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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征服王’ 알렉산드로스 위에 ‘統治王’ 키루스[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東亞日報

‘征服王’ 알렉산드로스 위에 ‘統治王’ 키루스[조대호 神話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思想]

  • 東亞日報
  • 入力 2024年 2月 8日 23時 33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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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 출간된 ‘키루스의 교육’ 영역본. 아테나이 군인이자 역사가 크세노폰이 기원전 370년경 쓴 키루스의 일대기로, 리더십의 교본으로 여겨지는 고전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803年 出刊된 ‘키루스의 敎育’ 英譯本. 아테나이 軍人이자 歷史가 크세노폰이 紀元前 370年頃 쓴 키루스의 一代記로, 리더십의 敎本으로 여겨지는 古典이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클레이스테네스가 그리스 民主正義 基礎를 놓았다면(1월 12日 칼럼 參照), 키루스(紀元前 600年 頃∼530年)는 페르시아 帝國을 建設했다. 하지만 키루스는 ‘帝國의 建設者’일 뿐만 아니라 ‘理想的 統治者’로서도 後代에 이름을 남겼다. 甚至於 페르시아와 敵對關係에 있던 그리스인들에게도 그랬다. 헤로도토스는 그의 삶을 帝國의 歷史와 함께 記錄했고 크세노폰은 그의 一代記를 엮은 ‘키루스의 敎育’을 썼으며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이 冊을 읽고 征服의 꿈을 키웠다.》





外祖父 威脅 避해 살아남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17세기 키루스의 흉상.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獨逸 함부르크에 있는 17世紀 키루스의 胸像.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키루스는 紀元前 600年, 페르시아人의 나라 ‘안샨’에서 태어났다. 이 작은 王國은 그 무렵 强大國 메디아에 隸屬되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 캄비세스는 메디아의 公主와 婚姻함으로써 駙馬國의 地位를 認定받았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키루스의 幼年期는 順坦치 않았다. 外孫子의 손에 메디아 王國이 征服되는 것을 꿈에 본 外할아버지는 갓난아이를 데려와, 臣下에게 殺害를 命했다. 臣下가 아이를 소치기에게 넘겨주어 살려두지 않았다면 페르시아의 歷史는 完全히 달라졌을 것이다. 10年이 지나 眞實이 밝혀진 뒤에야 外祖父는 所致機 夫婦의 아들로 자란 孫子를 받아들여 親父母에게 돌려보냈다.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王位에 오른 키루스에게 메디아와의 對決은 避할 수 없는 運命이었다. 自由를 얻기 위한 戰爭이었기 때문이다. 키루스는 이 戰爭에서 勝利한 뒤 外祖父를 살려준다. 키루스의 勝利는 正말 꿈같은 일이었지만, 나중에 그가 이룬 功績에 비하면 그것은 작은 始作에 不過했다. 메디아에 이어 周邊의 强大國들이 하나둘 키루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當代 最高의 强國 바빌론 征服과 關聯된 逸話는 ‘舊約聖書’에도 記錄되었다. 키루스는 바빌론 王 느部갓네살에 依해 捕虜로 끌려간 유대人들의 歸鄕을 許諾했고 예루살렘 聖殿을 다시 짓게 했다. 그가 ‘舊約聖書’에서 야훼의 ‘牧者’, ‘기름 부음 받은 者’라고 불린 것은 그 때문이다.

페르시아 帝國 세워 包容 政治


18∼19세기 활동한 프랑스 화가 장샤를 니케즈 페랭의 ‘키루스와 아스티아게스’. 아스티아게스는 외손자 키루스가 자신의 
메디아 왕국을 멸망시키는 꿈을 꾸고 아이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넘겨받은 소치기가 죽은 아들을 넘겨주고 대신 그를 아들처럼
 키운다. 살아남은 키루스는 실제 메디아를 정복했는데, 외조부도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선정을 펼친다. 그는 지금까지도 이상적 
통치자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8∼19世紀 活動한 프랑스 畫家 장샤를 니케즈 페랭의 ‘키루스와 아스티亞게스’. 아스티亞게스는 外孫子 키루스가 自身의 메디아 王國을 멸망시키는 꿈을 꾸고 아이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넘겨받은 소치기가 죽은 아들을 넘겨주고 代身 그를 아들처럼 키운다. 살아남은 키루스는 實際 메디아를 征服했는데, 外祖父도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善政을 펼친다. 그는 只今까지도 理想的 統治者의 典型으로 評價받는다. 寫眞 出處 위키피디아
키루스가 세운 페르시아 帝國(아카이메니다이 帝國)은 200年이 지난 뒤, 그의 成功을 부러워했던 알렉산드로스에 依해 滅亡했다. 征服이 되풀이되었지만, 方向은 西쪽에서 東쪽으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더 넓은 땅을 征服한 알렉산드로스度 한 가지 點에서는 키루스를 넘어설 수 없었다. 키루스는 帝國의 建設者日 뿐만 아니라 統治者이기도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말 위의 征服者’였을 뿐이다. 너무 일찍 죽은 탓에 그는 ‘말에서 내린 政治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키루스는 새로운 制度들을 통해 廣大한 帝國을 管理했다. 各 征服地에 總督을 派遣한 것, 被征服民의 文化를 尊重하는 包容 政策 等이 그의 功勞로 알려져 있다. 이런 統治 制度는 그가 세운 帝國이 200年 以上 存續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고 歷史家들은 評價한다. 하지만 아테네 出身의 將軍이자 歷史가 크세노폰에 따르면 키루스의 統治力은 그 水準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聖君 中의 聖君’으로 描寫된다.

