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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마감, 내가 定할 수 있게”… 助力 尊嚴死 憲法訴願 낸 이명식 氏[서영아의 100歲 카페]|東亞日報

“내 삶의 마감, 내가 定할 수 있게”… 助力 尊嚴死 憲法訴願 낸 이명식 氏[서영아의 100歲 카페]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3月 9日 01時 40分


코멘트

脊髓炎으로 極甚한 慢性痛症
家族과 苦痛없이 作別하고파
尊嚴死·安樂死 合法化 國家 急增
國內 輿論도 80% 以上 贊成
超高齡社會 ‘脫出口’ 惡用 막아야

韓國에서 죽음의 自己決定權은 어디까지 認定될까.

現在로서는 2016年 制定돼 2018年부터 施行된 延命醫療決定法에 따라 ‘林鐘 段階에 延命治療를 받지 않는 것’까지다.

本人이 事前에 延命醫療를 받지 않겠다는 誓約을 해 놓거나 本人의 意識이 없다면 家族이 合意해 決定할 수 있다. 主로 心肺蘇生術, 血液 透析, 抗癌劑 投與, 人工呼吸器 着用 等 現代醫學의 힘을 빈 延命過程을 避할 수 있다. 單, 痛症管理와 營養供給은 繼續된다.

臨終過程을 人爲的으로 ‘늘리지 않는다’는 點에서 ‘消極的 安樂死’라고도 불린다. 萬若 臨終 段階는 아닌 不治病의 境遇는 어떻게 될까. 回復될 可望 없이 痛症이 이어진다면?

통증 탓에 3시간 이상 앉아있기 어려운 그는 변호사단체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과 한국존엄사협회 등과 영상대화로 소통한다. 한국존엄사협회 제공
痛症 탓에 3時間 以上 앉아있기 어려운 그는 辯護士團體人 착한법만드는사람들과 韓國尊嚴士協會 等과 映像對話로 疏通한다. 韓國尊嚴士協會 提供


죽음의 自己決定權 保障해달라
濟州島에 사는 前職 公務員 이명식(63) 氏가 이런 境遇다. 그는 原因을 알 수 없고 現代醫學으로 治療가 不可能한 ‘脊髓炎’ 診斷을 받고 5年째 下半身 痲痹와 極甚한 幻想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그가 지난해 12月 助力 尊嚴死를 立法하지 않은 現 狀態는 違憲이라는 憲法訴願을 提起했다. 청구의 內容은 1) 호스피스 緩和醫療 및 臨終過程에 있는 患者의 延命醫療決定에 關한 法律에 助力 尊嚴死를 許容하는 具體的 立法을 마련하지 않은 잘못에 對한 請求 2) 自殺關與罪를 規定한 憲法 條項의 違憲與否에 對한 請求의 2가지.

尊嚴死를 願하는 當事者와 家族의 基本權이 侵害되고 있는데도 國家가 積極的 措置를 取하지 않는 것은 憲法에 保障된 幸福追求權 自己決定權 自己運命決定權 私生活의 自由를 侵害한다는 主張이다.

이에 對해 憲法裁判所가 1月 16日 ‘審判回附’를 決定함으로써 助力 尊嚴死에 對한 憲法訴願裁判이 始作됐다. 審判回附는 正式으로 審判하겠다는 뜻인데, 2017年과 2018年에는 類似한 憲法訴願 審判請求가 모두 却下됐었다.

<現行 延命醫療 中斷과 醫師 助力 尊嚴死 槪念 比較>


延命醫療 中斷
醫師助力 尊嚴死
關聯法
連名醫療結晶法으로 許容
法的 根據 없어 不許
條件
死亡 臨迫, 回復 不能
極甚한 苦痛, 回復 不能
履行手段
人工呼吸器, 心肺蘇生術 等 延命醫療 中斷
死亡을 誘導하는 藥물 處方
對象
意識不明 患者 包含
意識不明 患者 未包含


幻想통 시달리는 脊髓炎 患者
이명식 氏는 濟州島에서 딸(36)과 함께 산다. 5年 前 名譽退職 뒤 濟州島에서 人生 2幕을 始作했다. 그런데 皮膚科에서 알레르기 治療를 위한 注射를 맞고는 高熱과 頭痛에 시달렸다. 며칠 뒤 大學病院 應急室에 갈 때쯤에는 ‘腦 속을 面刀날로 베어내는 듯한’ 痛症을 느끼고 있었다.

