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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國統一汎民族聯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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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國統一汎民族聯合 (祖國統一汎民族聯合, 文化語 : 祖國統一汎民族聯合, 英語 : the Pan-Korean Alliance for Reunification ) 略稱 범민련 1990年 11月 20日 에 結成된 大韓民國 非政府團體 이다. 祖國統一汎民族聯合 北側本部는 1991年 1月 25日 에 結成되었고 祖國統一汎民族聯合 南側本部는 1995年 2月 25日 에 結成되었다. 서울警察廳 保安搜査隊 所屬 搜査官 14名은 이날 午前 11時 30分께부터 1時間 동안 1993年 8月 12日 汎民族大會와 關聯하여 서울地方法院 오석준 判事로부터 押收搜索令狀을 發付받아 서울 종로구 연지동 韓國기독교연합회관 913號 祖國統一汎民族聯合 南側本部(委員長 문익환) 事務室을 搜索하고 汎民族大會 關聯 會議錄과 油印物, 汎民族大會 南側推進本部 關聯 資料, 컴퓨터 디스켓 等 모두 30點의 物品을 押收했다. 또 國家保安法 違反 嫌疑로 手配를 받고 있는 이 團體 實行委員會 이창복 委員長의 計座가 開設된 조흥은행 연지동地點, 農協 東大門支店 等 3個 銀行에서 李氏 入出金 關聯 書類를 押收했다. [1] 汎民族大會南側推進本部(本部長 강희남)는 1993年 8月 15日 午後2時 한양대 露天劇場에서 第4次 汎民族大會에서 政府에 對해 南北合意書 履行과 國家保安法 撤廢等을 促求하면서 "南北合意書의 內容들이 성실하게 履行된다면 半世紀 가까이 持續된 南北의 對決狀態에 終止符를 찍고 和解와 平和가 定着될 수 있을 것"이라며 南北韓 平和協定 締結, 國家保安法 撤廢, 자유로운 交流協力 保障, 日本의 유엔安保理 常任理事國 進出反對 等 決議文 9個項을 採擇했다. [2]

共産黨 合法化, 駐韓美軍 撤收, 國家保安法 廢止 等을 理由로 1997年 5月 16日 大韓民國 大法院은 國家保安法 第7條를 違反한 이들에 對해 利敵 團體 判決을 내렸다. 檢察은 金大中, 노무현 政府 時期인 1998年에서 2007年 사이에는 범민련이나 범민련 會員들을 起訴하지 않았다.

2009年 5月 7日 아침 國家情報院, 警察 等 1,000餘 名의 搜査官 等이 서울市 용산구 所在 祖國統一汎民族聯合 事務室과 범민련 高位 幹部들의 自宅 等 26곳을 押收搜索 6名을 逮捕했다. 이규재(73歲, 범민련 南側本部 議長), 2003年부터 事務處長을 맡은 이경원(43), 최은아(37歲, 犯 憫憐 南側本部 宣傳委員長) 等 3名은 國家保安法 違反으로 起訴되어고 檢察은 2009年 11月 28日 서울中央地方法院에 國家情報院이 法院의 通時制限 許可에 따른 監聽 等의 記錄을 證據로 提出하자, 判事는 憲法裁判所에 通信祕密保護法 第6條 第7項71에 對한 違憲法律審判을 提請하였다. 2010年 12月 憲法裁判所는 通信祕密保護法 第6條 第7項이 憲法不合致라고 결정내렸다. 2011年 3月 審理가 再開되었고, 憲法裁判所의 決定에도 不拘하고 裁判에서는 監聽을 통해 蒐集된 證據가 받아들여졌다. 2011年 11月 9日 서울中央地方法院에서 檢察은 이규재 懲役 7年, 이경원 懲役 8年, 최은아 懲役 6年을 求刑했고 2011年 11月 22日 서울中央地方法院은 이규재에게 懲役 3年 6月 資格停止 4年, 이경원 懲役 4年 資格停止 4年, 최은아 懲役 2年 6月, 資格停止 2年 6月, 執行猶豫 4年을 宣告했다. 2012年 6月 서울高等法院은 이규재, 이경원, 최은아에게 懲役 2年 6月에서 懲役 4年까지를 宣告했고, 이들은 高等法院 判決에 不服해 大法院에 上告했다. 2012年 11月 大法院은 上告를 棄却하고 懲役刑을 確定했다.

