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뭉크가 그린 不安과 외로움의 房[令監 한 스푼]|東亞日報

뭉크가 그린 不安과 외로움의 房[令監 한 스푼]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4月 17日 23時 39分


코멘트

1893年 作品 ‘病室의 죽음’

에드바르 뭉크의 누나 요한네 소피 뭉크가 결핵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을 그린 작품 ‘병실의 죽음’. 가운데 창백한 얼굴의 
옆면만 보이는 인물이 뭉크이고 나머지는 뭉크의 가족들이다. 노르웨이국립미술관 소장.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에드바르 뭉크의 누나 요한네 소피 뭉크가 結核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 瞬間을 그린 作品 ‘病室의 죽음’. 가운데 蒼白한 얼굴의 옆面만 보이는 人物이 뭉크이고 나머지는 뭉크의 家族들이다. 노르웨이國立美術館 所長. 김민 記者 kimmin@donga.com
김민 문화부 기자
김민 文化部 記者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房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엔 사람이 7名이나 되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텅 빈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림 속 人物 中 1名은 正面을 보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고개를 떨구고 있죠. 무엇보다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쳐다보지 않는 것이 印象的입니다. 손을 잡거나 기댄 사람도 없이 모두가 섬처럼 뚝 떨어진 모습.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외로움에 잠겨 있는 이 作品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1893年 그린 ‘病室의 죽음’입니다.

누나 소피의 죽음

이 그림은 아픈 사람이 머무는 곳인 ‘病室’을 描寫하고 있습니다. 病室의 主人은 뭉크보다 한 살 많은 누나 요한네 소피(1862∼1877)인데요. 寢臺에 누워있어야 할 그女는 마지막 瞬間 답답함을 呼訴하며 椅子로 옮겨달라고 한 뒤 世上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卽, 寢臺 옆 椅子에 앉아 있는 거의 보이지 않는 人物이 소피입니다.

所避를 마주 보고 두 손을 모아 祈禱를 하는 사람은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입니다. 그리고 椅子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인 女性은 이들의 어머니가 아닌 李某 카렌인데요. 어머니가 그림에 없는 것은, 所避가 世上을 떠나기 9年 前 같은 病으로 그女도 死亡했기 때문입니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를 모두 앗아간 것은 結核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림 속에서 뭉크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 中央에서 조금 왼쪽에 텅 빈 얼굴로 正面을 凝視하고 있는 女子와 寢臺 사이 납작하게 끼어 잘 보이지 않는 옆모습의 人物이 바로 뭉크입니다. 正面을 보는 女子와 椅子에 앉아 고개를 숙인 女子는 모두 소피의 姊妹입니다. 또 그림 왼쪽 壁에 손을 기댄 男子는 亦是 뭉크의 男동생 안드레아스. 卽 이 그림은 소피의 죽음을 마주하는 온 家族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不安과 외로움의 房

이 그림에서 뭉크가 어떻게 不安과 외로움이라는 感情을 表現했는지 仔細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作品의 主題는 소피의 죽음이지만, 텅 빈 寢臺와 소피의 뒷모습만 그려졌을 뿐 죽음에 對한 直接的인 描寫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싱그러운 草綠色이 아니라 시퍼런 멍이 든 것 같은 綠色, 검은色을 그림의 主된 色彩로 使用하면서 죽음과 疾病의 느낌을 드러내고 있죠. 게다가 마룻바닥과 壁이 만나는 線은 그림의 中央보다 더 위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線을 基準으로 寢臺와 椅子가 空中에 떠 있는 것처럼, 或은 아래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不安感을 자아냅니다.

여기다 그림 中央에서 唯一하게 앞을 보고 있는 女子의 얼굴은 不安感을 極端으로 치닫게 합니다.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쳐다보고 있지 않은 듯한 空虛한 눈빛. 뭉크의 代表作인 ‘絶叫’에서처럼 今方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얼굴의 女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對한 슬픔을 넘어 恐怖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모두가 避할 수 없는 結末인 죽음을 마음 깊이 느낀 것처럼 말이죠. 뭉크는 이 그림에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외로움을 赤裸裸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두렵고 不安한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요?

죽음은 나를 지킨 검은 天使

뭉크가 소피의 죽음을 描寫한 것은 이 그림이 처음은 아닙니다. 22歲였던 1885年 처음으로 소피의 죽음을 ‘아픈 아이(The Sick Child)’라는 作品에서 그린 뒤 뭉크는 64歲가 된 1927年까지 40餘 年間 ‘아픈 아이’를 여러 作品으로 그렸습니다. 公開된 作品으로는 油畫가 6點, 版畫家 8點에 達하고 드로잉까지 合하면 더 자주 穿鑿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소피의 죽음을 괴로워하며 그것을 克服하지 못하고 繼續 곱씹은 걸까요? 그림을 보면 뭉크는 單純히 感情에 사로잡혀 있다기보다는 그때 느꼈던 悽絶한 외로움과 不安, 두려움을 表現하는 方式을 끊임없이 探究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흐르는 눈물처럼 물감을 세로線으로 그어 내리거나, 空虛한 얼굴을 描寫하거나, 쏟아질 것 같은 房을 그리면서 말이죠.

卽, 아픈 記憶을 外面하는 것이 아니라 學者처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分析하고, 이를 통해 人間의 本質에 接近하려고 努力한 것입니다. 文學家는 그런 探究의 結果를 詩와 小說 같은 文學 作品으로, 音樂家는 音樂으로 만들어 내듯 뭉크는 그것을 視角 言語로 풀어 놓기를 試圖했습니다. 이러한 깊은 探究가 ‘絶叫’와 ‘마돈나’ 같은 世紀의 名作을 낳는 土臺가 되었음을 疑心할 수 없습니다.

뭉크는 “어릴 때부터 내 搖籃은 아픔, 狂氣, 죽음이라는 검은 天使가 지키고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검은’이라는 말은 두렵고 不安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天使’는 나를 지켜주는 存在라는 말입니다. 삶에서 겪는 苦痛과 傷處, 외로움은 나를 試鍊에 들게 하지만 結局에는 스스로를 直面하게 해주는 人生의 守護者라는 意味로 읽을 수 있죠. 살다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아픔을 끈질기게 파고들고 克服하면, 自身만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는 슬픔을 담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令監 한 스푼’은 每週 木曜日 午前 7時에 發送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購讀 申請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文化部 記者 kimmin@donga.com


#뭉크 #病室의 죽음 #不安 #외로움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