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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遂行 中인 ‘獨逸 兵丁’ 박한철 前 所長… “어디서든 主人이 돼라”[황형준의 法廷冒瀆]|東亞日報

절에서 遂行 中인 ‘獨逸 兵丁’ 박한철 前 所長… “어디서든 主人이 돼라”[황형준의 法廷冒瀆]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5月 25日 14時 00分


코멘트

[19話]

2019年 노벨 文學賞을 受賞한 劇作家 페터 한트케의 戱曲 ‘觀客冒瀆’. 十數 年 前에 본 이 演劇을 떠올린 건 讀者들과 疏通하는 方法 때문입니다. 神聖한 觀客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演劇의 旣存 文法과 秩序에 抵抗했든, 虛僞를 깨려 했든, 冒瀆(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現在 法曹팀長을 맡고 있는 筆者는 政治部와 社會部에서 10年 넘게 國會와 靑瓦臺, 法院·檢察, 警察 等을 取材했습니다. 이 코너의 門牌에는 法曹界(法)와 政治權(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脈絡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意味를 담았습니다. 가끔 冒瀆度 하겠습니다.
2017년 1월 퇴임식을 마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손을 흔들며 헌재를 떠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7年 1月 退任式을 마친 박한철 前 憲法裁判所長이 손을 흔들며 憲裁를 떠나고 있다. 東亞日報DB


“나는 훌륭한 憲法裁判이란 直線과 曲線, 그리고 色彩가 調和를 이룬 아름다운 音樂과 같다고 생각한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國家와 社會의 持續性을 意味하는 直線, 共同體의 發展에 必要한 創意性을 뜻하는 曲線, 그리고 意見과 價値의 多樣性을 象徵하는 色彩가 어우러져 고된 現實에 부대끼는 國民의 마음을 便安하게 하고 希望을 주는 旋律이 되어야 한다는 意味다.”
박한철 前 憲法裁判所 所長(70)은 지난해 9月 發刊한 著書 ‘憲法의 자리’에서 憲法裁判의 意味와 價値를 이같이 表現했다. 朴 前 所長은 歷代 唯一한 檢察 出身 憲裁 小將이었다.

2016年 12月 9日 國會가 朴槿惠 前 大統領에 對한 彈劾訴追案을 통과시키자 憲裁는 國民的 混亂을 早期에 解消하기 위해 裁判에 速度를 냈다. 憲裁는 이듬해 3月 10日 罷免 決定을 내릴 때까지 每週 1, 2次例 裁判을 열었고 總 3回의 辯論準備期日과 17回의 辯論期日 等 無慮 20次例 裁判을 열었다. 그 首長이 朴 前 所長이었다.

朴 前 所長은 任期가 2017年 1月 31日 끝나면서 裁判을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言論으로부터 每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退任式에서는 “우리 憲法 秩序에 極端的 對立을 招來하는 制度的 構造的 問題가 있다면 智慧를 모아 빠른 時日 內에 改善되는 方向으로 나아가기를 希望한다”고 改憲 必要性을 主張했다.

이때만큼 憲裁가 國民的인 支持와 拍手를 받고 그 役割과 位相이 높았던 때를 찾기 어렵다. 憲法의 最終 守護者인 憲裁가 나서서 彈劾 審判을 마무리함으로써 國家的 混亂을 收拾하고 大選을 통해 새로운 大統領을 選出하는 節次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年 만에 높아졌던 憲裁의 位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只今도 現 유남석 憲裁 所長이 누군지는 몰라도 朴 前 所長을 記憶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 特需·企劃 거친 ‘獨逸 兵丁’ 檢事
2005년 6월 박한철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수사 중간 발표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5年 6月 박한철 當時 서울중앙지검 3次長檢事가 러시아 油田開發 疑惑 搜査 中間 發表를 하고 있다. 東亞日報DB
1953年 釜山에서 태어난 朴 前 所長은 初等學校 2學年 때 仁川으로 올라와 中·高校를 卒業한 뒤 1975年 서울對 法大를 卒業했다. 1981年 第23回 司法試驗에 合格해 司法硏修院 13期로 修了한 뒤 1983年부터 檢事로 在職했다.