釜山地法 刑事合議6部(辛宗烈 部長判事, 이환기, 류일件)는 2009年 2月부터 2013年까지 反國家團體 構成員과 會合·通信하고 北韓의 對南宣傳·煽動에 同調하는 等 利敵活動을 한 嫌疑로 이병주 檢査에 依해 拘束 起訴된 범민련 釜山慶南聯合 議長 하모(67)씨에게 2014年 6月 13日에 "被告人이 利敵團體로 確認된 범민련 南側本部 부경연合意 議長 等으로 活動하면서 北韓 獨裁政權의 主張에 同調하는 主張을 했다. 이는 北韓의 對南戰略에 이용당하는 것으로서 北韓의 現實的 威脅 앞에 있는 大韓民國의 存立과 安全, 自由民主的 基本秩序에 實質的인 危險性이 있음을 否定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相應하는 處罰이 不可避하다"는 理由로 懲役 2年 6月에 資格停止 2年 6月, 執行猶豫 4年을 宣告하고 保護觀察을 命하면서 公訴事實 가운데 2010年 3月 17日 인터넷 카페 '오늘의 鬪爭'欄에 '民族自主'라는 아이디로 '6·15 共同宣言實踐 民族共同委員會 共同委員長會議 報道文'이라는 題目의 文件을 揭示한 것을 비롯한 9가지 嫌疑는 "表現의 自由의 限界를 벗어난 것으로 認定하기 어렵다"는 理由로 無罪로 判斷했다(부산지법2013고합959). [3] [4]

規約/主張 [ 編輯 ]

全民族의 大團結과 祖國의 自主的 平和統一을 이룩하는 것을 目的으로 하는 擧族的인 統一運動 聯合體이다(규약 2兆). 범민련은 自主, 平和統一, 民族大團結의 祖國統一 3大 原則을 支持하고 본 聯合의 綱領과 規約을 承認하는 南과 北(北과 南), 海外의 愛國的인 政黨, 團體 및 個別 人士들로 構成한다(규약 4兆).

背景 [ 編輯 ]

蘇聯 美國 의 蜜月政策으로 韓半島 政策이 變化되어 實質的인 두個의 主權國家 存在를 認定하는 永久 分斷 危機가 닥치고, 이런 反統一 國際 情勢에 비해 문익환 , 林秀卿 , 문규현 等의 訪北을 契機로 韓民族 內部에는 統一 熱望이 强化되고, 世界가 冷戰의 敵對的 對決에서 平和와 和解의 雰圍氣로 歷史的 轉換을 하고 있는 時點으로 韓半島에서는 民間 次元에서 統一을 이루어야 한다는 熱望 [5]

經過 [ 編輯 ]

