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희|記者 購讀|東亞日報
김재희

김재희 記者

東亞日報 DX本部

購讀 27

推薦

엔터테인먼트 業界를 取材하는 放送·映畫 擔當 記者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記事 안에 담겠습니다.

jetti@donga.com

取材分野

2024-03-28~2024-04-27
文化 一般 55%
人物/CEO 7%
産業 3%
檢察-法院判決 3%
패션 3%
音樂 3%
社會一般 3%
人事一般 3%
기타 20%
  • 佛 베르베르 새 小說 ‘行星’ 30日 國內 出刊

    프랑스 小說家 베르나르 베르베르(61·寫眞)의 新作 長篇小說 ‘行星 1·2’(열린책들)가 30日 國內 出刊된다. 冊은 2018年 나온 ‘고양이 1·2’, 지난해 出刊된 ‘文明 1·2’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戰爭과 테러, 感染病으로 荒廢해진 世上이 背景이다. 主人公인 고양이 바스테트는 쓰레기와 쥐들로 덮여 있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 美國 뉴욕으로 向한다. 그러나 뉴욕도 알 카포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쥐 群團이 이미 占領한 狀態. 4萬 名의 人間은 쥐를 被害 200餘 個의 高層빌딩에 숨어 산다. 行星에서는 앞선 두 小說보다 人間의 比重이 크게 늘었다. 人間 集團을 代表하는 102個의 總會에서는 쥐를 없애고자 核爆彈을 使用하자는 强勁派가 得勢한다. 바스테트는 103番째 代表 資格을 要求하지만 人間들은 고양이의 意見이라며 無視한다. 쥐 軍團의 威脅, 核爆彈을 쏘려는 人間들 사이에서 바스테트는 行星의 運命을 바꾸기 위해 孤軍奮鬪한다. 1991年 첫 長篇小說 ‘개미’로 國內에 이름을 알린 베르베르는 ‘新’ ‘派피용’ ‘相對的이며 絶對的인 知識의 百科事典’ ‘記憶 1·2’ 等 베스트셀러를 냈다. 그의 作品은 35個 言語로 飜譯돼 世界에서 2300萬 部 以上 販賣됐다. 國內에서는 지난해 末 基準으로 모두 1250萬 部 넘게 販賣됐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4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안돼요?’ 代身 ‘돼요?’라고 물어보세요”

    머플러가 예쁘다는 世緣의 稱讚에 이웃住民 喜欄은 ‘줄까요?’가 아니라 ‘가質래요?’라 묻는다. ‘가質래요?’라는 말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便하게 한다고 느낀 世緣은 喜欄이 他人을 配慮하는 對話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直感하고 好感을 갖는다. 18日 出刊된 ‘表現의 感覺’(애플북스)은 微妙한 言語의 差異가 불러오는 關係 變化를 그린 長篇 小說이다. 言語에 敏感한 女性 디자이너 世緣이 感覺的이고 正確한 말을 使用하는 會社 代表에게 끌리고 그와 戀人이 되는 過程을 담았다.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一年’과 ‘漸漸’,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旅行’을 비롯해 金宗瑞의 ‘아름다운 拘束’, 김동규의 ‘10月의 어느 멋진 날에’ 歌詞를 쓴 作詞가 出身 한경혜 作家의 作品이다. 21日 電話로 만난 한 作家는 “예전엔 노래 歌詞가 멜로디 없이 그 自體로 읽는 재미가 있고 詩처럼 朗誦도 可能했는데 只今은 귀에 꽂히는 게 重要해지다 보니 한글 破壞가 深刻해졌다”며 “比喩와 描寫의 失踪, 言語 破壞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車에 的確한 單語 使用에 對한 小說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冊은 日常에서 習慣的으로 使用하는 말에 質問을 던진다. 世緣은 意見을 말할 때 ‘∼것 같아요’라고 表現하는 게 싫다. 確信이 없고 自尊感이 낮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認識한 것. ‘몹시’나 ‘무척’, ‘相當히’와 같은 다양한 府使가 있는데도 否定的 狀況을 强調하는 ‘너무’만 使用하는 言語 習慣에도 不便함을 느낀다. “예전에 노래 錄音을 하던 中이었어요. 한 後輩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正말 예쁜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後輩가 ‘그 部分 들어보면 안 돼요?’라고 否定漁撈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 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否定語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前 肯定語를 쓰려고 해요. 作家는 世上에 말을 거는 職業인데 旣往이면 肯定的으로 말 거는 게 좋잖아요.” ‘表現의 感覺’은 小小한 表現을 맛깔 나게 살리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읽는 재미도 크다. 그는 2004年 短篇小說 ‘飛行’으로 登壇한 後 小說家의 길을 걷고 있다. 작사가日 땐 音樂을 言語로 解釋한 글을 써야 했지만 只今은 願하는 素材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讀書는 第2의 創作行爲’라 생각하는 그는 文學像 受賞作을 빠짐없이 읽고, 讀書를 할 때 메모紙를 옆에 두고 生硬한 單語, 感情의 動搖를 일으킨 文章을 적는다. “正確한 文章을 驅使하면서도 재밌는 小說을 쓰고 싶어요. 맞춤法이 틀려도 讀者들은 冊을 읽고, 팬들은 앨범을 사요. 전 그게 싫어요. 作詞家나 作家는 言語를 道具로 쓰는 사람이기에 그 道具만큼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的確하게 表現하면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4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95歲 MC 宋海, ‘最高齡 音樂競演 進行者’ 기네스 登載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最長壽 MC 송해 氏(95·寫眞)가 ‘最高齡 音樂 競演 프로그램 進行者’로 기네스 世界記錄에 登載됐다. 松 氏는 1988年 全國노래자랑 MC를 맡은 後 올해까지 34年間 進行者로 活躍하고 있다. 그는 23日 “긴 歲月 全國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視聽者들의 德分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KBS에 따르면 宋 氏의 기네스 世界記錄 登載는 4月 末 確定됐지만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餘波로 英國 기네스協會 業務가 遲延돼 發表가 늦어졌다. 앞서 올해 1月 KBS는 “最高齡 MC 송해의 業績을 公認받기 위해 기네스 世界記錄에 挑戰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因해 스튜디오 撮影分과 過去 放送 畵面을 엮어 放送을 이어온 전국노래자랑은 6月 全南 榮光을 始作으로 野外 撮影을 再開한다. 다만 松 氏는 最近 健康이 좋지 않아 病院 입·退院을 反復하면서 全國노래자랑 下車 與否를 苦悶하고 있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4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줄까요?’ 代身 ‘가質래요?’…작사가이자 小說家 한경혜가 풀어낸 言語의 微妙함

