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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바이든’ 꿈꾸는 ‘엉클 朴’… 사라지지 않는 老兵[황형준의 法廷冒瀆]|東亞日報

‘韓國의 바이든’ 꿈꾸는 ‘엉클 朴’… 사라지지 않는 老兵[황형준의 法廷冒瀆]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5月 18日 14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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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話]

2012년 5월 당시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 동아일보 DB
2012年 5月 當時 朴趾源 民主統合黨 非常對策委員長의 모습. 東亞日報 DB


“내가 아는 命理學者가 있는데 앞으로 7年間 運이 第一 좋다고 하더라. 元來 政治人이 苦難을 겪는 使嗾여야지 大成한다. 나는 監房도 한番 갔다 왔고(웃음). 1942年生의 時代가 온다.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日本 總理, 후진타오 中國 國家主席, 김정일 前 北韓 勞動黨 總祕書… 42年生 中에 國內에서 第一 有名한 李健熙 前 三星前者 會長은 죽었고 그다음 나다. 靑瓦臺에 잘 出入하고 있어라ㅎ”
- 取材 메모 中 -
2021年 4月 靑瓦臺 出入記者였던 筆者를 包含한 記者들과 私席에서 만난 朴趾源 當時 國家情報院長(以下 朴智元)은 이렇게 말했다. 4選 議員과 文化관광부 長官, 大統領祕書室長, 國精院長 等 大韓民國에서 ‘내로라’하는 자리는 다 했다. 그러면서도 大統領과 國務總理, 國會議長 等 끊임없이 權座를 志向하는 게 그다.

이를 두고 一角에선 “老慾(老慾)에 끝이 없다”는 非難과 함께 “그래도 그만큼 熱情的인 經驗과 智慧가 많은 元老가 없다”는 評價가 엇갈린다. 金大中 前 大統領(DJ)李 感歎할 程度로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함과 놀라운 政治的 瞬發力’ 때문에 好不好를 떠나 ‘대단한 政治人’이라고 評價받는 理由다. 그의 旺盛한 活動엔 權力慾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健康한지 모른다. 그에겐 ‘嫉妬는 나의 힘’이 아니라 ‘權力慾은 나의 힘’인 셈이다.

最近 그는 每週 10~12回의 放送 出演을 하며 懸案에 對해 言及하고 政府를 向해 쓴소리를 한다. 그러면서도 올 2~4月에 全國 16個 廣域自治團體를 訪問해 30餘 回 招請 講演을 했다. 그만큼 그의 政治評論을 듣고 싶어하고 그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非好感을 갖는 ‘안티’도 많다. 누리꾼은 그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한다’는 意味로 ‘박쥐원’이라는 別名을 붙이기도 하고, 老慾을 부린다고 非難하기도 한다.

그는 放送이나 講演에서 “제가/ 그/ 有~命한/ 朴智元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름부터 元來 熱河日記를 쓴 燕巖 朴趾源과 같아 韓國에서 義務敎育을 받은 사람이면 다 아는 이름이다. 게다가 그 亦是 言論과 SNS에 끊임없이 每日 登場하니 三尺童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17話]에 이어 노무현 政府 以後 그의 行跡으로 돌아가 보자.

● 對北送金 事件으로 拘束돼 懲役 3年 살아

2003년 6월 대북송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박지원 전 원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3年 6月 對北送金 疑惑 事件과 關聯해 拘束令狀이 發付된 直後 朴趾源 前 院長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特檢 事務室에서 서울拘置所로 向하고 있다. 東亞日報 DB

朴趾源이 檢察에 拘束돼 懲役 3年의 有罪 判決을 받는 契機가 된 ‘對北送金 疑惑’은 2002年 9月 國政感謝狀에서 처음 불거졌다. 한나라黨(現 國民의힘)에서 현대상선이 2000年 6月 南北頂上會談을 전후해 産業銀行에서 4900億 원, 當時 換率로 4億 달러를 緊急 貸出받아 현대아산을 통해 北韓에 넘겨줬다고 主張하면서다. 이듬해 1月 末 監査院은 ‘4000億 원 中 1760億 원은 현대 系列社 運營資金으로 使用됐고, 나머지 2240億 원은 北韓에 支援한 것으로 보인다’는 內容의 監査 結果를 發表했다.