“여러 달이 걸리는 먼 곳까지 가서 敵을 膺懲할 수 있는 사람이 이 페르시아 王 말고 누가 있는가? 帝國을 무너뜨리고 服屬시킨 百姓들로부터 죽을 때까지 ‘아버지’로 불린 사람이 키루스 말고 누가 있는가? 이 모든 일이 可能했던 것은 키루스라는 이름이 掠奪者가 아니라 恩人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그는 自身의 臣民을 마치 自身의 子息처럼 貴하게 여기며 보살폈고, 臣民들은 키루스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恭敬했다.”(‘키루스의 敎育’·박문재 옮김)

믿기 어렵다. 敵對國의 將軍에게서 나올 수 있는 讚辭일까? 하지만 根據 없는 虛構는 아닐 것이다. 舊約聖書의 記錄도 키루스의 行跡을 讚揚하고 그에게 정복당한 바빌론人들조차 그를 暴君의 壓制를 끝낸 ‘救援者’라고 불렀다고 하니까. 이 모든 일이 어떻게 可能했는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帝王 敎育


크세노폰(紀元前 430年∼紀元前 355年)의 ‘키루스의 敎育’은 그 對答을 찾는 冊이다. 이 冊의 첫 卷은 아버지와 아들의 對話로 始作되는데, 印象的인 대목이 많다. 戰場으로 함께 나가는 길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 敵을 凌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方法은 무엇인가요?” “아들아, 쉬운 問題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點에서 敵을 凌駕하려고 하는 사람은 詐欺꾼과 도둑과 强盜처럼 아주 狡猾하고 靈惡하게 欺瞞하고 속내를 숨기며 종잡을 수 없게 行動하는 데서 敵을 凌駕해야 한다.” “맙소사, 아버지께서는 只今 제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들아, 너는 싸울 때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만, 平素에는 世上에서 가장 正義롭고 가장 法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場面은 알렉산드로스 大王의 逸話들과 重疊되어 興味를 끈다.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度 子息 敎育에 神經을 많이 썼다. 當代의 最高 碩學 아리스토텔레스를 家庭敎師로 招聘했을 程度이니까.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敎育에는 高級 私敎育이 메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었다.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한 집안에 머물 수 없는 두 마리 虎狼이였다. ‘征服할 땅을 아버지가 남겨두지 않으면 어쩌지?’ 名譽心이 剛한 아들에게는 이것이 걱정거리였다. 軍事的 力量이 뛰어난 아버지는 아들에게 ‘戰爭의 神’ 같았지만 그 以上은 아니었다. 그는 女子關係가 複雜하고 술을 너무 마셨다. 젊은 後失意 아들이 王位를 물려받을 거라는 所聞이 나돌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葛藤이 暴發했다. 술자리에서 아버지를 侮辱한 아들은 追放을 當했고, 그가 歸還하고 얼마 뒤 아버지는 암살당했다. 키루스와 캄비세스의 對話 같은 것은 想像할 수조차 없는 關係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는 眞實이지만, 키루스의 이야기는 ‘小說’이다. 크세노폰은 征服者의 이야기를 敎育에 對한 이야기로 바꿔 놓았다. 하지만 小說에도 眞實이 있다. 아주 質樸한 眞實. 帝王의 力量도 그 뿌리는 敎育에 있다는 생각, 世代 間의 經驗 共有가 모든 敎育의 出發點이라는 생각이다. 帝王 敎育만 그럴까? 敎育에 王道가 없다면, 市民 個個人이 ‘自己 삶의 帝王’李 되는 데 必要한 敎育도 똑같지 않을까?

‘새로운 技術의 開發과 習得’을 敎育의 全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技術들과 急速한 社會 變動이 招來하는 世代 間의 距離를 좁히는 것’ 또한 敎育의 重要 課題라는 事實은 자주 無視된다. 20, 30臺가 키오스크 앞에서 唐慌하는 老人을 理解 못 하고 60, 70代가 젊은 世代의 未來에 無關心한 社會라면, 거기서 어떤 個人의 力量 開發이, 어떤 共同體가, 未來를 위한 어떤 共同의 努力이 可能할까? ‘애플 帝國’의 建設者 스티브 잡스에게도 平生의 信條는 아버지의 낡은 가르침이 아니었나? “훌륭한 木手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欌籠 뒤쪽에 低級한 나무를 쓰지 않아.”



조대호 연세대 哲學科 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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