그는 檢事 時節 特殊通이자 企劃通이라는 評價를 받았다. 平檢事 時節 要職인 法務部와 서울地檢(現 서울中央地檢), 靑瓦臺 派遣 等을 거쳤다. 막스 플랑크 國際刑事法硏究所 客員硏究員 等으로 獨逸에서 留學을 했고 憲裁 派遣, 仁川地檢 特殊部長, 大檢 企劃課長, 서울중앙지검 3次長檢事, 三星 祕資金 特別搜査·監察本部長, 大檢察廳 公安部長, 大邱地檢長, 서울東部地檢長 等을 歷任했다.

그는 後輩들에게 信望이 두터운 檢事였다. 檢事長 時節 朝會 때 漢詩와 英詩를 引用하기도 하고 後輩 檢事들에게 媤집을 膳物하는 等 市와 苦戰을 즐겨 읽었다. 東洋과 西洋 歷史는 勿論 文學과 哲學에도 造詣가 깊은 浪漫主義者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別名이 ‘獨逸 兵丁’이었다. 워낙 嚴하고 徹頭徹尾한 業務 스타일 때문이었다. 朴 前 所長 밑에서 일했던 檢事 出身 A 辯護士의 이야기다.

“宏壯히 꼼꼼하시고 일을 無知하게 熱心히 하시는 분이니까 檢事들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決裁도 워낙 꼼꼼하게 하다 보니 次長 時節에 그 밑에 있던 部長들이 아무도 決裁를 안 올리려고 했다. 決裁를 할 때 記錄에다가 本人이 修正한 部分을 접어놓는데 數十 개가 접혀 있어서 놀라고 그걸 밤늦게까지 부랴부랴 修正한 記憶이 있다.”
- 取材 메모 中 -

2023년 2월 15일 박한철 전 소장이 대검찰청에서 검찰 구성원에게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대검 제공
2023年 2月 15日 박한철 前 所長이 大檢察廳에서 檢察 構成員에게 招請 講演을 하고 있다. 大檢 提供

그는 이원석 檢察總長의 招請으로 올해 2月 서울 瑞草區 大檢 廳舍에서 講演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後輩 檢事들에게 公益 實現 機關으로서의 檢察은 政治的 中立이 必須的이며 均衡感覺 等을 통해 憲法 價値를 實現하는 게 重要하다고 强調했다.

“政治的 中立 義務는 憲法 價値를 實現함에 있어서 매우 重要하다. 檢察 構成員, 總長으로부터 正門을 지키는 請願警察에 이르기까지 모든 構成員들이 한마음으로 智慧를 짜내야 한다. 끊임없이 交感하면서 答을 찾아가야 한다. 檢察이 擔當하는 모든 事件은 크고 작은 걸 떠나서 全部 方程式으로 풀어야 한다. 特히 複雜한 事件은 8,9次 方程式을 풀어야 하는데 高次方程式에 있어서는 國民 說得 問題가 가장 앞에 나온다. 國民이라는 건 言論이 가장 많은 部分을 代辯하고 있고, 言論을 說得하는 問題, 信賴와 支持를 받을 수 있는, 그걸 풀어나가는 게 檢察의 重要한 宿題다.”
- 2月 大檢察廳 講演 中 -

搜査에 對한 國民의 信賴와 支持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結局 檢察이 致命傷을 입게 된다는 意味다. 이런 理由로 그는 言論 對應을 重視했다고 한다. 公報 役割을 맡을 때는 搜査 狀況을 具體的으로 밝힐 수 없어 禪問答을 즐겼다.