그 뒤 40餘 日 間의 記憶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精神을 차려보니 悽慘했다. 가슴 아래가 痲痹됐고 脊髓炎이란 診斷이 어렵사리 내려졌다.

脊髓炎은 脊髓 周邊 神經纖維가 損傷돼 神經痛症, 痲痹, 感覺 異常을 誘發한다. 그의 境遇 바이러스가 脊髓에 浸透해 炎症을 일으켰고 神經을 攪亂시키고 있다는 說明이었다. 病院 10餘 군데를 돌았지만 原因도 모르고 治療에도 進陟은 없었다.

이 씨의 일상. 하반신은 시리고 저려 난로를 쬐고 얼굴은 열이 올라 선풍기를 틀어 식혀줘야 그래도 좀 견딜 만한다고. 이러다가 저온화상으로 발뒤꿈치와 새끼발가락을 잘라내기도 했다. 이명식 씨 블로그
李 氏의 日常. 下半身은 시리고 저려 暖爐를 쬐고 얼굴은 熱이 올라 扇風機를 틀어 식혀줘야 그래도 좀 견딜 만한다고. 이러다가 低溫火傷으로 발뒤꿈치와 새끼발가락을 잘라내기도 했다. 이명식 氏 블로그


“차라리 末期癌 患者였다면…”
지난달 26日 電話 인터뷰에 應한 이명식 氏는 對象을 알 수 없는 被害意識과 憤怒를 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히는 건 견딜 수 없는 痛症. 隨時로 찾아오는 痛症은 痲藥性 藥물로도 制御가 되지 않는다.

“다리는 痲痹가 됐는데 故障난 神經이 끊임없이 痙攣을 일으키고 痛症을 만들어냅니다. 痛症이 甚하면 마구 火가 나요. 그런데 화낼 곳이 없고 火를 내는 내 모습도 醜접해보이고….”

그의 表現에 따르면 다리를 프레스機로 壓迫하거나 꼬아서 꼬집는 듯한 느낌이 隨時로 掩襲해온다. 다리 아래는 차갑고 저려 暖爐불을 쬐고 있는데 머리쪽은 熱이 몰려 땀을 뻘뻘 흘린다. 痲藥性 鎭痛劑 패치를 붙이고 지내며 午後에야 두어時間 精神을 차리는 日常이 이어지고 있다.

“痛症을 呼訴하면 病院에 入院하라고들 해요. 院內에서는 더 剛한 痲藥性 鎭痛劑를 使用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뿐, 어느 病院이건 3個月 지나면 退院하라고 합니다.

차라리 末期癌 患者였다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어요. 治療라도 할 수 있고, 治療가 안 되면 끝이라도 있으니. 끝없는 痛症에 짓눌려 每日을 견뎌내는 것이 무슨 意味가 있는지….”

디그니타스 等 海外 助力 團體 4군데에 登錄
그의 딸이 수발을 도맡고 있다. 排便活動이 不可能한 아버지를 위해 每日 肛門에 손을 집어넣어 變을 꺼내야 한다. 人間으로서 最小限의 尊嚴을 지키기 어려운 狀況이다.

그의 블로그에 남겨진 記錄을 훑어보니 普通 사람에게는 想像조차 할 수 없는 苦痛이 가득했다.

感覺이 없으니 低溫火傷을 입어 발뒤꿈치와 새끼발가락을 잘라내거나 小便줄에서 일어난 感染 탓에 急性腎盂腎炎을 앓거나 褥瘡으로 苦痛받는 等 여기저기 몸은 부서져간다.

한時도 딸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만큼 딸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더욱 그를 괴롭힌다.

數次例 極端的 생각을 했지만 家族에게 凶한 모습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스위스에 ‘디그니타스’ 等 尊嚴死를 도와주는 團體가 있다는 걸 알고 한동안 希望을 품었지만, 結局 抛棄했다. 혼자 擧動을 못하니 누군가 스위스까지 데려가줘야 하는데 刑法上 自殺幇助4가 된다.

