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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民의 權力을 獨占하지 말라”… 陶片追放制의 警告狀[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東亞日報

“市民의 權力을 獨占하지 말라”… 陶片追放制의 警告狀[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1月 11日 23時 33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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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이의 민주정을 확립한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기원전 570년경∼507년경)의 흉상.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아테나이의 民主政을 確立한 政治가 클레이스테네스(紀元前 570年頃∼507年頃)의 胸像.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古代 그리스의 民主政은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正體에 特別히 寄與한 사람들이 있다. 클레이스테네스가 代表的이다. 아테나이 名門家 出身으로 亡命과 歸鄕을 反復했다는 事實 말고는 그에 對해 仔細히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의 ‘歷史’에 따르면 그는 ‘民主政을 確立’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評價도 똑같다. ‘民主正義 아버지’가 한 일은 무엇일까? ‘클레이스테네스 改革’과 關聯해서 자주 擧論되는 두 가지를 살펴보자. 하나는 不足 再編이고, 다른 하나는 陶片追放制 導入이다.》







政治가 클레이스테네스의 改革


아테나이의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는 특정 부족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부족을 소규모 데모스로 나눠 재편했고, 독재자를 경계하기 위해 도편추방제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Hoplite Association 홈페이지
아테나이의 政治가 클레이스테네스는 特定 部族의 權力 獨占을 막기 위해 不足을 小規模 데모스로 나눠 再編했고, 獨裁者를 警戒하기 위해 陶片追放制度 導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寫眞 出處 Hoplite Association 홈페이지
클레이스테네스는 貴族들의 다툼과 그것이 낳는 深刻한 結果를 잘 아는 人物이었다. 權力 鬪爭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點에서는 그도 여느 貴族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에게는 남다른 點이 있었다. 그는 自己 自身이나 家門의 權力이 아니라 市民 大衆의 權力을 追求했다. 部族의 解體와 再編은 이 目的을 實現하기 위한 改革의 始作이었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傳統과 血緣으로 엮인 不足을 再編하는 일이 어떻게 可能했을까? 클레이스테네스의 卓越함은 “사람의 머리로 想像하기 힘든 人爲的 體制”(E. M. Walker)를 考案한 데 있다. 그는 아테나이를 包含한 아티카 地方 全域을 海岸, 內陸, 都市로 나누고, 이 세 地域을 各各 10個로 쪼갰다. 그리고 이렇게 생겨난 30個 區域(小部族)을 셋씩 묶어 하나의 ‘不足’을 만들었다. 忠淸道, 慶尙道, 全羅道를 各各 10個로 나눈 뒤 各 道의 1番 地域들, 2番 地域들 等을 함께 묶어 ‘不足 1’, ‘不足 2’ 等으로 만든 셈이다. 30個의 小部族을 더 큰 單位의 不足으로 묶었을 뿐만 아니라 더 작은 規模의 行政 單位인 ‘데모스’로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全體 아티카 地域에 걸쳐 130個 以上의 데모스가 생겨났다.

權力다툼 部族들 解體하고 再編


클레이스테네스는 怜悧했다. 나누기와 더하기를 통해 傳統的 部族의 勢力을 解體하고 새로운 正體 ‘데모크라티아’를 確立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改革 以後 아테나이에서 ‘市民’은 ‘데모스의 構成員’과 같은 뜻이 되었다. 모든 市民의 이름에는 所屬 데모스가 明示되었고 이것이 그의 正體性을 規定했다. 또 모든 市民은 데모스의 一員으로서, 全體 市民이 參與하는 民會, 市民 代表가 모이는 協議會, 市民들이 主導하는 陪審員 裁判에 參與할 權利를 누렸다. ‘데모스(demos)’의 ‘힘(kratos)’이 主導하는 正體 ‘데모크라티아’에서 過去의 血緣關係는 더 以上 힘을 쓰기 어려웠다. 血緣 中心의 ‘不足’은 알맹이 없이 이름만 남았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의 시민이 도자기 파편에 추방하고픈 사람의 이름을 적는 모습. 사진 출처 Hoplite Association 홈페이지
아테나이의 市民이 陶瓷器 破片에 追放하고픈 사람의 이름을 적는 모습. 寫眞 出處 Hoplite Association 홈페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아테나이의 正體’에 따르면 陶片追放制 亦是 클레이스테네스가 改革의 一環으로 導入한 制度였다. 古代 그리스의 귀양 或은 彈劾 制度에 該當한다. 다만 市民들이 對象者를 決定한다는 點이나 有罪 判決 없이도 追放이 可能했다는 點이 다르다. 그것은 ‘웃자란 줄기를 솎아내는’ 民會의 節次였다. 民會의 同意에 따라 6000名 以上이 參與하면 投票가 成事되었고, 가장 많은 票를 얻은 사람은 勢力家나 煽動家의 危險性이 있는 人物로 指目되어 追放되었다. 財産은 沒收하지 않았으니 10年 동안 ‘조용히 나가 살라’는 뜻이었다.