    “난 마음에 안들거든요. 가質래요?” 머플러가 예쁘다는 世緣의 稱讚에 이웃住民 喜欄은 이렇게 묻는다. ‘줄까요?’가 아닌 ‘가質래요?’라 묻는 희란에게 世緣은 單番에 好感을 갖는다. ‘가質래요?’라는 말은 願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便하게 하는 微妙한 뉘앙스를 띈다고 생각하는 世緣은 喜欄이 他人을 配慮하는 對話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느낀 것이다. 反面 契約職인 世緣을 卑下하는 發言을 한 것에 對해 ‘내가 失手했나본데 未安하다’고 謝過한 職場上司와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본데’라는 表現으로 曖昧하게 謝過를 하는 그의 無責任함과 利己心이 每事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8日 出刊된 ‘表現의 感覺’(애플북스)은 微妙한 言語의 差異가 불러오는 關係 變化를 그린다. 21日 電話로 만난 作詞가 出身의 한경혜 作家는 “예전엔 노래歌詞가 멜로디 없이도 自立이 되고, 朗誦이 됐는데 只今은 귀에 꽂히는 게 重要해지다보니 한글破壞가 深刻해졌다. 比喩와 描寫의 失踪, 言語破壞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車에 的確한 單語 使用에 對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 作家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一年’과 ‘漸漸’,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旅行’, 金宗瑞의 ‘아름다운 拘束’ 等 수많은 히트曲을 쓴 作詞家다. 冊은 日常에서 習慣的으로 使用하는 말들에 質問을 던진다. 世緣은 누군가 自身의 생각이나 意見을 물었을 때 謙遜해보이기 위해 ‘~것 같아요’라고 表現하는 習慣이 싫다. 確信이 없고 自尊感이 낮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認識한 것. “代表님 너무 내 스타일인데”라고 말을 했다가도, ‘몹시’나 ‘무척’, ‘相當히’와 같은 다양한 府使가 있는데도 否定的 狀況을 强調하는 ‘너무’만 使用하는 言語習慣에 不便함을 느낀다. “예전에 노래 錄音을 하던 中이었어요. 한 後輩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正말 예쁜 거에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後輩는 ‘그 部分 들어보면 안돼요?’라고 否定漁撈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否定語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前 平素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肯定語를 最大限 많이 쓰려고 해요. 作家는 世上에 말을 거는 일인데 旣往이면 좀 더 肯定的으로 말을 걸면 좋잖아요.” 微妙한 言語 使用의 差異는 사랑에 불을 지피祈禱, 關係의 龜裂을 가져오기도 한다. 世緣은 모든 狀況에 的確한 單語를 使用하는 會社 代表 僧巾에게 魅力을 느낀다. 僧巾度 自身의 意見을 正確하지만 禮儀바르게 表現하는 世緣이 좋아진다. 두 사람은 햇살과 햇빛, 햇볕, 또는 性格과 性質, 性情 等 日常에서 混用해 쓰던 單語의 微細한 差異를 의식하고, 이를 제대로 使用하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的確한 單語 使用은 作詞家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重要한 資質이라 생각하는 한 作家의 價値가 反映됐다. “歌詞는 짧은 文章 안에 起承轉結을 담아야 하기에 單語 하나하나가 宏壯히 重要해요. 그래서인지 歌詞를 쓰다보면 색다르고 낯선 單語, 숨어있는 예쁜 單語 하나쯤은 쓰고 싶은 欲心이 나요. ‘華奢한 微笑’보다는 ‘해사한 微笑’라는 表現이 더 예쁠 때가 있죠. ‘아름다운 拘束’이라는 노래 題目을 지을 땐 ‘拘束’이란 單語를 일부러 썼어요. 語感이 안 좋다는 意見이 있었는데 文章의 呼吸이 어긋나는 瞬間 意味가 擴張이 되는 效果가 있다고 說得했죠.” 그는 2004年 短篇小說 ‘飛行’으로 登壇하면서 小說家의 길을 걷고 있다. 作詞家로 活動할 때는 于先 作詞 依賴가 들어와야 하고, 音樂을 言語로 解釋한 글을 써야 한다는 制約이 있었지만 只今은 願하는 素材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幸福하다. ‘讀書는 第2의 創作行爲’라 생각하는 그는 李箱文學賞, 젊은작가상 等 受賞作을 빠짐없이 읽고, 讀書를 할 때면 메모紙를 옆에 두고 生硬한 單語나, 自身에게 感情의 動搖를 일으킨 文章을 적는다. “正確한 文章을 驅使하면서도 재밌는 小說을 쓰고 싶어요. 맞춤法이 틀리고 表現이 틀려도 讀者들은 冊을 읽고, 팬들은 앨범을 사요. 전 그게 싫어요. 作詞家와 作家는 言語를 道具로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 道具만큼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的確하게 表現하면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3
    • 좋아요
    • 코멘트
  • “隱退後 第2의 삶… 趣味-積城 미리 찾고, 꾸준히 準備하라”

    停年退職, 整理解雇, 不渡…. 平生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瞬間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0年부터 高齡層(65歲 以上)에 進入한 베이비붐 世代(1955∼1963年生)는 ‘第2의 삶’을 始作하는 段階에 접어들었다. 20日 出刊된 ‘隱退하고 즐거운 일을 始作했다’(동녘라이프)는 退職 後 새 일을 찾아 나선 베이비붐 世代 9名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中 삼성물산에서 停年退職한 後 와인 칼럼니스트 兼 와인바 社長이 된 김욱성 氏(65)와 한진중공업 필리핀 支社長에서 靑少年相談師가 된 문두식 氏(69), 中小企業에 다니다 都市農夫가 된 김재광 氏(68)를 20日 인터뷰했다. 김욱성 氏는 趣味로 즐기던 와인을 두 番째 職業으로 삼았다. 新羅호텔 海外營業·마케팅팀長으로 일한 그는 行事 케이터링을 進行하며 와인을 本格的으로 工夫하기 始作했다. 社內 와인 同好會를 만들고 退勤 後 學院을 다니며 프랑스語能力試驗(DELF) 資格證을 땄다. 2012年 停年退職 後 2015年 58歲에 國際와인機構와 몽펠리에대학이 運營하는 와인 碩士課程에 合格해 프랑스 파리로 留學을 떠났다. 그 後 16個月 동안 25個國 400餘 個의 와이너리를 다녔다. 그는 歸國 後 2018年 서울 성동구의 와인 賣場에 副社長으로 就業해 와인 販賣와 敎育을 擔當한 뒤 지난해 洞네(京畿 성남시 분당구)에 와인바를 열었다. 딸의 勸誘로 2019年 始作한 ‘金博士의 와인랩’ 유튜브 채널은 購讀者가 2萬 名이 넘는다. 그는 “趣味가 業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 1時間씩 10年 동안은 工夫해야 한다. 내가 興味를 느끼는 主題를 잡아 集中的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진중공업에 入社해 한진도시가스 代表理事를 지낸 문두식 氏는 學部 때 心理學을 專攻한 것을 살려 靑少年相談師가 됐다. 會社에서 1年 後 退職하라는 通報를 받자 그는 心理學 專攻者가 支援할 수 있는 靑少年相談師 資格證 取得에 挑戰했다. 1年間 每日 6時間씩 圖書館에서 工夫했다. 靑少年相談師 3級을 따고 京畿 議政府市 靑少年 相談福祉센터에 就業해 2011年부터 約 300名의 靑少年을 相談했다. 靑少年相談師 2級 資格證과 가톨릭대 兒童心理相談學 碩士學位도 땄다. 그는 “旣存 職業이나 專攻 分野의 資格證을 取得하는 건 基本이다. 高齡에도 일하려면 더 높은 級水의 資格證을 따거나, 關聯 分野 大學院에서 專門性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染料를 만드는 中小企業에 다니던 김재광 氏는 2008年 隱退 後 歸農했다. 2002年 親舊의 提案으로 全國歸農運動本部 生態歸農學校를 다니며 作物 栽培法과 땅 賃貸 方法을 배웠다. 首都圈에서 여러 사람들과 텃밭을 일구는 ‘共同體 農事’가 있다는 걸 알게 돼 都市農夫의 길을 擇했다. 現在 京畿 高陽市 一山에서 50餘 名과 함께 3966m² 規模의 땅을 일구고 있다. 住民들이 親環境農業을 體驗하는 고양시 프로그램 ‘幸福나눔텃밭’에서 講師로 일하며 作物 栽培法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最近 首都圈에 ‘都市農業네트워크’가 活性化돼 都市에서도 손쉽게 農事를 始作할 수 있다”며 “텃밭活動가 같은 歸農敎育自家 되고 싶다면 生態歸農學校나 都市農夫學校의 敎育課程을 履修하고 都市農業管理師 資格證을 따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隱退를 앞두고 促迫하게 就業 準備를 하기보다는 趣味나 適性을 발전시킬 方法을 미리 찾고, 꾸준히 時間을 들여 準備해야 한다”고 當付했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3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隱退 後 趣味·專攻 살려…베이비붐 世代, ‘第2의 業’ 찾다