李 氏가 韓國尊嚴士協會 최다혜 會長에게 디그니타스에 對한 問議電話를 하면서 길이 보이기 始作했다. 無料辯論을 自處한 辯護士團體 ‘着韓法만드는사람들’과 連結됐고 그는 憲法訴願에 나서기로 했다. 憲法訴願에는 그의 딸도 請求人으로 이름을 올렸다.

助力 尊嚴死 認定하는 國家 갈수록 늘어
醫師의 도움으로 尊嚴한 죽음을 얻는 助力 尊嚴死 或은 安樂死를 合法化하는 國家는 갈수록 늘고 있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캐나다, 뉴질랜드, 美國과 濠洲의 一部 州(州)들에서 助力死亡을 許容하고 있다.

지난 2월 한날 한시에 존엄사로 세상을 떠난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
지난 2月 한날 한時에 尊嚴死로 世上을 떠난 드리스 판 아흐트 前 네덜란드 總理 夫婦
지난해 프랑스의 有名俳優 알랭 들롱(89)李 助力死亡으로 生을 마감하겠다고 밝혔고 最近에는 네덜란드의 前 總理 夫婦가 93歲를 一期로 함께 尊嚴死를 擇해 話題가 되기도 했다.

2002年 世界 처음으로 安樂死를 合法化한 네덜란드에선 △患者가 견딜 수 없는 苦痛을 겪고 있으며 △治療의 可望이 없고 △죽고 싶다는 意志를 明確히 밝히는 等 6가지 基準이 充足될 境遇 安樂死를 施行하고 있다. 이렇게 安樂死를 擇한 사람이 2022年 8720名에 이른다.

日本의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의 著書 ‘安樂死를 이루기까지(쇼가쿠칸)’에는 네덜란드人 시프 避텔스마 氏(2013年 11月 79歲로 死亡)의 그날이 紹介돼 있다.

避텔스마 氏는 子女와 孫子 26名이 모인 居室에서 一一이 抱擁과 키스를 나눈 뒤 아내가 불러주는 追憶의 노래를 들으며 意思가 건네준 컵에 든 藥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이제 잠이 오네’라며 앉아있던 소파에 모로 누웠다.

그는 死亡 13年 前 心筋梗塞, 4年 前 皮膚癌을 이겨냈지만 10個月 前 알츠하이머 判定을 받자 安樂死를 實行에 옮기기로 했다. 그의 어머니가 오랜 期間 알츠하이머를 앓았는데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다는 意志가 굳었다.

이를 契機로 네덜란드에서는 癡呆가 ‘견딜 수 없는 苦痛’에 該當되느냐를 놓고 論爭이 벌어졌다.

憲裁 審判, 이番에는 다를까
元惠榮 웰다잉文化運動 代表는 “潮力 尊嚴死의 全世界的 擴散은 21世紀 들어 일어난 現象”이라며 “워낙 擴散勢가 빨라 韓國에서도 오래지 않아 現實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이명식 氏의 訴訟代理人으로 公開辯論을 맡은 金炫 着韓法만드는 사람들 代表(法務法人 세창 辯護士)도 “이番 憲法審判은 過去와는 다를 것”이라고 展望한다.

그의 說明에 따르면 2009年 尊嚴死 許容 與否를 다룬 이른바 ‘金할머니 事件’에서 憲法裁判所는 이미 ‘尊嚴死에 對한 自己決定權은 憲法上 保障된 基本權’임을 認定한 바 있다.

다만 ‘이는 法學 醫學만이 아니고 宗敎 倫理 哲學까지 連結되는 重大한 問題이므로 充分한 社會的 合意가 必要하다’는 理由로 ‘尊嚴死 關聯한 現行 法 外의 立法義務는 없다’고 決定했다.

金代表는 “그로부터 15年이 흐르면서 助力 尊嚴死에 對한 社會的 合意는 成熟 段階에 到達했다”면서 “關聯 輿論調査에서도 國民 80% 以上이 贊成하고 있다”고 强調했다.

앞서 2022年 國會에서 安圭伯 議員의 發意로 助力 尊嚴司法이 發議됐으나 進陟이 없었다.

