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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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金勝鎬
本名 김해수
出生 1917年 7月 13日 ( 1917-07-13 )
日帝强占期 朝鮮 江原特別自治道 鐵原
死亡 1968年 12月 1日 ( 1968-12-01 ) (51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職業 歌手, 演劇俳優, 映畫俳優,
映畫 企劃價
活動 期間 1945年 ~ 1968年
宗敎 佛敎
學歷 京城 輸送普通學校 卒業
京城 寶城高等普通學校 卒業
漢陽工科大學校 映畫學科 學事
親戚 김선주(孫子)
김금성 (孫子)
김채주(孫女)
配偶者 추성자(推聲慈, 1923年 10月 31日~2000年 1月 2日)
子女 김희라 (아들)

김승호 (金勝鎬, 本名 김해수,  本名 漢字 :  金海壽, 1917年 7月 13日 ~ 1968年 12月 1日 )는 日帝强占期 演劇俳優 이며 大韓民國 映畫俳優 이다. 本貫은 江陵 (江陵)이다.

生涯 [ 編輯 ]

改名(改名) 前 이름은 김해수(金海壽)이며 金승호는 1917年 7月 13日 江原特別自治道 鐵原 에서 出生하였고 지난날 한때 江原道 春川 에서 暫時 幼兒期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後 京城府 에서 成長하였다. 그는 1930年代 中盤에 김두한 동양극장 청춘좌 에 紹介해 준 것을 契機로 俳優 活動을 始作하였다. 光復 以後 1945年 自由劇場 創立單元 가운데 一員으로 參與했으며, 1946年 映畫 《 自由萬歲 》에 出演하면서 映畫俳優로 데뷔했다.

1956年 映畫 《 媤집 가는 날 》에서 孟 眞사 役을 맡은 그는 1957年 日本 도쿄 에서 열린 第4回 아시아映畫祭에서 特別賞 (喜劇賞)을 受賞하면서 스타로서의 地位를 確立해 나갔다. 以後 《 로맨스 빠빠 》, 《마부》, 《돈》, 《人生差押》, 《朴書房》, 《三等課長》, 《굴비》, 《돌무지》 等 250餘 篇의 作品에 出演하였다. 1960年 4·19 革命 當時에는 李承晩 大統領의 不正選擧( 3·15 不正選擧 )와 關聯된 演說을 理由로 4.19 革命 關聯 團體에서 自宅에 襲擊받았지만, 김두한 에 依해 誤解가 풀렸다. [1] 1967年 에는 韓國映畫人協會 理事長을 歷任했다. 1968年 12月 1日 高血壓으로 死亡했다.

學歷 [ 編輯 ]

主要 經歷 [ 編輯 ]

作品 [ 編輯 ]

映畫 [ 編輯 ]

家族 關係 [ 編輯 ]

受賞 [ 編輯 ]

金勝鎬를 演技한 俳優 [ 編輯 ]

TV 드라마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

  • 이길성, 김한상, 공영민 《金勝鎬: 아버지의 얼굴, 韓國映畫의 肖像》(한국영상자료원, 2007)

外部 링크 [ 編輯 ]

靑龍映畫賞 《男優主演賞》
移轉 1963年
김승호
1964年
김진규
靑龍映畫賞 《男優主演賞》
1966年 1967年
김승호
1968年
申榮均 申榮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