波紋이 커지자 DJ도 退任을 앞둔 이듬해 2月 事實關係를 認定하며 “어떻게 하면 韓半島에서 戰爭을 막고 民族이 서로 平和와 繁榮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 國民이 安心하고 살면서 統一에의 希望을 일궈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忠情에서 行해진 것”이라며 “저는 이番 事態에 對한 責任을 지겠다”고 對國民 謝過를 했다.

結局 송두환 特別檢事팀은 6月 김대중 政府와 현대그룹이 2000年 4月 8日 北韓과 南北頂上會談 開催에 最終 合意하면서 政府와 현대가 各各 1億 달러, 4億 달러를 北韓에 支給하기로 約束했다는 事實을 把握해 이에 關與한 朴趾源을 職權濫用 및 南北交流協力法 違反 等의 嫌疑로 拘束 起訴했다.

그는 收監 中 綠內障 等 健康이 惡化돼 拘束執行停止와 刑執行停止를 反復하다 釋放됐고 2007年 2月 盧武鉉 大統領의 特別赦免 對象에 包含됐다.

● 黨 代表 1番, 非對委員長 3番, 院內代表 3番 記錄
재기는 順坦하지 않았다. 朴趾源은 DJ의 ‘政治的 故鄕’이자 自身이 高等學校를 나온 全南 木浦에서 民主黨 所屬으로 出馬하려 했지만 公薦審査委員會의 ‘禁錮 以上 刑 確定者 排除’ 原則에 따라 公薦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無所屬으로 出馬해 木浦市民의 評價를 받겠다”며 脫黨한 뒤 DJ의 夫人 이희호 女史의 支援 遊說와 동교동系의 全幅的인 支援을 받으며 當選됐다.

以後 再選 議員으로는 異例的으로 2010年 5月 민주당 院內代表로 選出됐다. 그는 이를 始作으로 2012年 民主黨 院內代表와 非常對策委員長을 지내는 等 議員 時節 동안 民主黨에서만 院內代表와 非常對策委員長을 2番씩, 2016年 안철수 議員이 創黨한 국민의당에서 院內代表와 非對委員長, 黨 代表까지 지내는 政治史의 新記錄을 세웠다.

國會 法制司法委員會에선 情報力과 專門性을 中心으로 頭角을 드러냈다. 2009年 7月 當時 檢察總長 候補者였던 천성관 氏와 스폰서 朴某 氏의 海外 골프 旅行, 千 氏 婦人의 免稅店 쇼핑 明細 等을 暴露하며 候補者 辭退에 決定的인 影響을 미쳤다. 이를 包含해 院內代表로 聽聞會를 指揮하면서 7名의 聽聞 對象者를 落馬시켜 ‘聽聞會 落馬 7冠王’으로 불리기도 했다.

汝矣島를 中心으로 活動하면서도 거의 每週 地域區인 全南 木浦를 訪問할 程度로 地域에도 功을 들였다. 金曜日 歸鄕해 地域區 業務를 보고 月曜日 새벽 서울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금귀월래(金歸月來)’라는 말을 流行시켰다. 그 結果 18~20代 總選까지 木浦에서 내리 3線에 成功했다.

하지만 좋은 評價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2年 ‘李海瓚 代表-朴趾源 院內代表’로 親盧(親盧武鉉) 勢力과 湖南 勢力이 結託했다는 ‘飴粕 談合’ 論難도 불러왔고 舊政治의 象徵으로 非難받기도 했다. 잦은 SNS와 放送에서 가끔 根據 없는 疑惑 提起나 말失手를 해서 口舌數에 오른 적도 적지 않다. 2014年 1月 當時 같은 黨 重鎭 議員의 批判이다.

“SNS에 글 올리기 좋아하는 X들은 먼저 생각을 안 하고 말이랑 行動이 앞서서 問題야. 너무 경망스러워.”
- 取材 메모 中 -

박지원 전 원장 측 제공
朴趾源 前 院長 側 提供

朴 前 院長은 DJ 精神을 기리고 國民들에게 繼續 알리는 걸 使命으로 생각하지만 一角에선 지나치게 DJ를 팔아 自己 政治를 하려 한다는 非難도 提起된다.

● 2015年 2·8 全黨大會 落馬 以後 脫黨-新黨 合流까지
그에게도 試鍊은 있었다. 2015年 2·8全黨大會에선 2012年 大選에서 落馬한 뒤 黨 代表 候補로 나선 文在寅 前 大統領에게 苦杯를 마셨다. 當初 노무현 政府 時節 對北送金 特檢法을 통과시키고 特別赦免이 미뤄지는 等의 過程에서 親盧·親文 勢力과는 멀어진 그였다. 다음은 그가 2014年 12月 한 이야기다.

