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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살던 나를 世上으로 내보내줘”|동아일보

“그림자로 살던 나를 世上으로 내보내줘”

  • 東亞日報
  • 入力 2020年 3月 5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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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年을 準備합니다 / 내 삶 속 東亞日報]
<2> 不法滯留 ‘그림자 아이’ 멍에 벗은 페버”

‘그림자 아이’에서 벗어난 페버 씨가 현재
재학 중인 광주의 한 대학 근처 카페에서 동아일보를 읽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그림자 아이’에서 벗어난 페버 氏가 現在 在學 中인 光州의 한 大學 近處 카페에서 동아일보를 읽고 있다. 光州=박영철 記者 skyblue@donga.com
“이제 ‘眞짜 韓國人’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194cm 長身의 黑人 靑年에게 사람들은 大槪 英語로 말을 건다. 하지만 그는 韓國에서 나고 자란 韓國人이다. 삶이 무너질 危機를 맞은 것은 2017年 4月. 열일곱 少年은 한 番도 가본 적 없는 나이지리아로 追放 命令을 받고 外國人保護所에 拘禁돼 삶을 抛棄하고 싶다는 衝動에 시달렸다. 2008年 나이지리아 出身 아버지가 滯留 期間을 延長받지 못해 强制 出國당한 뒤 남은 家族들도 未登錄(不法滯留) 狀態가 됐던 탓이다.

이 事緣이 동아일보에 報道되자(2017년 5月 17日子 A1·8面 ‘그림자 아이들’) 市民 1650名이 釋放을 要求하는 歎願書를 냈고, 페버 氏(20)는 그해 6月 劇的으로 釋放됐다. 이듬해 法院이 追放 命令 取消 判決을 내렸다. 現在 그는 大學 在學 中이다. 最近 만난 페버 氏는 “동아일보에서 저를 한 名의 ‘사람’으로 보고 世上에 알려준 德分”이라며 感謝의 뜻을 傳했다.





▼ “偏見없이 듣고 끈질기게 써준 記事… 난 삶의 機會를 얻었다”
본보는 2017년 5월 부모의 미등록(불법체류) 신분 상태를 물려받아 병원이나 학교에
갈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인 ‘그림자 아이들’의 사연을 다뤘다.
本報는 2017年 5月 父母의 未登錄(不法滯留) 身分 狀態를 물려받아 病院이나 學校에 갈 權利를 제대로 保障받지 못하는 未登錄 移住兒童인 ‘그림자 아이들’의 事緣을 다뤘다.
“辯護士도 거의 抛棄한 狀態였고 저도 다 내려놨었는데….”

最近 光州의 한 大學 캠퍼스에서 만난 페버 氏는 就業準備生으로서 熾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8年 가을 專門大 機械科에 入學한 그는 올여름 卒業을 앞두고 있다. 就業을 하고 誠實히 5年을 보낸 뒤 歸化 申請 資格을 얻는 것이 그의 1次 目標다.

○ 學業에 아르바이트까지… “힘들지만 監査”


지난해 11月 페버 氏는 産業技術 資格證을 땄다. 前 學生이 參與하는 校內 캡스톤디자인大會(工業系列 學生들이 作品을 設計, 製作하는 敎育 프로그램)에서 그가 이끈 팀은 銀賞을 받았다. 學點도 놓치지 않았다. ‘韓國 文學’ 같은 敎養 科目부터 現場 實務를 다루는 科目까지 모두 滿點을 받았다.

工夫 外에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一週日에 사흘 午前에는 短距離 마라톤 準備를, 이틀은 便宜店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한다. 0時부터 午前 8時까지 일하면 月 40萬 원을 번다. 엄마는 “學期 中에는 工夫에 專念하라”고 勸하지만 家族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그는 “週末마다 家族들이 있는 全南 順天에 가는데 當日 流通期間이 끝나는 빵이나 三角김밥을 동생들 間食으로 챙겨갈 수 있어서 一石二鳥”라며 웃었다.

勿論 힘들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父母의 未登錄者 身分을 물려받아 大學 入學이나 正式 아르바이트는 꿈꿀 수 없던 時節, 남몰래 工場에서 午前 7時 30分부터 午後 10時 30分까지 15時間씩 일하던 時節, 그렇게 일하다 들켜서 갇혀 있던 過去를 생각하면 只今은 每 瞬間이 奇跡 같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다. “時間 내서 英語 工夫도 더 해보려고요. 사람들이 英語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實際로 잘 못하니 憫惘해서….”

○ “제 뒤에 있는 2萬 名에게 좋은 先例 되고파”

本報 報道 以後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學窓 時節 페버 氏는 큰 키에 運動과 韓國語까지 잘하는 멋진 親舊로 또래에게 人氣가 많았다. 그런데 記事가 나가며 그가 未登錄 身分인 事實이 알려지자 避하는 親舊들이 생겼다. ‘犯法者’나 ‘불쌍한 親舊’로 여긴 것이다. 페버 氏는 “속상하기도 했지만 제가 어떤 모습이든 옆자리를 지켜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으니 괜찮다”며 當時의 아픔을 털어냈다.

外國人保護所에서 나온 뒤 難民 비자 代身 大學에 가서 學生 비자를 받는 길을 選擇한 것도 이런 理由에서다. 工夫해서 就業하고 結婚도 하고, 불쌍하거나 危險한 사람이 아닌 ‘平凡한 韓國人’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다.

첫 段階로 페버 氏는 鎔接 分野 就業을 準備하고 있다. 人力 不足을 겪고 있지만 製造業에 必須的인 職務여서 더 좋단다. 社會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成長해 自身에게 쏟아지는 誤解나 偏見을 조금 더 지우고 싶어서다.

自身만을 위한 꿈은 아니다. 아직 페버 氏를 除外한 家族들은 正式 身分을 獲得하지 못했다. 동생들에게 좋은 標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그림자 아이들’도 重要한 理由다. 페버 氏는 “동아일보 記事를 읽고서야 저랑 비슷한 아이들이 2萬 名이나 있다는 걸 알았다”며 “첫 事例인 제가 잘해야 나중에 다른 ‘그림자 아이들’李 合法的으로 살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겉모습만으로 判斷하지 않는 社會 되기를”


페버 氏는 言論에 자주 露出되는 게 두려워 放送社 出演을 拒絶한 적이 있다. 幸여나 튀어 보일까여서다. 하지만 “첫 ‘그림자 아이들’ 技士부터 大學 入學까지 한 段階씩 狀況이 나아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줘서 놀랐다”며 “끈질기게 써주신 德分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인터뷰에 應했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에 바라는 點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미 제 人生과 저랑 비슷한 아이들의 삶에 希望을 주셨는데 또…” 하고 머뭇거렸다. 再次 묻자 “많이 變했다고는 하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아직도 겉모습에 쏟아지는 視線을 느낀다. 韓國이 좀 더 겉모습이나 集團으로 判斷하지 않는 社會가 되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림자 아이들’ 記事처럼 앞으로도 集團에 對한 偏見이나 推測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言論社가 돼 달라”고 바람을 傳했다.

光州=김예윤 記者 yeah@donga.com


#동아일보 #그림자 아이들 #不法滯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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