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趙芝薰,
1920年
12月 3日
~
1968年
5月 17日
)은
日帝 强占期
以後로 活動한
大韓民國
의 隨筆家, 韓國學 硏究가,
詩人
으로,
靑鹿派
詩人 中 한 사람이다.
[1]
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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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貫은
漢陽
(漢陽)이고 本名은
조동탁
(趙東卓)이다.
慶尙北道
營養
에서 태어났다. 獨學으로 中學 課程을 마치고서
東國大學校
[2]
에 入學하여 國語國文學科를 나온 그는
1939年
《
文章
》誌에 〈
古風衣裳
〉과 〈
乘務
〉
[3]
를 推薦받아 文壇에 登場하였다. 光復 後
京畿女子高等學校
敎師와
東國大學校
講師,
高麗大學校
敎授를 歷任했다.
1961年
벨기에
에서 열린
國際 詩人 會議
에 大韓民國 代表로 參席하였다. 이듬해 고려대학교 民族文化硏究所長에 就任하면서 民族文化 開發에 注力하였다.
靑鹿派의 한 사람으로 名詩를 많이 남긴 趙芝薰의 詩는 主로 自然, 巫俗, 線을 素材로 한 民族다운 色彩가 짙고 佛敎 世界를 向한 關心은 宗敎意識을 일깨워 作品에 反映되었다.
박목월
과
朴斗鎭
을 비롯한 다른 靑鹿派 詩人이 後에 詩 世界를 根本으로 變革했는데 趙芝薰은 初期 自然과 親和한 詩 世界를 꽤 많이 維持하였다.
1956年
自由文學賞을 받았다. 그 後로도 活潑히
文學
活動을 하며
高麗大學校
敎授로 在職하던 中
1968年
5月
高血壓
으로 吐血한 後 入院,
高血壓
과
氣管支擴張症
의
合倂症
으로
5月 17日
49歲의 젊은 나이로 끝내 他界했다.
詩集으로 《청록집》과 《趙芝薰 視線》이 있고 隨筆集 《窓에 기대어》, 論文集 《韓國 民族運動史》 이 있다.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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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强占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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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年
《
文章
》誌에 〈古風衣裳〉과 〈
乘務
〉를 推薦받아 詩人으로 文壇에 登壇
光復 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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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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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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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要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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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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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박목월.朴斗鎭,《청록집》, 1946
- 《풀잎團長》, 1952
- 《趙芝薰詩選》, 1956
- 《歷史앞에서》, 1959
- 《여운》, 1964
時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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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相 및 評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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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窓에 기대어》, 1958
- 《詩와 人生》, 1959
- 《志操論》, 1962
- 《돌의 美學》, 1964
飜譯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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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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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國文化史 序說》, 1964
- 《新羅國號硏究論告》, 1955
- 《韓國民族運動史》, 1964
- 《新羅歌謠硏究論告》, 1964
- 《數鬪牋高》, 1966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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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 조인석(趙寅錫)
- 아버지 :
조헌영
(趙憲泳) - 初代, 第2代
國會議員
- 아내 : 김위남(金渭男) 女史
[4]
, (
나중에 김위남에서 김난희(金蘭姬)로 改名.
)
- 長男 : 조광렬(趙光烈)
- 며느리 : 高腐熟(高富淑)
- 次男 : 조학렬(趙學烈)
- 며느리 : 이명선(李明善)
- 長女 : 조혜경(趙惠璟)
- 사위 : 김승교(金承敎)
- 三南 :
조태열
(趙兌烈) : 外交公務員, 스페인 駐在 大韓民國 大使 歷任, 現
大韓民國 外交部
長官
- 며느리 : 김혜경(金惠卿)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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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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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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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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