“2年 前 文在寅 落選 直後 만났다. DJ의 길을 갈 거냐 이회창의 길을 갈 거냐 選擇해야 한다며 說明해줬다. DJ는 落選하고 政界 隱退를 宣言하고 英國으로 갔다. 하지만 支持者들은 DJ가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 DJ가 돌아오고 大統領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DJ는 結局 돌아와 大統領 候補가 됐지만 弱點을 補充하기 위해 保守右派人 김종필 前 總裁(JP)를 迎入해 大統領에 當選되지 않았느냐. 이회창의 길을 봐라. 大統領 選擧에 失敗하고 政界를 떠났다. 그러나 바로 復歸해서 손에 피를 묻히더라. 自己에게 大統領 候補를 讓步한 調馴 總裁를 쳐내고, 野黨에서 與黨으로 넘어온 이기택을 쳐내고 朴槿惠 當時 代表가 오겠다는 걸 쳐내버렸다. 피를 묻혀서 大統領 候補는 됐지만 大統領은 안 되더라. 그랬더니 그가 宏壯히 좋은 얘기라고 參考하겠다더니…”
- 取材 메모 中 -
大選 候補로서 政策 準備에 汨沒해야지 黨 代表로서 各種 論難에 휘말리면 안 되는 만큼 黨 代表로 나서는 게 적합하지 않다는 趣旨였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全黨大會에서 落馬한 뒤에도 文 前 大統領과 角을 세우던 그는 2015年 當時 새政治民主聯合(現 民主黨)에서 ‘親盧霸權主義’가 論難이 되며 안철수 議員이 國民宜當 創黨을 推進하자 2016年 1月 脫黨했다. 같은 해 3月 국민의당에 合流했고 4·13總選에서 國民의黨이 38席을 얻는 氣焰을 吐하며 朴趾源도 20代 總選에서 當選됐다. 當選 直後 그가 私席에서 했던 말이다.

“安 代表가 未來를 보는 眼目이 있다. 卓越하다. 그런 政治 指導者가 얼마나 있냐. 깜짝 놀랐다. IT 强國, 新知識을 얘기했던 김대중 大統領에 이은 眼目이다. 나도 統合論者였지만 結局 金한길 千正培 朴趾源이 틀리고 安哲秀가 맞았던 거 아니냐. 깔끔하게 認定하고 따라가야지.”
- 取材 메모 中 -
4月 總選 前에 민주당과 國民의黨이 野圈連帶와 候補 單一化 論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安 議員이 이에 同調하지 않은 德分에 國民의黨이 ‘綠色 突風’을 일으켰다는 뜻이었다. 以後 그는 國民宜當 院內代表로 推戴됐고 安 議員을 DJ級으로 모시며 킹메이커 役割에 專念한다.

● 安哲秀 大統領 만들기 銃대 멨지만… ‘文모닝’ 別名만 남아
2016년 12월 국민의당 원내대표 시절 박지원 전 원장. 동아일보 DB
2016年 12月 國民의黨 院內代表 時節 朴趾源 前 院長. 東亞日報 DB
그가 黨 初選 議員들에게 한 ‘十誡命’ 講義는 只今 봐도 政治人들이나 豫備 政治人들이 배울 點이 있다. 筆者가 썼던 記事다.

▶初選의 先生님 된 朴趾源 ‘깨알 講義’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60504/77925005/1

朴趾源은 第3黨의 院內代表로서 法案 處理 等의 캐스팅보트를 쥔 3黨의 存在感을 드러내며 國會의 中心에 섰고 安 議員이 國民의黨 總選 리베이트 事件으로 代表職에서 물러나자 非對委院長을 맡았다. 그해 8月 當時 國民宜當 6選 議員이었던 千正培 前 法務部 長官은 私席에서 이렇게 評價했다.

“朴智元 代表가 잘하고 계신다. 어떤 분은 몇百 年 만에 한 番 나올 분이라고 하던데…삼국지에 나오는 英雄들을 다 합친 것 같다.”
- 取材 메모 中 -
國政壟斷 事態가 터지고 朴槿惠 前 大統領 彈劾訴追案 處理 局面에서도 그는 “彈劾 列車는 出發했다” “개가 짖어도 ‘彈劾 列車’는 달린다” “법꾸라지 金淇春” 等 語錄을 내놓으며 政局의 中心에 섰다.