서울중앙지검 3次長檢事로 있던 2005年 6月엔 記者團과의 티타임 途中에 “호연(浩然)韓 氣槪 맑고 드높으며 선재(仙才) 뛰어나 俗人은 알아보기 어렵네”라며 갑자기 漢詩를 읊기도 했다. 當時 불거진 ‘행담도 開發非理 疑惑’을 둘러싸고 記者들이 “이 事件을 서울중앙지검이 맡게 되느냐”고 執拗하게 묻자 中國 考査를 꺼낸 것이다. 當時 그는 이처럼 對答하기 難處하거나 保安이 必要한 質問에는 歷史, 文化에 關聯된 다양한 知識을 說明하며 避해 갔다고 한다. 記者들도 原則을 지키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2005年 4月 初旬이었던 것 같은데 봄이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거 같지가 않구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엄청난 權力型 非理로 浮刻이 돼 있고 그게 궁금해하는 事項이니까 搜査하는 데 여러분들의 協助를 懇曲히 付託한다. 疑惑을 提起하는 것만으로는 記事를 쓰지 말고 檢察 數詞와 速度를 맞춰서 報道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中略) 言論과는 職分을 誠實히 遂行하면서 信賴關係를 維持해야 한다는 걸 强調하는 意味에서 말씀드렸다. ”
- 2月 大檢察廳 講演 中 -

그는 △午前 10時와 午後 2時 브리핑 △記者들이 取材해 오는 事項에 對한 確認 △記者들의 電話는 無條件 받을 것 等 記者團과의 約束을 몇 달間 지켰고 그 結果 言論과의 信賴關係가 形成됐다고 한다.

● 高檢長 昇進 苦杯… ‘轉禍爲福’으로 憲裁 裁判官 指名

헌재 소장 시절의 박한철 전 소장 모습. 동아일보DB
憲裁 所長 時節의 박한철 前 所長 모습. 東亞日報DB
그런 그도 大檢察廳 公安部長 時節인 2008年 美國産 쇠고기 集會를 잘 統制하지 못했다는 理由로 高檢長에 昇進하지 못하고 서울東部地檢長으로 옷을 벗었다. 以後 金앤張法律事務所에서 일하던 中 反轉이 찾아왔다.

憲裁 派遣 勤務를 하던 時節 눈에 띄었던 德分인지 法務部 次官을 지낸 檢事 出身 김희옥 裁判官 後任으로 2011年 2月 指名된 것이다. 李明博 政府 時節이었다.

이어 裁判官을 하면서도 當時 이강국 憲裁 少將으로부터 “所長을 맡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種種 들을 程度로 그 資質을 인정받았다. 結局 2013年 憲裁 所長으로 指名돼 憲法裁判의 首長을 맡게 됐다. 또 다른 檢察 出身 B 辯護士의 말이다.

“大邱地檢長 時節에 大邱 갓바위를 한 몇 달을 每日 올라가셨어. 佛心이 깊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라에 對한 걱정이 많으셔서… 나라를 위해서 祈禱를 많이 하셨는데 結局 그 祈禱가 憲裁 所長까지 만들어 주신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 取材 메모 中 -
그가 所長이던 時節 憲裁는 歷史에 남을 만한 決定을 많이 내렸다. 2014年 統合進步黨 違憲政黨 解散 審判 事件에서 政黨 解散 引用 決定을 내렸다. 政黨 解散 審判에 對한 最初의 憲裁 決定이었다. 當時 憲裁는 “統進黨이 追求하는 北韓式 社會主義 體制는 조선노동당이 提示하는 政治 路線을 絶對的인 線으로 받아들이고 그 政黨의 특정한 階級 路線과 結付된 人民民主主義 獨裁 方式과 首領論에 기초한 1人 獨裁를 統治의 本質로 追求한다는 點에서 民主的 基本秩序와 根本的으로 衝突한다”고 밝혔다.

또 2015年에는 姦通罪에 對해 “姦通 行爲를 國家가 刑罰로 다스리는 것이 適正한지에 對해 더 以上 國民의 認識이 一致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며 “婚姻과 家庭의 維持는 當事者의 자유로운 意志와 愛情에 맡겨야지 他律的으로 强制할 수 없다”고 姦通罪 條項을 違憲으로 判斷했다.