    停年退職, 갑작스런 會社의 退社 通報, 事業의 不渡…. 平生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瞬間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0年을 起點으로 高齡層(65歲 以上)에 進入하기 始作한 베이비붐 世代(1955~1963年)는 젊음을 바쳤던 일을 뒤로하고 ‘第2의 삶’을 開拓해야 하는 課題와 마주했다. 20日 出刊된 ‘隱退하고 즐거운 일을 始作했다’(동녘라이프)는 退職 後 새로운 職業을 찾은 아홉 名의 베이비붐 世代의 이야기를 담았다. 삼성물산에서 停年退職해 와인칼럼니스트 兼 와인바 社長이 된 김욱성 氏(65), 한진중공업 필리핀 支社長에서 靑少年相談가가 된 문두식 氏(69), 中小企業에 다니다 歸農해 都市農夫가 된 김재광 氏(68)를 20日 電話로 인터뷰했다. 김욱성 氏는 趣味로 즐겼던 와인이 두 番째 職業이 됐다. 三星物産에 入社해 新羅호텔 海外營業·마케팅 팀長을 맡은 그는 國家 行事 케이터링 等을 進行하며 本格的으로 와인을 工夫했다. 社內 와인同好會를 만들었고, 退勤 後 프랑스語學원을 다니면서 프랑스語能力試驗(DELF) 資格證도 取得했다. 그가 읽은 와인關聯 書籍은 30卷이 넘는다. 2012年 停年退職한 後 2015年 國際와인機構와 몽펠리에대학에서 運營하는 와인 碩士課程에 合格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의 나이 58歲 때 일이었다. 16個月 동안 25個國 400個 以上의 와이너리를 돌았다. 그는 “20餘 名의 同期들은 프랑스에서 와인을 家業으로 이어받는 집안의 20代 中盤 子弟들이었다. 韓國에서 온 還甲의 아저씨는 나 혼자였다”고 回想했다. 留學生活을 통해 專門性을 쌓은 그는 歸國 後 2018年 서울 성동구 ‘서울숲 와인아울렛’에서 副社長으로 일하면서 顧客에게 와인을 販賣하고, 正規 와인敎育 프로그램을 進行했다. 지난해에는 딸, 사위와 힘을 합쳐 洞네에 와인바를 열었다. 딸의 勸誘로 始作한 ‘金博士의 와인랩’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購讀者 2萬 名을 넘었다. 그는 趣味가 業이 되기 위해 ‘1萬 時間의 法則’이 重要하다고 말했다. 金 氏는 “趣味가 未來의 業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에 1時間씩 10年 동안은 제대로 工夫해야 한다. 나에게 興味 있는 主題를 잘 잡아서 集中的으로 파고들어야 하고, 相當한 時間과 努力 投資, 專門的인 敎育도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한진중공업에 入社해 한진도시가스 代表理事까지 지낸 문두식 氏는 心理學 專攻을 살려 靑少年 相談師로 變身했다. 職場人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갔지만, 한진중공업 필리핀 支社長 時節 會社로부터 갑작스럽게 “1年 뒤 나가달라”는 通報를 받았다. 그는 會社에서 준 1年의 猶豫期間 동안 退職 後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中 女性家族部가 靑少年相談師資格證을 發給하는 것을 알게 됐다. 大學時節 心理學科에서 相談關聯 工夫를 했고, 心理學 專攻이 資格證 試驗 支援 要件이었기에 自身에게 맞는 領域이라 判斷했다. 資格證을 딴 그는 議政府市 靑少年 相談福祉센터 相談師로 就業해 2011年부터 現在까지 約 300名의 靑少年들을 相談했다. 58歲의 나이에 두 番째로 갖게 된 職業이지만 實力을 硏磨하는데 疏忽하지 않았다. 그는 靑少年들과 더 잘 疏通하고자 2015年 카톨릭대 相談心理大學院 兒童心理相談學과 碩士課程을 밟았다. 그는 “모든 精誠을 다했는데 親舊가 相談을 안받겠다며 拒否할 때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苦悶이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心理學 知識으로 限界가 있다고 느껴 大學院에 進學했다”고 말했다. 專門性을 쌓은 그는 靑少年相談師 面接對備 受驗서도 出刊했다. 染料를 만드는 中小企業에 다니던 김재광 氏는 2008年 隱退 後 歸農했다. 職業뿐만 아니라 自身이 꿈꾸던 삶의 方式까지 考慮한 選擇이다. 隱退하기 6年 前인 2002年 親舊의 提案으로 全國歸農運動本部의 生態歸農學校를 다니며 作物栽培法, 땅 賃貸方法 等 歸農에 對한 基本的인 內容들을 學習했다. 以後 歸村을 하지 않더라도 首都圈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는 ‘共同體 農事’가 可能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都市農夫의 길을 擇했다. 現在 一山에서 55名의 사람들과 1200坪 規模의 땅을 함께 일구고 있다. 地自體가 텃밭을 造成해 住民들에게 都心 속 親環境農業을 體驗할 수 있도록 하는 ‘幸福나눔텃밭’에서 都市텃밭活動家로도 일하고 있다. 每週 텃밭을 오는 住民들을 對象으로 作物栽培方法을 가르친다. 그에게 歸農은 第2의 業이기 前에 삶 그 自體다. 그는 自身이 ‘作物農事’가 아니라 ‘사람農事’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直接 키운 健康한 먹거리를 나와 家族들이 함께 먹는다. 또 共同體 農事에서 함께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과 疏通을 한다”며 “마늘, 감자, 고구마 等 作物 별 共同體도 活性化돼 있고, 首都圈에서도 ‘都市農業네트워크’가 活性化돼있어 歸農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日常에서 小小하게 農事를 始作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2
    • 좋아요
    • 코멘트
  • [冊의 香氣]다시 마주친 ‘傳染病과 戰爭의 時代’ 風景

    日本 近代化가 나카무라 쓰네(1887∼1924)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는 幼年 時節 家族들을 次例로 잃어 스무 살에 혼자가 됐다. 父母는 病으로 죽었고, 러일戰爭에 參戰한 큰兄은 戰死했으며 둘째 兄은 事故로 世上을 떠났다. 全 世界에 퍼진 結核은 나카무라를 平生 괴롭혔다. 結核으로 37歲에 눈을 감은 그는 죽기 한 해 前 代表作 ‘頭蓋骨을 든 自畫像’(1923年)을 그렸다. 微熱로 두 볼이 上氣된 채 아무런 抵抗이나 憤怒의 氣色 없이 頭蓋骨을 든 男子. 죽음을 淡淡히 기다리는 이 男性은 나카무라 自身이었다. 韓國 國籍의 도쿄經濟大 名譽敎授인 著者는 앞서 ‘나의 西洋美術 巡禮’와 ‘나의 朝鮮美術 巡禮’를 썼다. 이番엔 自身이 나고 자란 日本, 그中 日本 近代美術에 눈을 돌렸다. 나카무라를 비롯해 冊에 紹介된 세키네 쇼지(1899∼1919) 等 美術家 7名은 1920∼1945年 集中的으로 活動했다. 當時 스페인毒感과 結核으로 수많은 李가 목숨을 잃었고, 日本은 中日戰爭과 太平洋戰爭을 벌이고 第2次 世界大戰에 뛰어들었다. 疫病과 戰爭의 時期에 삶과 죽음을 苦悶하고, 戰爭의 한복판에서 政治 宣傳의 下手人을 自處했던 藝術家들 사이에서 普遍的인 美의 價値를 위해 싸운 ‘異端兒’ 7人을 紹介한다. 冊을 貫通하는 主題는 죽음이다. 나카무라가 죽기 한 해 前 頭蓋骨을 든 自畫像을 그렸듯, 疫病에 시달리다 夭折한 近代 畫家들은 일찍이 죽음을 豫感하고 이를 作品으로 表出했다. 스무 살에 結核과 스페인毒感으로 죽은 세키네는 10代 때부터 죽음에 穿鑿했다. 19歲에 그린 ‘信仰의 슬픔’(1918年)은 그가 公衆便所 앞에서 본 女性 行列의 幻視(幻視)를 그린 그림이다. 女性들은 밝은色의 원피스 차림이지만 葬禮式場에서 죽음을 哀悼하는 이들의 行列을 聯想케 하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孤獨과 쓸쓸함 때문에 아무에게라도 빌고 싶은 氣分이 들 때면, 저런 女人들이 三三五五 짝을 지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많은 藝術家들이 戰意를 高揚하는 作品을 그리던 時流에 抵抗하며 藝術家의 良心을 지킨 畫家들도 紹介한다. 아이미쓰(1907∼1946)가 代表的이다. 日本이 國家總動員法을 制定해 侵略 戰爭에 突入하기 直前이었던 1938年, 그는 正面을 直視하는 눈알을 描寫한 ‘눈이 있는 風景’을 그렸다. 著者는 이 作品에 對해 “荒野의 한가운데 正面을 쏘아보는, 붉게 充血된 巨大한 눈알은 앞으로 닥칠 일에 對한 暗示와 같다”고 說明한다. 軍部에 協力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同僚 畫家들에게 아이미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戰爭畫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李 2年 넘게 持續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侵攻해 無辜한 市民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冊의 背景인 1920∼1945年은 스페인毒感과 結核이라는 疫病, 그리고 世界大戰의 暗雲이 드리워진 時代였다. 傳染病과 戰爭, 暴力이 持續되는 只今과 그 當時가 너무나 닮아 있기에 100年이 넘은 作品들이 던지는 생각할 距離는 더 强烈하게 다가온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21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저녁床 차려놓고 기다리던 顧客도, 宅配 사라졌다며 疑心하던 顧客도”