  • 1990年 8月 15日 板門店 汎民族大會 參加者들이 祖國統一汎民族聯合을 構成 決議
  • 1990年 8月 17日 汎民族大會 南側推進本部에서 범민족的인 統一運動體를 結成할 것을 決議
  • 1990年 9月 14日 汎民族大會 南側推進本部 第3次 代表者會議에서 傘下에 범민족的인 統一運動體 結成을 위한 檢討小委를 둠
  • 1990年 9月 15日 祖國統一汎民族聯合 유럽地域 本部 結成. 議長에 정규명
  • 1990年 10月 7日 祖國統一汎民族聯合 日本地域 本部 結成. 議長에 양동민
  • 1990年 10月 24日 汎民族大會 南側推進本部 第4次 代表者會議에서 남,北,海外 3者會談 提案
  • 1990年 10月 31日 推進本部에서 3者 會談을 11月 12日 板門店에서 갖자고 提案하는 記者會見
  • 1990年 11月 8日 國土統一院에서 南側推本이 提出한 北韓 住民接觸신소의 3者會談 協力要請에 對해 不許通報
  • 1990年 11月 12日 南側推進本部에서 베를린에서 南, 北, 海外 3者 實務會談을 가질것임을 空表
  • 1990年 11月 17日 南側推進本部 第5次 代表者會議 開催 조용술, 이해학 , 조성우를 實務會談 代表로 公式 認准
  • 1990年 11月 20日 베를린 에서 南과 北, 海外 代表들이 3者 會談을 갖고 全 民族的인 民間統一機構로서 祖國統一汎民族聯合體를 結成하기로 合意
  • 1990年 11月 29日 南側實務會談 代表3人이 東京 에서 ‘7千萬 同胞에게 드리는 글’ 發表
  • 1990年 11月 30日 南側實務會談 代表 歸國, 空港에서 治安本部 對共分室 要員들에 連行 拘束
  • 1990年 12月 1日 北美洲本部 結成
  • 1990年 12月 16日 尹伊桑 을 議長으로 海外本部 結成
  • 1991年 1月 10日 전진상敎育館에서 범추본 7次 代表者會議 開催
  • 1991年 1月 23日 범민연 南韓 準備委員會 發足. [5] [6]
  • 1991年 1月 24日 準備委員長 문익환 과 實行委員長 이창복 拘束
  • 1991年 1月 25日 범민련 北側本部 結成(招待議長 윤기복 )
  • 1995年 2月 25日 범민련 南側本部 結成 (招待議長 강희남 )
  • 2001年 1月 13日 出帆後 10年만에 最初로 政府 彈壓없이 公開된 場所인 淸州 心身修鍊院에서 200名 幹部를 모아 범민련 修鍊會 開催(南側本部 이종린 議長)
  • 2001年 2月 13日 北, 男, 海外 범민련 共同議長團 會議開催 [7]

利敵行爲에 對한 對應 [ 編輯 ]

大韓民國 政府 는 1991年 1月 23日 國家保安法 違反으로 범민련 南側 準備위 執行委員長 이창복, 準備委員 金希宣, 김희택, 권영택에 對한 事前拘束令狀을 發付하여 베를린에서 歸國 하자마자 空港에서 逮捕해 拘束하였다.

備考 [ 編輯 ]

범민련 南側本部에서 發行하는 機關紙 題號는 《民族의 進路》, 범민련 北側本部에서 發行하는 機關紙 題號는 北朝鮮을 代辯하는 《우리民族끼리》(過去에는 《民族大團結》)이다. 범민련 南側本部는 서울特別市 永登浦區 國會대로 34길 13 3層이다.


祖國統一汎民族聯合 (汎民聯) 南側本部準備委員會 結成과 關聯하여 國家保安法 違反嫌疑로 手配中이었던 前 民主爭取 國民運動 서울本部 副議長 金希宣(49.女)와 이 團體 前 事務處長 김응관(38)의 집 電話와 連結된 電信柱 電話 端子函에서 一齊 盜聽裝置가 잇따라 發見됐다. [8]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1]
  2. [2]
  3. [3]
  4. [4]
  5. 윤태호 (1991年 3月). “祖國統一汎民族聯合 結成 展望과 統一運動”. 《民族民主運動硏究所 情勢硏究》 (19).  
  6. 編輯部 (1991年 2月). “祖國統一汎民族聯合'의 意義와 展望”. 《民族民主運動硏究所, 情勢硏究》 (18).  
  7. 안영민 (1001年 3月). “祖國統一汎民族聯合 南側本部 이종린 議長”. 《月刊말》 177 .  
  8. [5]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