하지만 ‘政治 9段’인 그도 結局 틀렸다. 文 前 大統領 批判으로 하루를 始作해 ‘文모닝’이라는 別名도 얻었지만 漸次 安 議員에게 失望했고 2017年 5月 大選은 文 前 大統領의 勝利로 끝났다. 國民의 選擇은 安哲秀 候補는 勿論 朴趾源과 國民의黨이 아니었던 것이다.

● ‘winter is coming’ 2017年 大選 以後 찾아온 暗黑期… 國精院長 指名 反轉
2017年 5月 大選 以後는 試鍊의 季節이었다. 2017年 10月 安 議員이 當時 彈劾 事態를 契機로 갈라져 나온 保守 政黨인 劉承旼 前 議員의 바른政黨과 合黨을 推進하면서다. 結局 安 議員을 비롯한 統合派와 朴趾源을 包含한 湖南 議員이 訣別하면서 이들은 바른未來黨과 民主平和黨으로 分黨됐다.

單獨으로 院內交涉團體를 構成하기 위한 議席數(20席)가 모자랐던 民主平和黨은 正義黨과 共同交涉團體를 構成했지만 與野 關係에서 存在感을 보이지 못했다. 大選과 그 以後 湖南에서 文 前 大統領이 壓倒的인 支持를 받고 門 前 大統領이 DJ의 햇볕政策을 繼承한 南北 對話 雰圍氣를 造成하자 朴智元의 門 前 大統領에 對한 立場도 批判에서 支持로 旋回하게 됐다.

2018年 2月 民平黨이 創黨된 以後 朴趾源의 立地도 쪼그라들었다. 民平黨이 院內政黨이긴 했지만 議政活動에서 存在感을 보이지 못했고, 黨 代表였던 정동영 前 議員을 中心으로 한 主流와 非主流의 反目이 심해졌다. 結局 朴趾源을 包含한 光州·全南 議員 9名은 脫黨해 2020年 1月 代案新黨을 創黨하고 以後 民生黨으로 統合됐지만 2020年 4月 21代 總選에서 院內 進出에 失敗했다.

2020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장 임명장 수여식. 동아일보 DB
2020年 7月 靑瓦臺에서 열린 國精院長 任命狀 授與式. 東亞日報 DB
그도 全南 木浦에서 더불어民主黨 김원이 議員에게 敗北하면서 2008年 以後 12年 만에 自由人이 됐다. 勿論 그는 各種 放送에 出演 要請을 받으며 ‘過勞死 直前의 白手’였다. 汝矣島 周邊에선 總選에서 民主黨이 180席을 얻으며 壓倒的 支持를 받은 만큼 門 前 大統領이 朴趾源 等을 重用해 統合 人事를 하고 協治 內閣을 構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實際 文 前 大統領은 같은 해 6月 朴趾源을 國精院長에 內定하는 깜짝 人事를 發表했다. 그는 國內 政治에 介入하지 않고 國精院 改革에 힘을 쓰겠다고 所感을 밝혔다. 또 國會 人事聽聞會 書面 答辯書에서 文모닝 行步에 對해 ‘後悔나 反省을 하느냐’는 質疑에 朴 候補者는 “熾烈한 選擧 遊說 過程에서 나온 發言이었음을 諒解해달라”고 答했다.

그해 12月 私席에서 朴趾源이 한 이야기다.

“내가 呼價 丹齋(旦齋)야. 有名한 漢學者 先生님이 지어주셨어. 周易을 만든 住公(周公)을 中國 사람들이 尊敬해서 ‘單(旦)’字를 이름에 잘 안 쓰는데 나에게 그 單子를 지어줘. 住公이 文王에 이어서 武王度 엄청 잘 모셔서 中國을 이끌었다. 當時 다 住公이 武王을 치고 王이 될 거라 했는데 오히려 武王을 極盡히 모셨다.”
- 取材 메모 中 -
當時 이에 對해 DJ에 이어 文 前 大統領, 두 王을 모시는 것을 豫見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라고 答했다.

● “政治는 生物… 다음은 나(next is me)”

文 前 大統領이 朴趾源을 國精院長에 指名한 것은 그만큼 南北關係 改善에 對한 意志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朴趾源이 任命된 以後에도 狀況은 碌碌지 않았다. 이듬해 初부터 코로나19 危機가 찾아왔고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이 發生하면서 南北關係는 더욱 梗塞됐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前 美國 大統領이 再選에 成功하면 南北頂上會談이 再開될 수 있을 것으로 展望했지만 美國 大選은 조 바이든 大統領의 勝利로 끝났다.