    ‘갑자기 衝擊으로 내 車가 甚하게 요동치고 左右로 흔들렸다. 내가 事故를 내다니…. 精神이 아찔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顧客과의 約束을 지키려고 또 너무 躁急해졌나 보다.’ 1998年부터 宅配 일을 始作한 26年 次 宅配技士 서영길 氏(58)는 宅配箱子를 運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每日 메모帳에 적었다. 豫定된 配送 時間을 지키려다 交通事故가 날 뻔한 瞬間, 이틀에 한 番꼴로 物件을 注文했던 住持 스님이 每番 박카스 두 個를 손에 쥐여주던 記憶, 生굴은 傷할 수 있어 바로 傳達해야 하는데 顧客과 連絡이 닿지 않아 難堪했던 날…. ‘큰딸’(35)은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冊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徐 氏가 말하고 큰딸이 글로 적은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어떤冊)李 10日 出刊됐다. 8日 두 著者를 電話로 만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默默히 맡은 바 所任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큰딸) 冊은 徐 氏가 25年間 宅配 일을 하며 겪은 喜怒哀樂이 녹아 있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顧客과의 摩擦은 宅配가 紛失됐다는 顧客 不滿. 物件이 모이는 터미널에 閉鎖回路(CC)TV가 設置돼 있고, 配送트럭 앞 블랙박스도 常時 錄畫 中이다. 記錄들이 있어도 警察에 申告하는 ‘進上 顧客’도 있다. 徐 氏는 “내가 物件을 들고 建物에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警察이 確認해 顧客에게 說明해도 그럴 理 없다며 우길 땐 難堪했다”고 말했다. “내가 匣인데 왜 宅配技士가 甲 노릇을 하죠?”라며 막말을 하는 顧客을 만나면 서글프다. 새벽에 술에 醉해 우는 顧客의 電話를 받았을 땐 唐慌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2000年 初 나이가 지긋했던 한 女性 顧客은 “配送이 午後 7時에서 9時 사이”라고 電話로 說明했음에도 6時 50分부터 “왜 안 오느냐”고 電話로 재촉했다. 到着해 보니 오기로 한 時間에 맞춰 저녁床을 準備해 놓았던 것. 配送을 갈 때마다 顧客은 6時 50分에 저녁밥을 차리고 그를 기다렸다. “그분들의 따뜻함에 理由가 없었어요. 但只 他人의 마음을 헤아리신 거죠. 저도 되돌려받기 위한 親切이 아니라 되돌려주기 위한 親切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서 氏) “아주머니가 새우饅頭를 늘 싸주셨어요. 中學生 때 먹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요.”(큰딸) 그는 月曜日부터 土曜日까지 午前 7時 터미널로 出勤해 配達할 物件을 車에 실은 뒤 午後 8時까지 配送을 다닌다. 하루 13時間 가까이 數十 名의 顧客과 만나는 그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버틴다”고 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 擴散으로 非對面 配送이 되면서 門 앞에 間食 箱子를 두는 顧客, ‘빨리 配送해주셔서 感謝하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는 顧客까지…. “내 일이 힘든 肉體勞動으로만 縮約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宅配技士를 向한 偏見이나 處遇도 바뀔 거라 믿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요?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내가 甲’ 막말에 서글퍼도…난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갑자기 衝擊으로 내 車가 甚하게 요동치고 左右로 흔들렸다. 내가 事故를 내다니…. 精神이 아찔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顧客과의 約束을 지키려고 또 너무 躁急해졌나보다.’ 1998年부터 宅配 일을 始作한 25年次 宅配技士 서영길 氏(58)는 宅配箱子를 運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每日 메모帳에 적었다. 豫定된 配送時間을 지키려다 交通事故가 날 뻔한 瞬間, 이틀에 한 番 꼴로 物件을 注文했던 住持스님이 每番 박카스 두 個를 손에 쥐어주던 記憶, 굴은 傷할 수 있어 바로 傳達해야 하는데 顧客과 連絡이 닿지 않아 難堪했던 날…. ‘큰딸’(35)은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冊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徐 氏가 말하고 큰딸이 글로 적은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어떤冊)李 10日 出刊됐다. 8日 두 著者를 電話로 만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默默히 맡은 바 所任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큰딸) 冊은 徐 氏가 25年間 宅配 일을 하며 겪은 喜怒哀樂이 녹아있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顧客과의 摩擦은 宅配가 紛失됐다는 顧客 不滿. 物件이 모이는 터미널에 閉鎖回路(CC)TV가 設置돼있고, 配送트럭 앞 블랙박스도 常時 錄畫中이다. 記錄들이 있어도 警察에 申告하는 ‘眞相顧客’도 있다. 徐 氏는 “내가 物件을 들고 建物에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警察이 確認해 顧客에게 說明해도 그럴 理 없다며 우길 땐 難堪했다”고 말했다. “내가 匣인데 왜 宅配技士가 甲 노릇을 하죠?”라며 막말을 하는 顧客을 만나면 서글프다. 새벽에 술에 醉해 우는 顧客의 電話를 받았을 땐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2000年 初 나이가 지긋했던 한 女性 顧客은 그에게 따뜻한 밥床을 차려줬다. “配送이 午後 7時에서 9時 사이”라고 電話로 說明했음에도 6時50分부터 “왜 안 오느냐”고 電話로 재촉했다. 到着해보니 오기로 한 時間에 맞춰 저녁床을 準備해놓았던 것. 配送을 갈 때마다 顧客은 6時50分에 저녁밥을 차리고 그를 기다렸다. “그 분들의 따뜻함에 理由가 없었어요. 但只 他人의 마음을 헤아리신 거죠. 저도 되돌려 받기 위한 親切이 아니라 되돌려주기 위한 親切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서 氏) “아주머니가 새우饅頭를 늘 싸주셨어요. 中學生 때 먹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요”(큰딸) 그는 月曜日부터 土曜日까지 午前 7時 터미널로 出勤해 配達할 物件을 車에 실은 뒤 午後 8時까지 配送을 다닌다. 하루 13時間 가까이 數十 名의 顧客과 만나는 그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버틴다.” 코로나 19로 非對面 配送이 되면서 門 앞에 間食箱子를 두는 顧客, ‘빨리 配送해주셔서 感謝하다’며 커피쿠폰을 보내는 顧客…. “내 일이 힘든 肉體勞動으로만 縮約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宅配技士를 向한 偏見이나 處遇도 바뀔 거라 믿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요?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12
    • 좋아요
    • 코멘트
  • 宋鎭禹 先生 誕生 132周年 追慕式

    古下 宋鎭禹 先生(1890∼1945) 誕生 132周年 및 逝去 77周忌 追慕式이 6日 서울 銅雀區 국립서울현충원 獨立有功者墓域에서 열렸다. 追慕式은 財團法人 古下 宋鎭禹 先生 記念事業會(理事長 金昌植)가 主催하고 國家報勳處와 光復會, 동아일보가 後援했다. 古下 先生의 孫子인 송상현 前 國際刑事裁判所腸(서울대 名譽敎授), 용교順 서울南部報勳支廳腸, 조강환 東亞日報 同友會 名譽會長 等 100餘 名이 參席했다. 양준석 國民大 敎養臺 敎授는 ‘民族과 現實에 기초한 古下 宋鎭禹의 國際情勢 認識’을 主題로 追慕 講演을 했다. 古下 先生은 1916年 中央學校 校長을 지냈고 國內外 民族指導者들과 함께 3·1運動을 主導했다. 東亞日報 3代, 6代, 8代 社長을 지냈다. 1963年 建國功勞勳章이 追敍됐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冊의 香氣]1099日, 緋緞길 1萬2000km를 두 다리로 건너며

    ‘나는 아직도 머나먼 草原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太陽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廣闊한 自然과 未知의 世界에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渴望이 고스란히 傳해지는 위 文章을 적은 이는 무엇에든 挑戰할 準備가 돼 있는 健壯한 靑春이 아니다. 職場에서 隱退하고, 아내와는 死別한 예순 살의 前職 記者 兼 칼럼니스트가 主人公이다. 30餘 年間 프랑스 有數의 新聞社와 雜誌社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隱退 後 “내 나이에 薔薇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著者는 1999年 터키 이스탄불에서 始作해 2002年 中國 시안에 到達하기까지 1萬2000km를 걸은 1099日의 旅程을 담아 세 卷의 冊으로 出刊했다. 4年間 네 次例에 나눠 걸었다. 1卷은 旅行 첫 期間인 1999年 봄부터 여름까지를 다뤘다. 著者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짐을 도둑맞고, 짐승의 威脅을 받았으며, 발의 皮膚가 떨어져 나가고 배 속이 뒤틀리는 듯한 腹痛과 싸운다. 이란 首都 테헤란까지 가려 했지만 豫想 밖의 變數로 터키 에르주룸에서 멈춰야 했다. 2卷은 터키 에르주룸∼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2000年 봄∼가을), 3卷은 사마르칸트∼中國 투루판(2001年 여름, 가을) 및 투루판∼시안(2002年 봄, 여름)의 旅程을 各各 整理했다. 出版社는 出刊 20周年을 맞아 改訂版을 냈다. 冊은 著者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對한 仔細한 逸話로 가득하다. 그가 길을 걷기 전 ‘내 博物館은 길들과 거기에 痕跡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廣場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食卓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라고 밝혔듯, 著者는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小市民의 삶을 觀察하고 그들의 好意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宿所가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던 그에게 羊갈비를 구워 주고 寢臺를 내어준 이부터, 親舊들에게 旅程에 對해 이야기해 달라며 著者의 손을 끌고 學校로 向한 初等學生까지. 神奇하다는 듯 異邦人인 그를 觀察하는 눈길도 그저 반갑다. 그는 말한다. ‘但只 存在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幸福인가!’ 1萬2000km를 걷는 過程은 順坦치만은 않다. 紛爭地域에 潛入한 테러리스트로 誤解를 받기도 하고, 이슬람 文化圈인 터키에서 半바지를 입은 그를 不快한 視線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마주한다. 가톨릭 信者인 그를 改宗시키려는 이슬람 司祭도 만난다. 4年間의 고된 걸음은 예순이 넘은 그에게 疾病도 안겼다. 脫水症과 前立腺炎이 겹쳐 배가 부풀어 오르고 小便을 볼 수 없었다.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발가락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게 日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繼續 걷는다. 그저 他人을 만나고, 걷기를 反復하는 4年의 時間을 통해 쫓기듯 살아온 30餘 年을 뒤로한다. 느림과 沈默을 穩全히 누리는 그의 旅程은 훌훌 털고 背囊을 멘 채 길을 나서고 싶은 衝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洞察 亦是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社會가 얽어맨 줄을 끊고, 安樂椅子와 便한 寢臺를 外面한다. 行動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60살의 前職 記者는 왜 1萬2000km를 걸었을까