朴 前 所長은 憲裁 裁判官 任命 制度에 對해 根本的인 懷疑를 提起하기도 했다. 그는 2013年 人事聽聞會부터 “9名의 裁判官 中 大統領과 國會가 各各 3名씩 指名하는 것은 國民的 代表性이 있으나 大法院長이 3名을 指名하는 것은 國民的 代表性이 없다”며 “大統領과 國會의 合同 行爲로 裁判官 任命이 이어진다면 (이 問題가) 解消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所信 發言을 했다. 2016年 3月 新聞放送編輯人協會 討論會에선 “率直히 自尊心이 傷한다”며 “(選出되지 않고 大統領이 指名한) 大法院長은 國民의 民主的 正當性을 附與받지 못한 狀態다. 憲裁가 二重으로 民主的 正當性이 稀釋돼 果然 權威를 가질 수 있느냐는 根本的인 疑問을 提起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判事 出身 憲裁 所長이었다면 하기 어려운 所信 發言이었다. 朴 前 所長과 함께 일했던 한 前職 憲裁 裁判官은 “檢事 出身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고 바르고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2017年 1月 末 隱退한 뒤에는 서울대 法學專門大學院 招聘敎授와 서울市立大 法學專門大學院 招聘敎授 等을 지냈고 只今은 東國大 法大 夕座敎授로 지내며 人權法 講義를 學部生에게 가르치고 있다.

● “司法의 政治化로 國民 信賴 低下되고 憲法시스템 毁損”

朴 前 所長은 지난해 9月 發刊한 著書 ‘憲法의 자리’에서 憲法裁判의 社會 統合 機能도 强調했다. 그는 “憲裁는 보다 積極的인 憲法解釋을 통해 우리 憲法이 具體的인 葛藤 解決의 手段이자 目標로 作動하도록, 段階的 價値判斷에 있어 憲法을 準據의 틀로 活用해야 한다”며 “同時에 政治와 權力機關에는 共同體가 나아가야 할 方向을 보다 具體的이고 積極的, 持續的으로 提示해 밝은 未來를 向한 社會 統合의 羅針盤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政治의 司法化와 司法의 政治化에 對한 問題意識도 담았다. 그는 “‘政治의 司法化’는 다시 司法을 特定 勢力의 政治的 立場을 代辯하거나 그의 숨겨진 政治 行爲로 전락시키는 ‘司法의 政治化’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그 結果 司法에 對한 國民 信賴가 低下되고, 憲法 시스템의 弱化와 毁損, 國家 共同體의 危機라는 惡循環이 發生할 可能性이 더욱 커지고 있다”라고 썼다.

特히 “政治의 過度한 司法化는 司法機關에 對한 所謂 코드 人事와 맞물릴 境遇 憲法裁判이나 司法이 憲法과 法治主義의 實現을 넘어 裁判官 個人 또는 그가 代表하는 政治的, 社會的 勢力의 特定 政治的 立場을 代辯하거나 追從하고자 하는 숨겨진 政治 行爲로 轉落할 危險性이나, 明白한 政治的 判斷은 아니라 하더라도 憲法精神과 政治的 意圖를 適當히 折衷·調停하는 妥協的 判決에 이르게 할 可能性을 갖는다”라고 코드 人事를 에둘러 批判하기도 했다. 只今 憲裁와 關聯된 私法의 政治化는 文在寅 政府에서 이념적 志向性이 같은 裁判官을 一方的으로 임명한 것과 無關치 않다.

特히 最近 더불어民主黨이 主導했던 이른바 ‘檢搜完剝’(檢察 搜査權 完全 剝奪) 立法에 對한 憲裁의 權限爭議審判 結果를 두고 ‘司法의 政治化’라는 指摘이 다시 나오고 있다. 憲裁는 國民의힘과 한동훈 法務部 長官이 請求한 權限爭議審判을 올해 3月 閣下 또는 棄却했는데 憲裁 判斷은 4 對 4로 克明하게 갈렸다. ‘우리法硏究會’의 創立 멤버인 柳 所長을 包含한 進步 性向 裁判官과 中道保守 性向 裁判官의 判斷이 엇갈리면서 文在寅 大統領이 임명한 이미선 裁判官이 決定權을 쥐게 됐다. 그의 決定에 따라 憲裁는 立法 過程이 國民의힘 議員들의 表決權을 侵害했다면서도 無效는 아니라고 判斷했다. 이렇다 보니 與黨에선 “憲裁가 아니라 政治裁判소 같다”는 날선 反應을 보였다.

