때문 아닌가. 執筆 期間 내내 그들에게 眞正 感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다.”

    그는 무엇보다 젊은 世代를 向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떤 분이 인터넷 리뷰에 “‘正義와 公正’이 共同의 中心 課題가 된 現在를 貫通하는 冊”이라고 評해 준 게 고마웠다. 現代家 身分制 社會는 아니지만 經濟的으로는 身分制 社會에 버금갈 程度로 貧富隔差에 따른 間隙이 公告해지고 있다.

    이런 現實에서 삶을 始作하는 젊은이들, 特히 女性들이 스스로의 빛과 길을 찾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慰安이 되고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冊에 ‘죽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세 番 썼다. 아버지 成三問이 孝玉에게, 金時習이 孝玉에게, 또 睿宗이 奴婢 바우에게 하는 말이 그것이다. ‘견디고 살아남자’는 말은 나 自身뿐 아니라 人生의 어두운 터널을 通過하고 있는 힘든 분들에게 作家로서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가 暫時 呼吸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作家 後期에 ‘낮고 어두운 곳에서, 억눌러두었던 말들이 아름다운 글로 昇華되기를 祈禱하였다’라고 썼는데 小說 속 主人公들에게도 한 말이지만 나의 말이기도 하다. 내 마음속 억눌러두었던 말들이 아름다운 글로 昇華돼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큰 病에 걸릴 수도 있고, 豫期치 못한 큰 憂患을 當할 수도 있고 아무 잘못도 없이 抑鬱함을 當할 수도 있다. 하지만 絶對 삶을 抛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떻든 길이 생기더라는 게 내 經驗이다. 앞이 안 보이고 캄캄해도 어려운 일은 반드시 지나간다. 한쪽 門이 닫히면 다른 門이 열린다. 그리고 苦難 속에서 삶은 더 단단해진다. 正말 그렇다.”

    #孝玉 #전군표 #플라톤아카데미 #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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