    ‘나는 아직도 머나먼 草原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太陽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廣闊한 自然과 未知의 世界에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渴望이 고스란히 傳해지는 위 文章을 적은 이는 무엇에든 挑戰할 準備가 돼 있는 健壯한 靑春이 아니다. 職場에서 隱退하고, 아내와는 死別한 예순 살의 前職 記者 兼 칼럼니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主人公이다. 30餘 年間 프랑스 有數의 新聞社와 雜誌社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隱退 後 “내 나이에 薔薇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著者는 1999年 터키 이스탄불에서 始作해 2002年 中國 시안에 到達하기까지 1萬2000㎞를 걸은 1099日의 旅程을 담아 세 卷의 冊 ‘나는 걷는다 1·2·3’(효형출판)을 出刊했다. 4年間 네 次例에 나눠 걸었다. 1卷은 旅行 첫 期間인 1999年 봄에서 여름까지를 다뤘다. 著者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짐을 도둑맞고, 짐승의 威脅을 받았으며, 발의 皮膚가 떨어져나가고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腹痛과 싸운다. 이란 首都 테헤란까지 가려 했지만 豫想 밖의 變數로 터키 에르주름에서 멈춰야했다. 2卷은 터키 에르주룸~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2000年 봄~가을), 3卷은 사마르칸트~中國 투壘칸(2001年 여름, 가을) 및 투壘칸~시안(2002年 봄, 여름)의 旅程을 各各 整理했다. 出版社는 出刊 20周年을 맞아 改訂版을 냈다. 冊은 著者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對한 仔細한 逸話로 가득하다. 그가 길을 걷기 전 ‘내 博物館은 길들과 거기에 痕跡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廣場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食卓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라고 밝혔듯, 著者는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小市民의 삶을 觀察하고 그들의 好意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宿所가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던 그에게 羊갈비를 구워 주고 寢臺를 내어준 이부터, 親舊들에게 旅程에 對해 이야기海獺라며 著者의 손을 끌고 學校로 向한 初等學生까지. 神奇하다는 듯 異邦人인 그를 觀察하는 눈길도 그저 반갑다. 그는 말한다. ‘但只 存在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幸福인가!’ 1萬2000㎞를 걷는 過程은 順坦치만은 않다. 紛爭地域에 潛入한 테러리스트로 誤解를 받기도 하고, 이슬람 文化圈인 터키에서 半바지를 입은 그를 不快한 視線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마주한다. 카톨릭 信者인 그를 改宗시키려는 이슬람 司祭도 만난다. 4年間의 고된 걸음은 예순이 넘은 그에게 疾病도 안겼다. 脫水症과 前立腺炎이 겹쳐 배가 부풀어 오르고 小便을 볼 수 없었다.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발가락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게 日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繼續 걷는다. 그저 他人을 만나고, 걷기를 反復하는 4年의 時間을 통해 쫓기듯 살아온 30餘 年을 뒤로한다. 느림과 沈默을 穩全히 누리는 그의 旅程은 훌훌 털고 背囊을 멘 채 길을 나서고 싶은 衝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洞察 亦是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社會가 얽어맨 줄을 끊고, 安樂椅子와 便한 寢臺를 外面한다. 行動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06
    • 좋아요
    • 코멘트
  • “콧물 흘리게 돼 기뻐… 꽤 괜찮은 해피엔딩”

    ‘智詵아 스무 살 된 것 祝賀해.’ 2年 前 7月 30日 오빠의 文字메시지가 왔다. 受信者는 當時 42歲이던 이지선 한동대 社會福祉學科 敎授(44). 그에게는 生日이 두 個다. 2000年 7月 30日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해 大學 4學年이던 그는 오빠 車를 타고 歸家하던 길에 交通事故를 當해 前身 55%에 3度 火傷을 입었다. 皮膚 移植手術이 마흔 番을 넘으면서 回數를 세지 않게 됐다는 그는 苦痛과 忍耐, 깨달음으로 지난 20年을 살아왔다. 서울 松坡區 카페에서 4日 그를 만났다. 그는 2003年 40萬 部가 팔린 에세이 ‘智詵아 사랑해’(이레)를 始作으로 지난달 27日 12年 만에 네 番째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문학동네)을 펴냈다. 冊은 사고 트라우마를 克服하고 大學敎授가 되기까지 旅程을 담았다. 두 엄지를 除外한 여덟 손가락의 끝마디를 切斷하는 手術을 받을 때 팔 全體를 떼어내지 않음에 感謝해야 했다. 얼굴에 移植한 人組皮膚가 녹아내릴 때는 ‘왜 何必 나에게?’라는 물음이 數年間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엄지로 字板을 두드려 글을 쓰면서 自身에게 벌어진 事故를 客觀的으로 바라보게 됐다. “글쓰기를 통해, 길을 가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친 것처럼 나와 상관없는 이의 잘못으로 事件이 벌어졌다고 客觀化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지은 罪가 있다거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他人들의 解釋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요.” 그는 ‘當然히 내 것이라 여긴 모든 게 事實 내 것이 아니다’라는 眞實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굴에 火傷을 입으면 코 안쪽 皮膚가 두꺼워져 얼마 前 콧구멍을 넓히는 手術을 받았다. 그는 冊에 이렇게 썼다. ‘콧물이 흐른다. 기쁘다.’ “火傷 治療를 위해 消毒藥으로 온몸을 洗滌할 때 治療室 바닥에서 철퍽철퍽하는 물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너무 恐怖스러웠는데 3年 前부터 沐浴湯에서 물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洗身을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感謝했어요. 世上에 當然한 건 없다는 걸 알기에 幸福을 더 느낄 수 있어요.” 그는 2004∼2016年 美國 보스턴代와 컬럼비아大,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代(UCLA)에서 社會福祉學 碩·博士 學位를 받았다. 美國生活 12年 동안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韓國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친 이조차 불쑥 이런 質問을 던졌다. “꺼내놓고 싶지 않은 가장 아픈 記憶을 갑자기 묻는 無禮함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美國人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 好奇心이 생겨도 그걸 表現하지 않는 게 禮儀라는 걸 알아요. 障礙人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易地思之가 必要해요.” 6年 車 敎授인 그는 疏外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19年부터 코미디언 李聖美 송은이, 李榮杓 江原FC 代表, 歌手 션과 함께 父母가 收監 中인 靑少年들을 돕고 있다. “完璧한 어둠이라고 생각한 絶望 속에서 ‘적어도 내 人生이 이렇게 슬프게 끝나진 않을 거야’라는 작은 期待를 품는 게 希望인 거 같아요. 그 希望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줬어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죽었던 男便과 對話하고… “AI技術, 倫理的 論難 가이드라인 必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2 ‘돌아올게’에서는 交通事故로 男便을 잃은 아내가 假想의 男便과 얘기하고 부대끼며 산다. 男便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記錄, 通話錄音 等을 學習한 人工知能(AI)李 男便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만들어낸 것. 죽은 이를 살려내는 技術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日本 NHK는 2019年 3月 假想現實(VR) 技術을 利用해 俳優 데價와 데쓰로가 別世한 어머니를 만나게 했고, 2020年 우리나라 한 放送社도 血液癌으로 일곱 살에 世上을 떠난 딸과 엄마가 만나는 프로그램을 企劃했다. AI 技術은 어디까지 使用해도 될까. 서울여대 情報保護學科 김명주 敎授(59)는 2日 發刊한 ‘AI는 良心이 없다’(헤이북스)에서 AI 技術이 人間의 죽음, 存在, 信賴에 미칠 수 있는 倫理的 副作用과 解決 方案을 提案한다. 서울 蘆原區 서울여대에서 2日 金 敎授를 만났다. 그는 “人間이 死別을 받아들이기까지 一定 段階를 거친다. AI를 통해 죽은 이를 만나게 되면 故人이 實際 살아 있다는 錯覺을 일으켜 正常的 애도 過程이 歪曲될 수 있다. 故人이 생각날 때마다 찾는 中毒 現象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工學 博士인 金 敎授는 1994∼2002年 서울地方檢察廳 特殊部에서 컴퓨터犯罪 事件 搜査 諮問을 맡았다. 人文學, 社會科學 專門家들과 2018年 AI 倫理 가이드라인 ‘서울 PACT’를 만들었다. 金 敎授는 假想 歌手, 인플루언서, 아나운서부터 假想 大選 候補까지 登場한 만큼 假想의 存在가 實際 人間이 아님을 밝히는 措置가 必要하다고 말한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가 만든 假想 인플루언서 ‘로지’는 2020年 8月 처음 登場했을 때 假想의 存在임이 公開되지 않았다. 金 敎授는 “假想 인플루언서는 製品을 使用해 보지 않고 廣告를 하기 때문에 消費者를 欺瞞하는 側面이 있다”며 “사람들도 속을 수밖에 없다”고 指摘했다. 그는 “假想 存在에 對한 信賴性 問題를 解決할 가이드라인이 必要하다”며 “美國은 딥페이크 技術을 使用할 境遇 이를 明示하게 한 ‘딥페이크 法’을 2019年 만들었다”고 말했다. AI 技術이 採用, 敎育 分野에서도 活用되고 있어 人間의 偏見을 踏襲하지 않도록 AI를 開發하는 것도 課題다. 아마존은 2016年 新入社員 採用 時 書類 評價에서 AI 프로그램을 導入했다가 女性 差別 論難이 일자 이를 廢棄했다. 金 敎授는 “AI 챗봇 ‘이루다’가 人種 및 地域 差別 發言을 한 건 이루다에 投入한 데이터에 담긴 偏見 때문이었다”며 “AI 設計 初盤부터 公正性을 苦悶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5-05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冊의 香氣]豫期치 못한 죽음이 비추는 삶의 이야기