尹錫悅 大統領은 올해 11月 退任하는 柳 所長의 後任을 包含해 任期 中 裁判官 3名에 對한 人事權을 行使할 豫定이고 이番 政府에서 憲裁 構成員이 모두 交替된다. 憲裁가 信賴를 回復하기 위해선 司法의 政治化에 對한 朴 前 所長의 指摘을 귀담아들을 必要가 있다.

● 夫人과 死別한 뒤 節에서 起居… ‘아우라’ 있는 法曹界 元老
篤實한 佛敎 信者인 그는 2009年 서울 瑞草區 아파트를 佛敎財團에 寄附한 뒤 當時 傳貰保證金 2億2000萬 원에 月貰 100萬 원을 내고 그 아파트에 그대로 살았다. 여기에는 佛子였던 夫人의 뜻이 反映됐다고 한다. 子女가 없는 그는 2019年 夫人과 死別한 뒤 서울 종로구의 한 절에서 起居하며 週末에만 瑞草區 아파트에서 지낸다고 한다. 공수래공수거다.

檢事 出身 A 辯護士는 “間或 大邱地檢長 時節 멤버들과 골프를 치시는데 그때 보니 가방이나 골프靴, 골프채 等이 正말 오래됐다”며 “하나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골프 가방을 하나 사드렸는데 如前히 안 쓰신다. 요즘 나오는 게 아무래도 華麗해서 比較的 점잖은 걸 사드렸는데 또 안 쓰시더라”고 傳했다.

또 다른 後輩 檢事는 “내가 檢察 先輩 中에 唯一하게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朴 前 所長이다. 通商 長官이나 總長을 한 사람도 時間이 지나면 얼굴이 달라진다”며 “하지만 朴 前 所長은 그 아우라가 過去나 現在나 如前하다. 그분은 한결같고 私利私慾이 없는 분이라서 늘 尊敬하게 되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主人이 되라’는 뜻의 數處酌酒(隨處作主)라는 말을 座右銘처럼 周邊에 자주 한다고 한다. 中國 唐나라 때 임재선사가 한 말씀이다. 그는 檢事 時節은 檢事로서, 憲裁 裁判官과 所長 時節에는 法官으로서의 役割을, 只今은 敎授로서 充實히 後學을 養成하며 만족해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自己 人生의 主人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法廷冒瀆 시리즈의 近間에는 政治와 法曹의 領域이 區分되지 않고 收斂하고 있다는 現象이 담겨 있습니다. 最初로 檢察總長 出身 大統領이 誕生했고, 國會議員 等 政治人의 主流 集團은 法曹人입니다. 로스쿨 導入 以後 法曹人의 數가 늘어나면서 政治와 法曹의 化學的 結合은 더욱 加速化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現象입니다.

問題는 政治의 司法化, 司法의 政治化가 深化되고 있다는 點입니다. 主要한 政治的 決定을 司法의 領域으로 미루는 일도 벌어지고, 그 過程에서 司法이 정치화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渦中에 朴 前 所長에 對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를 法廷冒瀆 [19話]의 主人公으로 쓰게 된 理由입니다.

글을 쓰기 前에 그를 直接 만나서절에 가보고 싶었지만 冊이 나온 뒤 한 番 인터뷰한 것을 빼곤 모두 言論과의 接觸을 避했다며 완곡히 拒絶하셨습니다. 本人을 내세우는 것도 世上에 近況을 傳하는 것도 꺼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大部分 法曹人들이 現職에서 떠난 뒤 開業해 前官禮遇를 받아 富를 蓄積하는 狀況과 달리 辯護士로 開業하지 않았습니다. 如前히 俗世와 距離를 두며 儉素하게 한결같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後輩 法曹人들로부터 尊敬받는 理由겠지요.

다음 [20話]는 與圈의 政治人을 다룰 豫定입니다. 修飾語가 많습니다. 言論人, 小說家, 野圈 出身 中道 性向의 重量感 있는 政治人입니다.



황형준 記者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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