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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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영
趙萬永
朝鮮 翼宗의 國舅
풍은府院君 豊恩府院君
이름
시호 充警(忠敬)
身上情報
出生日 1776年 5月 5日 ( 1776-05-05 ) (陰曆)
死亡日 1846年 10月 14日 ( 1846-10-14 ) (70歲) (陰曆)
家門 풍양 조氏
父親 조진관
母親 南陽 洪氏
配偶者 덕안夫婦인 恩津 宋氏
子女 2男 4女
조병구 · 조병기 · 신정왕후 · 이인설의 妻
유치선의 妻 · 김석현의 妻

조만영 (趙萬永, 1776年 6月 20日 ( 陰曆 5月 5日 ) ~ 1846年 12月 2日 ( 陰曆 10月 14日 ) )은 朝鮮 後期의 政治가 · 文身 書藝家 이다. 翼宗 신정왕후 의 아버지이자 憲宗 의 外할아버지이다.

槪要 [ 編輯 ]

字는 윤경(胤卿), 號는 석애(石崖), 諡號는 충경(忠敬), 本館 풍양 (豊壤)이다.

조진관 (趙鎭寬)과 南陽 洪氏 의 아들이며, 英祖 臺에 고구마 를 朝鮮에 들여온 趙曮 의 孫子이다. 暗行御史 로 名聲을 떨쳤으며 딸이 順調 의 아들 驍名世子 의 世子嬪이 되었다. 以後 外孫子인 憲宗 時代에 조만영을 主軸으로 하는 풍양 조氏 一族은 安東 金氏 勢道政治 를 恣行하였다.

生涯 [ 編輯 ]

1813年 (純祖 13年) 陵園量의 文科에 及第하여 藝文館 檢閱이 된 뒤, 地平(持平)·司諫院正言, 兼文學 等을 歷任하고, 1816年 全羅道 暗行御史 로 나갔다. [1]

1819年 (純祖 19年) 10月, 副司直으로 있을 때 長女가 驍名世子 의 世子嬪으로 揀擇되었다. 이듬해 行 吏曹 參議가 되고 1821年 禁衛大將(禁衛大將) [2] , 이어 吏曹·戶曹·禮曹·刑曹의 判書와 漢城府 判尹 [3] , 判義禁府事 等 要職을 歷任하였다.

以後 外孫子인 憲宗 이 卽位하여 풍은府院君 (豊恩府院君)에 封해졌다. 憲宗 時代에 풍양 조氏 의 中樞的 人物로서 安東 金氏 와 勢道를 다투게 되었다.

1845年 (憲宗 11年) 几杖 (机杖)을 下賜받고 [4] 영돈녕府使가 되었다.

1846年 (憲宗 12年) 10月 14日 졸하였다. 事後 領議政 에 追贈(追增)되었다. 順調 의 墓室에 配享됨으로써 宗廟配享功臣 이 되었다.

家族 關係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朝鮮王朝實錄》 順調 19卷, 16年(1816 病者 / 靑 佳境(嘉慶) 21年) 6月 10日(戊午) 1番째記事
  2. 《朝鮮王朝實錄》 順調 23卷, 21年(1821 神社 / 靑 道光(道光) 1年) 1月 20日(妊娠) 1番째記事
  3. 《朝鮮王朝實錄》 順調 30卷, 28年(1828 巫子 / 靑 道光(道光) 8年) 3月 5日(甲辰) 1番째記事
  4. 《朝鮮王朝實錄》 憲宗 12卷, 11年(1845 乙巳 / 靑 道光(道光) 25年) 3月 19日(競進) 1番째記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