    痲藥과 같은 密輸品을 삼킨 뒤 다시 吐해내는 方式으로 物件을 運搬하는 ‘스왈로어’ 데이브는 機內에서 한 男性의 죽음을 目擊한다. 데이브 옆자리에 앉은 잭은 데이브에게 “저 男子는 아마 헤로인이 담긴 콘돔을 삼켰다가 藥物中毒으로 死亡했을 것”이라는 섬뜩한 이야길 한다. 正體不明의 가루가 담긴 고무掌匣을 삼킨 狀態였던 데이브는 急死한 男性의 死因에 對한 잭의 假說을 들은 直後 죽음의 恐怖를 온몸으로 느낀다. 몸속의 벌레가 數百 個의 바늘을 들고 배를 푹푹 찔러대는 것처럼…. 冊은 죽음과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短篇集이다. 冊 題目인 短篇 ‘스마일’은 自身과 같은 스왈로語의 죽음을 目擊한 데이브의 이야기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 廢棄物로 가득한 섬에 떨어졌다가 救出된 實存 人物 조이를 主人公으로 小說을 쓰려던 作家가 조이의 死亡 消息을 뉴스로 接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왼’은 硏究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칼리와 不足을 觀察하던 中 決鬪를 벌였던 不足員 中 한 名이 죽으면서 混亂스러워하는 幾何의 이야기다. 他人의 죽음은 살아남은 者들에게 생생하게 刻印된다. 데이브는 “죽은 者의 얼굴을 볼 機會는 흔치 않다”는 잭의 부추김으로 1等席에 運搬된 스왈로語의 얼굴을 몰래 본다. 妙하게 微笑를 띤 듯한 그의 얼굴을 데이브는 잊지 못하고, 飛行機에서 내려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어 電話를 건다. 期하는 不足원의 決鬪 場面이 머리에서 映像처럼 再生됨을 느낀다. 그 不足은 오른손잡이를 排斥했는데, 때마침 죽은 不足員은 오른손잡이였다. 期하는 決鬪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지만, 오른손잡이 不足원이 組織論理에 犧牲됐다고 推測한다. 豫期치 못한 죽음과 마주한 人間들은 어떠한 方式으로든 前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短篇 ‘休暇 中인 屍體’의 主人公인 프리랜서 作家 ‘나’는 버스를 집 삼아 全國을 流浪하는 주원을 取材하기 위해 그와 同行한다. 주원은 前날 먹은 술의 醉氣가 가시지 않은 狀態로 스쿨버스를 運轉했다가 아이를 죽일 뻔했다. 나는 주원과 離別하면서 곧 그가 죽을 거라 생각한다. 버스에 매달려 끌려갔던 아이에게 謝罪하는 마음으로 自身의 뺨을 때렸던 주원을 떠올리며 나 亦是 謝罪할 相對를 생각하며 自身의 뺨을 때린다. 他人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契機가 되기도 한다.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30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발레리나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닌”…드래그퀸이 된 ‘모어’의 20年

    그의 競技 楊州市 집으로 가는 길은 險難했다. ‘15-1番’ 45分 後 到着. ‘360番’ 55分 後 到着. 서울 地下鐵 3號線 지축역에서 그의 집 앞 停留場인 청암民俗博物館行 버스는 올 생각을 안했다. ‘버스 配車間隔이 길어서 좀 늦을 듯 합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電話벨이 울렸다. 携帶폰 너머 목소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분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運轉해서 오는 거 아니었어요? 여길 大衆交通으로 오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랬다. 梨泰院 클럽 트랜스의 看板스타인 20年 經歷의 드래그퀸 아티스트 某智旻 作家(44)의 집은 自動車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버스의 配車間隔은 基本 30分이었다. 택시는 오지 않았다.●“내 삶은 내가 選擇하지 않은 無期懲役 不幸이었다”‘대중교통 타고 오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啞然失色하던 그도 運轉免許가 없었다. 某 作家는 서울 아무 곳이나 찍어도 基本 한 時間 半, 往復 세 時間은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스마트폰 메모 張에 글을 쓰기 始作했다. 그가 쓴 글의 草案 90% 以上은 스마트폰으로 作成됐다. 누드모델을 하러 韓國藝術綜合學校로 向하는 地下鐵 안에서, 드래그쇼를 위해 이태원으로 向하는 버스 안에서, 苦痛과 燦爛함이 交叉했던 삶의 조각들을 모은 에세이集 ‘털 난 물고기 모어’(銀杏나무)를 8日 펴냈다. 그는 ‘모어’(MORE), 또는 ‘모어(毛魚)라는 이름으로 活動한다. 19日 自宅에서 그를 만났다. “제 말이 좀 느닷없잖아요. 아름답게 가다가 뜬금없는 表現이 나오고, 이 世上에 없는 單語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各 잡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글이 안 나온다고 할까요?” 그의 冊은 이렇게 始作된다.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男子의 몸에 발레리나를 꿈꿨던 그가 學校와 社會에서 받았던 差別, 陰地에 숨어 일하는 것이 싫어 性轉換 手術을 抛棄했던 20代 初盤의 아픔, 軍隊 免除를 받기 위해 ’省 主體性 障礙‘ 診斷을 받고 女性호르몬 注射를 맞아야 했던 至難한 戰爭들이 담겼다. 그는 태어나는 瞬間부터 ’一般‘이란 範疇에서 한참 벗어났던 自身의 삶을 이렇게 表現한다. ’某 氏 집안의 셋째는 애미의 뱃속에서부터 구더기를 씹어 먹고 恥部를 달고 世上에 기어 나왔다. 이것은 내가 選擇하지 않은 無期懲役 不幸이었다.‘ “어렸을 땐 호모새끼라 놀림 받았고, 中·高等學校에서는 每日 맞았어요. ’大學校는 다르겠지‘란 期待로 한국예술종합학교 舞踊院에 入學했는데 新入生 오리엔테이션에서 先輩가 ’女子인 척 하지 마라‘며 뺨을 때려서 제가 날라 갔어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苦痛 받나‘ 싶었어요. 20代 初盤까지는 當然히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그는 드래그퀸이 됐다. 22살 되던 해인 2000年 처음 梨泰院 클럽 트랜스에 발을 들였다. 同性愛者였던 그는 드래그퀸이 되면서 少數者 中 少數者가 됐다. 專攻을 살려 발레리노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鬼神이 제 머리 끄댕이를 잡고 梨泰院 클럽으로 데려갔다”고 回顧했다. 드래그쇼를 한 歲月은 그의 冊에 이렇게 한 文章으로 壓縮됐다. ’世上으로부터 嘲弄당하기 爲해 쥐구멍으로 들어간 20年의 歲月.‘ “드래그는 엄청나게 華麗하잖아요. 그렇게 꾸미기 위해 드레스와 하이힐, 가채, 掌匣, 옷핀, 실핀, 바늘 하나까지 다 챙겨야 하고, 氣分이 나빠도 웃어야 해요. 근데 變身의 假面이 주는 快感이 어마어마해요. 저는 아름다움에 對한 熱望이 있어요. 그게 너무 커서 죽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이렇게 愛憎 덩어리인 드래그쇼를 繼續 하고 있네요.”●’변방에서 끼 떠느라 애쓴 사람‘, 모어苦痛에 몸부림쳤던 날들에 對한 回顧는 逆說的이게도 日常의 平穩에 對해 無限한 感謝함을 느끼게 했다. 伴侶猫 모모와 나눈 對話가, 23年 째 함께한 男便에 對한 사랑이, 幼年時節부터 조금은 유별났던 自身의 곁을 지켜준 父母님을 向한 感謝함이. 그의 삶을 支撐하는 세 軸인 伴侶猫, 男便, 父母님을 向한 글들은 悽然하게 아름답다. 免許가 없는 男便을 向해 某 作家는 이렇게 썼다. ’꿈에라도 當身이 瞥眼間 부릉부릉 運轉해서 東海로 南海로 데려다주는 浪漫은 絶對 벌어지지 않겠지요. 그럼 어때요. 우리에겐 씩씩한 두 다리가 있는걸요. 우린 老人이 되어서도 팔짱 끼고 버스로 電鐵로 마실 나가요. 그 아름다운 映像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男便과 結婚했던 2017年 5月 24日이 제 人生에서 가장 아름다운 瞬間이었어요. 스스로의 삶을 ’褥瘡의 구더기‘라고 表現했던 그는 2019年 6月 뉴욕에서 열리는 스톤月 抗爭(1969年 美國에서 同性愛者 集團이 自身들의 權利를 主張하며 벌인 데모) 50周年 記念 公演에 招待됐다. 60年 傳統의 라 마마 實驗劇場에서 뮤지컬 ’13 fruitcakes‘ 舞臺에 서 登場人物 13名 中 한 名인 ’올란도‘를 延期했다. 日本 도쿄의 한 클럽 扮裝室에서 찍힌 그의 寫眞을 보고 某 作家에게 連絡한 이일하 監督은 2018年부터 3年間 그의 삶을 담아 다큐멘터리 ’모어‘(2021年)를 만들었다. 다큐는 지난해 DMZ 國際 다큐멘터리映畫祭와 釜山國際映畫祭에 招請됐고, 올해 6月 開封한다. ”’그 時間 안에 있어서 너무 感謝하다‘는 말을 요즘 많이 해요. 삶에는 그 時間帶마다 벌어지는 일이 있는 거 같아요. 그때 마다 避하지 않고 그 時間을 이 악물고 버티면 된다는 걸 마흔 다섯이 되고 깨달았어요.“그의 冊은 이렇게 끝난다. ’낮은 곳에서 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고/ 來日은 낮은 곳에서 當身을 만나고/ 來日은 높은 곳에서 某某를 만나고/ 그렇게 높고 낮은 곳에서/ 그렇게 있고 없고/ 헛헛하게 虛費해진 時間/악물고 버틴 이의 時間/ (中略) 무언가/ 그 時間에 相應하는 代價를 준다면/ 그 아래 서슴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삶의 높고 낮음을 默默히 지나온 그는 試鍊 속에서도 飛上할 機會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죽어서 ’邊方에서 끼 떠느라 애쓴 사람‘으로 記憶되고 싶다. ”洞네 住民들에게 冊을 드렸어요. 60살이 넘은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언니라고 불러”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을 한 番이라도 보셨을까요? 제 性正體性과 제가 하는 藝術은 너무나 邊方에 있잖아요.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저를 알아봐주고 冊으로, 映畫로 내 주시는 게 神奇해요. 요즘은 그 邊方의 삶이 價値가 있고 아름다운 것 같아요.“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27
    • 좋아요
    • 코멘트
  • ‘낮일밤글’ 事務官 作家가 다잡은 ‘創作하는 姿勢’