陶片追放制에 對한 評價는 엇갈린다. 이 制度는 政敵 除去의 手段으로 誤用될 可能性이 높았고 實際 追放者의 數도 적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記錄에 따르면 陶片追放이 이루어진 것은 制度가 導入된 지 20年 뒤의 일이며, 480年부터 65年 동안 13名이 追放을 當했다. 하지만 그런 數字만으로 陶片追放制의 效果를 判斷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보이는 數字 裏面의 보이지 않는 效果를 無視하기 때문이다. 權力 掌握을 꿈꾸는 者들에게는 追放 制度의 存在 自體가 威脅이 아니었을까? 陶片追放制는 市民의 權力을 탐하지 말라는 沈默의 警告로서 民主政에 寄與했던 것이 아닐까?

煽動 危險 人物 이름 적어 追放


우리는 歷史 속에서 空虛한 以上에 그치거나 도리어 逆風을 맞은 政治 改革의 事例를 많이 본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 改革은 成功했고 헤로도토스는 그 效果를 이렇게 要約한다. ‘이제 아테나異人들은 强盛해졌다. 二世고리아(isegoria)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 面에서 훌륭함을 보여준다. 아테나異人들도 僭主의 支配를 받을 때는 戰爭에서 그들의 이웃 나라 中 어느 곳과 比較해서도 더 나을 게 없었지만, 僭主들로부터 벗어나자 斷然 先頭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隸屬 狀態에서 主人을 위해 일할 때는 게으름을 피웠지만, 自由를 얻은 뒤에는 各自 自己 自身을 위해서 成果를 이루려 積極 努力했다는 것을 보여준다.’(‘역사’ 5卷 78張)

이세고리아는 이消奴미아(isonomia)와 더불어 아테나이의 直接 民主政을 代表하는 理念이다. 이消奴미아는 同等한 權利, 平等을 뜻한다. 民主政에서 모든 市民은 法 앞에서 平等한 同僚였다. 最高 權力者 ‘아르콘’도 첫 番째 市民이었을 뿐이다. 이세고리아는 그런 平等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權利, 同等한 發言權을 가리킨다. 當代의 市民들에게 重要한 것은 政治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權利’가 아니라 政治에 參與해 ‘말할 權利’였던 셈이다. 立法, 司法, 行政 等 거의 모든 分野에서 決定에 參與해 發言하고 自身의 意見을 貫徹할 權利가 없다면 法 앞의 平等이 무슨 意味가 있을까? 아테나이의 民主政에서 이세고리아와 이消奴迷兒가 데모크라티아와 同義語처럼 쓰였던 것은 그런 理由 때문이다.

紀元前 507年 클레이스테네스의 改革을 통해 確立된 民主政은 젊고 활기찬 正體였다. 이런 活力이 없었다면, 아테나이는 490年과 480年, 두 次例에 걸친 페르시아의 侵掠에 맞서 그리스를 지킨 先鋒將 役割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戰爭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本質的 差異가 있었다. 페르시아 軍隊는 엄청난 規模였지만 被征服民을 包含한 多民族 聯合軍이었고 ‘隸屬 狀態에서’ 王을 위해 싸우는 軍隊였다. 反面 아테나이 軍隊는 規模가 작아도 ‘自己 自身을 위해서’ 싸우는 軍隊였다.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民主政은 自身에게 有益한 成果를 위해서 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成果를 지키기 위해서 함께 싸우게 했다.

‘政治는 以上이 아니라 現實’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以上이 없는 現實 適應의 政治는 침팬지 世界에도 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政治’는 그런 ‘침팬지 政治’(F. de Waal)의 水準을 넘어서는 데서 始作한다. 2024年에는 李箱과 力量을 갖춘 ‘클레이스테네스들’의 登場을, 그리고 그들을 가려내는 市民의 判斷 力量을 期待해 본다.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아테나 #民主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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