朴趾源은 國精院 內部에서 女性 幹部를 重用했다. 2020年 8月 史上 最初로 女性 次長이 任用됐고 女性 最初 選任 局長도 輩出됐다. 政治介入 禁止와 對共 搜査權 移管을 骨子로 하는 國精院法 改正案을 任期 中에 通過시켰고 國精院의 사이버保安 機能과 痲藥 等 海外 連繫 犯罪 對應 能力도 强化했다.

口舌數도 如前했다. 그는 院長으로 在職하며 2021年 6月 創設 60周年을 契機로 ‘國家와 國民을 위한 한없는 忠誠과 獻身’으로 元勳을 바꾸고 院訓席을 交替했다. 그런데 院訓席에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敎授의 손글씨를 본뜬 ‘신영복體’가 쓰였다는 點이 論難이 됐다. 申 敎授는 過去 國家保安法 違反 嫌疑로 20年間 服役한 前歷 等이 있어 不適切하다는 批判이 나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等 SNS를 하루에도 몇 次例씩 直接 써온 그가 院長 就任 뒤에도 美國을 訪問해 自身의 動線을 露出해 論難이 됐다.

在職 當時 벌어진 西海 公務員 被殺 事件과 關聯해 事件 다음 날 國精院 職員들에게 關聯 諜報와 報告書를 削除하게 한 嫌疑 等으로 起訴돼 現在 裁判을 받고 있지만 그는 “그런 事實이 없다”고 反駁하고 있다.

2022年 5月 大選 以後 國精院長 任期를 마친 뒤에는 다시 放送 等에 出演하며 政治 懸案에 對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그해 12月 結局 復黨해 約 7年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와 李在明 代表를 中心으로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자주 하는 말처럼 ‘政治는 生物’이다. 朴趾源이 앞으로 어떤 經路를 거쳐 汝矣島 政治 現場에 復歸할지 아무도 모른다. 민주당 非常對策委員長으로 推戴되거나 2024年 總選에서 地域區였던 全南 木浦나 故鄕인 全南 海南·莞島·進度에 出馬할 可能性도 있고 總選에서 不出馬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最終 目標는 ‘엉클 兆’라는 親近한 別名이 있는, 同甲내기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일 것이다. ‘다음은 나야(next is me)’라고 英語로 말하는 그를 보면 ‘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는 맥아더 將軍의 말이 생각난다. 勿論 그의 ‘안티’들은 “제발 TV 放送 等 視野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할 테니 그냥 채널을 돌리는 게 사라지길 기다리기보다는 賢明할 것이다.



朴趾源 前 院長은 술자리에서 乾杯를 할 때 現職 大統領을 붙여 ‘○○○ 大統領을 위하여’를 많이 외칩니다. 朴槿惠 文在寅 前 大統領부터 ‘尹錫悅 大統領을 위하여’는 勿論 國民의黨 時節엔 安哲秀를 위하여까지 들어봤습니다. 그의 政治엔 基本的으로 나라 걱정과 忠誠心이 깔려 있습니다. 勿論 DJ 逝去 以後엔 그의 忠誠心도 누구를 向했는지 오락가락하긴 했지요.

한 讀者분께서 朴 前 院長의 政治觀(觀)에 對해 물어보셨습니다. 그는 過去에 “政治는 곱하기의 藝術, 綜合 藝術이다. 政治가 제 役割만 해도 經濟 社會 文化는 잘 돌아가고 政治가 0이면 나머지가 아무리 잘해도 0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政治는 남의 不幸이 나의 幸福으로 오지 않는다. 타 糖이 잘못하면 結局 政治權 全般으로 問題다”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認識이 그를 政治人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7話]의 댓글에 많은 누리꾼이 ‘酸素 같은 男子’를 O₂價 아닌 tomb(무덤)으로 解釋해주셨더군요. 正말 대단한, 大韓民國의 底力입니다. 韓國 政治에 山所인지 煉炭가스인지 判斷하는 것은 個人의 몫입니다.

앞서 書頭에 썼던 命理學者가 2021年에 7年間 朴 前 院長의 運이 좋다고 했으니 다음 大選까진 運이 좋을까요? 그분이 ‘건진法師’級인지는 다음 大選까지 지켜볼 일입니다.

다음 [19話]의 主人公을 누구로 할지는 未定입니다. 애初에 念頭에 뒀던 法曹界 元老가 登場하길 願하지 않고 있어 說得 中입니다.



황형준 記者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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