    民間企業에서 일하다가 市廳 公務員이 된 ‘꽁지머리’ 上士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職員’으로 뽑힌 뒤 머리를 端正하게 자른다. 그러나 새로운 데 挑戰하는 그의 性向은 끝내 ‘公務員化’되지 못한다. 結局 組織文化에 挫折한 上士는 安定的인 자리를 박차고 辭表를 쓴다. 行政考試에 合格한 現職 國家報勳處 事務官인 이태승 作家(36·寫眞)가 12日 펴낸 短篇小說集 ‘勤勞하는 姿勢’(銀杏나무)에 收錄된 短篇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의 줄거리다. 短篇 8個로 構成된 新刊은 中學校 先生님, 國立墓地 職員, 市廳 公務員 等 公職者들이 組織에서 겪는 孤軍奮鬪를 흥미롭게 그렸다. 그는 25日 東亞日報와의 인터뷰에서 “公務員으로 일하면서 느낀 悲哀, 뭉클함 等의 感情을 率直히 表現하는 게 저만의 ‘새로움’이라고 생각했다”며 입을 열었다. 作家는 日常 속 悲哀를 捕捉하는 데 集中한다. 冊 題目과 같은 短篇 ‘勤勞하는 姿勢’는 獨逸로 出張을 떠난 環境部 公務員들이 武裝團體에 拉致돼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테러犯의 銃에 맞아 막내 事務官이 死亡한 後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悲劇이다. 平生 일에 빠져 산 次官은 大腸癌에 걸려 時限附 宣告를 받고, 기러기 아빠 課長은 獨斷的인 性格 탓에 後輩들과 멀어져 家庭과 職場 어디서도 所屬感을 느끼지 못한다. “結局 일하면서 찾아야 하는 건 自己 自身인데 사람들은 그 事實을 나중에야 깨달아요. ‘내가 일한 보람이 뭐였지?’를 가장 마지막에야 돌아보죠. ‘시스템에 從屬된 내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餘韻을 남기고 싶었어요.” 至難한 日常의 奮鬪로 무뎌진 感情 속에서 混亂스러워하는 人物의 心理도 細密히 描寫했다. 短篇 ‘門 앞에서 이만’에서 無氣力한 公務員 主人公은 自身과 가까워지려 努力하는 商事를 徹底히 避한다. 職場뿐만 아니라 日常에서도 關係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主人公은 맞선 相對에게 ‘한 番 더 보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短篇 ‘五宗, 料, 柳州’에는 사내커플임을 숨기는 公務員 主人公이 登場한다. 그는 旅行地에서 만난 同性 커플이 戀人임을 떳떳이 밝히는 걸 보며 自己 삶에 갑갑함을 느낀다. “職場上司나 맞선 相對와의 關係에서 主人公들은 他人과의 疏通이 斷絶된 自身을 直視해요. 女子親舊를 公開하지 않는 主人公을 통해선 祕密의 겹을 쌓고 自身이 누군지 苦悶하는 職場人의 壇上을 그렸죠.” 이 作家는 午前 9時부터 午後 6時까지는 事務官으로, 退勤 後와 週末에는 小說家로 산다. 經營學을 專攻한 그는 大學生 때부터 품은 創作慾이 小說이란 媒介體를 만나 뒤늦게 피어난 만큼 義務感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저는 公務員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할 겁니다. 專業 作家가 되면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글 쓰는 걸 못 즐길 것 같아요. ‘빨리 新作을 내야 한다’는 躁急함보다 천천히, 멀리 보려고 해요. 多作보다 좋은 作品 하나를 쓰는 作家가 되고 싶습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27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退勤 後엔 小說家…公職生活의 悲哀가 武器 되었죠”