최다혜 尊嚴士協會 會長은 “죽음을 앞둔 患者가 自己決定權을 行使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憲法 價値를 守護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先進國家들과 달리 老年의 醫療와 돌봄이 제대로 保障되지 않은 韓國에서 助力 尊嚴死가 施行된다면 ‘너무 쉬운 脫出口’가 될 수 있다는 憂慮도 적지 않다.

本人의 意志보다 社會의 壓力, 家族의 바람 等에 떠밀려 죽음을 選擇하는 境遇가 생길 수 있다는 것. 治療받고 돌봄받지 못해 苦肉策으로 尊嚴死를 擇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야말로 悲劇이다.

崔 會長은 “그래서 社會保障制度나 醫療서비스 擴大와 助力尊嚴死 合法化가 竝行돼야 한다”고 말한다.

“죽을 權利 認定받은 瞬間, 살아갈 意志 생겨나”
李 氏는 요즘 助力 尊嚴死가 可能하도록 世上을 바꾸는데 힘을 보탠다는 一念으로 힘든 나날을 버티고 있다.

이 씨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중 하나가 세수하고 양치하기다. 불편한 높이에서 씻다 보니 아예 다리쪽에 방수포를 덮고 씻어야 온몸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명식 씨 블로그
李 氏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中 하나가 洗手하고 양치하기다. 不便한 높이에서 씻다 보니 아예 다리쪽에 防水布를 덮고 씻어야 온몸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명식 氏 블로그
이명식 씨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위)과 장기 조직기능희망등록증(아래)
이명식 氏의 事前延命醫療意向書 登錄證(危)과 臟器 組織機能希望登錄證(아래)
그에게 尊嚴死가 認定된다면 卽刻 實行에 옮길 計劃인지 물었다.

“世上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 生命을 스스로 決定할 수 있는 權利를 保障받고 싶다는 거죠. 選擇肢를 하나 더 갖게 되면 그때 가봐야죠. 痛症만 사라진다면….”

이는 日本에서 安樂死 問題를 提起했던 作家 하시다 스가코 氏(2021年 작고)가 生前 인터뷰에서 말한 心境과도 같다. “選擇의 權利가 내게 있음을 確認하는 것 自體가 只今까지의 삶에 對한 肯定이자 마지막까지 더 熱心히 살고자 하는 意志를 북돋는 일”이라는 것.

스위스 디그니타스는 登錄 條件이 무척 까다롭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會員이 된 뒤 安樂死를 實行에 옮기는 사람은 3%에 不過하다고 한다.

事故로 障礙를 입은 데다 暫時도 그치지 않는 痛症을 얻은 한 젊은이는 가까스로 安樂死 許可를 받아낸 뒤 오히려 自身의 狀況을 肯定하고 障礙人 올림픽 出戰 準備를 始作했다.

選擇權을 얻더라도 選擇의 自由는 如前히 各自에게 있다. 굳이 낯선 스위스 땅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自身의 意志와 選擇으로 家族의 祝福과 人事를 받으며 아름답게 生을 마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살아갈 힘을 줄 수도 있다.

위의 冊 ‘安樂死를 이루기까지’에 登場한 事例. 末期癌 患者였던 네덜란드人 윌 避暑 氏(2012年 65歲로 死亡)는 世上을 뜨기로 定한 날 自宅에서 가든파티를 열었다. 왁자지껄하게 파티가 무르익던 무렵, 그는 親知와 親舊들에게 이런 人事를 남기고 醫師와 家族이 기다리는 自身의 寢室로 들어갔다.

“그럼 여러분, 저는 只今부터 寢臺로 가서 죽겠습니다. 끝까지 파티를 즐겨주세요. 感謝합니다.”

은퇴한 수학교사인 윌 피셔 씨의 자택에서 열린 가든파티를 즐기는 참석자들. 가운데 붉은 스웨터를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이 피셔 씨. 이 사진촬영 1시간 후 사망했다.  책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에서.
隱退한 數學敎師인 윌 피셔 氏의 自宅에서 열린 가든파티를 즐기는 參席者들. 가운데 붉은 스웨터를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이 피셔 氏. 이 寫眞撮影 1時間 後 死亡했다. 冊 ‘安樂死를 이루기까지’에서.


서영아 記者 sya@donga.com
#脊髓炎 #慢性痛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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