    꽁지머리에 새로운 挑戰을 즐기는 私企業 出身 商社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職員’으로 뽑힌 뒤 머리를 깔끔하게 자르고 漸漸 ‘公務員化’된다. “내가 저 職員보다 2分의1만큼 일을 더 한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을 하지만 밉相이었던 職員은 結局 모두 忌避하던 支社로 發令받는다. 退勤 直前 業務指示가 日常인 上司 때문에 健康에 異常이 온 主人公은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걸 上司에게 보여주고 싶어 조금 深刻한 病이길 바라면서도 ‘이런 내가 제精神인가?’ 싶은 懷疑感에 빠진다. 行政考試에 合格해 國家報勳處 事務官으로 일하는 이태승 作家(36)가 첫 小說集 ‘勤勞하는 姿勢’(銀杏나무)를 12日 펴냈다. 8個의 短篇으로 構成된 冊은 中學校 先生님, 國立墓地 職員, 市廳 公務員 等 各其 다른 公職者들이 每日 會社에서 벌이는 小小한 孤軍奮鬪를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이 作家는 公職에서의 經驗이 自身의 色을 드러내는 武器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職場生活을 始作한 2015年부터 習作을 써온 그는 2017年부터 本格的으로 短篇들을 쓰기 始作했다. 그 무렵 다닌 小說쓰기 學院에서는 ‘常套性과 典型性을 벗어나라’는 말을 많이 했다. 25日 電話로 만난 이 作家는 “想像力이 멀리 있을 것 같지만 가까이 있더라. 나만 아는 內密함이 結局은 새로운 것”이라며 “일을 하면서 느꼈던 悲哀, 뭉클함 等 여러 感情들을 率直하게 表現하는 것이 제가 가진 ‘새로움’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作家의 말처럼 그의 小說은 日常 속 悲哀를 正確히 捕捉해낸다. 冊의 題目이기도 한 短篇 ‘勤勞하는 姿勢’는 獨逸 出張을 간 環境部 次官, 誇張, 막내 事務官이 武裝團體에 拉致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그들이 쏜 銃에 맞아 事務官이 死亡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삶 亦是 悲劇이다. 平生을 일에 바친 次官은 大腸癌에 걸려 時限附 3個月 宣告를 받고, 기러기 아빠인 課長은 獨斷的인 性格 탓에 後輩職員들과 멀어져 家庭과 職場, 어디에서도 所屬感을 느끼지 못한다. “結局 일을 하면서 찾아야 하는 것은 自己 自身인데, 사람들은 시스템에 從屬돼 그 事實을 마지막에 깨달아요. ‘내가 일한 보람인 뭐였지?’를 가장 마지막에 돌아보게 되는 거죠. ‘내가 시스템 속에서 잃어버린 건 무엇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餘韻을 남기고 싶었어요.” 至難한 日常의 奮鬪로 무뎌진 感情 속에서 人間關係에 對해 苦悶하는 心理도 細密하게 그린다. 가까워지려 하는 商事를 徹底히 避하는 主人公은 맞선女에게도 線을 긋는다. 好感認知 뭔지 모를 微妙한 感情 속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結局 ‘한 番 더 보자’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다. 社內커플이지만 이를 徹底히 祕密로 하는 主人公은 旅行地에서 만난 同性커플이 戀人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스스럼없이 愛情表現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經路가 정해져버린 듯한 自身의 삶에 갑갑함을 느낀다. “人物을 통해 讀者들이 自身을 한 番 더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어요. 職場 上司와 맞선女와의 關係에서 主人公은 他人과의 疏通이 斷絶된 自身을 直視해요. 題目 ‘門 앞에서 이만’처럼 늘 門 앞에까지밖에 못 가는 人物이죠. 社內커플을 素材로 한 ‘五宗, 料, 柳州’에서는 女子親舊를 社會的으로 公開하지 않는 主人公을 통해 祕密에 祕密의 겹을 쌓고 自身이 누구인지 苦悶하는 職場人의 壇上을 그렸죠.” 午前 9時부터 午後 6時까지는 行政事務官, 退勤 後와 週末은 小說家로 사는 그는 早急함이 생길 때마다 ‘천천히, 재밌게 쓰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大學生 때부터 갖고 있던 創作欲求가 小說이란 媒介體를 통해 뒤늦게 피어난 만큼 義務感으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前 退職할 때까지 公務員으로 일할 거에요. 專業 小說家가 되면 돈을 벌기 위해 繼續 글을 써야 하고, 그럼 오히려 글 쓰는 것을 즐길 수 없어질 것 같아서요. ‘빨리 뭔가를 내야겠다’는 早急함보다는 천천히, 멀리 보려고 해요. 多作보다는 좋은 것 하나를 쓰는 作家가 되고 싶습니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26
    • 좋아요
    • 코멘트
  • “稀貴病度 내 特徵中 하나”… 現實속에서 찾은 淡淡한 希望

    全身 血管에 炎症이 생기는 稀貴 難治病 打카야수 動脈炎을 앓는 高等學生 新蔡倫 量(18)李 鬪病記를 담은 에세이 ‘그림을 좋아하고 病이 있어’(한겨레출판사·사진)를 12日 펴냈다. 신 量은 病을 앓는 것이 自身의 여러 特徵 中 하나라고 보고, ‘견디는 時間이 祝祭처럼 즐거울 수도, 難破된 배에 매달린 心情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淡淡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記錄했다. 신 量은 열다섯 살이던 2019年 病을 診斷받았다. 治療劑가 없어 炎症 數値를 낮추는 雇傭量 스테로이드제를 맞는 게 唯一한 治療法. 한데 眼科에서 “스테로이드제를 繼續 服用하면 視神經이 죽어 失明할 수도 있다”는 靑天霹靂 같은 말을 들었다. 새 學期에 親舊들에게 病을 告白하기까지 苦悶하고, 부은 얼굴을 보기가 싫어 病을 앓고 난 뒤에는 美容室도 가지 않았다. 冊은 鬪病의 苦痛만을 羅列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血管이 좁아지는 症狀 때문에 조금만 運動해도 손발이 차가워지지만 언니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體力을 기른다. 어두운 感情만 記錄하는 ‘憂鬱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이 狀況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속에서 希望을 發見한다’고 했다. 발레 하는 사람부터 엄마와 언니의 얼굴, 授業을 듣는 親舊들까지 A4 用紙에 鉛筆로 스케치를 하며 그림이라는 趣味도 키워 나간다. 冊 題目은 새 學期에 實際 自己紹介를 할 때 했던 말이다. 自身의 疾病을 통해 他人의 아픔을 理解하려 努力하는 著者의 모습은 苦痛에 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態度를 보여준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25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冊의 香氣]흔들리지 않는 日常, 그것이 幸福의 條件

    ‘所得이 一定 水準에 이르면 所得 增加가 幸福에 큰 影響을 끼치지 않는다.’ 1974年 美國 經濟學者 리처드 이스털린이 主張한 理論이다. 그는 1946∼70年 先進國과 開發途上國 等 30餘 個國을 對象으로 設問調査한 結果 基本 欲求가 充足되면 所得 增加가 幸福 增大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發表했다. 이 主張을 담은 이른바 ‘이스털린의 逆說’은 所得 增加는 幸福을 增進시킨다는 經濟學의 旣存 觀點을 뒤집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의 話頭를 던졌다. ‘人間의 幸福을 위해 무엇이 必要할까?’ 美國 서던캘리포니아대 經濟學科 敎授인 著者는 이 質問에 對한 答을 提示한다. 幸福을 위한 條件은 무엇인지, 國家가 個人의 幸福에 얼마나 影響을 끼치는지 等에 對해 問答式으로 整理했다. 所得 水準과 幸福에 聯關性이 없다는 結論은 個人이나 集團을 長期間 追跡 調査하는 時系列 分析을 통해 導出됐다. 美國의 境遇 70年間 實質所得이 3倍 增加했지만 幸福 水準은 長期的으로 下落勢를 보였다. 著者는 比較 對象이 되는 사람이나 狀況에서 原因을 찾는다. 돈을 많이 벌어도 더 富者인 사람이 存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幸福해지려면 比較 基準을 바꿔야 한다고 提案한다. 健康과 家族, 두 가지는 所得과 달리 他人과 比較하기보다 ‘過去의 나’가 基準이 된다. 내가 가장 健康했던 瞬間, 家族들과 가장 和睦했던 瞬間이 準據 基準이 된다는 것. 이 基準은 他人과의 比較에 따라 흔들리지 않기에, 이를 達成하면 人間은 只今보다 더 幸福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幸福해지고 싶다면 돈을 더 벌려는 것보다 더 健康해지고, 사랑하는 이와 더 많은 時間을 보내도록 努力하는 것이 賢明한 方法이라고 强調한다. 論議는 ‘政府가 個人을 幸福하게 만들 수 있는가’로 나아간다. ‘그렇다’고 結論을 먼저 낸 著者는 獨逸 統一 直後였던 1991年 東獨 사람들의 幸福 水準이 急落했다는 設問調査 結果를 提示한다. 景氣 沈滯로 많은 이들이 職場을 잃었고, 社會安全網이 崩壞되면서 保育과 敎育, 醫療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社會主義가 무너지면서 政治的 自由는 얻었지만 幸福의 重要한 세 要因인 일자리, 健康, 家族이 모두 흔들리면서 東獨 사람들은 統一 前보다 더 不幸해졌다는 것이다. “福祉國家 政策과 國民 幸福은 함께 간다”는 著者의 主張은 幸福을 追求하는 데 있어 健康과 人間關係 等 個人의 努力뿐 아니라 政府가 어떤 役割을 해야 하는가에 對한 談論도 함께 提示한다. 政治 體制가 個人의 幸福에 미치는 影響에 對한 分析도 興味롭다. 1994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든 人種이 投票權을 갖게 된 後 처음으로 民主的인 選擧를 實施하자 國民의 幸福 水準이 높아졌다. 하지만 效果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國民의 幸福 水準이 人種差別主義 政策을 펼친 以前 政權 水準으로 돌아온 건 政治 體制가 幸福의 決定的인 要因이 아님을 보여준다. 著者는 “幸福은 政治體制가 아니라 經濟 狀況, 健康, 家庭生活을 增進시키는 政府의 具體的인 政策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幸福을 위해서는 日常의 滿足이 가장 重要하다는 뜻이다.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2022-04-23
    • 좋아요
    • 코멘트
    PDF紙綿보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